우리 학교 주변 지명 좀 알아볼까?
- 대현면과 야음동, 신선암을 중심으로 -
1. 들어가는 말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나? 우선 올해 3월, 내가 우리 학교에 부임하면서 의아해했던 점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신선여고가 어련히 야음동에 있는 줄 알았는데, 학교 바로 옆에 대현동사무소가 있었다. 내가 야음동으로 알고 있는 곳은 수암동, 대현동, 야음·장생포동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야음동 교육시범화 단지 안에는 초·중·고 네 개의 학교가 인접해 있는데, 신선여고 외에 용연초등학교와 야음중학교, 대현고등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세 학교의 교명(校名)을 따져 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 내 상식으로는 교명이란, 그 지역의 지역명을 따는 것인데, 용연초등학교의 ‘용연(龍淵)’은 여기서도 동남쪽으로 한참을 가야만 하는 바닷가에 인접한 용연동에서 따온 이름이며, 야음중학교의 ‘야음’은 야음동의 동명에서 가져왔고, 대현고등학교의 ‘대현’은 대현동의 동명일 것이 분명하다. 서로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학교가 왜 서로 다른 동명으로 교명을 택했을까? 게다가 대현중학교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달동에 있으니, 나의 상식은 그야말로 알량한 지식일 뿐이었다는 말인가? 나는 이런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인터넷 검색의 창을 바쁘게 두드려대었다.
그래서 알아낸 정보를 여기 정리해 보려 한다. 우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대현면의 존재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법정동과 행정동의 차이에 알아보려 한다. 그다음으로 야음동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 학교의 교명(校名)과도 관계가 깊은 ‘신선암’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2. 대현면(大峴面)
대현면이 조선시대에는 현재 울산의 남구 전체를 칭하는 행정구역명이었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중구가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의 관청이 있는 부내면(府內面)이고, 태화강 이남의 남구 전체가 대현면이 되는 것이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울산부 호적대장 1672년(현종 13)에 대대대현면이라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고, 1720년(숙종 46)에 대현면이라는 현재의 명칭이 나온다. 1895년(고종 32) 『영남읍지』에는 대현면이 내현면과 외현면으로 분면(分面)되었음이 드러난다. 여기에 나오는 내현면은 신정동과 삼산동, 달동, 옥동 일대의 지역이고, 외현면은 야음동, 여천동, 장생포동, 매암동, 황성동, 용연동, 선암동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한편 현재 울산 중구에 속하는 부내면(府內面)은 1895년 대현면에서 분면한 내현면(현재 신정동, 삼산동, 달동, 옥동)과 합쳐서 1917년 울산면이 되고, 1931년에는 울산면이 다시 울산읍으로 승격하게 된다. 또 1962년 울산읍이 울산시로 승격하면서 범서읍의 무거리와 다운리, 청량면 두왕리, 그리고 대현면 전체가 울산시에 편입되었다. 조선조에는 지금의 울산 남구 전체를 지칭하던 방대한 지역이었던 대현면은 야금야금 그 땅이 줄어들어, 현재는 법정동으로는 야음동에 속하는, 행정동인 대현동으로 그 명칭만 살아 있는 걸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이 행정동명인 ‘대현동’도 2007년 동명을 개칭하던 관계자들이 옛날의 그 거대한 지역이 이름마저 사라지면 되겠느냐며 가까스로 살려두었다고 한다. 60, 70, 80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자신의 고향은 대현면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 대현면이 공단 개발로 주민들 상당수가 떠나고, 야음동의 행정동인 대현동으로 이름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걸 알면 참으로 그 마음이 어떠할까?
3. 법정동과 행정동
우리 학교 바로 옆에는 대현더샵아파트가 있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인접해서 대현동주민자치센터가 위치한다. 그런데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소가 야음동으로 되어 있는데도 주민등록등본을 떼기 위해 대현동주민복지센터를 찾는다. 그 이유는 대현더샵아파트의 법정동은 야음동이며, 행정동은 대현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정동과 행정동은 어떤 차이가 나는 걸까?
법정동이란 말 그대로 법으로 정한 동이다. 법정동은 대부분 과거부터 전해온 고유 지명을 그 명칭으로 하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거의 변동이 없다. 법정동은 신분증, 신용카드 및 재산권과 관련된 각종 공부(公簿)의 주소에 사용된다. 반면에 행정동은 행정능률과 주민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설정한 행정구역 단위이다. 행정동은 주민 수의 증감에 따라 수시로 설치, 폐지되기도 한다.
법정동과 행정동의 명칭은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행정동이 신정1동인 사람은 법정동도 신정동으로 명칭이 일치하는 경우이며, 행정동이 대현동이고 법정동이 야음동인 사람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4. 야음동(也音洞)
야음과 관련된 옛 기록을 찾아보면, 1672년(현종 13)에 울산도호부 대대대현면(大代大峴面) 여사음산(如士音山)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1699년(숙종 25)에 야음리(也音里)로 현재와 같은 지명이 쓰이고 있다. 1962년 6월 울산시 승격 때 장생포출장소의 관내에 편입되어 야음동(也音洞)이 되었으며, 1979년에 야음1·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5년에는 야음2동을 다시 야음2·3동으로 분동하였다. 1995년 여천동(呂川洞)을 편입하였고, 1998년 장생포동(長生浦洞)을 편입하여 야음1동은 야음1장생포동이 되었다. 그리하여 야음동은 행정동으로 야음1장생포동, 야음2동, 야음3동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2007년 남구청의 행정동 명칭 변경에 따라 야음1장생포동은 야음장생포동으로, 야음2동은 대현동으로, 야음3동은 수암동으로 변경되었다.
야음(也音)은 ‘잇기 야(也)’자와 같이 생긴 마을 뒷산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여 ‘야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야음동 뒷산은 높지 않고 우뚝 솟은 봉우리도 별로 없어 ‘也’자의 모습과 흡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나마 높다고 볼 수 있는 봉우리(133m)에 ‘신선암(神仙巖)’이 위치해 있고, 그 바위 옆에는 팔각 정자로 신선정(神仙亭)이 자리를 잡고 있다.
5. 신선암(神仙巖) 관련 전설, 지명들
<울산매일> 2015년 5월 13일자에 실린 신선바위 전설을 보자. 울산 선암동 산 위에 신선들이 놀던 바위가 있다. 신선들은 속세의 사람들이 자기들을 보지 못하도록 바위의 모습을 호랑이의 머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또 이 바위와 속세의 마을 사이에는 무성한 숲을 만들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런데 속인(俗人)들은 이러한 신선의 의도를 모르고 이 숲의 나무를 베어서 땔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마을에서도 신선암을 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신선의 금기를 어긴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뒤따랐다. 자연재해에다 돌림병까지 창궐하여 인근 주민들이 살기가 어려웠다. 지나가던 어떤 풍수가 말했다,
“호랑이의 머리가 시가지를 보고 있으면 계속 피해를 볼 것이다. 나무를 심어 호랑이의 머리가 보이지 않게 병풍을 쳐라.”
사람들은 풍수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했다. 나무가 우거져 호랑이 형상의 신선암을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 신선 바위 아래의 지역을 선암동(仙巖洞)이라 하여 신선 바위로 동명을 삼았다. 그리고 선암동과 바로 인접한 곳을 수암동(秀巖洞)이라 하였다. 수암동(秀巖洞)에서 수(秀)는 빼어나다다는 뜻이고 암(巖)은 바위라는 뜻이니, 근처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바위가 있다는 의미니, 이 빼어난 바위는 무엇을 일컫는 것이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신선암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신선’과 관련되는 아파트명, 상호명이 근처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학교 교명인 신선여고가 있다. 한자(漢字)로는 新善女高라고 표기한다. 어? 그런데 신선바위의 귀신 신(神)자에 신선 선(仙)자가 아닌 새 신(新)자에 착할 선(善)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 근처의 유명한 신선바위를 교명으로 하고 싶지만 교명으로 귀신 신(神)자를 넣는 것은 망설여졌을 것이다. 또 신선 선(仙)자도 여학교의 교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도교에서 신선은 남성이다. 여성은 선녀인 것이다. 그래서 신선바위의 신선이라는 발음은 그대로 유지하고, 새롭고도 착하다는 의미로 교명을 지은 것이다.
6. 맺는말
위에서 우리는 대현면, 법정동과 행정동의 차이, 야음동, 신선암 관련 전설, 우리 학교의 교명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고찰을 통해 대현면이 조선조에는 현재 울산 남구 전 지역을 아우르는 엄청 넓은 지역 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의 영화로움을 잊지 않기 위해 동명 개칭 위원들에 의해 법정동인 야음동의 행정동 일부로 그 이름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선선여고가 신선바위의 ‘신선’이라는 소리는 그대로 두고 ‘새롭고도 착하다’는 뜻으로 의미를 바꾸었다. 그 교명 그대로 여고생들이 모여 날로 새로워지고 착해지는 배움터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 11. 17.)
※ 이 글을 쓰면서 박채은(朴埰殷: 내고장정체성연구소 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