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게 나를 보낸다
☞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통도사☜
♣ 산행개요 ♣
◆ 산행지 : 영남 알프스[배내고개-영축산-(통도사)]
◆ 일시 :2006. 11. 11.(토)/12.(일)[무박산행]
◆ 날씨 : 맑음(눈이 부시다)
◆ 종주경로 : ☞ 배내고개(735m)/69번지방도 → 배내봉(966m) → 간월산(1,068.8m) → 신불산(1,159m) → 영축산(1,081m) → 통도사 부도원 → 통도사 → 통도사 주차장 ◀
◆ 산행코스/시간 :
□ 06:13 배내고개/69번지방도/중식
□ 06:48 송곳산 갈림길
□ 06:54 일출 관람 후 출발
□ 07:03 배내봉(964.9m)/삼각점
□ 07:10 암봉
□ 07:24 암봉 전망대
□ 07:41 바위전망대
□ 08:02 간월산(1,068.8m)
□ 08:14간월산 능선 억새밭
□ 08:46아침 식사 후 출발
□ 09:00헬기장/전망대
□ 09:08간월재
□ 09:42파래소폭포 갈림길
□ 09:53신불산(1,159m)/삼각점
□ 10:06신불산 출발
□ 10:28신불재
□ 11:18영축산(1,081m) 정상표지석/[→신불산 2.95km]
□ 11:30영축산 출발
□ 11:51취서산장
□ 12:32 119 조난위치 표지판(양산시 3-1)
□ 12:53영축산 등산 안내판
□ 13:13통도사 부도원
□ 13:21통도사
□ 14:02통도사 주차장
◆ 산행거리 : 약 17.3km
배내고개-1.2km-배내봉-2.8km-간월산-2.2km-신불산-3km-영축산-4.5km-통도사부도원-0.1km-통도사-2.5km-통도사 주차장
◆ 산행시간 : 7시간 49분(식사 및 휴식 포함)
◆ 형태 : 일산 알프스 산악회와 함께
⊙ 영남 알프스에 가 보자
등산 안내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 어느 곳이 가장 가 볼만한 곳인지를 알게 된다. 10월에는 모든 산악회가 설악산으로 몰리더니 11월에는 영남 알프스가 자주 거론된다. 아직 가보지 못한 영남 알프스는 동경 대상 중 하나였다. 산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나를 산꾼으로 이끌어준 탱크님과 주천님도 영남 알프스 산행길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先人들의 행보(?)도 답사할 겸 과일도 제철에 먹어야 최고이듯 제철 만난 영남 알프스에 무조건 가기로 했다.
행선지를 영남 알프스로 정하고 적당한 산악회를 찾다가(거리가 멀어 혼자 가기엔 벅차다), 한북정맥을 했던 일산 알프스 산악회에서 이번 주말에 이곳으로 간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일산 알프스 산악회는 출발 장소가 일산이라 나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날씨가 쌀쌀해 진다는 소식에 겨울 채비로 옷을 챙기고 식사도 아내에게 부탁하여 보온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이젠 아내의 수고가 없으면 등산 떠나기도 어려운 계절이 됐다.
백석역에 도착한 버스가 예전 차보다 신형이라 날씬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회원들과 인사를 주고 받으며 뒤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널널하게 두 좌석을 차지하고 일찌감치 눈을 감았지만 외적인 환경(오랜만에 참석한 회원들이 많은지 회포 푸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과 내적 요인(잠자리 바뀌면 잠 못 자는 유아적 성격) 때문에 잠들지는 못한다.
두어 번의 정차 후에 목적지인 배내고개에 도착했다(05:12 ). 창밖에는 등산을 시작하는 랜턴 불빛이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문득 백설 공주동화가 생각 난다. 직업이 광부인 일곱 난쟁이들은(광부의 상징은 곡갱이와 랜턴이다) 저녁마다 불빛 앞세우고 백설공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 온다. 일곱 난쟁이는 미녀와 따뜻한 식사가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지만 저들 산꾼은 어느 백설공주를 맞으러 이런 오 밤중에 길을 나서나?
오늘 산행은 거리가 짧고 영남 알프스는 산의 조망이 백미이므로 날이 밝은 무렵 출발한다는 회장님의 판단(탁월한 선택이었음이 곧 드러난다)으로 한참을 더 쉰 후에야 버스에 불이 들어와 산행 시작을 알린다.
⊙ 장엄한 일출
‘땀 나기 전에 옷을 벗는다’라는 산꾼들 격언에 따라 새벽이지만 겉옷을 벗고 간편한 차림으로 줄 맨 끝에 섰다. 여섯 시가 넘었지만 주위가 어두워 랜턴 불빛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길게 늘어 선 줄이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좌측 산기슭은 숲이 무성하고 우측 아래는 절개지인 듯한 길을 억새가 에워싸고 있다. 바람이 억새를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 멀리 가지산-능동산 줄기가 어둠 속에서도 당당하게 위엄을 지키고 있다.
길이 산길 같지 않고 올라가지도 않더니(억새를 구경하는 산책길로 판명) 선두의 현대장님이 후미로 가고 있는 회장님의 무전기로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연락이 온다. 회장님은 오던 길을 되짚어 올라가고 나머지 일행은 어정쩡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현대장님에게서 길을 찾았다는 전갈이 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도 뭐하여(오늘은 대간도 정맥도 아니므로 마루금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좁은 길이 숲 사이로 파고 든 모습이 보인다. 길이 가파르다. 랜턴이 점점 희미해 진다. 숲 속을 조금 오르니, 나무들이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눈 비비고 하늘로 손 뻗어 일어나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며 푸드득 소리를 낸다.
스틱을 배낭에 달고, 내 앞을 가던 분이 관목에 스틱이 걸려 여러 번 제지를 당한다. 한번, 두번, 세번이 넘어서자 내가 괜히 미안하여 앞 사람 발걸음에 신경이 쓰인다. 숲을 벗어나 배내봉으로 가는 원래 길을 찾았다. 숲의 힘을 빌어 여명을 막아서던 어둠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해 랜턴이 필요 없게 됐다.
뒤를 돌아 바라 본다. 능동산 줄기도 어둠에서 벗어나 산 꼭대기는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오늘 코스는 산행 코스라기 보다는 관광 코스라더니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린 길이 흉측하다. 사람 발길에 도랑처럼 깊게 패여 있고, 길 양쪽 끝은 계속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다. 영남이 대표하는 산이라던데 안식년을 하던지 나무 계단을 쌓던지 무슨 방안을 마련하여 더 이상의 훼손을 막아야 할 것 같다.
일출이 시작될 것 같다며 후미의 분발을 요청하는 무전이 계속 날라온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해서 일출이 대단할 것 같아 걸음에 속도를 올리지만 남은 길이 멀다. 초초한 마음에 다시 뒤를 돌아 본다. 능동산 줄기 정상이 완연한 붉은 색으로 변했다. 마음은 급하고 무전의 독촉은 계속 되고…
봉우리 정상에 올라 섰다(송곳산 갈림길). 조물주가 보호하사 일출이 시작되지 않았다. 추위를 대비해 겉옷을 입고 저 멀리 동쪽 하늘을 쳐다 본다. 막힌 데 없이 뻥 뚫린 하늘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반원을 그리고 있다. 시야 끝 쪽에 구름이 거미줄을 길게 느려 놓은 듯 옅게 깔려 있고, 이제 해가 솟아나려는지 구름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어 있다.
주인공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제나저제나 뜸을 들이며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모여 있는 산꾼들 속을 태운다. 초겨울 새벽 추위가 습자지에 먹 스며들 듯 속으로 스며들어 참기 힘들 때 쯤(탁 트인 능선이라 가면서 일출 본다고 포기하고 출발하는 대원도 여럿 생겼다), 마침내 붉은 머리가 슬며시 올라 온다.
너무 붉어 마주 보기조차 힘들지만 해의 정기를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정면으로 해를 응시한다. 착시 현상 때문에 일그러졌다 제 모습으로 일렁이던 붉은 해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산을 자주 다니지만(?) 이런 장엄한 모습은 처음이다. 삼년 전(그게 벌써 삼년이라니 세월 그 놈 참 못 말리겠다!) 새해 해맞이로 탱크님의 권유로 지리산에 올라 일출을 봤지만 사람 인파에 치여 지금처럼 감동적이지 못했다. 오늘 일출로 올해 등산 농사는 값진 결실로 보상 받는 기분이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억새로 탁 트인 능선을 올라가는 기분이란 삶의 기쁨 그 자체다.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大氣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를 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
『감사』 - 노천명
배내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본다. 영남 알프스의 산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산행 경력은 짧지만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조망하는 곳으로 최고는 태백산이었다. 끝간 데 없이 겹겹이 뻗어 나간 산줄기가 발아래 툭 트인 시야로 굽어보는 맛이 일품이었는데 이곳 배내봉도 막힌 곳이 없어 영남 앞프스 산줄기 조망에 안성맞춤이다.
앞으로 가야 할 영축산에서 이곳 배내봉까지 물결처럼 일렁이는 산줄기는 물론이고 가지산에서 능동산으로 병풍처럼 에워 싸고 있는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나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양쪽 스테레오 사이에서 교향곡을 즐기듯, 영남 알프스 산줄기 한복판에 서서 산세를 감상한다.
해는 잠깐 사이에 벌써 지평선에서 솟아 올라 바로 쳐다 보기 힘들고, 능동산 줄기 대부분이 해를 받아 색이 더 옅어 졌다. 억새가 철쭉이 주류인 관목 지대로 변했다. 억새는 철저한 양지 식물이라 해를 받지 못하면 잘 자라지 못한다. 따라서 이 곳도 억새 보존을 위해(이런 짓은 하면 안 되는데…) 인위적으로 불을 놓지 않는 한 언젠가는 억새대신 관목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동해에 가까워서 그런지 동쪽으로는 경사가 급하고 서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지형(동고서저)이 계속 된다. 암릉이 이어지며 전망대가 곳곳에 있다. 아무 곳이나 올라서 내려다 봐도 변함 없이 반겨주는 경치는 시간과 각도에 따라 새로운 감동을 안겨준다.
첫 번째 올라선 암봉에선 등억 온천지구에서 올라오는 산줄기가 칙칙한 암갈색이더니, 두 번째 전망대에선 해의 힘을 받아 적갈색으로 변하고 세 번째 오른 바위 전망대에선 어느새 끼어든 연초록(소나무)과 밝은 갈색이 버무려져 산기슭을 물들이고 있다. 오늘 날씨도 좋고 막힌 데 없는 능선이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오르막 이지만 쉬어 갈 정도는 아니다. 관목 우거진 길을 쉬지 않고 올라 간월산 정상에 올랐다. 간월산 정상은 암봉으로 이뤄져 넓지 않다. 햇볕이 부담이 될 정도로 해가 솟아 올라 모자를 꺼내 쓰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본 다음 바람 없는 따뜻한 억새 밭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는 일행을 찾아 나섰다.
간월산에서 간월재로 하산하는 길은 억새가 지천이다. 암릉 하나 넘어 억새숲에서 아침 식사하는 일행을 찾아 변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김준섭님이 따라 준 약술 한잔 받아 마시고 도시락을 꺼내는데 같이 먹자며 황선태님이 앉는다.
황선태님이 펼쳐 놓은 반찬수가 우리 집 만찬 때 보다 많아 소풍을 온 기분인데 소주까지 권한다. 등산 중에는 다리가 풀려 술을 안 하는데 사양하면 대작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 한잔 받아 마시고 잔을 권했다.
황선태님은 일산알프스에 가끔 나오는 회원으로 휴일엔 아내와 북한산 등산을 자주 간다고 한다. 아내와 같이 산행을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나도 아내와 같이 산행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와 산행을 하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겠지만(뻔한 이유는 다른 분도 마찬가지라 생략)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본 다음 아내의 산행기로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아내의 글 솜씨가 나 보다는 월등하기 때문에 산행기를 쓸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식사를 하며 나무 계단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신불산 길을 올려다 보며 대원들이 거리를 짐작하는 한마디씩을 한다. 일단 눈에 들어오면 한 시간 거리라던 허공님 말이 문득 떠오르는데 한 눈을 채 못채우는 저 길은 30분 거린가!
⊙ 억새 밭의 감흥
청바지 차림의 아베크 족부터 단체 사진 촬영 팀까지 간월재 주변 억새밭을 뛰어 다니며 산 구경, 억새 구경에 정신이 없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젊은이들이 활기차고 예뻐 보인다. 젊은이들을 보면 아름다워 보이니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나도 저런 차림으로 놀던 때가 있었는데.
전망대 겸 나무로 지은 헬기장을 지나 간월재에 내려 섰다. 간월재에서 올려다 본 간월산이 심금을 울린다. 파란 하늘 아래 오로지 억새만 있고(겉옷은 벗고 속옷만 입은 꼴이다), 밋밋하게 솟아 있는 산봉우리가 1000미터가 넘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저 높은 산의 기품을 살려 주려면 눈이라도 와야 할 것 같다(산에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황선태님이 힘겨워하며 잠깐 쉬었다 가자고 한다. 소주를 마시고 바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가 벅차 보여 함께 휴식을 취하던 나는 정상에서 기다리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남은 오르막을 올라 갔다.
정상인 줄 알고 달려간 곳에 파래소 폭포 안내 표시판이 있고, 왼쪽으로 신불산 정상이 보인다. 신불산에서 영축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봐도 억새 밭이다. 저 곳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신불평원인 모양이다. 간월산 기슭에서 허리까지는 관목이 치고 올라가는 모습이다. 관목 끝에 달려 있는 겨울눈이 햇볕에 붉은 색으로 반짝이며 산기슭을 물들이고 있다.
황선태님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 신불산 정상에 있는 항공 사진을 들여다 보며 주위 지형과 맞춰 보고 있는데 황선태님이 정상에서 술이 빠질 수 없다며 간이매점으로 길을 이끈다(서울 근교 산처럼 매점이 있다).
간이 매점에 둘러 앉아(회장님/황선태님/전병준님/알바) 어묵을 안주 삼아 동동주 한잔을 들이킨다(황선태님 계산: 초면에 잘 마셨습니다). 주점을 관리하는 중년 남자가 인사를 건네며 오늘 30kg의 짐을 지고도 제일 먼저 산에 올랐다며(05:00 ) 자랑이 대단하다. 어디서 왔냐는 물음에 일산에서 왔다고 하자 오늘 경기도에서 여러 팀이 왔다고 한다.
오는 길에 봤던 억새가 철이 지난 듯 하여(꽃이 다 지고 줄기와 잎은 시들었다), 언제가 제철이냐고 물으니 10월 중순이 한창이라는 답변이다. 하지만 신불 평원은 오늘도 장관일거라고 호언을 한다.
신불산 정상에서 바다가 보인다고 하여 동쪽을 바라보니 신기루처럼 동해가 하늘에 떠 있는 형상으로 시야 끝에 매달려 있다. 바다가 보이는 것도 경이롭지만 신기루 같은 형상이 꿈 같기도 환상 같기도 하다.
전병준님이 이끄는 팀에 섞여 신불산을 내려 간다. 억새가 무성한 곳에 일행에 끼여 기념 사진을 찍고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반달이 떠 있다. 윤극영 선생님은 낮에 나온 반달을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으로 표현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 같다. 푸른 바다를 혼자 지키고 있는 저 배는 어디로 가나. 화창한 대 낮에 달을 보기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신불재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쉼터가 있다. 지붕만 없다 뿐이지 작은 휴게소만 하다. 의자에 앉아 목도 축이고 신불산 정상에서 입었던 겉옷도 벗어 갈무리 한다. 본격적인 억새 밭인 신불 평원을 혼자 걷고 싶어 일행들을 보내고 천천히 올라 가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뿔싸! 손에 스틱이 없다. 어디다 두고 왔는지 기억이 없다. 단체 사진 찍던 곳부터 되짚어 내려 오다 후미를 이끌고 오는 회장님 일행과 만났다.
회장님에게 스틱을 잃어 버렸다고 도움을 청하고 신불재 쉼터에 갔더니 내가 쉬었던 의자 옆에 스틱이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알프스 산악회에서는 덕칠이 때는 한번도 겪지 않은 사건이 자주 터진다. 넘어지기도 여러 번이더니 이젠 잃어버릴 뻔한 사건도 생기니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다 나 못난 탓인데 이렇게라도 위로해야지 어쩌겠는가?).
눈에 닿는 곳은 온통 억새뿐인 신불 평원이다. 억새 꽃은 졌지만 꺾인 잎새마다 햇빛에 반짝이며 끝없이 흩날리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햇빛은 죽은 억새도 살려낸다. 좋다는 억새밭을 제철에 두 번(명성산/화왕산)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때는 두 번 다 그저 그런 모습으로 보여 사람들이 왜 억새에 환성을 질러대는지 몰랐었다.
오히려 지난번에 다녀온 기/금/거/황(기백산-금원산-거망산-황석산) 종주 때가 규모는 훨씬(규모랄 것도 없다) 작았지만 훨씬 감동적이었다. 오늘 그 차이점을 확실히 알 게 됐다. 명성산과 화왕산은 관람객들로 넘쳐나 억새 구경을 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억새를 봤으니 느낌이 제대로 왔을리 없다. 군중 속에 묻힌 억새는 더 이상 벌판에 서 있는 억새가 아니라 꽃집에서 파는 여느 꽃과 다름 없는 억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억새 이왼 아무 것도 없는 평원이 가슴에 파고 들어 잠시 상념에 젖어 본다. 억새 키에 맞게 억새밭에 앉아 본다. 풀숲에 묻힌 기분이다. 억새가 햇빛과 파란 하늘 사이로 흐르는 바람에 조용히 부서진다. 나도 억새도 가만히 있지만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고 나는 감정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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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정상 아래 산죽들이 햇빛에 물방울을 달고 있는 풀잎처럼 반짝인다. 반짝인다고 다 보석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만 오늘 태양은 반짝이는 모든 것을 보석으로 만든다. 산죽이 반짝이는 건 보석보다 더한 무엇이 있다.
암릉으로 이뤄진 영축산 정상에 섰다. 영축산과 취서산 정상석 두 개가 자기가 옳다며 서로우기듯이 나란히 서 있다. 오늘 실질 산행은 여기까지니 하산만 남았다. 짧은 산행인데 오늘은 많은 것을 본 것 같다. 통도사로 가는 길을 직선으로 잡아 경사가 급하다. 숲이 우거진 길을 나무도 붙잡고 스틱 도움도 받으면서 조심스레 내려 간다. 내려가는 사람보다 올라오는 등산객이 더 많다.
보석처럼 빛나던 산죽 숲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숨을 한번 고르던 길이 다시 가파르게 내려 간다. 완만한 길은 등산이 아니라고 생각 하는지 경사가 급한 이 길을 등산객이 끊임 없이 올라와 좁은 길에서 양보를 주고 받는 일이 자주 생긴다.
임도 인듯한 길에 취서산장이란 간판을 건 매점이 있다. 오 가는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이제는 차도나 다름 없는 편한 길로 갈 줄 알았는데 안내하는 분이 지름길로 간다며 다시 경사진 숲길로 들어 간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 하산이 긴 경험이 여러 번 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 산행 역시 하산이 길어 주객이 전도 된 느낌이다. 기품 있게 잘 생긴 소나무가 점점 많아진다.
계속된 급경사가 결국 사람 하나를 잡았다. 한 여성대원이 자주 아픈 소리를 내더니 뒤로 쳐졌다. 앞서 가던 팀이 임도에서 뒤쳐진 여성대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 여성분은 돌아가더라도 다리가 아파 임도로 가겠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스틱도 빌려 주고(황선태님), 배낭도 들어주고 관절 보호대도 빌려주며 지름길로 갈 것을 권하니 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여성분은 스틱을 짚는 것이 아니라 모시고 간다. 스틱이 자기 체중을 못 이겨(이 분의 무게를 배겨내지 못하면 나 같은 사람은 스틱 사용은 어떻게 하나?) 손상 될까 하여 그랬다니 고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 진다.
경사가 완만해지며 산길을 벗어나더니 가을 볕에 졸고 있는 마을이 나온다. 감나무엔 감이 달려 익어가고 마당엔 들에서 걷어 들인 밭 곡식이 멍석에서 볕을 쬐고 있다. 마을 구판장을 지나 이어진 길에 부도원(浮屠園)을 만났다.
⊙ 통도사 구경
부도가 숲처럼 늘어서 있다. 부도가 많다는 것은 이 절에서 득도한 고승이 많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 층도 모자라 두 층으로 늘어선 부도는 이 절의 역사와 전통을 나타내고 있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곁에 있던 황선태님에게 부도의 의미를 들려 주자 신기해 한다.
부도란 고승의 시신을 화장한 납골을 모신 건조물이다. 선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깨달은 사람은 모두 부처와 동격이 된다. 일문일가라고 했으니 일문을 이끌어온 대선사의 죽음은 석가모니의 죽음 못지 않은 것이 된다. 석가모니의 시신을 다비한 사리를 모시는 것이 탑인데, 성불한 대선사의 사리도 그만한 예우로 봉안해야 한다.
통도사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은데 시간이 허락할지 몰라 초초해 하고 있는데 대원들이 회장님이 이끄는 후미가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 원하는 사람은 통도사 구경을 가자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일주문을 지나 사대천왕을 통과하여 절에 들어 섰다. 절은 사람들로 넘쳐 난다. 구경 나온 사람도 많지만 코 앞에 닥친 수능 때문에 기원하러 온 신자들이 더 많다. 시간이 없으므로 내가 아는 상식을 총 동원하여 빠르게 절을 훑어 본다.
사람들은 절 내부를 들여다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내부에서 볼만한 중요한 문화재는(예: 탱화) 절 앞에 있는 박물관을 가야 한다(박물관을 구경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유일한 예외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대웅전 내부에서 보는 것이 좋은데(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대웅전에 부처님 불상이 없다) 오늘 같은 인파에는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진신사리를 모신 탑은 봐야겠기에 출입금지 구역 계단에 올라 금강계단과 탑을 본다. 자장율사 이래 저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탑의 이끼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또한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절을 한 바퀴 둘러 보고 전체를 조망한다(산이 아니라서 아쉽다). 전국에서 가장 넓다는 절답게 통도사의 마당은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공간 배치에 노력한 흔적이 엿 보인다. 근세에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천년 사찰답게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옛 양식에 맞게 지어졌다. 연꽃 문양의 창살 무늬, 튀지 않게 멋을 낸 팔작 지붕, 처마를 버티고 있는 기둥의 옛스러움이 요즘 지은 절과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일행이 주위에 없는 것을 보니 절을 떠난 모양이다. 나도 더 지체할 수 없어 주마간산 식으로 훑어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절 옆으로 흐르는 개천이 또 다른 볼거리다. 개천을 잇는 무지개 돌다리도 뛰어나지만 서로 다른 크기의 돌을 솜씨 있게 쌓아 올려 안정감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만족하는 석축의 모습에서 장인의 혼을 느끼게 한다.
일주문에서 주차장 가는 길이 멀다. 통도사는 딱 한번 온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왔다가 서울로 귀경하는 코스에 통도사가 있었다. 어릴 때는 큰 것만 동경하던 때인지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먼저 관광했던 내 눈에 통도사는 별 볼일 없어 보였다. 주차장에서 통도사까지 거리가 멀어 다리 아팠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걸어보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길 옆에 운치 있는 개천이 있고(일주문을 지난 개천 석축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나무 마다 한 몫 하는 소나무 길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길이 아니다(연인이 걸으면 딱 좋을 듯).
주차장 옆에서 흐르는 개울물에 간단히 세수하고(땀이 많은 나도 오늘은 땀 흘린 기억이 없다), 고픈 배를 김준섭님이 끊여준 라면 한 사발로 달랜 후 귀경길을 걱정하는 회장님 독촉에 떠밀려 버스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