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역시 본 축제의 첫 테이프를 끊은 보영여고의 연극 공연은 때마침 동두천을 강타한 폭우 속에서 심사위원들만을 위한 특별공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정 조정 상 어려움이 있어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늘 이러한 문제가 우리 축제의 난제로 남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동두천 시민회관의 넓은 객석은 채우기 어려운 넓은 무대처럼 다소 휑한 느낌이었지만 이내 뜨거워지는 연극반 학생들의 열기로 그 허한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넓은 무대를 나름 분할하여 사용하면서 극의 진행을 템포 있게 가고 있고, 그 표현 수법에서도 상징적인 방법으로 소리 없는 다수의 폭력 속에 무너져 가는 지숙이의 공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 ‘우상의 눈물’을 각색하여 공연한다는 것도 난제이지만 점차 그 구성원 수가 줄어드는 학교 연극반 실정에 맞게 재구성하다 보니 무리한 면도 보이고 나름 그 흐름이 순차적이면서 설명적이 되는 아쉬움이 보입니다. 특히 교사의 교활하면서 지능적인 음모를 후반부에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터인데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진행하다 보니 이야기 구성의 긴밀함을 놓치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학생들이 발성은 든든합니다. 요즘 학생들의 공통적인 취약점인 발음의 정확성 부족이 보영 연극반에서 풀어야 하는 과제로 여겨지면서, 다섯 학생들의 다양한 성격의 분화가 조금 더 나타나서 극의 재미를 더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흔히 연극에서의 등장인물은 ‘성격’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인간상을 대변하는 존재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맡은 인물은 분명 다른 등장인물과 대비되는 성격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서로 비슷한 말투 비슷한 행동양식으로 연기하기 보다는 말과 행동양식에서 그 인물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 가는데 연극반 학생들이 신경 써 주기를 바랍니다.
2. 대진여고
금년도 대진여고는 학생들과 많은 토의 과정을 거쳐 지도교사가 직접 만든 창작극을 선보입니다. 우리 축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공연하는 학생 연극’이라는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 공연이라는 점이 무척 고무적입니다.
성장기 청소년들의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는 상황이나 컴퓨터 채팅을 통한 청소년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리고 동성애 문제까지 다루는 등 그 내용이 독특하고 청소년의 문화를 적절히 대본 속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참 좋은 대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표현에 있어서 나름 아쉬운 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공연 장소의 한계에서 오는 대사 전달의 취약함이 두드러집니다. 관람하는 학생들도 넓은 공연장 안을 가득 메운 데다가 뒤로 갈수록 이동하는 학생들이 많아 소란함이 끊이지 않습니다. 공연하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튼튼하다면 이를 어느 정도 집중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연기에 있어서도 하나의 장면 장면이 그 장면의 목표를 향해 좀더 집중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아직 개인들 연기의 기본기가 부족함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딘가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장면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원인까지 되고 있습니다. 연습의 부족이랄까요. 인문계 여고의 현실이 좀더 많은 연습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락’뮤지컬로서 음악이나 음향의 사용은 높이 평가할 만한 수준입니다. 거기에 자판기나 컴퓨터의 역할을 사람이 해 낸다는 발상은 참으로 참신합니다. 거기에 다소 허술해 보이기는 하지만 배경막을 이용한 등퇴장 방법도 단순한 구도를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되고 있으며 템포 있는 진행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3. 동북고등학교
동북의 이번 작품은 뮤지컬 ‘넌센스’를 학교 연극반 현실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일단 그 시도의 참신함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흔히 공연할 대본이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들을 무리하게 공연을 한다든지, 학생들에게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그 구성의 긴밀함이 떨어지는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번 동북은 그런 점에서 나름 잘 각색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약간 비약적이거나 부족한 내용들이 드러나는 것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또한 연극반 상황으로 각색한 점은 좋으나 그 표현 양식은 ‘넌센스’적이라는 점을 극복하지 못한 인상을 줍니다.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넌센스’의 화법을 따라하고 있음으로써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없습니다.
뮤지컬을 공연할 경우에는 많은 연습량을 필요로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래와 춤이 따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큰 관건이라 할 수 있지요. 아무리 애를 서도 노래와 춤이 되지 않으면 외려 역효과를 낼 뿐이니까요. 그동안의 동북은 이러한 난제를 평소의 꾸준한 준비와 연습으로 극복해 내는 저력이 있는 학교였습니다만, 금년의 경우는 아무래도 어딘가 벅차 보이는 면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공연 외적인 준비는 설정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미진함이 느껴집니다. 텅 빈 무대에 연습복을 한 학생들이 나와 시종일관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쉽게 가고자하는 의도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기본기는 여전히 탄탄합니다. 발성이 튼튼하고 움직임의 기본기들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사자놀음은 나름 특색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공연에서 학생들은 어떤 이유인지 흥겨운 극의 분위기와는 달리 다소 경직되어 보이고 나름 억지스러운 연기까지 나타납니다. 따라서 흥겨움이 흥겨움으로 여겨지지 않고 안쓰러움으로 보입니다. 뮤지컬에서의 노래와 춤도 연기와 마찬가지로 그 맺고 끊는 맛이 있어야 함에도 극의 연결과 함께 매끄럽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4. 용화여고
용화여고의 소ㅣ어리는 언제나 학생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곡을 만드는 독특한 전통의 뮤지컬 동아리라는 점에서 다른 학교 연극반과 구분되는 특이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희곡 작법과 음악 작, 편곡의 수준은 꽤 높은 편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써서 무대에 올리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매년 조금씩 전통을 만들어 가는 열정에는 올해도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올해에는 독특한 안경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 속의 세계에 대한 어쩌면 재미있는 공연을 음악과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많은 뮤지컬반 학생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 것에는 오히려 놀라움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검증되지 않은 창작 작품이라는 한계를 인정할 때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창작 작품이 갖는 아쉬움은 장면 전환이 많음으로써 생기는 산만함과 재미를 나타내기 위한 연기의 과장으로 인한 작품의 산만함 등입니다. 노래도 인상적이었고 공연의 열정도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공연은 한번 올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압축을 해서 명확한 장면과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에서의 희곡과 노래는 일부분일 뿐 극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여러 스태프들의 조화로운 준비와 보조가 함께 어우러져야 조화로운 극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용화의 이번 작품은 나름 아쉬움이 남습니다.
연기자들은 노래와 춤 연습에도 많은 연습을 해야 하겠지만, 항상 연극적인 발성과 화술, 자연스러운 화법으로 대사를 구사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하고 연기력의 향상을 위한 기본기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한편, 뮤지컬의 노래와 춤은 그 가사 전달과 표현이 극의 또 다른 이야기 전달이라는 면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관객이 진정한 박수를 치고 연극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더욱 많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5. 충남 예산중학교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는 중학생이 공연하기에 다소 무리가 보일 정도로 많은 대사량을 갖고 있고 그 표현에도 어려움이 따르는 작품입니다. 특히 시구 같은 아름다운 언어들을 잘 살려 내야하고 남자 캐릭터를 여자 캐릭터로 바꿈으로써 느껴지는 섬세한 표현과 감정의 교류, 여자 캐릭터가 남자 캐릭터로 변화되면서 보이는 다양한 표현과 원작이 가지고 있는 극적인 재미 등을 아직 삶의 경험이 풍요롭지 못한 중학생들이 보여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대사에 올바른 감정이 들어가지 못하여 그저 속도 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연기에 있어서 많은 연습량이 느껴질 정도로 학생들의 집중력이 돋보입니다. 발성이나 발음이 좋아 대사 전달이 무난하고, 중학생다운 재치 있고 발랄한 몸짓 표현 등은 극의 재미를 찾아내기 좋은 요소로 작용합니다. 다만 연기를 할 때 자신의 표현 방법으로 의도적인 발 구름을 이용하는 것이 좀 거슬립니다. 한편으로는 구사하는 대사에 힘을 싣는 이로움도 있겠지만 반면 습관적인 사용으로 인해 대사 전달에 방해를 주기도 하고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요.
스태프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좁은 무대를 철제 빔을 이용하여 상징적인 무대 장치를 하였고 무대 이외의 공간을 적적하게 활용하여 좁은 무대를 넓게 사용하는 점이 좋게 여겨집니다. 색조명을 사용하여 나름 상황에 맞는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의상도 화려해서 일단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좋고, 다만 극의 흐름과 이를 뒷받침하여 주는 음악과 다소 부조화를 느끼게 됩니다.
달리 보면 희곡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데에 한계가 있는 공연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자기 식대로 마음껏 표현하면서 공연하는 아이들의 밝고 즐거운 표정이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좋은 반응들은 연극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공연 자체가 그 성패를 떠나 학생들에게는 참 즐겁고도 소중한 경험의 시간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 여의도여고
여의도여고를 여러 해 동안 심사를 하면서 그동안 강당과 외부의 소음이 연극 공연에 상당한 방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연은 연극부의 공연만이 진행되어 그런 걱정을 단번에 해소해 버렸습니다.
그동안 작품의 선택도 항상 스스로 하고 또 연습도 자신들이 직접 선배와 함께 하는 관계로 열성들은 있지만 작품 연출의 의도나 방향이 불분명하거나 또는 작품 선택에서 조차 아쉬움이 있던 여의도여고였는데 이번 ‘산 넘어 개똥아’를 보면서는 이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무대 조명 등 공연시설이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열심을 다하는 모습은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어느 학교나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기본적인 발성의 훈련과 정확한 발음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하는 것과 이는 꾸준한 연습량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언제나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대로 관객의 집중을 유도할 수 있는 연기의 몰입. 잠시도 눈을 돌릴 사이 없이 집중력 있고 템포 있게 밀고 나가는 연기, 어떤 행동을 하나 해도 대충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자체만 따라가는 연출이 아니라 대본을 분석 연구하면서 대본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추출해 내고 이를 나름의 방법으로 무대 위에 참신하게 펼쳐낼 수 있는 연출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7. 중앙여고
중앙여고의 작품도 큰 공연장용이 아닌 소극장용의 작품이지요. 공연장인 추계콘서트홀은 연극 공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는 대형극장이어서 금년에도 무대 구성과 조명 운용에 어려움을 안고 공연을 하고 있음이 보입니다. 그래도 예년과 달리 무대를 중간 막을 내려 그 앞의 공간만으로 좁혀 운용한 것은 좋은 생각이었습니다만 연기자들의 역량에 비해 무대가 너무 넓어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고 휑한 기분이 듭니다.
남의 공간을 빌려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극장의 기자재를 마음껏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많은 조명기가 달려 있음에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또한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극장을 이용한 리허설을 충분히 하지 못하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의상이나 분장은 그 준비가 좋아 보입니다. 음향 역시 극의 흐름을 잘 받쳐주고 있고 그 선곡 내용도 그 준비가 좋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많은 극의 진행을 간단한 소도구로 상황 설정을 하고 운용한 것도 좋아 보입니다만 흰 종이로 둘러싼 소도구들은 조금 세심하지 못한 면으로 여겨집니다.
넓은 공간에서는 조금만 등퇴장이 늦어도 템포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너무 잦은 암전은 극의 흐름을 끊는 경우가 되고, 정지 장면의 과다 사용은 극의 긴장과 고조를 극대화하는데 저해 요소로 보입니다.
학생들이 연기는 나름 재치 있고 순발력을 보여줍니다. 연기를 받쳐주는 발성이 약한 점 등은 학생이라는 점에서 양보하더라도 공연 중에 무대 뒤를 걸어가서 관객들에게 그 모습이 신경 쓰이게 하는 것 등은 고쳐야 할 점으로 지적하고 싶고, 극과 크게 관련이 없이 단지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C.F나 인위적인 춤 등은 관객들에게 재미로 다가가는 장점은 있지만 가능한 한 자제하는 것이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8. 동구여상
작품의 구성은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동구의 ‘기적을 파는 백화점’은 산뜻한 음악과 그것에 맞춘 가벼운 춤 등 깔끔한 오프닝으로 시작되어 관객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29회의 공연 전통을 가진 연극반답게 공연 내내 무대에서의 매너도 완벽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공연 중에 보여준 정확한 등퇴장 타이밍, 음향 조명의 적절한 조화, 무대도 깔끔하고 주인공의 역할을 하는 세 명의 배우들의 대사도 호흡이 잘 맞아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사의 강약조절도 미루어 보건데 연습량이 상당히 많았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품으로 사용되는 가면과 시계의 다양성, 풍선의 색깔(형태도 다양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등도 신경을 쓴 부분이었습니다.
극의 진행 중 가끔 필요 이상의 과장된 행동(신발을 벗어 던진다든지 등)과 책상 또는 의자도 있는데 왜 바닥에 앉아야 하는지 - 시선집중도 문제가 되고 조명에도 문제가 됩니다. - 다시 말해서 왜 무대 바닥에서 시희와 지성이 만나야 했는지 아쉽기도 합니다.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고 연기에 몰입하려면 의자 위가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마지막 진지한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에 모두가 숨죽이고 쳐다보지 못하고 오히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력에 비해 발성의 중요성도 조금은 생각해야할 과제로 남는 공연이었습니다.
9. 수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연극 공연의 성패는 작품 선택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사회적 경험이 일천한 학생으로서 인생의 깊은 내면을 다룬다는 것이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배우들은 대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세세한 표현보다는 그저 피상적인 전달로 그치는 경우가 많고 감정이 단순하게 펼쳐지게 때문에 지루함을 떨치기 어렵지요.
금년에 수원고가 선택한 작품은 학생극으로서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인생의 중반에 서서 친구에 대한 상대적인 콤플렉스로 살아오고 또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의 내면의 독백들을 잔잔히 풀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적인 흐름 속에서 변화와 움직임을 풀어간다는 일은 중견배우에게도 버거운 일이지요.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기는 탄탄한 편입니다. 대사 전달이 좋고 계산된 움직임도 무리 없이 보여줍니다. 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연기술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으로 2년 전 본 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버지’라는 작품에서 느낀 중년의 표현 양식이 후배들에게도 묻어나고 있음이 보입니다.
하지만 금년 연극은 그 준비에 부진함이 아쉽습니다. 무대 세트가 없는 대신에 배경막에 붙여 놓은 ‘열등생’이라는 글자가 공연 내내 눈에 거슬립니다. 분장이나 의상, 소품의 준비와 주어진 조명의 활용 등이 미진하여 연극을 보러온 관객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라는 성실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무대 위의 본인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공연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면적인 무대 이용 등도 조명의 제한으로 인한 것이겠지만 깊이가 있는 무대 사용을 권해봅니다.
10. 대동정보산업고등학교
우리 사회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환경은 여전히 후진의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입식, 암기식의 치열한 입시 경쟁교육, 권위주의적인 학교 풍토 속에서 우리 학생들은 질식 상태에 있습니다. 본 작품에서는 이러한 현대의 사회적 여건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사랑과 고민, 갈등, 생활상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컴퓨터와 빔프로젝트를 이용하여 흰 배경막에 대동 연극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든지 역대 공연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참신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를 이용하여 극의 상황에 맞는 배경 화면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이채롭고 무대 장치에 어려움이 많은 학교 연극에서 충분히 이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열 대의 핀 마이크를 활용하여 넓은 강당에서의 대사 전달에 신경을 쓴 점은 좋습니다. 한편으로 조명이 부족하여 사용하는 롱핀이 오히려 빔프로젝트의 화면과 함께 뒤 배경막에 연기하는 배우들의 그림자를 만들어 눈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연기 면에서 각 장면의 분석과 매 장면이 추구하는 목적을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토한 각각의 배역의 성격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자신들의 대사 분석이 부족하여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야기 장면에서는 자연스러운 편이지만 극중극 장면에서는 셰익스피어극의 표현이라는 선입관 때문인지 경직된 대사와 연기가 보입니다.
연기를 할 때 무대 위에서 배우는 되도록 발을 구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신도 모르게 발에 힘을 싣느라고 나타나는 현상이겠지요. 오히려 대사에 힘을 주는 방법을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11. 경복여고
늘 학생들 스스로의 창작품을 공연하는 경복여고 ‘예닮’은 이번에도 자신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준비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극본을 만들 경우 흔히 그 이야기 구조의 미흡함이 공연의 단점으로 부각되기 쉬운 편인데 이번 작품은 학생이 만들었다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참신한 소재와 극적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보호소 상황에서 극의 주인공에게 집중되던 이야기 구조가 흔들려 그 주제를 흐리게 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대부분의 청소년 연극들은 청소년의 성향 상 그 극의 전개가 역동적이고 따라서 템포를 요하는 작품들인데 비해 이 연극은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진행되어 가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연기도 나름 감정이 절제되어 있어 극의 무게를 더해갑니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성격 분석이 잘 되어 있어서 작품의 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다만 극중 인물에 대한 표현이 어느 순간 나이에 맞지 않는 등 일관성을 놓치는 단점이 보입니다.
다만 보호소 안에서의 장면 가운데 춤과 노래를 더한 것은 작품이 추구하는 무게감을 많이 흔들어 놓습니다. 어떻게 보면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주제로 향해 가는 집중력을 떨어드리고 단순한 호기 정도로만 여겨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깔끔한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공연에는 부적합한 열악한 무대임에도 검은 천과 흰 천을 이용하여 집과 검사실 등 무대 상황을 잘 구분하였고, 이 구분된 무대들을 잘 분할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며, 없는 조명도 잘 활용하여 극을 템포 있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음악 그리고 음향은 그 시설의 운용에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나름 극의 흐름을 잘 받쳐주고 있습니다.
12. 일산공고
학교 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일산공고의 연극은 프로그램의 연결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산만한 강당의 분위기를 잡아내는 것부터 숙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강당이라는 장소에서의 공연은 어느 학교이건 안타까운 마음을 버릴 수 없는 조건이지요. 소리를 전달하기 어려운 넓은 공간이라 마이크를 설치하여 음량을 확대해 보지만 오히려 스탠드 마이크들이 눈을 어지럽히고, 마이크 서로간의 혼선음들과 울림으로 외려 극을 방해하고 맙니다.
축제 프로그램의 연결선상에서의 공연은 무대 사용도 제한이 많이 따르고 전체 프로그램에 맞춘 것이라 조명의 운용까지 어렵게 하지요. 단순한 파라이트들로 극의 흐름을 뒷받침한다는 것부터가 무리가 따르니까요. 따라서 종종 필요한 부분 조명의 효과나 색조명의 효과들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산공고는 자신들의 학교 현실을 이야기로 잘 엮어내는 저력이 있습니다. 금년 작품도 공고라는 학교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창작품으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인지 그 연기에도 인위적인 모습이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말투 자연스러운 몸짓이 또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이야기 흐름에 배어있습니다. 거기에 템포 있는 극의 흐름은 전반부에 소란했던 공연장 안의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을 정도로 원숙합니다. 거기에 학생들의 연기력이 상당히 고는 편이고 각각의 인물들의 개성이 잘 표현되고 있으면서 서로 간의 호흡도 착착 맞아갑니다. 참 연습을 많이 했구나. 할 정도로 능숙하게 연기를 해내는 학생들을 보면서 또 한번 공연 조건의 안타까움이 일고 맙니다.
오프닝 음향에서부터 소란한 관객을 잡아가려는 듯 강하게 들어가는 등 특히 배경 음악의 사용이 뛰어납니다. 극의 끝부분에 무대세트를 무너뜨리고, 조명을 떨어뜨리면서 충격효과를 주고, 극중극의 반복으로 극적 반전을 꾀하는 등의 여기저기 계산된 연출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13. 양재고등학교
소극장이라는 시설은 극장이라기보다는 강단이 있는 세미나실 정도를 연상하게 해 주는 곳입니다. 조명시설은 그저 실내등을 이용하야 하는 실정이고, 단 위의 밝은 색의 나뭇결 벽과 마루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 양쪽으로 검은 천을 내려 겨우 윙을 내고 그리고 인물들의 등퇴장을 잡고 풍선 몇 개 달아서 공연장의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양재고의 연극 공연... 쉽게 준비가 뭐 이러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면서 연극 공연을 하려 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하는 안타까움 속에 공연을 보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의상, 분장, 소품 등에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있어 좋습니다. 더욱이 음악의 선택과 사용은 극의 분위기를 아주 잘 받쳐주고 있습니다. 좁은 무대도 나름 잘 활용하고 있고 객석까지 이용한 연출라인은 부족함을 극복하려는 나름의 발상이라고 할까요. 검은 천이나 흰 천을 이용하여 소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사실적이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처리해 갑니다.
극의 내용은 익히 알려져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옵니버스 형식으로 엮어서 각색한 짧은 연극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 구조가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내용이라서 쉽게 관객에게 다가오는 이점이 있지요. 한편 이야기 두 번 째에 보여주는 마임 극은 사람이 사과나무를 연기하는 등 그 표현이 참신하고 즐거운 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 온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학교의 여건이 너무도 열악한 점이 마음 아프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14. 한성여고
한성여중 강당은 일단 그 규모가 커서 공연하기에 많은 제약 조건이 따르는 곳입니다. 큰 무대를 채우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배우들도 넓고 울리기까지 하는 공연장 상황을 고려하여 대사 전달에 무엇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하겠지요. 거기에 관객들의 이동을 최대한으로 제한하여 이로 인한 소음 발생을 차단하는 데까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일단 무대에 덧마루를 배치하여 높이와 위치의 변화를 주었고, 뒷배경막으로 흰 천을 달아 빛의 효과를 시도했으며, 양 옆으로 검은 천과 붉은 천을 내려 무대의 폭을 줄이면서 작품의 배경을 상징적으로 처리합니다.
조명의 경우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함인지 전반적으로 어둡다는 느낌을 줍니다. 배우들의 얼굴 표정과 세심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오랜 시간 관람을 하는 관객들의 눈에 피로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기본기는 좋습니다. 발성이 튼튼하여 소리 전달이 잘되고 있습니다. 자기 역에 대한 표현도 힘이 있어 많은 연습량을 느끼게 해 줍니다. 다만 감정 표현에 충실하다보니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일면을 보이고 있고, 햄릿의 경우 많은 대사량 탓인지 공간의 이유 때문인지 지나치게 지르는 경향이 있고 감정표현에 있어서 단색의 느낌을 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의상과 분장, 그리고 소품들의 준비가 좋습니다. 특히 가면을 이용한 코러스들의 상징적인 활용이 돋보입니다. 극의 사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심한 소품들의 준비는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공연시간 1시간 40분. 일단 대본에 충실히 작품을 만들어가는 의도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좋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빠른 템포의 극진행이 요구됩니다. 암전이 길고 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B.G도 없는 경우가 많으며, 배우들의 대사 주고받음도 사이가 뜨는 경우가 있어서 극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현상이 보이는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15. 문산여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방의 꿈’은 일단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다만 숲을 배경으로 두 부류의 인간 세계와 환상적인 요정들의 세계가 함께 공존하기에 그 표현에 어려움이 따르고, 또한 그 내용이 방대하여 흔히 1시간 남짓 공연하는 고등학교 연극반에서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문산이 이번에 보여준 ‘한여름 밤의 꿈’도 일단 그 공연 길이만 한 시간 40분이나 되고, 그 안에 몇 개의 노래까지 덧붙여 자칫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학생들이나 긴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집중력 있는 관람을 끌어내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들은 공연을 보면서 하나씩 말끔히 걷혀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 강당은 돔형 체육관으로써 공연장으로써의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산은 이를 오히려 잘 극복해 내고 성공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좁은 무대에 국한되지 않게 강당 안을 숲 분위기로 만들어 보이고 있었고, 조명시설도 임대하여 완벽하게 갖추었을 뿐 아니라 그 운용도 작품을 충분히 뒷받침해 내고 있었습니다. 소리울림을 걱정하게 하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강당 안을 꽉 채운 관객들을 뚫고 배우들의 발성과 발음들은 정확하게 전달해 내고 있었습니다.
음악과 음향의 사용도 흠잡을 데 없을 만큼 훌륭했으며 작곡을 한 노래도 극의 내용을 잘 이어주고 있을 뿐 아니라 직공들의 노래와 춤은 거의 관객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선물과도 같이 참신하면서도 흥겨웠습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의상과 소품 하나하나의 준비도 완벽하여 극의 뒷받침을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만든 흔적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는 극의 흐름과 어느 누구 하나 특별하게 튀어보이지도 않으면서 어느 누구 하나 연기가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 공연, 20명에 가까운 배우와 스태프들의 호흡이 착착 맞아가는 공연을 보면서 참으로 열심히 준비를 했구나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으며 일년이란 긴 시간동안의 인고 끝에 학생들과 함께 훌륭한 자리를 만들어 내신 지도교사의 열정과 그 심미안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집중력이 떨어져도 소란해질 우려가 있는 강당 안의 꽉 찬 관객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에게 이날 공연은 아름다운 경험의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16. 대전 버드내중학교
버드내중학교는 올해 처음으로 조직된 연극반으로 성적으로 평가되는 잣대로 보면 주변인적인 3학년을 중심으로 15명이 연극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인 동아리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번 연극은 최초의 공연이자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시간으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공연되어지는 극의 내용은 학생들이 주변에서 보고 느낀 일상들을 소재로 하여 나름대로 쓴 작품일 뿐 아니라, 처음 연극부를 시작하는 학교가 부담 없이 잘 이용하는 재판 형식을 이용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옵니버스 형식으로 현실 재현의 형태로 진행되는 구조를 보이며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그늘을 다양하게 표현해 가고 있어서 연극 그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창작극이 가지기 쉬운 작품 속에서의 갈등 구조의 취약함이 보이고 극의 구성 상 절정이나 극적 반전 등이 없음은 중학생들이 창작 경험의 부족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됩니다. 같은 형식의 반복을 통한 단순 나열식 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자칫 지루한 감을 주기 쉽습니다. 또한 그 깊이의 취약함으로 전체 공연의 길이가 20분 정도로 그치는 아쉬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좀더 자세히 풀어내고 대신 에피소드의 수를 주여 압축적인 느낌을 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재판극의 형식 상 다소 정적인 흐름이 일관되고 있어서 상황 재현의 경우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말과 행동들을 이용하여 좀더 생동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보다 동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입니다.
연극에 임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이를 연극적인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이 우매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왕 연극반으로서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해 낼 생각이라면 발성이나 기본적인 연기력 등에 많은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7. 세원고등학교
입시 위주의 현실에서도 친구들 간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고등학교학생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인 ‘첫사랑’은 언제 보아도 학교 연극반에서 공연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세원의 이번 작품은 연극의 내용을 즐거움과 진지함 둘 다 만족시켜 가면서 짜임새 있게 공연된 수작으로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청소년들의 언어와 몸짓, 난타와 장구 장단, 그리고 빠른 무대 장면의 전환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극의 흐름을 변화시켜 가고 있으며, 연기를 하는 학생들 또한 공연의 맛을 알고 작품에 몰입하는 집중력을 보이면서 때로는 순간적인 임기응변에도 능통한 일면을 보여주는 등 무대 위에서의 연기 그 자체가 농익은 모습을 보입니다. 발성, 태도, 개성의 표현, 조화로운 연기, 템포 등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들이 조화로운 진행은 물론 뛰어난 연출력에서 나오는 결과이겠지요.
연기 뿐 아니라, 스태프들의 움직임이나 조화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음향의 사용이나 조명의 전환, 그리고 의상이나 분장, 소품들의 준비와 무대 장치까지도 이 작품의 흐름을 완벽하게 받쳐주고 있습니다. 시청각자료의 사용이 한 순간 원만하지 않았음에도 별 걸림 없이 지나갑니다.
억지로 찾아낸다면 이들의 공연은 지나치게 능숙하다 못해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갑고 건조한 느낌도 듭니다. 학생 배역의 경우 전체적으로 고등학생이라는 순수한 느낌이 들지 않고 잘 훈련된 청년 기성 배우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선생 다역의 경우 희화된 성격들을 보여줌에 과장에 치중하다 보면 조금은 순수성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자기 역에 능수능란할 경우 조심해야 할 점은 극의 흐름을 앞서가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템포는 좋으나 상대 배역의 대사를 충분히 듣지 않고 자기 대사를 구사함으로써 극의 앙상블을 놓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18. 보성여중
보성여중은 언제나 그렇듯이 올해도 영어연극으로 본 축제에 참가합니다. 언뜻 그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심사에 차이가 있을까 생각되지만 언어적인 면은 참고로 하고 연극적 준비와 연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심사에 임합니다.
연극을 위한 준비는 항상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무대 장치, 음향, 의상, 분장 등 연극적인 요소들은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강당이라 조명이 조금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습니다. 프로젝터를 통한 장면 안내도 올해 역시 돋보입니다. 혹시 영어연극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편안한 배려입니다.
연극 속에 삽입되는 여러 가지 준비도 많이 되어있습니다. 춤, 노래 등은 물론이고 포그머신, 폭죽 등 연극 외적 효과도 다양합니다. 방황하는 별들의 유치장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티브이를 통해 프로야구 경기를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만족시키는 장면’을 한국 전사들의 월드컵 축구 중계로 산뜻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예전과는 달리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생생한 모습을 중계합니다. 해가 갈수록 기교와 볼거리들이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문제는 대사 전달입니다. 강당이다 보니 연극의 가장 중요한 대사전달이 부족합니다. 영어라는 언어형식이 일반적인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따를 수 없는 한계도 그렇거니와 기본적으로 발성이 미약하여 나타나는 문제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중학생들이라는 관객을, 어쩌면 중학생 배우들을 의식하여서인지 중간 중간 너무 노래의 삽입이 많아져서 연극으로의 성격이 상당히 흐려졌다는 점입니다. 노래와 춤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환호하고 소리를 지르지만 결국 극의 흐름이 상당히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냉정히 이런 특별한 공연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습니다. 공연 그 자체가 영어학습의 일환으로 어느 공연보다 교육적인 일면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연극적’ 관점으로의 평가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19. 선린중학교
선린중학교는 금년에도 학생들이 연극반 활동을 통해 공동으로 창작한 작품을 공연했습니다. 연극반 활동이 단지 기존 대본을 공연으로 올리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협의과정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구성하여 보고 이를 공연으로 올리는 것은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강당은 연극 공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학교 축제의 프로그램 상에 자리한 연극반의 공연은 그 공연에 필요한 제반 조건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공연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음향과 조명들은 예술제 전반적인 운영을 위하여 ‘연극적’ 조명이라기보다는 다른 프로그램들의 진행을 위한 ‘Show분위기’의 조명으로 대부분 ‘파라이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공연에 필요한 블록 조명 운용 등은 불가능합니다. 거기에 전체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무대 역시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상태에서 세트를 장만할 사이 없이 공연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야기 구성이 이런 조건을 미리 생각하고 만든 것처럼 장면 연출이 되어 전반적으로 그리 거스르지 않아 보입니다.
넓은 강당이라 소리 전달을 위하여 핀 마이크들을 차고 있습니다만 그 사용 숫자의 제한이나 소리엉김 현상으로 인해 몇 학생은 핸드마이크를 들고 공연에 임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공연시간 30분 정도 다소 짧은 느낌이 듭니다만 그래도 이야기 구성은 제법 잘 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의 발성은 잘 훈련되어 있어서 대사 전달이 잘되고 있기에 관람하는 학생들이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학생들의 ‘춤’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그 표현들이 나름 즐겁고 활기찬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의상이나 분장 등은 간단한 소품과 함께 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극의 진행이 템포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음향의 도움이 참 좋게 여겨집니다. 다만 이러한 준비들이 장소와 조명이라는 한계로 인해 잘 부각되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 사우고
이번에 사우고등학교가 차범석님의 작품 ‘위자료’ 학교 연극반 조건에 맞게 각색하여 공연에 올렸습니다.
일단 무대는 일정한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넉넉하지 못한 집안이라는 분위기만을 설명하면 되지요.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편에 방이 있다고 설정하면 됩니다. 연극은 주로 마루와 뜰에서 진행되므로 최소한 마루 분위기만 설정하면 족합니다. 마루 정면에 명색이 상청(喪廳)이 꾸며져 있습니다. 조그마한 상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큰 명수의 사진이 놓여 있는데 사진틀엔 격식을 따라 검정 리본이 여덟 팔자형으로 매여 있습니다. 그 앞에 촛대와 향 그릇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마루에는 상징적인 공간 사용을 위하여 적적히 큐빅을 배치하여 연기하는 배우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뚜렷한 무대 장치의 운용이 없이도 사진의 변화로 장소의 변화를 준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으며 극의 흐름도 무난하게 진행됩니다. 굳이 꼬집을 데 없이 잘 연습된 공연으로 여겨집니다. 의상, 조명, 분장, 소품, 음양 등의 준비도 나무랄 데 없고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극의 템포도 좋습니다.
다만, 배우들의 움직임이 조금 기계적인 일면이 보이고, 화술에 있어서 나름 부족함이 보입니다. 배우들의 대사 톤이 규칙적이고, 서로 비슷한 일면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단순한 느낌을 줍니다. 대사의 운용에 있어서 속도의 조절과 강약의 변화에 취약함이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풍자극이 그만큼 사실극보다는 외려 그 표현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각 인물들의 희화된 성격 표현이 순간순간 관람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풍자적인 내용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과장도 부담 없이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지요. 하지만 가끔씩 성격의 일관성에 벗어나는 언행들이 지나친 과장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21. 경해여자중학교
중학교 연극반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 한정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다소 그 표현이 어려운 서사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동그라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잘 각색하여 공연하고 있습니다.
‘서사극’이라는 전제를 갖고 이 극을 보지 못하면 조금은 엉뚱한 장면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장난치듯 보이는 장면들이 제법 많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중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군인들 모습이나, 유행가 따위가 다소 엄숙해야 하는 재판 과정의 장난스러운 모습들과 함께 한 마디로 깨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귀엽게 여겨지는 것은 이 극이 지니고 있는 특징 때문입니다.
우선, 완벽한 무대 장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큰 상징적인 걸개그림으로 분위기를 받쳐주고 역시 상징적인 도구들의 운용으로 가상의 왕국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의상들과 분장 그리고 잘 계획된 조명들도 극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무대 양쪽에서극의 진행을 받쳐주는 북, 징 등의 타악기와 실로폰의 실제 연주로 그 효과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흰 스판 선과 천 등을 이용한 산과 강, 집들의 다양한 배경 표현은 참신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로 칭찬할 만합니다.
나레이터의 이야기 속 인물로 시작되는 사실적인 연기가 아닌 희화된 몸짓들의 연기가 극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언뜻 인형극적 요소와 그림자극의 요소가 어우러진 느낌도 듭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연기보다 우리들의 시각적 효과를 더 높여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의 연기는 사실적인 감정들을 예쁘게 그려내고 있었고 극의 주제를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훌륭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표현들을 여린 중학생들의 몸으로 잘 소화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습으로 인한 결과이겠으며 아직 여물지 않은 이 학생들을 이렇게까지 잘 지도해 주신 선생님의 능력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이런 작품들을 여러 학교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22. 경해여자고등학교
나이 스무 살의 한창 젊을 나이의 경력인 연극반.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중심으로 매 해마다 한 편씩의 공연을 통해 서로 대화하며 세상을 배워나가는 또 하나의 배움의 터전인 경해여고 연극반의 이름은 ‘burning blue'로, 총 25명 남짓의 인원으로 구성되며, 항상 꿈과 정열을 마음에 새기며 좋은 연극 그리고 좋은 삶을 추구하면서 누구보다 뜨거운 지도교사의 연극에 대한 사랑 아래 해마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경해여고 연극반.
기성 연극계보다 앞서서 좋은 소설작품들을 발굴, 각색하여 학생들에게 문학의 연극화에 앞장선 그들은 올해도 김정현 원작 소설 ‘어머니’를 각색한 작품을 들고 인생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밝고 발랄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왜 늘 슬프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냐는 소리를 즐겨 들을 만큼 이들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 그러나 암울한 현실을 주로 공연합니다. 잘 하면 감동적인 작품이 되지만 조금만 못하면 우울한 공연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지요.
이러한 작품의 공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지요. 자칫하면 가상의 경험에 대한 피상적인 화법이 나오기 쉽고, 감정 표현도 상투적일 수 있으니까요. 더욱이 무거운 주제의 표현상에서 자칫 목소리 톤이 자연스럽지 않게 무겁게 눌려지고 템포감이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활동의 제약도 따르지요 차분한 목소리로 진행되는 극의 성격 상 활발한 움직임으로 인한 역동적인 무대 사용이 줄어들고 대부분 부분 조명으로 블록을 주어 그 안에 갇혀 미세한 감정들을 정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런 공연일수록 소극장이 적합합니다만 대극장일 경우 자칫하면 휑한 기분을 줄 요인으로 남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경해여고는 이런 힘겨움을 잘 극복하면서 표현해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잔잔한 감동을 만들어 가고 있었지요. 다만 앞서 말한 요인들이 미세한 부분들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23. 청운중학교
연극반이 상설동아리로서의 공연으로는 처음이라는 청운중학교는 금년 많은 연습으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감동적인 작품을 공연합니다.
거개의 중학교가 그렇듯 공연장인 시청각실은 공연하기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닙니다. 폭이 좁은 무대에 부대시설이 열악하지요. 조명도 스위치를 올리고 내려야 하는 기존의 조명을 이용하고 있고 롱핀 하나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나름 무대그림을 성실히 준비하여 무대를 채우고 있었고, 나름 무대를 분할하여 사용하여 극 진행에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인 소품 하나하나의 준비에 정성이 깃들어 있고, 조금 허술하기는 하지만 뽀루뚜까의 자동차도 예쁘게 잘 만들어 보였습니다. 의상들도 분장과 함께 최선을 다한 흔적이 있습니다.
라임오렌지나무는 상징적으로 가는 것이 극의 효과를 주기에 보다 보기 좋을 텐데 사실적인 나무화분을 올려놓음으로써 제제가 약해 보이는 듯 합니다. 한편 주인공급 배역을 맡은 학생들에게 대사 전달의 효과를 위해 커다란 선생님들의 수업용 핀 마이크를 채운 것이 오히려 시선에 거스르게 합니다.
연습은 많이 하였음을 알 수 있지만 아직 대사 속에 담긴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는 미진함이 보입니다. 감정표현이 원활할 때에 그에 알맞은 행동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야기의 전달에는 충실한 면이 보입니다만,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길 정도는 아닙니다. 연극반이 생긴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연기력을 바랄 수 없겠습니다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전통도 쌓일 것이고 학생들의 연기력도 향상될 것으로 믿습니다. 특히 객석 뒤에서 자신이 맡은 롱핀 조명기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는 어린 학생, 그리고 조작 스위치를 열심히 눌러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4. 선린인터넷고등학교
한 편의 문학작품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각색한 빼어난 작품으로 원작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동심의 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작품은 학생이 직접 소설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택과목으로의 연극’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통하여 작품의 다양한 표현기법들을 찾아낸 수업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끝까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믿고 이를 이끌어 내주면서 한 편의 연극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낸 지도교사의 인내와 사랑의 연출력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확실한 화술은 이미 선린의 자랑입니다. 그만큼 기본적인 훈련이 잘 갖추어져 있지요. 주어진 배역이 나이 어린 소년, 소녀이건 아버지, 어머니 역이건, 허수아비이건, 빗물이건, 일렁이는 냇물이건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준비를 바탕으로 그 표현해 내는 언어와 몸짓들이 섬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특히 사람들을 이용한 자연물들의 표현(허수아비, 소나기, 범람하는 시냇물 등)은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각 장면을 연결해 주는 빔프로젝트를 이용한 배경 화면의 구성 역시 순수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수작입니다. 어린아이의 그림일기를 연상하게 하면서 소년,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이 그림들 역시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 낸 작품들로 이를 받쳐주고 있는 음악들과 함께 어우르면서 전혀 기교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간단하면서도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도구들의 이용도 그 핵심을 거르고 있지 않습니다. 언뜻 넓은 무대를 조금은 좁게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일 정도로 그 소품들이 작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조명과 아이들의 연기가 이를 잘 받쳐내고 있었고, 오히려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특히 징검다리에 냇물이 비치는 아이디어의 소품은 참신함을 더해주었습니다.
단지 시골아이들의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만이 아닌 현대 도시 아이들의 메마른 듯하지만 결국은 맑고 순수한 사랑을 대비적으로 보여준 구도도 그 주제를 더욱 선명히 보여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25. 경화여자고등학교
연극 ‘데스데이’는 1998년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사극단 ‘조명이 있는 교실’에 의해 초연된 이래 많은 고등학교 연극반들이 공연한 바 있는 작품입니다. 연극반 학생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 학생들의 우정과 사랑 학부모, 교사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기본적인 구도로 하고 있지요.
본 작품도 나름 각색의 과정을 거쳐 연극반 학생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연극과 사랑’을 스스로 지켜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진지하고 차분하게 제작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단 22년의 경화여고는 전통이 있는 학교답게 모든 학생들에게서 기본적인 역량이 갖추어져 있음을 봅니다. 발성과 발음, 화술이 잘 훈련되어 있으며, 한 해 어느 연극반보다 많은 무대 공연을 경험하고 있는 동아리답게 무대 위에서의 집중력과 움직임, 시선 처리 등이 기본 연기력 속에 묻어 있습니다.
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는 소극장의 공간 활용을 효과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고 좁은 무대를 폭넓게 활용하면서 극을 진행합니다. 조명 또한 효과적으로 운용되면서 극의 진행 템포를 돕습니다. 특히 객석에 친구를 엿보는 장면을 연출하는 조명 처리는 참신하고 예쁘기까지 합니다. 여학교에서 남자 역을 맡은 학생들의 경우 머리 처리 문제가 늘 걸리기는 하지만 극중극의 역할 상 그리 거스르지 않아 다행입니다. 또한 이 연극에서 처리하기가 애매한 주유소 장면은 속도감 있는 마임으로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기지가 보입니다.
비누방울을 이용한 천사의 역은 새롭고 참신한 시도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보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겉도는 설정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가끔 극의 장면들이 조금 무거워 늘어지는 일면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원숙한 공연이었습니다.
26. 숙명여지고등학교
“미약한 이 공연이 비록 한낱 꿈으로 사라지더라도, 연극 연습과정 속에 우리들의 웃음이 있었고, 이 연극 속에는 꿈을 담았기 때문에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숙명의 프로그램 속에 담긴 이 말을 모든 연극반들이 느낀다면 이미 그것은 공연의 성패나 심사의 유무를 떠나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경험으로 남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을 봅니다.
부대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넓은 학교 강당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공연장이 없어 공연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교에서 부러움을 주는 일이겠지만, 넓다는 이유로 그 무대를 채워나가는 일이 오히려 고충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숙명여고 강당은 조명이나 무대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으나 그 큰 무대를 공연을 위해 장치나 학생들이 연기로 채워나가야 하는 어려움도 주는 곳입니다. 이 작품의 성격대로라면 무대 가득 아름다운 숲을 조성해야 하겠지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어서 숙명은 이번에 다섯 개의 천을 내려 공간을 잡아 봅니다. 무대 가운데 덧마루를 쌓아 또 다른 공간으로 활용해 가고 있으며 빛을 이용하여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이 요구하는 아름다운 배경을 만들어 내기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긴 대본을 다 보여줄 수 없어서 많이 들어내고 요정들의 세계와 러버들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갔으며 사이사이 노래를 가미하여 극의 재미를 추구해 가면서 극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재미를 나름 잘 풀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의 효과를 위해 만든 노래와 춤이 연극과 겉돌면서 오히려 보는 이들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학생들이 스스로 어색해 하는 모습이 역력할 정도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외려 춤과 노래를 빼고 가는 것이 나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27. 근흥중학교
우리의 이웃 중에는 오늘도 타고난 외적 모습이나 신체의 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소외시키고 따돌리며 놀림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그의 아픔을 받아들이기까지 함께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말 못할 고통을 지닌 가족이 있습니다. 이런 가족의 아픔을 통하여 장애의 문제는 서로 차별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다만 신체적인 차이일 뿐이며 나아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의 이웃이며 가족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찾아보고자 만든 근흥중학교 학생들의 순수한 창작품이 참 아름답게 만들어져 공연을 합니다.
2003년 재량활동연극시범학교로 지정되어 학교 전체 학생들이 교내 연극경연대회를 치를 만큼 근흥의 연극 활동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모든 작품이 수업 시간을 통하여 학생들 스스로 창작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 갔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이 학교의 연극은 교육 그 자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며, 이번 ‘낮은 숨소리’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 공연되는 작품이기에 ‘연극’의 잣대로 평가를 내린다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바라보는 기준의 일관성 때문에 ‘연극적’ 관점으로 나름 덧붙일 만한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공연장인 강당은 나름 공연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새로 설치한 조명의 경우 잘만 운용한다면 작은 연극을 효과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정도이지요. 이를 충실히 활용하였더라면 보다 나은 공연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음향 역시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게 운용하였더라면 극에 대한 집중을 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의상이나 분장들도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싶고, 이야기 구성이 한 가지 주제로 좀더 집중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하더라도 일관된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덜어낼 수 있는 연출력도 필요합니다. 또한 무대 위의 대소도구들도 조금 더 갖추었더라면 싶은 마음입니다.
28. 순천 효산고등학교
34명으로 구성된 순천효산고의 연극부 ‘아침이슬’이 공연하는 작품 ‘불모지’는 차범석님의 작품으로 두 가지 요소가 피폐한 삶의 의미로서의 '부모'라는 주제를 구체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작품의 배경으로 근대화되어 가는 도시의 한복판에 남아 있는 구식 한옥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작품의 등장인물의 성격으로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자식들과 옛것을 고집하는 노인 사이에 성격적 대립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시대는 이미 힘을 잃었고 새로운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품의 배경인 1950년대의 이 시기는 '불모지'였던 셈입니다.
이 작품의 구조를 이해하고 공연에 임하려면 각 인물의 성격이 어떤 유형을 이루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대화에 대한 삶의 뿌리를 뽑힌 최 노인, 모순 된 현실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지식인 경수, 허영과 사치에 눈이 멀어 배우를 꿈꾸는 경애 등 자신의 역할과 현실 간의 갈등으로 파멸해 가는 피해 입은 인물과, 그러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어머니, 경재, 경운의 인물 유형이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지만, 이들이 한 가족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는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작품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어떠한 대사와 행동으로 나타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갈등이 바로 현실 사회의 모순 때문에 야기된다는 것도 알고 공연에 임해야겠지요. 그 만큼 이 작품은 사회적 현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그만큼 학생들이 공연하기에 다소 어둡고 우울한 연극이라고 여겨집니다.
일단 무대를 꽉 채운 깔끔하게 처리된 무대 세트와 사실적으로 배치된 소도구들이, 한두 명 튀기는 하지만 무난하게 준비된 의상과 함께 스태프분분에서 공연에 많은 준비를 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작품에 보여준 성실한 준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지요.
연기에 있어서 대사와 대사 사이에 의미 없는 포즈가 길어서 극의 흐름을 늘어지게 합니다. 각 배경들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상대 배역과의 호흡에 신경을 써야겠지요. 또한 역 설정에 있어서 그 분장과 의상 그리고 지팡이의 이용 등에서 아버지를 다소 과하게 노인화하여 아버지의 힘과 부부관계 설정에 미약함이 보이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9. 광주세종고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말과 행동들의 어떤 작품보다 자연스러움이 배어나게 마련입니다. 주어진 배역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고 어떤 정형화된 틀로 연기를 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어색함이 뒤따르기 마련이지요. 그런 점에서 세종의 이번 작품은 연기하는 학생들에게 연습과 공연 그 자체가 참으로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일단 무대가 풍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몸놀림도 좋고 열정을 다하는 신나는 무대였습니다. 연기에 몰입도 상당히 좋았고 무엇보다도 깔끔한 대사처리들이 좋았습니다. 배우들의 기본적인 위치를 조금 더 무대 안쪽으로 설정하여 무대 공간의 활용을 폭넓게 하고 극장의 시설 조건 상 다소 뒤로 치우쳐 있는 조명 영역 안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제외하고는 배우 모두가 자기 역에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치우치지 않고 모든 배우들의 앙상블이 참으로 조화로운 고른 연기력과 팀워크가 돋보입니다.
무엇보다 힙합뮤지컬의 조건인 노래와 춤의 준비가 완벽하고 이를 받쳐주는 음악이 신선하면서도 흥겨움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배역간의 안배도 잘되어 있어서 역동감과 조화로움, 템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연습량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장면 요소요소에 배치된 희화된 인물 표현은 관객들에게 재미의 요소로 충분히 다가올 수 있으면서 극의 주제를 뒷받침해 주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극의 구성이었는데 연극적요소가 상대적으로 적고 노래와 춤이 차지하는 분량이 많다 보니 연극을 본 것인지 아니면 춤과 노래의 무대를 본 것인지 혼란스런 면이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뮤지컬을 표방하는 극에는 노래가 참 중요한데 학생들이 가창 실력에 조금 부족한 면이 보입니다.
캐릭터가 조금은 정형화되어 있는 듯한 인상도 있습니다. 어른 역일 수록 어떤 틀 속에 갇힌 연기를 하는 느낌이 들어 좀더 자연스러운 성격창조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30. 학산정보고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치 있는 무대 장치와 빠른 무대 전환을 통한 산뜻한 장소의 변경이었습니다. 소도구들의 기발하면서도 상징적인 이용으로 순간순간 새로운 장소로 변하는 장면 변화 모습이 좋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의상 역시 직접 제작한 호랑이 의상의 참신함과 함께 시대에 맞게 잘 준비된 것으로 이와 어울리는 분장과 함께 잘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대를 폭넓게 사용하는 연출력과 장면 연결의 매끄러움도 공연 장소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여 암전이 조금 길었다는 아쉬움을 제외하고는 깔끔합니다. 조명이나 음향의 적시적인 이용은 극의 바탕을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장면마다의 배우들의 위치가 그 구도를 잘 갖추고 있어서 한마디로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호랑이 역할을 하는 학생들의 몸놀림으로 보아서 오랫동안의 신체훈련을 통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몇몇 학생들의 발성과 성격 표현은 눈에 띄게 좋은 일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극을 코미디 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았는데, 행동을 과장하다 보니 약속된 행동이 미리 드러나 보였다는 것과 끝부분의 어랜지가 극의 진행과 어울리지 않아 약간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했고, 전반적으로 대사의 템포가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는 서로간의 앙상블이 이루어지지 않고 따로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과 맥을 같이 하여 배우간의 조화로운 대사 주고받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배우들이 화술과 몸짓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점도 있습니다. 마치 마당극에서의 말뚝이를 연상시키는 고정적인 말투와 몸짓은 고전극이라는 상황의 의도된 설정이기도 합니다만 일률적인 모습보다는 각 배역들의 개성 있는 차별화가 극이 지니고 있는 해학성을 더욱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1.전남여상
36년의 전통을 가진 전남여상 연극반 ‘토방(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가교이면서 넓은 세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은 이미 그 이름과 실력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 동아리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좋았던 것은 탄탄한 대본의 구성입니다. 작품의 내용이 광주민주화운동을 극화한 제한적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면서 다소 그 표현에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학교 선배의 삶을 찾아가는 구성 속에 순간순간 변하는 장면변화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 가지의 주제를 향해 통일성 있게 집중되어 가고 있습니다.
연극반이라는 상황적 무대에서 일어나는 극중극인지라 무대 배경에 그리 세심한 표현이 요구될 필요는 없습니다만 세트에 그려져 있는 무채색의 그림들은 다행히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표현해 내는 배우들의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고 연기력도 탄탄하기 때문에 가려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의 생활 주변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이를 극화하는 구조의 극이라 하더라도 그 표현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로 간의 대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가고 있고 성격의 창조나 서로 간의 앙상블 또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특히 남도 사투리의 농익은 구사는 지역이 가지는 장점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능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첫 장면과 끝 장면에 맞물리게 설정한 금희 엄마의 독백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극이 추구하는 주제와 감동을 유감없이 불러일으켜 공감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32. 숭문고
제일 먼저 공연을 보기 위해 들어갔을 때 무대의 열악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부족한 여건 속에서 공연하지만 숭문고의 공연 여건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무엇보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연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과연 연극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연극을 하는가? 작품을 보면서 그 해답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요 몇 년 진지한 연극을 선보였던 숭문고가 올해는 조금 가볍고 자신들의 상황과 가까운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기존 대본에다가 자신들의 연극반 이야기를 접목시켜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공연을 통해 알리고 주장하는 형식도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완성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완성도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려는 의도적인 짧은 퍼포먼스.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기회의 활용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극의 경우는 예년과 달리 오히려 연극의 진지성에는 손상을 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극은 재미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의미를 섞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고등학생들의 입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본질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적인 요소를 갖는 재치 있는 부분도 장면마다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중국집 배달원이면 당연히 연관되어 지는 오토바이 폭주를 나타내는 마임이라든지, 사람을 전화기로 이용하는 재치 등은 상당히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3. 건대부고
어느 시대나 스스로 현명하고 민주적이라는 다수의 원칙 아래 무너져 가는 소수의 목소리가 있지요. 우매한 다수가 얼마나 선량한 소수에게 무서운 칼날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 ‘특용작물 양귀비’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지도교사가 직접 창작해 낸 희곡으로 한 시대를 풍자해 보면서 삶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건대부고 문예반은 여느 연극반과 다른 그들만의 의미 있는 활동으로 문학의 연극적 표현에 앞서는 동아리입니다. 학교 안에서 이들의 문학발표회는 사물놀이와 함께 매년 학생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행사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 표현 매체의 차이가 있을 뿐 문학과 연극은 창작예술로 청소년들에게 좋은 경험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예반의 연극 공연은 당연한 일면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소극장 상, 하수에 배치된 세트는 단순하면서도 시골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중앙에 배치된 평상의 구도가 일면 평면적인 느낌이 들어 배우들의 동선을 단조롭게 만들어 가는 아쉬움이 보입니다. 또한 이 평상이 상, 하수를 오가면서 장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무대 이용의 단순함으로 여겨지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조명을 이용하여 장면의 분할과 포인트를 잡아가는 점은 좋아 보이고 붉은 색과 정지 장면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이 놀음에 빠져들고 이로 인해 음모 속에 말려들어가는 표현은 좋습니다.
공연 상에 있어서 극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조금씩 단절되는 것은 서로간의 앙상블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상대방의 대사를 듣고 ‘자극과 반응’으로서의 대사가 이루어지는 조화로움의 부진이 보이는 것은 극에 대한 집중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인물에 대한 표현 그 자체가 아직은 미숙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주인공만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의 맨발의 설정은 장소의 약속에 다소 의아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34. 보성여자고등학교
요즘 많은 학교들이 연극반 인원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 속에 연극반의 운영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의 선택에서부터 제한을 주기 때문에 적은 인원이 나오는 연극을 고르다 보면 상대적으로 학생들이 공연하기 적합하지 않은 작품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연기력이 뛰어나야만 극복될 수 있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보성여고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일단 연극반 구성원이 적기 때문에 인원이 적게 나오는 작품을 고르게 되었고, 그것도 등장인물을 더 줄여서 각색해야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인문계고등학교의 현실이 부합되면서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고 공연 외적인 조건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공연에 임하게 되었으리라 여깁니다.
매년 본 축제에 참가하는 보성은 열악한 공연 조건을 잘 극복하면서 연극반 전원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좋은 공연을 보여주던 기억이 납니다. 금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반적인 공연의 모습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거기에 언제나 그렇듯이 관객들의 반응도 무척 호의적이어서 공연 분위기 또한 좋습니다.
다만 시청각실 안에 달려 있는 조명기들의 활용에 문제점이 보입니다. 달려있는 조명기들이 작동이 안 되는 것인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어두운 빛 가운데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가끔 풍자나 과장의 상황에 이용되는 색조명의 활용을 제외하면 네 개의 실내 조명등을 이용하여 진행하는 것이 전부이기에 관람하는 관객들의 눈의 피로를 유발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화술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모두가 인위적인 대사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사의 적확한 의미전달을 방해하고 극의 템포를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비록 이 연극이 과장과 풍자가 주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된 캐릭터의 설정은 극이 지녀야하는 당위성과 사실성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35. 송곡여자고등학교
올해의 송곡 공연은 학교 안의 ‘청파홀’이라는 작은 극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은 부채꼴 모양의 콘서트홀로써 무대 구조상 연극 공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송곡은 작품이 지닌 성격을 잘 배치하여 공연장 전체를 변화 있게 사용하는 기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무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를 치우지 못했음에도 자연스러운 집안 분위기로 끌어내고 있었고 미약한 실내등도 그저 집안의 등으로 활용해 가고 있었지요.
무대 외에 객석 뒤에 위치한 작은 준비실을 집안의 또 다른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었고 무대 꼭지 부분을 배경 커튼으로 가리고 이층으로 설정합니다. 객석의 통로도 집안 복도로 활용하여 등퇴장을 무리 없이 진행합니다. 작은 무대는 소도구들 준비에 경제성이 있겠지만 외려 잘 준비한 소도구들이 피아노와 함께 무대 공간을 좁혀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다만 작품이 주는 무거운 주제와 분위기에는 걸맞은 일면도 있습니다만 조명시설이 열악하여 실내등을 이용하다 보니 빛이 부족한 탓에 배우들의 표정이 선명히 드러나지 못하고 오랜 시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눈의 피로를 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발표 장면에 이용하는 톱 조명은 백색광이 사람을 다소 차갑게 보이게 하지만 그런대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는 있습니다.
학생들의 연기는 일정한 틀 안에 젖어 잇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차분하게 내면의 표현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이 주는 조건이 오히려 발성과 발음에 부담을 덜 수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내면 연기를 표현할 수 있는 이로움도 있었습니다. 다소 표현하기 어려운 성격들임에도 나름 그 분석이 잘되어 있고 차별화된 표현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뜻 송곡도 인문계 고등학교로 연극반 학생들이 줄어드는 현상 속에 나타나는 어려움들이 공연에 비치고 있습니다. 학교 연극이야 풍성할수록 좋다는 것을 알지만 인원의 제한으로 등장인물 수가 제한된 작품을 공연해야 하는 현실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려움들이 연극적 경험이 일천하고 재미에 젖어 있는 일반 학생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쉽게 덜 수는 없었습니다.
36. 부산 국제고등학교
본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산 국제고등학교는 이번에 ‘바쁘다 바뻐’라는 연극을 들고 참가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학생 연극의 성과를 좌우하는 요소 중에 작품의 선택이 차지하는 부분이 거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듯 이번 국제고등학교의 공연은 이런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맙니다.
뚜렷한 주제도 안보이고, 일관된 극의 구성도 없이 단순하게 원색적인 비속어들이 난무하는 비정상적인 가족의 일면들 속에 종종 재미만을 전제로 한 과장되고 비상식적인 장면들은 단순히 ‘웃기기’는 하지만 웃고 나서도 뭔가 께름칙하고 당위성을 느낄 수 없고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상업성이 깔린 작품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이 작품이 한때 대학로에서 한창 공연을 했었던 점으로 미루어 나름 그 시대에 알맞은 풍자성이나 주제 의식이 있었겠지요. 어쩌면 성인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의도도 갈려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연하기에 적합한 작품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종종 학생들이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여 공연을 준비하는 경우 ‘작품성’에 또는 ‘공연효과’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그들의 그 긴 시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앞으로 심각하게 고려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아담한 눌원소극장은 작은 작품을 공연하기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대는 다소 허술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세트를 준비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장면 전환이 많은 작품인데 무대 공간은 집안 마당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조명운용을 통한 공간 활용에 미진함이 보이긴 합니다만 템포감 있는 연출력이 돋보이고 개개인의 연기력들은 많이 향상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맡은 역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참 열심히들 연습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전체적으로 빛을 보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첫댓글 36년의 전통을 가진 전남여상 연극반 ‘토방(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가교이면서 넓은 세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은 이미 그 이름과 실력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 동아리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진여고의 대본 말이다. 너희가 구해서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학생들 이야기고 학교에서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도 소재로 하고 있다니까. 그런 부분을 어떤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지 주의하면서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