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초시가 사랑방 촛불 아래서 글을 읽고 있을 때
문고리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리고,
달래가 박가분 냄새를 풍기며 밤참을 들고 들어왔다.
손 초시가 얼른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 달래 손에 쥐여주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빼는 척 몸을 꼬던 달래가 손 초시 품에 안기자
손 초시의 손이 잽싸게 옷깃을 헤치고
봉긋이 피어오르는 달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달래야!”
안채에서 안방마님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찢자
달래는 얼른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며 사랑방을 나갔다.
달래는 종종걸음으로 안마당을 가로질러
“마님, 부르셨습니까” 하며
시침을 떼고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손 초시는 이를 갈며
달래의 꽃봉오리를 주무르던 손으로 입술을 덮어
그 온기를 느끼다가
청주 한잔을 부어 바짝 말랐던 입을 축였다.
삼년 전 손 초시 부인 소담댁이 친정에 갔다가 데리고 온 달래를
처음 본 손 초시는 자신도 모르게 하초가 뻐근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데다 눈웃음에는 색기(色氣)가 흘러넘치고
수밀도처럼 갈라진 엉덩이 선 아래 몽당치마 밑 맨 종아리는
가을무처럼 싱그러웠다.
손 초시는 틈만 나면 엽전을 쥐여주는 척
달래 손목을 잡아당겨 품에 안고 엉덩이도 두드려보지만
우라질, 거기까지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마누라 소담댁이 훼방을 놓는 것이다.
살림은 바닥나고 과거는 계속 떨어져
파락호 신세가 되려는 판이었다.
천석꾼 노 참봉이 급제할 사위를 볼세라
외동딸을 시집보내며 혼수로 전답 서른마지기를 갖고 와
손 초시는 살아났다.
그것을 생각하면 손 초시는 소담댁을 맨날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못돼먹은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달래의 고쟁이 벗길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손 초시는 피가 쏠리면 안방을 찾아 소담댁과 방사를 치르면서도
달래를 껴안았다는 환각에 빠진다.
어느 날 점심상을 치우는 달래의 뒤태를 보며
손 초시가 침을 흘리고 있는데
삼십리 밖 처갓집에서 머슴이 달려왔다.
소담댁이 눈물을 훔치며 친정어머니 병문안을 가겠다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손 초시가 쾌재를 불렀다.
“여보, 친정 좀 다녀오겠습니다.”
소담댁이 말하자 손초시는
“걱정 말고 다녀오시오.
장모님 쾌차하실 때까지”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소담댁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손 초시 가슴에 꽂혔다.
“달래야, 이 보따리 들고 앞장서거라.”
“저도 가요?”
달래도 한숨이다.
“여보, 조석으로 뒷집 할매가 당신 밥상을 차려드릴 거요.”
닷새 만에 친정 갔던 소담댁이 달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손 초시는 없었다.
뒷집 할매 왈,
“나는 못 봤는데 손 초시가 온몸에 열이 나고 피를 토해
의원으로 실려갔다네.”
깜짝 놀란 소담댁이 종종걸음으로 영생의원을 찾았다
. 의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손 초시 생명이 위태롭소.
우리 영생원엔 입원실이 다섯개요.
네개는 여기 있고 나머지 하나는
중한 전염병 환자를 격리해놓는 뒤뜰 구석 별채에 있소.”
그러면서 “영생원 사동들은
그 방에 들어가지를 않소이다”라고 일렀다.
소담댁은 별채로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 여기저기 향불을 피워 연기가 자욱한 캄캄한 방에
비릿한 피 냄새 탓에 코를 틀어막는데
“캐~엑” 손 초시가 토한 피가 소담댁 얼굴과 저고리를 덮쳤다.
혼비백산 돌아 나온 소담댁이 의원과 마주쳤다.
의원이 “부인이 그 방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간병을 하리오?” 하자,
소담댁이 “몸종을 보내겠으니
제발 전염병이라 말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
소담댁이 황급히 떠난 후에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별채로 갔다.
손 초시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의원님, 수고하셨소이다” 하며 인사했다.
사동은 웃음을 날리며 돼지피를 치웠다.
달래가 영생의원으로 달려와 별채 방문을 열었을 때
금침을 깔아놓고 동방화촉에 손 초시는 약주를 마시고 있었다.
엽전 꾸러미를 받아든 달래는
배시시 웃으며 후후 촛불을 끄고 치마끈을 풀었다.
꿈에도 그리던 달래를 품은 손 초시는
감격에 겨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별채로 통하는 후문을 걸어 잠그자
별채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이 됐다
. 달래의 감창소리가 자지러져도 거리낄 게 없었다.
손 초시가 건네준 묵직한 전대를 받아든 달래는
걸맞은 돈값을 했다
. 열아홉밖에 안된 것이 어디서 배웠는지
화려한 요분질에 장단을 맞추는 감창으로
손 초시의 혼을 쏙 빼놨다.
이튿날 아침 코피를 쏟은 손 초시가
후문을 열고 나와 의원을 찾았다.
“황 의원님, 나 원기를 좀 돋워줘야 쓰겠소.”
황 의원이 손 초시를 진맥하더니
처방전을 쓰며 “우황·산삼·사향…
. 이것은 비싼 약재인데…”라고 하자
손 초시는 “황 의원님, 돈 걱정 말고 푹푹 넣으시오”라며 말을 받았다.
황 의원이 손수 약탕관을 별채 앞 후원에 갖고 와 화덕에 달였다.
달래는 일부러 부스스한 얼굴에 구겨진 일복을 걸치고
돼지피를 치마저고리에 바르고
머리를 헝클어뜨려서 집으로 갔다.
안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소담댁이 질색을 하더니
“아서라. 게 마당에 섰거라” 하곤
양잿물과 소금을 달래에게 뿌리며 멀찍이 서서 물었다.
“초시 어른은 어떻더냐?”
“말도 마십시오. 밤새도록 피를 토해 제 옷 좀 보세요, 마님.”
소담댁의 얼굴이 하얘졌다.
“저는 한숨도 못 잤어요.”
한숨 못 잤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손 초시 밑에 깔려서.
부엌에서 목간한 달래는 제 방에 가서 한숨 늘어지게 자고나서
저녁나절이 가까워졌을 때 집을 나서려 하자
소담댁이 말했다
. “달래야, 먼 길을 걸어서 매일 집에 올 필요 없다.”
비단옷을 싼 보따리를 들고 오만상을 찌푸린 채 달래는 집을 나섰다
. 소담댁이 찔러준 적지 않은 돈을 허리춤 주머니에 넣으며.
신방처럼 화초병풍에 금침을 깔고
동방화촉 아래 비단옷을 입은 손 초시와 달래가 마주 앉아
상다리게 휘어지게 차려놓은 주지육림 속에 빠졌다.
황 의원의 비법으로 빚은 한약을 달여 마신 손 초시는
그날도 술 한잔에 벌써 하초가 뻑적지근해졌다.
달래의 현란한 방중술은 밤마다 달랐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손 초시가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돈을 우려낼 대로 우려낸 달래도 시들해졌다
. 손 초시가 병석(?)에서 일어나 제집으로 들어갔다
. 씨암탉백숙에 개소주가 끊어질 날이 없자
손 초시는 기운을 차리고 바깥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손 초시는 황 의원을 기생집에 초대해 거하게 대접했다.
주석이 파했을 때 손 초시는 황 의원에게 주머니를 건네줬다.
집으로 돌아간 황 의원이 주머니를 펼쳐보고는 뚜껑이 열렸다.
단돈 50냥이 들어 있었다.
이튿날 사동에 이끌려 영생의원으로 간 손 초시와 황 의원은
대판 싸움을 벌였지만
손 초시가 ‘배 째라’ 하니 황 의원도 더 확전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 이 고을에서는 그래도 명의로 이름이 나 있는 터에
환자로 둔갑한 손 초시와 공모해 그런 일을 만들었다는 게 소문나면
영생의원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 황 의원의 약점을 꿰뚫어보고 있는 손 초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적반하장, 황 의원에게 삿대질까지 했다.
어느 날 밤 손 초시 부인 소담댁이
자는 황 의원을 깨워 왕진해달라고 애원했다.
손 초시가 쓰러져 입이 돌아가고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황 의원이 속으로 씨익 웃었다.
“약발이 이제야….
천하의 황 의원이 파락호 손 초시한테 당할 수야 없지!”
손 초시라는 인간은 통시에 갔다가 오면
다른 말을 할 놈이라는 걸 진작 알아보고 처방을 해놓았다
. 한달 전 손 초시에게 보약을 지어줄 때
독도 함께 넣었던 것이다.
아편에 숙지황·부자·생청에 황 의원의 비약을 달여 먹이면
단기적으로 양기를 북돋워주지만
한달쯤 지나면 와사증에 실어증·허혈증이 오도록 돼 있다.
황 의원은 소담댁을 따라 손 초시 사랑방으로 갔다.
축 늘어진 손 초시가 황 의원을 보더니
기겁을 해서 손사래를 쳤지만 말은 못했다.
황 의원이 진맥을 하자
손 초시 팔이 사시나무 떨듯이 와들와들 흔들렸다.
황 의원은 손 초시 손목을 잡은 채
“지난번 초시 어른이 저희 의원 입원실에 있을 때
부인께서는 진짜로….”
바로 그때 손 초시가 “꿱꿰~엑”
짐승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사랑방 밖에서 귀를 세워 엿듣던 달래는
삼십육계를 놓아 나루터로 달려가 배를 탔다.
“부인, 더운 물 좀….”
황 의원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부인은 달래를 부르다가 손수 부엌으로 갔다
. 황 의원은 결국 손 초시 허리춤에서 열쇠를 받아
다락으로 올라가 돈 궤짝을 열고 이천냥을 꺼내 챙겼다
. 그리곤 품속에서 실어증·허혈증 해독제인 환약을
손 초시 머리맡에 두고 사랑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