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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5:1-11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1-4)
오늘 본문은 그 배경을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 연대를 밝히기 위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신학적 긴장을 드러냅니다. 본문에 언급된 두 왕은 왕위를 계승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지만, 그들의 삶과 신앙은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수리하던 중에 발견된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 곧바로 자신의 옷을 찢으며, 자신과 백성의 죄를 회개했습니다(왕하 22:8-13). 또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였고(왕하 23:1-3), 유다 전역의 우상과 산당을 제거했으며(왕하 23:4-20), 끊어졌던 유월절 예배를 회복했습니다(왕하 23:21-23). 이것이 바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은 이런 그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온 왕은 요시야와 같은 자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었던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던 왕, 그가 바로 요시야였습니다.
그러나 아들 여호야김은 아버지 요시야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말씀에는 귀를 닫고,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화려한 왕궁을 건축하기 위해 불의와 압제로 백성을 착취했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강포와 포학을 일삼았습니다(렘 22:13-17).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를 핍박하였고, 끝내는 선지자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렘 26:20-23). 심지어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기를 칼로 베어 화로불에 던져 태워 버리기도 했습니다(렘 36:23).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했던 아버지 요시야와는 달리, 아들 여호야김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거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3:37).
너무도 다른 두 왕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요시야 왕의 신앙이 여호야김 왕에게로 잘 이어졌다면,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의 삶에 그대로 뿌리내렸다면, 남유다의 비참한 역사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신앙은 한 세대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지금 세대의 믿음은 자녀 세대로, 그 믿음은 또다시 다음 세대로 전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믿음은 그 공동체의 ‘신앙의 유산’이 됩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주어진 그 유산을 온전히 이어 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변하여 우상을 섬기고, 말씀을 밀어내며, 자기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남유다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는 신앙의 유산이 끊어진 민족의 참혹한 결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와 달리 오늘 본문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2)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 하시니라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합니다. “너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을 여호와의 집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 본문에 등장하는 ‘레갑 족속’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이며, 겐 사람 계열의 가문입니다(삿 1:16, 대상 2:55). 본래 그들은 이스라엘 혈통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함께 살아온 이방 기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 사건 이후,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유다 지파와 함께 거주한 기록이 있으며, 다윗 시대에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간 흔적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이처럼 레갑 족속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삶의 가치를 공유해 온 독특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들을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여호와의 집, 즉 예루살렘 성전으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이 붙여진 한 방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3-4) 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의 형제와 그의 모든 아들과 모든 레갑 사람들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에 이르러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였는데 그 방은 고관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더라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성전 뜰에 있는 한 방으로 데려갑니다. 본문에는 그곳에 누구와 함께 갔었는지, 또 그들이 들어간 방이 어디였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방은 하난의 아들들의 방이었고, 고관들의 방 곁이었으며, 문지기 마아세야의 방 위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방 주인인 하난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한 것은 이 사건이 신앙적 권위가 있는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이 한 사건의 장소와 주변 인물을 이처럼 상세하게 기록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이 사건이 제사장과 지도자, 그리고 많은 백성이 지켜볼 수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공개적인 사건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레갑 족속은 말씀에 청종하지 않았던 남유다를 위한 본보기이자, 살아 있는 교훈으로 본문에 등장합니다.
다 지켜 행하였노라(5-11)
(5-6) 내가 레갑 사람들의 후손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종지와 술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예레미야는 포도주가 가득 담긴 종지와 술잔을 놓고 레갑 족속에게 말합니다. “포도주를 마시라.” 이에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로 의논하지도 않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그리고 곧바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레갑 족속의 선조 요나답입니다. 그는 주전 840년경 북이스라엘의 왕 예후가 바알 숭배 제거를 위한 개혁을 단행할 때 참여했던 인물입니다(왕하 10:15-28). 비록 그 개혁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열왕기하 10장은 이 개혁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평가합니다(왕하 10:30-31). 그 연장선에서 요나답은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금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는 포도주 자체를 죄악시했다기보다는 세상의 안락과 풍요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 믿음에 기초한 구별된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후손들을 향한 그의 명령은 단순히 포도주를 금하는 데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도록 더 넓은 범위의 삶의 원칙도 남겼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7)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요나답은 후손들에게 집을 짓지 말며, 씨를 뿌리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평생 동안 장막에 살라고 명령했습니다. ‘장막’은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임시 거처입니다. 이는 곧 나그네의 삶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집과 토지를 소유하는 일은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삶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큰 의지가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바알 신앙이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과 번영을 위해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문화에 점차 물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요나답은 후손들을 위해 세상의 안락과 풍요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삶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너희가 속한 공동체와 삶의 터전을 지키시고 보존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후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본문 8-10절입니다.
(8-10)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
그들이 말한 대답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그것도 ‘전적인 순종’입니다. 본문 8-10절에는 이를 강조하는 표현들이 반복됩니다.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 그들의 순종은 부분적인 것도, 일시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받은 명령을 자신의 생각대로 더하거나 빼지도 않았습니다. 말씀을 삶 전체로 받아들인 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누가 그 순종을 보여주었습니까? “우리와 우리 아내와 우리 자녀가.” 그들 자신이, 그들의 아내가, 그들의 자녀가, 다시 말해 한 가문 전체가 그 삶의 원칙을 함께 지켜 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조 요나답의 신앙은 한 세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또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위대한 신앙의 유산으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언제나 평탄한 환경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순종을 시험받는 상황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레갑 족속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11)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
레갑 족속은 전쟁으로 인해 더 이상 장막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신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살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샤브’(יָשַׁב)는 오랜 기간 정착해 사는 것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거하다,’ ‘머물다’ 등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완전히 정착했다기보다 전쟁을 피해 잠시 그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장소가 아닌 신앙에 대한 그들의 태도입니다. 레갑 족속은 장막에 거하든지, 예루살렘에 머물든지, 동일하게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고, 자신의 집과 토지를 소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선조 요나답이 남긴 신앙의 원칙을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 왔고, 이제 그 전적인 순종은 다음 세대를 바로 세우는 신앙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중세교회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에 독일의 퀼른 대성당(Kölner Dom)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높은 첨탑과 강한 수직선, 그리고 빛으로 가득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건축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 아름다운 건축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퀼른 대성당은 고딕 건축의 교과서이자, 정점으로 평가됩니다. 1248년에 처음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약 6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세대를 지나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대공사였습니다. 아마도 건물의 기초를 놓은 첫 세대는 완성된 건물의 외형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며, 어떤 이들은 건물이 완성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설계 도면과 건축의 원칙을 잘 지키며, 계속해서 공사를 이어갔습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심각한 재정난 등으로 무려 300년 동안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는 이전 세대가 남긴 기준을 끝까지 붙들었고, 결국 1880년에 이 거대한 건축물은 완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레갑 족속의 이야기와 퀼른 대성당의 역사는 서로 다른 시대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신앙의 열매는 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오랜 시간 버티고 견디며 빚어진 순종을 통해 맺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급변하는 상황과 달라진 환경 속에서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세속적 가치관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의 원칙을 굳게 붙들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한 세대의 순종은 다음 세대의 방향이 되고,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순종은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신앙의 유산이 됩니다. 때로는 당대에 그 수고의 결과를 보지 못하기도 하고, 그 결실의 순간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며, 오늘의 작은 순종을 통해 내일의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의 유산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때,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을 회복하는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 의지하여 오늘을 살아갑니다. 레갑 족속과 같이, 처음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가며, 현실의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작은 순종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고, 그 순종의 반복이 귀한 신앙의 유산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과 원칙이 되어 그 말씀 앞에 온 삶을 드리는 믿음의 본을 보이게 하여 주시고, 다음 세대가 그 믿음을 온전히 이어받아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가 이 시대 하나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사명 공동체로 더욱 견고히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얼마나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 나의 순종은 일시적입니까? 삶 속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순종입니까?
3.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붙들어야 할 신앙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4. 내가 속한 공동체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있습니까?
(작성: 이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