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가실때 출처를 꼭 밝히시기 바랍니다.]
가족 3대 항일
김낙용 1860 ~ 1919
김관보 1882 ~ 1924
김정수 1909 ~ 1980
평북 영변군 용산면 출신으로 초산 3.1 운동을 지도하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한 김낙용, 그의 장남 병식,차남 관보 등은 선친의
뜻을 계승하여 군자금을 모으다가 1920년 봄,만주로 망명,
홍경현에서 병식은 독립단 집동 총관소 검찰원,관보는 북로군정서,서로군정서
소속이었다.1923년 12월 참의부 2중대 소속인 관보는 동지 30여명과 초산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으며 적과 교전 중 백낙원등과 같이 전사하였다.
손자 정수는 학생으로 독립단에서 활동하고 1923년 홍경군관학교를 수료,1924년 참의부
제 4대에 배치,1925년 참의부 별동대장으로 일본경찰을 사살하여 1926년 대한독립단
으로 활동 중 체포된 일이 있으며 1933년 2월 또 체포되어 신의주법원에서 10년 징역형을
받고 옥중 고생하였다.이 분들 3대 독립투사들 모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임병찬 1851 ~ 1916
임응철 1871 ~ 1951
임수명 1897 ~ 1977
평택 임씨 임용래의 장남인 임병찬은 39세에 낙안군수,첨절제사를 역임했다.
1906년 2월 최익현과 태인 무성서원에서 의거,민종식등과 연락하며 태인,순창,정읍,
곡성등을 공격하였다,그 해 6월 적군과 전투중 최익현과 함께 체포,감금 2년형을
받고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1912년 9월 고종의 밀조를 받고 독립의군부를
조직, 1914년 2월 전국적으로 독립의군부를 확대하였다.동년 5월 체포,거문도로 유배
되었다가 순국하였다.건국훈장 독립장(1962년)추서.장남 응철은 홍문관 학사 와 승정원
비서승을 역임,1912년 9월 독립의군부를 결성할때 적극 가담하고 대동단 전북지단장으로
활동중 피체되었다가 석방되고 다시 피체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1920년 4월7일 2년 징역
형을 받고 옥중 고생하였다.건국훈자 애족장(1990년)추서.병찬의 동생 병대,응철의 아들
수명(건국포장1992년) 등도 독립의군부에서 활동하고 대동단 전북이사로 선임되었다.
일경에 체포,1920년 4월7일 대구복심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석방되었다.
권인규 1843 ~ 1899
권종해 1869 ~ 1922
권기수 1893 ~ 1922
권인규는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출신으로 지방의 대학자였다.
민용호와 함께 강릉에 영동9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이병채,최중봉 등을 규합하였다.
민용호에게 의병항쟁의 방향제시와 격려를 했던 내용이 소은창의록에 전한다.
권인규의 아들 권종해는 강릉 유림대표로 성균관을 방문하고 1907년 8월 원주 병영에
서 의병소모장이 되어 적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
1908년 2월 백담사,5월 정선군 북면 단림등에서 적과 교전하였다.
이 무렵 적병이 자택의 모친(김인규의처)과 차남 증수를 찌른 후 가옥을 전소시켰다.
1913년 서울의 김종익과 의군부를 조직하고 유격장으로 활약 중 체포되어 10년 징역
형을 받고 6년만에 석방되었으며 1919년 3월 무력항일을 권유하며 다니다가 다시 체
포되어 무기징역형을 받고 4년만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손자 기수는 영월,평창,정선지역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실형을 선고받고 함흥옥
에서 순국하였다. 3대 모두 건국훈장이 추서 되었다.
곽낙원 1859 ~ 1939
김구 1876 ~ 1949
김인 1917 ~ 1945
김신 1822 ~ 생존
김인은 김구의 장남으로 1936년 한국국민당 남경훈련소 감독관이 되었다.
1937년 상해에서 "전고"를 발행,1939년 10월 한국광복전선 입대,1940년 중경에서
"청년호성" 발행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추서
김신은 김구의 차남으로 중앙 중앙대 부속 고급 중학교와 국립 서남연합대학 졸업
(1938~1944),1944년 한국독립당 가입,6월 임정내무부원 및 광복군 부원으로 활동.
중국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945년 귀국,공군 중장,21대 교통부 장관,9대 국회
의원 역임.건국훈장애족장(1990)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