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 문학 행사 / 松花 김윤자
2005년 11월 5일 토요일 ∼ 6일 일요일 1박 2일
주관 : 수필문학(회장 강석호)
2005년 11월 5일 토요일 서울 압구정역에서 출발
가는 길, 만인의총, 남원 추어탕, 광한루, 춘향 파크, 춘향 예술관에서 문학행사, 한국콘도
* 가는 길
서울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오전 8시까지 집결하여 버스 한 대로 8시 30분에 떠났다. 수도권의 수필가 중심의 문인들이다. 그 외 타지역 문인들은 남원에서 합류한다.
나는 시인으로 본 행사에 초청받아 가는 것이다.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함께 동참하여 달라는 전화가 왔다. 하지만 작년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 세미나 차 캐나다에 갈 때 강석호 회장님, 우희정 부장, 강병남 총무와는 동행하였기에 익히 아는 사이다. 수필 문학은 우리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문단이다.
버스가 서울 도심을 벗어나 늦가을 단풍진 길을 달린다. 마이크를 돌리며 한사람씩 인사를 하고 정겹게 간다. 노래를 부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운 분위기를 이끄는 문인도 있고, 들으며 흥겹게 박수치며 웃음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이끄는 문인도 있다. 나는 후자다. 수필문학 행사는 단일문학인 연유로 타 행사보다 가족적인 분위기다. 모두 하나되어 우의를 다지며 아름다운 고장 남원으로 갔다.
* 만인의총
남원에 거의 이르러 만인의총에 잠시 들렀다. 금산에 있는 칠백의총처럼 만인의 선열이 묻혀 잠든 무덤이다. 임진왜란 당시 5만 6천명의 왜군이 쳐들어와 장렬한 전투 끝에 민간인과 관인을 합하여 1만명이 이곳에서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드넓은 마당에 소슬한 바람이 고이고, 긴 계단을 올라가니 둥그런 무덤이 놓여있다.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조상님들의 피와 눈물과 죽음으로 지켜온 우리의 조국에 다시는 비극이 없기를 빌었다. 당대의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이 지켜나가야 할 몫이다.
사진:남원 만인의총.저 무덤 속에 민간인과 관군을 합하여 만명의 영혼이 묻혔다고.남편 유기섭 수필가님
* 남원 추어탕
남원에서 요리를 잘 한다는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각지에서 모인 문인들과 함께 합류하여 여러 개의 방에서 그룹을 지어 먹었다. 어릴적 먹었던 미꾸라지 매운탕, 그 맛은 아니지만 구수하고 맛있다.
춘향 고을이어서 식당의 방마다 이름이 붙었는데 춘향이 방, 이도령 방, 변사또 방 등등 독특하다. 나는 이도령 방에서 도령처럼 앉아 먹었다. 요즈음 배추에 기생충이 있다 하여 추어탕에도 열무 줄기를 넣었고, 나물도 열무로 무쳐 내놓았다. 전라도의 맛깔스런 손끝 맛이 음식마다 서리어 모두들 맛있게 잘 먹었다.
* 광한루
행사가 오후 4시부터 있어서 잠시 남는 시간에 광한루와 춘향 파크에 들렀다. 광한루는 하번도 와 보지 않아 즐거운 걸음이다.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풍경들이 스쳐온다.
광한루에서 안내원이 나와 곳곳을 안내하며 해설을 해 주었다. 생각보다 드넓은 공원이다. 곳곳에 누각이 있고 중앙에 연못과 대숲이 한국 고유의 운치를 이룬다. 맑은 물에는 은어와 송사리가 노닐고 광한루 정자에는 지고지순한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연가가 서리어 있다. 보일 듯 말 듯 연못 속에 든 정원길을 두 남녀가 거닐었겠지.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들이 거닐던 오작교를 넘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하늘의 다리가 연못 위에 있다. 물 속에는 80년된 잉어를 비롯한 비단 잉어들이 사랑의 몸짓으로 떼지어 몰려온다. 광한루와 춘향 사당 사이에 남원 고을을 거쳐간 벼슬아치의 비석이 일렬로 줄 서 있다. 춘향을 괴롭힌 변사또의 비석도 있으리라. 향기 고운 여인이었으니 어느 남자인들 품고 싶지 않았으랴. 그래도 정절을 지켰기에 광한루가 존재하고 남원 땅이 빛나지 않는가.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는 모두 춘향과 이도령이 되어 영혼과 육신을 정념으로 다스리고 있다.
사진:남원 광한루 공원.연못 속에는 아직도 사랑이 도란거리고,광안루 누각에서 피어오르는 사랑 이야기.나는 환희로 두손을 들고.
* 춘향 파크
광한루 바로 맞은 편에 춘향 파크가 있다. 길을 건너 언덕을 오르자 승월교가 우람한 자태로 보인다. 광한루도 그렇고 이곳 다리도 달빛이 내려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승월교를 넘어가는 기분이 향기롭다. 길이와 폭이 상당한 규모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춘향 파크가 이어진다. 곳곳에 춘향과 이도령에 관한 상징물과 시비가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여인과 굽는 불가마가 전시되어 있다. 춘향 파크의 이색 풍경 하나는 야외 에스컬레이터다. 도시의 건물에서나 보는 현대의 기계 장치로 사람을 끌어 올린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길이라 믿으며 몸을 싣고 쉬이 언덕길을 올랐다.
수도꼭지 하나에도 옛 정취를 새겨놓고 물레방아와 초가집 등 한국의 정취가 그대로 배인 뜨락이다. 거의 끝부분에 당도했을 때 이도령이 춘향이를 가마에 태워 한양으로 데려가는 동상 행렬이 있었다. 행복한 풍경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훈훈한 사랑으로 머무는 춘향과 이도령, 남원 땅에 고스란히 숨쉬어 살고 있다.
사진:남원 광한루 맞은 편에 있는 춘향 파크 정문에 들어서서.나도 춘향이처럼...빨간 모자가 본인 김윤자
* 춘향 문화 예술회관 문학행사
춘향 파크 후문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니 춘향 예술관 큰 건물이 있었다. 그곳 1층 강당에서 수필문학의 일년을 마무리짓는 연차대회와 문학강연, 수필에 관한 발표 등 여러 문학 행사가 열렸다.
수필 문학의 행사에 참여하며 나도 어느새 수필에 대하여 눈뜨고 수필문학지에 나의 수필이 두차례나 게재되었다. 시인인 내가 수필을 쓸 기회를 얻고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소득이다. 문학은 장르에 불문하고 하나로 통하며, 동일한 감성으로 쓰여짐을 깨달아 알았다. 호주 세미나에서도 수필은 어느 풀숲에 숨은 들꽃 같다는 강석호 선생님의 강연이 큰 감동을 주었는데 오늘의 행사에서도 아주 소중한 보물 하나를 가슴에 담는 기분이다.
사진:남원 춘향 문화 예술회관에서 문학 행사.강석호 선생님의 문학 강의를 들으며
* 한국 콘도
문학 행사를 마치고 뷔페석식 장소로 이동하여 남원지부 수필문학회장이 베풀어주는 식사와 음악 시간은 아름다웠다. 5명씩 한조가 되어 더 짙은 문우의 정을 나누며 문학 향연은 고조되었다. 예술은 하나로 통하기에 뜨거운 가슴이다. 국악인 수필가님의 우리 가락 창은 시인인 나의 가슴을 더욱 시심으로 물들였다. 아쉬움을 접은 채 숙소인 한국 콘도로 갔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모두 춘향파크 단지 안에 있어 이동 거리가 짧다. 저녁 무렵 오던 비가 큰 줄기로 내린다. 방에 들어가 창문을 여니 까만 공간에 빗물과 빗소리만 가득하다. 한국 콘도는 새 건물은 아니지만 넓고, 침대방과 온돌방이 있어 다섯 명이 각각 나누어 잤다. 나는 온돌방에서 잤다. 모두 나이 드신 어른이다. 곁에는 그 국악인 여류수필가님이 잤다. 70이 넘으신 것 같은데 대단한 정열이다.
큰 아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뉴스를 듣고 로비에 모여 오늘 일정을 듣고 두부 마을 식당으로 조식을 위해 갔다.
2005년 11월 6일 일요일 행사 후 남원 출발
혼불 문학관, 지리산 화엄사, 강남역 도착, 돌아오는 길
* 혼불 문학관
지난 밤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일정을 바꿔 오전에 가기로 한 지리산 노고단 산행을 뒤로 미루고 혼불 문학관에 먼저 갔다. 버스에는 남원 시장이 동행하여 어제 저녁 문학행사에 참여하지 못함에 대한 죄송함과 환영 인사를 했다.
장편 소설〔혼불〕을 남기고 1998년에 5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최명희 문인의 문학관은 남원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20여년전 소설 혼불을 쓰기 위해 교직을 떠나 오로지 글 속에 생을 바친 사람이다.
2003년도에 개관한 이 문학관은 지리산 자락 아늑한 산 아래, 혼불 속에 등장하는 마을에 세워졌다. 혼불 문학관에는 입구에 혼불 최명희라는 큰 글씨와 사진(미소 머금은 독사진)이 있고 내부에는 그녀의 육필 원고와 생시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다. 사무실 건물 곁에는 정자가 있어 그곳에 올라 안내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비가 그친 뜨락에는 소나무와 연못이 그녀의 넋을 기리는 듯 청초하고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계단에는 사루비아와 국화의 정열적인 빛이 혼불의 빛인 듯 황홀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젖은 걸음으로 돌아서 떠나왔다.
사진:남원 혼불 문학관.소설가 최명희님을 기리며 문인들 단체사진.맨 앞줄 좌측 세번째가 본인 김윤자
* 지리산 화엄사
혼불 문학관에서 지리산으로 갔다. 지리산은 워낙 넓은 자락이어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품고 있다. 오늘 목적지는 사실은 노고단이었다. 그러나 비로 인하여 화엄사까지만 갔다.
남원에서 전주와 구례를 지나 전남 쪽에서 지리산에 오른 것이다. 화엄사는 버스 주차장에서 아주 가까워 금새 경내에 들어섰다. 늦가을인데 오르는 길목에는 붉은 단풍잎이 불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붉은 시심이 가슴에서 함께 타오른다. 조금 올라가니 노오란 은행나무가 노란 은행잎을 소담스럽게 품고 있다. 모두 절경이다.
화엄사 절문을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종각과 탑,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지리산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아름다운 계절에 찾은 산사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오경자 교수님과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사진 찍고 내려가는 길에 강석호 선생님을 만나 또 함께 사진을 찍었다. 후일에 중요한 사진이 되리라.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비가 그친 관계로 지리산 봉우리 노고단으로 오르고자 버스가 방향을 잡았는데 차들이 너무 늘어서 있어 아쉽지만 다시 돌려서 서울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고단까지 4시간이 소요되며 서울에 10시가 넘어야 도착한다 하여 노고단 산행을 접게 된 것이다. 그래도 문학 행사와 문학관 탐방과 지리산 화엄사까지 알찬 문학기행이다.
사진:지리산 화엄사에서.고려대학교 수필창작 오경자 교수님과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 그리고 본인 김윤자
* 강남역 도착
지리산을 떠난 버스는 노련한 운전사의 운행으로 순조롭게 상경했다. 가을비가 내려 스산한 날씨지만 버스 안은 구수한 이야기로 화사하다. 몇몇 문인들이 돈을 거두어 호두과자와 음료를 사서 돌리기도 하고, 낯선 사람이 잘못 탔다가 두고 내린 핸드폰을 받느라 분주한 강부장으로 인하여 많이도 웃었다.
나는 맨 뒷좌석 강순금 문인과 나란히 앉아 왔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손주와 며느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여자들은 어느 누구를 만나도 가정사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금새 친해진다. 어른에게서는 지혜를 배우고 젊은이에게서는 참신한 사고를 배운다. 모든 이야기를 가슴에 수용하며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나는 늘 그렇게 산다.
시인인 내가 수필가들의 울타리 안에서 또다른 체험으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알게 하는 나들이였다. 버스는 서울로 진입하여 양재역을 거쳐 강남역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는 강남역에서 하차했다. 오후 6시경 어스름 속에서 빈 버스는 강남역을 종점으로 다 내려놓고, 모두들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 돌아오는 길
강남역에서 정자동에 사는 문인과 우리 부부 셋이서 수원행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바람이 부는 거리, 그러나 남편과 걷는 길은 참으로 행복하다. 문인의 길에서 나란한 어깨로 오늘처럼 남은 생도 행복하게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