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빨주노초파남보
김화내과 김화숙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갯빛은 아름답다. 소나기가 막 쏟아진 후 해가 뜨면서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살짝 떠오른다. 하늘 속에서 신비스럽게 피어난 아름다운 조화의 띠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릴 때 무지개를 바라보며 고운 띠가 그려진 하늘의 세계를 신기의 나라로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곱게 그려졌던 무지개는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마음이 공허하다.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지만 다시는 그려지지 않는다.
의사 생활 시작과 함께 수련, 결혼, 출산, 육아, 진료, 연구, 해외 연수, 주부, 시댁, 친정,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은 채 날마다 엮어 나가도 하루가 부족하다. 앞으로만 보고 달려왔다. 하얀 백색광에서 일곱 가지 빛을 만들어 내는 무지개가 나의 인생을 연상케 한다. 의대 철학 시간에 김형석 교수는 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 전에 신학과 철학을 알고 의학에 접근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또한, 의사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나는 계속 달리면서 신학과 철학 의학에 대해 과연 얼마나 습득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나? 뒤를 돌아보니 신학과 철학에 대해 거의 무지의 상태이며 태산같이 버티고 있는 신학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어느덧 고희가 넘어 종점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으로 잘살아왔는가? 의사 생활은 잘했는가? 엄마 노릇은? 아내 역할은? 며느리와 딸 노릇은? 이제 할머니 역할도 자연스럽게 내 속으로 들어왔다. 인생 중반에 끼어들어 온 공인으로 사회 활동은 잘하였는가? 나의 인생이 백색광에서 무지개색으로 그동안 채색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얼마 전 이른 아침에 꽃 배달이 왔다. 띵 똥 벨이 울려 “누구세요?” 하니 “꽃 배달이요.” 그러나 바로 나가기엔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꾸물거리다 조금 늦게 문을 여니 “할머니! 한참 동안 벨을 눌렸는데 왜 늦게 나오세요? 하고 배달 온 사람은 나를 질책하였다. 그런데 꽃 배달 온 사람은 머리가 하얀 젊은 할아버지였다. 순간 난 충격 받았다. 손주들로부터 할머니의 호칭 외에는 들어보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맞아 할머니는 할머니지’ 하고 혼자 위로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호칭은 그냥 붙여지지 않는다. 인생의 빨주노초파남보를 다 겪은 후 마지막에 다는 훈장이다. 할머니 다음의 호칭은 있는가? 그 마지막 훈장을 받았으니 난 행복한 인생의 승리자이지.
그동안 나는 어떤 호칭을 갖고 살아왔나? 아가씨, 아줌마, 선경 엄마, Dr. Kim, 원장님, 회장님, 고문님, 박사님 등이다. 그러나 갓 결혼 후, 아가씨로 통하다 아줌마라는 호칭을 듣고 그때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하고 실망했었는데 벌써 ‘할머니’ 소리에 또 서운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세월을 잡고 놓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의과 대학 시절 머나먼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토론도 해 보고 수업을 빼먹고 숙녀다방에 앉아 오만가지 수다를 떨었던 기억도 난다. 지인께 ‘어떻게 살면 잘 살 수 있을까요?’하고 물어보았지만 뾰족한 해답은 없고 ‘살아가노라면 해답이 나올 거야.’라는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70 인생을 돌아보니 세월은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잠시 낮잠을 자고 난 기분이다. 분명 백지의 인생에 수많은 색칠을 하여 한 장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닌 듯하다. 이 세상을 하직하면 한 장의 그림이 되고 어느 색깔이 가장 선명한지 무지개 속에 나타나겠지.
의사가 된 후 힘들었던 수련 과정을 마치고 혈액 전공 전문의로 생과 사를 넘나들던 환자와의 진료에서 인생을 배우고 죽음을 가까이하면서 한층 더 성숙 된 의사 생활을 경험해 본다. TV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가 인기 절정이다. 의사 본래의 정신과 정석대로 걷고 있는 김사부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의사도 인간이기에 의사들이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고민, 환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감정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사회가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의사의 세계를 이 드라마가 조금은 과장 되지만,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이제 나는 혈액암 환자의 절절히 아픈 사연을 가슴에 묻고 그렇게도 아리고 쓰렸던 그때의 마음은 이제 옛 기억 속으로 보내고 있다.
영원히 뗄 수 없는 엄마의 명찰이 나는 참 행복하다. 지금 네 자녀 모두가 결혼하여 8명이 부르는 ‘어머니’라는 단어, 참 정겹고 따뜻하다. 8명의 손주가 불러대는 ‘할머니’ 소리에 항상 힘이 나고 농사를 잘 지은 농부의 심정이다. 참 행복하고 명예로운 이름이다. 새록새록 자라고 있는 손주들 걱정하면 아들들은 ‘공부는 스스로 깨닫고 해야 한다.’라며 자기들은 엄마 몰래 많이 놀았다고 고백한다. 그때 나는 자식 교육에 대해 솔직히 속상하고 화를 내면서 아이들과 싸움을 하는 것보다 마음을 비우고 내 아이의 그릇 크기를 생각하여야 한다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할 때까지 등록금을 주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그만두어라. 더는 나는 모른다.”라고 경고를 했다. 내가 욕심부리지 않고 방목한 듯했지만, 원거리에서 조종은 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냥 둔 것이 스스로 깨닫고 철 들어 그나마 쌍둥이 아들이 의사가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고부간은 해결될 수 없는 의견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마주 부딪치면 안 된다. 살짝 비켜나가야 한다. 그 갈등은 평생 상처로 가슴 속에 멍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밤 잠자고 나면 이후 해결된다. 여유를 두고 생각해 보면 딸과는 싸울 수도 있고 야단도 치고 소리도 낼 수 있다. 나의 분신이기에. 그러나 고부간은 가능한 예의를 지키고 서로 존중해야 평생 정감 있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사위도 마찬가지. 비록 분신인 아들딸도 결코 부모의 마음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대고 의지하고 마음을 풀고 용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인으로 단체의 리더는 마음을 내려놓고 보듬어야 한다. 비록 나와 다른 생각, 성격의 문제가 있어도 대화와 따뜻한 소통이 있으면 그 단체에 협조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리더는 돈에 자유로워야 한다. 돈과 연결되면 결국 노예가 되어 마지막에는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한국여자의사회가 60년을 빛나게 걸어 온 길은 참으로 깨끗한 비단길이다. 나의 70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은 건강하게 ‘앞만 보고 걸었노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 10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면서 걸어갈지, 뛰어갈지, 쉬어갈지 아니면 중도하차 할지는 모르지만, 천천히 쉬엄쉬엄 산천을 구경하며 옆 지기와 함께 잘 걸어가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우리네 인생도 신비스럽게 탄생한 무지개처럼 잠시 아름답게 그려졌다 불현듯 사라져버린다.
(사진 오혜숙 - 오혜숙 산부인과의원장)
첫댓글 복잡한 세상사와 관계없이
가을은 익어가고 있습니다.
여의회보 제392호에 실린 김화숙 선생님의 글 옮겨왔습니다.
잘 익은 인생의 가을빛이 무지개처럼 펼쳐집니다.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결국은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구요!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삶이 담긴 작품이군요.
손이 아닌 세월로 쓴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초긍정의 마인드가 느껴집니다.
언제나 소녀처럼 화사한 아름다움의 비결인 것 같아요.
앞으론 무지개여사님으로 부르렵니다.
연륜과 철학이 배어있는 잔잔하고 마음에 와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