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목민 정두환의 음악으로 본 세상이야기 5.
<베토벤(L.v.Beethoven)의 오페라 이야기>
“자유를 향한 진솔한 이야기”
정 두 환(문화유목민)
사회의 발전의 흐름은 어느 함 시점을 통해 변화되지 않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 어느 한 시점을 계기로 새롭게 흘러가는 것이다. 여기 새롭게 흘러가는 시점에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큰 흐름을 바꾸는 일을 혁명이라 이야기한다. 이 흐름 속에 예술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오페라는 귀족들의 전유물처럼 졌으나 시민혁명 이후 오페라는 급속하게 발전한다. 시민들의 힘으로 시민들의 의해 발전하는 것이다. 유럽을 뒤흔들었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상업자본주의 발달로 귀족과 다른 유산계급인 부르주아지(bourgeoisie)계급이 새로운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에 급속하게 전파되어가는 계몽주의는 자유와 평등사상이 물밀듯이 파급되었다. 이들은 왕실의 부패함을 알리고 시민 특히, 서민들의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를 알리는데 전력하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엔 예술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여기에 반해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의 불만은 최고조로 달했다. 하지만, 지배층에 속해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예술 행위를 하던 예술가 중 많은 이들이 프리랜스에 한 쪽을 걸치고 있거나 아예 프리랜스를 선언하고 시민들과 함께 예술의 행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배층을 표면적이거나 내면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고, 오페라도 그러한 장르 중 하나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작업들이 결국은 혁명을 일으키는 불씨를 피웠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은 이러한 시대를 앞선 작곡가로 그의 작품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었다.
하나뿐인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
오페라 <피델리오>는 악성(樂聖) 베토벤의 하나뿐이 오페라이다. 작곡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초판은 1804년에서 1805년사이, 제2판은 1805년에서 1806년, 그리고 최종판은 1814년에 만들어진다. 각 초연의 경우 초판의 초연은 1805년 11월 20일 안 데르 빈 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이루어지며 제2판의 공연 역시 갖은 장소에서 1806년 3월 29일 공연에 올려진다. 최종판은 1814년 3월 23일 케른트너모르 극장(Kärntnerortheater) 이다. 베토벤은 약 9년이라는 시간 속에 자신을 불태워 만든 유일한 오페라 작품인 <피델리오>는 레오노레(Leonore) 1번, 2번, 3번과 피델리오 서곡(Fidelio Overture)등 서곡만 무려 4곡이 있는 작품이다. 이를 보아도 베토벤의 진중함을 느낄 수 있다.
<피델리오>는 여주인공인 레오노레의 극중 가명이다. 장니콜라 부이(Jean-Nicolas Bouilly)의 프랑스 원작인 『레오노레(Léonore; ou, L’amour conjugal)』라는 소설을 근거로 요제프 폰 존라이트너(Joseph von Sonnleithner)가 대본을 쓴 독일어 번역 오페라다. 베토벤은 성악보다는 기악에 강한 작곡가다. 이런 그가 오페라 <피델리오>를 쓴 것은 죄 없는 남편을 구출하기 위하여 아내가 남장을 하여 구출한다는 정의 실현과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부부의 사랑이라는 대본을 읽고 베토벤은 감동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은 바로 작품 구상에 들어간다. 1803년 빈의 안 데르 빈 극장의 지배인인 브라운 남작으로 부터 오페라 작품을 의뢰받고 첫 번째 완성은 1805년 가을에 완성되어 그해 겨울 11월 20일 빈 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초연하게 된다.
베토벤의 하나뿐인 오페라는 수난의 연속이었던 같다. 최초 초연은 1805년 10월경에 예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 11월 13일 빈이 함락당한다. 불행 중 다행일까? 빈이 함락당한 7일 후 11월 20일에 공연을 올릴 수 있었으나 공연은 완전하게 실패한다. 전쟁이 원인이었다. 관객의 대부분이 빈을 점령한 프랑스 군인이었으며, 베토벤의 후원자들은 전쟁을 피해 거의 빈을 떠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누가 전쟁 중에 한가하게 오페라를 관람하겠는가? 그의 작품에도 부족함을 이야기하였다. 초연 다음 후원자인 리히노브스키 공작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전 3막의 피델리오를 전 2막으로 줄이자는 것이며 수정 이후 개정한 작품을 이듬해인 1806년 3월 29일 같은 극장에서 무대를 올렸다. 첫 발표보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베토벤은 개정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 한번 개정하여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다. 1814년 새롭게 무대에 올린 지 8년 후에 기회는 찾아왔다. 빈의 케른트너모르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제의에 베토벤은 특유의 치밀함이 발동되어 전체를 최대한 절제하여 2막으로 공연을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 첫 번째 발표한 뒤 11년만에 거둔 성공이다. 베토벤의 집념이 이룩한 성과이며, 베토벤의 치밀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서곡만 무려 4곡.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노력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피델리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급진혁명파의 교도소장 피차로(바리톤), 투옥되어 있는 반혁명주의자귀족인 플로레스턴(테너), 남편을 구출하고자 하는 아내 레오노레(소프라노)가 간수의 조수인 피델리오로 변장하여 우여곡절 끝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내용이다. 피델리오는 헌신적인 여성, 영웅적인 여성을 담고 있으며, 오페라의 제목의 여성이지만, 남장을 하여 남편을 구한 <피델리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주요아리아는 죄수들의 합창 “오,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O welche Lust)”, “신이여! 여긴 왜 이리도 어둡습니까?(Gott! Welch Dunkel hier?)”, “비열한 자여! 어디로 서둘러 가는가?(Abscheulicher! Wo eilst du hin?)”, “말할 수 없는 이 기쁨(O namemlose Freude)”등이 있다. <피델리오>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단어가 ‘자유’다. 자유는 베토벤의 전 생애와 전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하는 중요한 가치다. 사실 <피델이오> 역시 프랑스 대혁명(1789-1799) 직후로 독재에 저항하여 자유를 추구하였던 민중 봉기에 공감하고 있던 상황에서의 이야기이다. 오페라 무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감옥이며, 이는 바스티유의 억압, 독재를 이미지화 하였으며 이를 타파하면서 자유를 쟁취한다는 비유인 것이다. 결국 오페라 <피델리오>를 통해 자유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단 한편뿐인 오페라 <피델리오>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향한 열망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와 방종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자유를 사전적 의미로는 _개인의 자유를 지칭하며 이때 ‘개인’이란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 개인 주체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 ‘자유’ 개념은 형성될 수 없는바,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도 ‘주체성’에 대한 의식은 사춘기에 이르러서나 뚜렷해지듯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도 '개인 주체'의 개념은 상당 기간의 문화 체험을 한 근대에 이르러서야 형성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개인'은 '개체'로서의 인간이자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_ 여기에 반해 방종(放縱)은 ‘제 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을 사전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개인은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추구한다. 이러한 대목은 <죄수들의 합창>에서도 역실히 들어난다.
베토벤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피델리오>는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혁명과 사회개혁의 서막을 그려낸 작품으로 많은 이들은 평가함과 부부의 진실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내면서 사랑을 통한 사회 개혁을 이야기하는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니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오페라<피델리오>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평가로 나뉠 수 있다. 혁명적인 작품이 아니라 남녀 두 주인공을 내세운 영웅주의적 드라마로 보는 평가도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혁명군에 의해 감옥이 습격을 당하지도 않으며, 죄수들이 혁명의 바람을 타고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의 의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베토벤의 오페라 뿐 아니라 , 교향곡과 실내악곡등 다양한 곳에서 그는 필요할 때마다 ‘자유’의 의지를 불태웠다. 오페라 장르에 묶여있기보다는 다양하게 펼쳐지는 음악적 요소 가령 2막의 대합창은 오라토리오ㄹ나 교향곡 9번의 합창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하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단, 이 한편의 오페라로 베토벤은 그가 전하고 싶은 오페라 이야기를 다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오페라는 자유를 이야기하기 위한 또다른 수단이었다. 한편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 세상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
(사)부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artpus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