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전주 성지 순례 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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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 순교지 서천교와 곤지산 초록바위
전주천을 따라 . . .
.서천교 순교지.
조선 후기의 전주의 읍내장은 전국의 15대 시장으로 꼽혔을 뿐만 아니라
대구 공주와 함게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1894년 동학혁명 이전의 전주성의 사대문 밖에는 모두 장이 섰다.
가장 규모가 컸던 시장은 남문인 풍남문 옆 서쪽의 남문밖장이었다.
전주천변으로 이어지는
싸전다리 좌우로 싸전들이 있었고 설대전다리 아래에서는 2,7일장인 우시장이 섰으므로
그곳을 속칭 쇠전강변이라고 하였다.
설대전 다리 건너 완산칠봉으로 가는 길에서 서서학동으로 가는 초록바위까지는 솔가지 장작장수가
나왔으므로 솔가지전 거리라고 하였다.
이 솔가지 시장은 6.25전쟁 후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을 이루었고, 설대전 다리 아래쪽에서는
서천교 사이로 담뱃대 장사들이 좌전을 벌렸다.
남문밖장은 19세기 중엽까지도 2일장이었지만,
서문밖장이 7일에 섰으므로 서남방에서는 2,7일장이 서게 된 것이다.
서문밖장에는 소금장수들이 독점적으로 장사를 하던 소금전이 있었고,
그 밖에 양념류를 파는 곳이 있었다.
.....만기요람....
서천교 순교터.
당시에 서천교 아래 장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8세의 조윤호 요셉은 병사들이 번갈아가며 200대의 태장을 가하였으나
죽지 않았으므로 목에 밧줄을 걸어 걸인들로 하여 줄질을 하여 죽게 하였다.
생목숨 끊기가 그렇게 어려웠을 줄...
그의 집안은
아버지 조화서 베드로와 조부 조 안드레아 3대가 순교하였는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예전의 서천교 모습은 아니지만 그 이름만은 그대로 새긴 서천교.
전주천의 서천교 위의 다리를 지나면 남문시장앞의 초록바위로 이어진다.
그 뒤로 치명자산이 보인다.
전주천을 따라 이름만 남아 있는 . . .
곤지산 초록바위 순교지
전주시의 완산구 동서학동과 완산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
산의 북쪽으로는 전주천이 흐르고 있고 남부시장과 싸전다리가 있다.
전주천 쪽의 암석절벽을 초록바위라 부르고 산의 이름을 초록바위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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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관아의 남쪽 3리.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
초록바위는 천변의 졀벽을 이루고 있었으나
도로를 개통하기 위한 공사로 인해 현재는 옛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15세 이상이어야 처형할 수 있었던 당시의 법에 따라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었던 14세의 두 소년은 15세까지 감옥에 갇쳤다가
초록바위에 목이 걸려 처형되고 나서 전주천에 던져졌다.
전주천에서 보이는 치명자산의 모습.
초록바위에서 전주천을 바라보면 전동성당의 탑이 보이고 남문시장의 긴 건물이 예전 시장의 명성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