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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싸워야 할 때 싸워라
박정용은 상담을 마치고 며칠 후부터 도장에 나와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교적 착실히 수련에 임했으며 도장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련이 끝나고 나면 도장의 수련장내부를 쓸고 닦는 것도 솔선수범하였고 언제나 남들보다 일찍 나와서 모범적인 수련을 해나갔다.
나는 박정용에 대해서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도복을 입기위하여 탈의실에서 처음 벗은 그의 몸을 보았을 때 마른 듯 보였으나 군살하나 볼 수 없는 훌륭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격투가로써 최고의 몸매였다.
그를 지도하면서 두 번째 놀란 것은 대단한 운동신경이었다. 빠른 민첩성과 지구력, 허리에서 나오는 강한 펀치력은 지도자로써 부럽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는 이해력에서도 탁월했다. 격투의 기술은 외우는 것보다 몸으로 체득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체득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능력이 있어야 습득이 빠르다. 이해력은 곧 응용력을 만들어내고 응용력은 실전격투에서 곧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세 번째는 한가지의 호신기술을 알려주면 스스로 10가지의 기술을 터득하는 그가 지금 당장 어떤 사람과 일대일로 붙어도 충분히 길바닥에 큰대자로 녹아웃(knockout)을 시킬 능력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학우들에게 날마다 얻어맞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박정용은 눈에 커다란 멍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눈썹이 삐죽 삐죽 튀어나온 것이 그야말로 눈퉁이가 밤퉁이 그 자체였다. 수련 중 그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그는 자지러지듯 놀라며 주저앉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갈비뼈 몇 대가 금이 갔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어떤 날은 코가 부어서 코피를 ‘질질’ 흘릴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머리가 찢겨져서 올 때도 있었다. 분명 학우들에게 얻어맞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학우들에게 얻어맞는 것이 즐겁냐?”
느닷없는 질문에 그는 두 눈을 껌뻑였다.
“ 너 애세끼들에게 얻어 터는 것이 즐겁지?”
“세상에 얻어맞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 놀리시는 거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빙긋 웃어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날마다 얻어맞고 다니는 거냐?”
“애들은 여러 명이고 난 혼잔데 어떻게 게네들을 상대합니까? 싸우나 마나 내가 얻어맞을게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싸움은 나쁜 건데 되도록 싸움은 하지 말아야죠....”
병용이의 말을 듣고 나는 뭔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패닉상태가 되는 듯 했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다 있구나...
이 땅에 무수히 많은 왕따 학생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하니 그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서 화가 나기보다 애처롭게 느껴지기까지 시작했다. 싸움에 대한 왜곡된 해석과 사회적 편견으로 싸움은 나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선생님, 학부모가 오히려 왕따를 양성하고 그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들이 지금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급우들의 괴롭힘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부모님은 학업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늘어놓는다.
최근 뉴스에서 종종 다루어지는 기사에서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학생의 유서에서 학교의 폭력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를 증명해 준다. 아마도 당사자의 부모는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었으리라.
학교에서 이른바 일진이라는 아이들이 왕따 학생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는데 선생님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함께 싸잡아서 싸움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정당히 훈육하고 돌려보낸다.
날마다 얻어맞는 학생에게 싸우지 말라고 충고 하고 가정에서도 눈에 멍이 들어오면 싸우면 안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그리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말을 조언을 한다. 자신을 때린 학생이 같은 반 학생인데 어떻게 어울리지 말라는 것인지 해답도 없이 말이다. 싸움이란 쌍방 간에 의견충돌로 인하여 물리적. 신체적, 언어적 접촉을 말하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는 폭력과 싸움을 구분하지 못하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싸웠는가. 안 싸웠는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자네가 무수히 많은 폭력에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했을 때 단 한번만이라도 상대와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면 왕따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싸움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야! 살아가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싸워야 할 때 반드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박정용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아무 말 없이 소매로 훔치고 있었다.
싸움에 임하는 자세
왕따를 당하고 있는 박정용이나 싸움을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점이 있다면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위하여 의견이나 주장을 펼칠 때 일어나는 의견충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싸움으로 해서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접촉을 무서워하는 것인데 일반적인 사람보다 도가 지나치다 보니 겁쟁이로 각인되게 된다.
누구든 싸우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싸움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싸움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괴롭힌다면 나는 언제든지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라는 마음가짐이다.
일반적으로 겁이 많을수록 왕따로 가는 지름길이 되며 상대의 물리적 충돌을 꺼려하면 할수록 누군가가 나를 집적거린다. 동물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강한 동물이 한 무리를 지배한다. 이 모든 것은 수컷의 지배하에 이루어지며 수컷 중에서도 가장 센 놈만이 권력을 누릴 수 있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는 모든 암컷을 차지한다.
동물에게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있지만 강한 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먹이가 있어도 항상 힘이 센 놈, 우두머리가 먹고 난 후에 먹을 수 있다. 도전적인 행위는 용서하지 않으며 철저히 그것을 응징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는 어떠할까. 인간은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뽐내고 싶어 하며 여자 앞에서는 더욱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간의 본능중 하나는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하며 약한 자에게는 더욱 강하다. 동물의 적자생존의 그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한 집단에 약한 자가 있으면 모두들 괴롭히며 즐거워한다. 그것은 몇 날 며칠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 동안 지속적이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까지 입히기도 한다. 집단적인 범죄행위는 도덕적 해이(道德的解弛)를 낳게 된다.
우리는 괴롭힘에 자살하는 중 고등학생을 매스컴을 통해서 그 심각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는 반에서 문제아라기보다 평범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학급에서 싸움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싸움을 하지 않는 보통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은 자신에게 반항한번 해보지 않는 학급의 친구를 괴롭히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약한 아이가 더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다. 정작 싸움을 잘하는 아이는 학우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싸움도 하지 않는다.
커다란 도사견이 조그마한 치와와가 짖어대도 멀건이 하품만 하며 구경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싸울 가치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인내심이 많아서이기도 하며 어차피 싸움이 일어나면 분명 내가 이길 테니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이기도하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당신이 정말로 왕따나 타인들의 괴롭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예를들어보겠다.
나는 오늘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주일 후 예쁜 여자 친구와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일주일후 자전거 타는 법을 터득할 수 있을까?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일주일만 연습하면 자전거 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지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넘어지는 것이 무서워서 자전거를 못 탄다면 자전거 타는 법은 배울 수 없다. 우리는 아직까지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 타기를 배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완전히 자전거 타기 터득 할 수 있었던 것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고통보다 여자 친구와 자전거 하이킹을 가야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운전을 잘하는 최고의 드라이버가 되고 싶다면 접촉사고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트랙을 도는 전문 프로 드라이버도 예전에는 크고 작은 접촉사고를 경험한 후에야 비로써 베스트 드라이버가 된 것이다. 골프공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골프 선수가 공을 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말이 되겠는가? 진정으로 주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싸움을 각오해야 하며 맞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권투 선수가 권투 경기 중 한 대도 안 맞고 시합을 이기려는 생각을 갖는 선수는 존재 하지 않는다. 만약 상대의 펀치를 허용하는 것이 두렵다면 권투 선수를 포기해야 한다. 상대의 물리적 폭력에 대항하지 않고 여전히 왕따에서 벗어나길 거부한다면 나는 단지 상대가 그만 때려주길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술에 정진한 사람이 시시하게 보이는 사람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무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공격능력이 뛰어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아무리 무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싸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상대의 어이없는 기습공격에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태권도 선수라면 태권도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할 것이다. 그리고 시합에 임하기 전 단단히 마음을 추스르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싸움에 임할 때도 이와 같이 똑같은 마음가짐을 갖지 않는다면 태권도의 기술적 효력은 발휘할 수 없다. 당신은 태권도시합에 출전하는 것이지 싸움시합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상대와 다름으로 해서 생기는 충돌을 무서워한다면 대인관계가 헝클어진다.
소심한 사람 중에는 상대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대의견을 내놓게 되면 자신을 바보취급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싸움에 휘말린다. 그것이 폭력이 아니더라도 더욱 누군가가 집적거린다. 더욱 괴롭히고 싶고 못살게 굴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상대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각오를 갖는다.
어느 날 심한 왕따에 시달리는 제자 중 한명이 따돌림을 당해 괴로워 할 때 그에게 나의 경험담 한 편을 들려주었다.
나의 체격은 큰 편도 아니고 얼굴 또한 순하게 생겨서 격투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공무원이나 전문직에 종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적으로 평탄한 사회생활을 했지만 개중에는 나의 이런 외모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전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반적인 현상은 괜히 사람을 업신여기고 집적거리며 힘이나 정신적으로 억누르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난 여유 있게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친절하거나 상냥한 나의 태도를 상대는 바보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하는 행동이 정도가 지나치면서 폭력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것을 참는 것만이 능사라 아니라는 교훈이다.
20대 중반 나는 잠깐 동안 직장에 다닌 일이 있었다. 단체생활이란 것은 계속해서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든 싫든 함께 얼굴을 맞대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므로 사소한 트러블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았다. 직업자체가 험한 일을 하는 직종이었으므로 특히 더했다. 그들은 선배라는 텃새를 이용하여 골탕을 먹이거나 군기를 잡는 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곤 했다. 그것은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어느 날 아침, 업무에 들어가 전 나는 동료를 위하여 자판기에서 두 잔에 커피를 뽑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사무실문을 막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안에 있던 문이 열리며 커피가 나의 몸에 쏟아졌다. 혹시 뜨거운 커피로 화상을 입지 않았냐는 동료의 걱정스러운 말 대신 나에게 돌아온 것은 아침부터 재수 없이 앞에서 얼쩡거린다는 핀잔뿐이었다.
“당신을 위하여 가져다주는 커피를 당신으로 인하여 쏟은 것이 어째서 재수 없는 일인가?”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멱살을 잡았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도에서 사용하는 안다리후리기를 이용하여 그를 바닥에 메쳤고 나는 그의 배위에 올라가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두 대를 때리니까 그가 코피를 흘렸다. 그가 일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말리기전까지 족히 수 십대의 뺨을 맞아야 했다. 기가 죽어 구석에 앉아있는 그를 향해 “당신에게 내가 주먹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당신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고 말하자 한 참 동안을 머리를 숙인 체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나의 단체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나 못살게 구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두들 나에게 친절히 대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를 혼내준 것은 며칠 전부터 싸울 각오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고 상대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내가 싸움의 귀신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그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당신이 정말 현재의 따돌림 상황을 면하고 싶다면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에서 짱이 되는 비법
학창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공상 중 한 가지는 반에서 제일 싸움을 잘하는 녀석에게 도전하여 짱이라는 타이틀을 빼앗아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것이었다. 짱은 담임선생님보다 더한 절대 권력을 휘둘렀고 학우들 위에 군림했기 때문이었다.
짱이 도시락을 빼앗아 먹어도, 숙제를 대신해달라는 부탁에도 우리는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가끔 그 놈이 차비가 없으니 돈을 빌려달라는 명목 하에 거금 만원이나 하는 돈을 강탈당해도 찍소리를 못한다. 기분이 나쁘다는 인상을 쓴다면 바로 주먹이 날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나쁜 녀석은 졸업하기 전까지 언제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영위한다.
이런 녀석을 혼내주고 싶긴 하지만 그녀석의 싸움기술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군대에서 말년휴가 나온 삼촌에게 어떻게 하면 싸움을 잘할 수 있냐고 물으면 삼촌은 영락없이 이소룡 흉내를 내며 쌍절곤을 돌릴 뿐이다.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코끝을 튕기며 괴성을 지르는 삼촌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하는 설명과 이론을 잘 숙지한다면 어쩌면 삼촌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싸움의 기술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반에서 짱이 되기 위하여 내일 당장 짱의 아구창에 주먹을 먹이라는 뜻은 아니다. 또한 내가 의도하는 것은 싸움의 조장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지 못한 싸움이라도 싸움의 고수들에게는 많은 전략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짱이 되기 위한 기본사항
1. 짧게는 30초 길게는 1분 동안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2. 더 이상은 그 녀석에게 당할 수 없다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3. 내가 패배해도 좋으니 오늘 당장이라도 그 녀석과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위의 사항을 지킬 자신이 있으면 반에서 정말로 짱이 될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방법으로 싸움을 시도해보아서는 곤란하다. 단순히 싸움의 전략적 해석을 설명하기 위한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바란다.
싸움의 심리적요건
학교에 도착하면 찬물로 세수를 한 후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면서 1교시 수업을 잘 잘 듣는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이 교실 문을 빠져나가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반에서 제일 싸움을 잘하는 아이에게 뚜벅 뚜벅 걸어간다.
그 아이가 도시락을 까먹든지 남이 해온 숙제를 베끼든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바짝 그에게 가서 그냥 쳐다본다. 나는 서있는 자세가 되고 그 녀석은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가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고 그 녀석은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상태다. 그 짱이라는 녀석은 기분이 나쁠 것이고 어쩌면 어이없게 생각할 것이다. 그 녀석이 나의 모습에 반응하는 것은 오로지 한가지다.
“뭘 봐, 세꺄!”또는“ 죽고 싶냐?”
이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장 강력한 주먹 한방을 상대의 턱에 명중시킨다. 정말 황당하지 않은가? 움직일 수 없는 그의 자세는 주먹을 명중시키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다. 첫 번째 주먹이 그의 턱에 작렬하면 두 번째 주먹을 날리고 두 번째 주먹이 명중되면 세 번째 주먹을 날린다.
1분 동안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얼굴이 떡이 될 때까지 주먹 휘두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설사 반 아이들이 말린다고 해도 그들을 뿌리치고 계속해서 주먹을 날려야 한다. 만약 도중에 그만두면 그 녀석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떡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얼굴이 될 수 있다.
냉정하게 계산해 본다면 1분 동안 주먹을 날리면 30번 이상의 주먹을 날릴 수 있다. 그것이 전부 맞지 않고 약 10대만 맞아도 상대는 초죽음이다. 그 반의 짱은 앉아있는 상태에서 주먹을 허용하기 때문에 데미지는 더욱 크고 역습을 할 수 없다. 1분 후 당신은 그의 반 ‘짱’이 되는 것이다.
싸움의 전략
단순히 짱에게 다가가 주먹을 날린 단순한 상황이지만 여기에는 전략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냥 무심코 상대를 쳐다본 것은 당신이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더라도 그가 당신에게 말을 시키기 위함이다. 당신이 먼저 말을 하면 동기유발이 사라지고 겁이 나면서 싸움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특히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고 스스로 느껴지면 그 싸움은 이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먼저 상대에게 말을 걸지 않은 것이다.
상대가 말을 하는 순간 공격을 하는 이유.
상대가 왜? 자신을 쳐다보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중시켜 돌발적인 행동에 대해 순간적인 반사 신경을 무디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말을 하는 순간, 턱에 펀치를 날리면 상대의 데미지는 대단하다. 말을 하는 순간에는 이빨을 막물 수가 없고 그것에 대처할 수 없다. 입이 벌어진 상태에서 턱에 명중되면 사실 한방으로 싸움은 끝난다.
그렇다면, 왜? 1교시 수업이 끝난 직후일까.
지겨운 수업이 끝나면 해방감이 온다. 그 녀석은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할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해이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수업이 끝난 직후라 상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대가 일어나서 파이팅 자세를 취하면 당신 또한 코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2교시 수업이나 3교시 수업시간이 끝난 후가 아니라 반드시 1교시 수업이 끝난 직후를 택한 이유는 나의 심리적 반응을 좋은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만약 4교시 수업이 끝난 직후라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1교시 수업부터 4교시 수업시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의 심경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지면 어떡하나?”
“저 아이는 이 반의 짱이다!”
“그만 두고 나중에 도전을 해 볼까?”
점심시간이 되어도 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콧구멍을 넘어가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녀석과의 싸움을 생각하면 선생님의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정작 싸움이 시작되면 당신의 몸은 경직되어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1교시 수업이 끝난 직후여야 되는 것이다. 싸움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효율성이다. 별 대수롭지 않는 작은 행동에도 고차원적인 전략과 법칙이 숨겨져 있다.
저자 : 강준
대표 저서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
최강의 파이터(입문편)/최강의 파이터(실전편)
실전격투기에 필요한 속임수의 전략
싸움 잘하는 놈의 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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