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라
눈을 뜨면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오는 새벽종 소리가 4시를 알린다.
칡 흙 같은 어둠속에 한파가 몰아치고 거리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명절은 모든 작동을 멈추게 하는 자동 스위치 같았다. 도로를 질주하던 차들도 총알 같은 오도이도 간곳없이 도시 한복판은 나만의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지상낙원의 비밀 문을 열고 피안으로 가는 길은 일주문을 들어 도솔천으로 오른다. 실크로드를 타고 고심정사 법당에 들어서니 이해인 수녀님의 사진과 함께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십시오!” 라는 대목이 크게 문 앞에 붙어있었다.
오랜 암 투병을 앓고 계신 수녀님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며 숙연해 진다.
두 손 합장으로 예를 올리며, 법정스님과의 편지 내용이 눈앞에 펼쳐졌다.
“향기로운 봄을 맞으십시오,” “향기로운 가을 맞으십시오,”
계절마다 쓰 보내시던 법정 스님의 교훈을 새기며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길 소원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닌 순간순간 있음이다.
“버리고 떠나기” 실천하신 법정스님은 그냥 잘 사십시오. 라고 하신다.
“성철 스님” 의 법문중에
수행이란 안으로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용맹 중에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중에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
실수를 알고도 모르는 척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도 상대가 우기면 일단 져 주고 보기/
아첨에 남의 허물까지 뒤집어 쓸 수 있는 사랑의 용기를 지닌 사람이 행복한 수행자라고 했다.
법당에 들어서면 매일 3천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수년 째 매일 절을 하고 있다. 5.6명 또는 3.4명은 5년 전 불교학과반 1기생 동기들이다.
새벽 기도를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저토록 고된 수행을 하고 있을까, 그중 한사람은
나의 수필집 <그릇> 읽고 입문한 보살도 있다.
오랜 병고에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사람이 기도로서 새로운 행복을 찾은 사람이다.
새벽이면 일상으로 하는 기도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법당을 들어서면 6백번 시간이 허락될 땐 천 번 절을 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삼천 배를 하는 것이 고작인데,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를 주력 하는 사람들을 본다.
예불 대 참회문에 맞추어 절을 하면서 원을 세운다.
그래 남의 허물도 뒤집어 쓰 보자 손자도 보며 부모님을 모시고 갖은 어려움을 인내하고 있지만 정녕 한 번씩 오는 자식 들은 아버지의 무엇과 무엇이 어떻니 조금 아프면 병원을 가지 않는다니 입치레를 하고 있다.
병원을 가고 새 옷을 입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혼자 벌어서 부모님 모시며 아버님은 하루 밥 세 그릇 정 저울로 잘 잡수시고 중간 간식도 가리지 않으며 아들보다 건강하시다. 옛 어른들은 새것을 두고도 입지 않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수 십 년 혼자만 힘들었던 일들을 의논하고 싶었는데, 늘 티걱 거리는 말에 분통이 쏟아져 나왔다. 평생을 자기 집에서 밥도 한 끼 해 주지도 않고 아버지 어머니 옷은커녕 손도 한번 씻어주지 않은 딸들과 누구하나 생활비도 말 한마디 않는 자식이 입치레만 하니 용서를 할 수가 없다. 나만 자식이 아닌데 왜, 형제들을 불러 판단을 내고 싶었던 순간, 시숙님의 말 한마디에 녹아 버렸다.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을 동생에게 맡겨 죄송스럽고 할 말이 없다는 말씀에 내 심장이 명약을 먹은 듯 가라 앉았다.
수 십 년 가정을 버리고 우리에게 원망하며 힘들게 하시던 시숙님은 긴 세월동안 자신의 처지를 후회하며 용서를 비는 말씀에 주변이 숙연해 졌다. 그래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해야 한다. 부모님을 잘 모시면 하늘도 복을 준다지, 어느 자식이던 당연한 일인데 다짐을 한다. 그러나 내 힘든 시기 부모도 형제도 모두 편히 지내던 날 그토록 네 아들을 업고 이고 보따리 장사를 할때도 남을 보듯 거들떠보지 않았던 자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평생 사랑이라고 받아 보지 못한 내 가슴속에 시집이란 틀 안에 끼어 밤잠 자지 않고 살기위해 얼마나 절을 하였던가, 40년 동안 가슴속에 잠자던 불씨가 살아나니 참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불쑥 솟아오르는 나쁜 씨앗들을 발로 꾹꾹 밟아 죽이고 잊자 비우자 용서하자, 이미 주어진 숙제를 웃으면서 하자 남의 허물도 뒤집어쓰며 알고도 모르는 척 옳아도 그른 척 바보가 되자,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서 무엇 하나 이미 화석화 되어버린 정신들 속에 썩은 물을 다 마시면 향기로운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믿었던 이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때도 나는 그들을 사랑하자, 용서하자 죽는 날까지 부모님에게 공경을 하자 다지고 또 다지지만 마음속에 잡초가 다 없어지는 날까지 얼마나 실천으로 옮겨질지 죽는 날까지 절이나 해보자.
😇 이 글은 2015년 발표한 제 4집 수필 "제 3의 꿈길에서" 작품입니다.
지난날 치열하게 절을 하며 기도하던 시간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 성철" 대종사님의 말씀이 떠 올라 올려보았습니다.
첫댓글 불자는 그렇게 삼천 배를 하는군요.
그 기도가 선생님을 지금까지 잘 살아오게 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삼천 배를 해야 마음 속의 잡초를 다 뿌리 뽑을 것인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