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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기독교와 영화
1. 오늘날 문학, 음악, 무용, 미술, 건축 연극에 이어 ‘제7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는 대중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이자, 대중매체로 등장했다. 동시에 영화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수십만 명이 종사하는 거대한 다국적 복합(오락)산업이 되었다. 즉 영화산업은 자본-기획-제작-홍보-배급-극장이라는 다단계의 복합구조를 가진 산업이다. 한편의 영화는 감독과 배우, 촬영 및 조명기사 뿐만 아니라, 음악가, 광고대행사, 각종 캐릭터 상품을 동반하는 멀티미디어 복합체이다.
2. 영화의 역사는 1888년 에디슨이 영사기로 50피트 짜리 필름을 상영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1896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이란 영화(활동사진)을 상영하자 관객들은 영화와 실재를 혼동하기도 했다. 1915년 경 부터는 극영화가 흥행을 위하여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던 극영화는 1차대전과 함께 미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야만 했다. 유럽이 전쟁 때문에 영화생산을 현저하게 줄인 반면에 미국은 1917년에 전 세계에서 제작된 영화의 85%를 생산해 내었다. 이때부터 철저하게 미국의 관객의 취향에 맞춘 미국영화가 전 세계의 영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 1920년대 후반에는 독일과 러시아의 영화가 미학적으로 영향을 주었지만, 미국영화산업은 <재즈가수>(1927)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운드(유성)를 도입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경쟁을 따돌렸다. 이 때 파라마운트, 폭스, 골드윈, 유니버셜 등의 메이저 영화사가 설립되었고 영화 제작, 보급, 상영의 분야를 수직적으로 통합함으로써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사의 독점체계는 1948년 미국 대법원의 판결로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영화산업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컬러영화는 이미 1932년에 개발되었으나 테크니컬러사의 독점에 의한 고비용 때문에 1960년대 컬러TV가 등장하고 나서야 일반화되었다. 1950년대에는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등의 와이드 스크린의 개발이 가속화되었고 입체(3-D)영화도 개발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인터넷 영화가 등장했다.
3. 영화의 장르에는 서부극, 코미디, 뮤지칼, 만화영화, 드라마와 같은 전통적인 것부터 액션, 스릴러, 필름느와르, 섹스, 컬트, 전쟁, 호러, 페미니즘, 동성애 영화 같은 비교적 새로운 장르가 있다. 최근에는 장르사이의 혼합(퓨전)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4. 영화의 기본단위는 한 장면을 의미하는 ‘숏(shot)’과 이 장면의 틀을 의미하는 ‘프레임’(frame), 한 숏의 프레임내의 모든 요소를 지칭하는 ‘미장센’(mise-en-scene)이다. 1910년대의 러시아 감독 에이젠슈타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숏을 결합한 ‘몽타쥬’를 통해 관객이 감독이 의도한 새로운 의미를 파악한다고 보았다. 50년대의 감독 앙드레 바쟁은 현실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숏 자체를 구성하는 것, 즉 미장센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중시했다. 여기서는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위치, 카메라 위치, 조명, 세트디자인, 카메라 렌즈의 딮포커스 등의 요소가 어떻게 구성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바쟁은 한 숏에 카메라가 오래 머무는 롱테이크를 통해 관객들이 프레임을 분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영화비평의 종류에는 미학적 분석비평, 작가주의 비평, 기호학적(구조주의)비평, 정신분석학적 비평, 이데올로기 비평, 페미니즘 비평 등이 있다. 미학적 분석비평은 영화를 구성하는 내용(이야기구성, 인물, 대사)과 형식(촬영, 조명, 색조, 편집, 음악, 녹음)의 상호관계와 조화를 분석한다. 작가주의 비평은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의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한다. 여기서 ‘독창성’과 ‘일관성’은 작가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기호학적 비평은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의미들의 구조와 기호로 분류하는 일이다. 정신분석학적 비평은 주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심리를 분석하는 일이다. 이 비평은 영화를 보는 행위는 영화를 보려는 욕망에서 나온다는 관점에서 영화를 이해한다. 따라서 관객은 어떻게 ‘대리참여’를 하는가, 또는 ‘관음증’을 자극하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데올로기 비평에서는 영화가 표현하거나 억압하는 정치적인 관점을 분석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한 사회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비평은 이데올로기 비평의 하나로서 영화를 남성지배의 표현으로 파악하고 그 내용을 분석한다.
6. 기독교 영화란 무엇인가? 고전적인 <시골 사제의 일기>, <벤허>나 <쿠오바디스>, 80년대 이후의 <불의 전차>, <미션>, <로메로>, <어둠 속의 외침>과 90년대의 <데드맨 워킹>, <바베트의 만찬>, <사이먼 버치>를 떠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나 내용을 다루었어도 그 메시지에 기독교적인 신앙의 가치관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영화는 작가(감독)의 세계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기독교를 다룬 모든 영화가 순수하게 기독교적이지는 않다. <벤허>나 <쿠오바디스>처럼 호교적이면서도 철저히 대중적 영웅주의의 요소를 결합하는 영화도 있으며 <할렐루야>나 <박하사탕>에서처럼 기독교인의 모습을 풍자하거나나 어둡게 그린 영화 역시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처럼 폭력을 주제로 삼았지만 기독교적 의미을 제시해 주는 영화도 있다. 즉 기독교 영화는 <예수>나 <낮은 데로 임하소서>와 같은 선교영화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세계)관을 담은 영화를 기독교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7. 기독교 영화비평은 기독교적인 작품을 분석할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적인 또는 반기독교적인(뉴에이지, 유물론, 허무주의 등) 작품을 성경적 신앙의 관점에서 분석, 평가할 수 있다. 이 때 영화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다른 비평이론의 기준을 참고할 수 있다.
8. 기독교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한 시대나 사회의 기독교 문화수준의 표현이며 중요한 선교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재정적 후원이나 투자도 중요하지만, 좋은 기독교인 작가(평론가)와 감독을 양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에서 영화에 대한 신앙적 감상이나 실기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만듦으로써 다음 세대의 영상전문인을 키워야 한다.
제11강 기독교와 문학
1.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지은이의 상상과 감정을 통해 읽는 이의 상상과 감정에 호소하는 글자에 의한 예술활동의 총칭”(허웅/박지홍) 또는 “정서,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 또는 문자로써 표현한 예술작품”(이희승)이라고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들에 따르면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이 세계와 인간의 삶의 모습과 의미를 언어로서 표현하는 작업이다. 문학이 세계와 삶의 경험을 언어로 재구성할 때, 필연적으로 언어적 상징을 사용된다. 왜냐하면 세계 내의 모든 사실은 인간의 시각적이고 언어적 상징을 통해 해석되어 표현되고 이러한 상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한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해석으로부터 출발하여 해석으로 귀결되는 순환 속에 있다.
2. 기독교 문학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문학의 두가지 조건은 기독교인 작가와 쓰여진 작품의 기독교적 내용(메시지)이다. 먼저 기독교인 작가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점이 분명치 않은 경우도 있다. 18세기 이전의 서양 작가들은 그들이 살았던 기독교적 환경 때문에 대부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엄격한 기준에서 볼 때, 분명치 않은 경우도 많다. <실락원>을 쓴 존 밀턴은 분명히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기독교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주홍글씨>의 나타나엘 호손은 청교도의 후손으로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상징을 심오하게 사용한 <백경>의 허만 멜빌이 기독교인인지는 불확실하다. 두 번째로 작품의 내용 자체가 복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때 기독교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해서 반드시 신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비기독교인도 기독교 이념을 담은 글을 쓸 수 도 있다. 한 예로 오스카 와일드의 <이기적 거인>은 어린이들의 이기성을 경고하고 예수님의 죽음의 비이기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와일드는 기독교인이기 보다 탐미주의자이고 동성애자였다.
3. 문학에는 시와 소설, 논픽션, 희곡 등의 장르가 있다. 시(Poem)는 가장 오래된 문학 형식이며 모든 문화에 존재했다. 전통적으로 서정을 담은 노래는 시(lyric)였다.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와 음악이 분리되고 시를 낭송하지 않고 조용히 읽게 되면서 운율도 자유롭게 되었다. 서사시(epic)는 고대로부터 신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문학에서 기독교인 시인은 조오지 로버트, 존 던, T. S. 엘리어트 등이 있다. 소설(fiction)과 넌픽션(nonfiction)은 포함하는 산문은 삶을 이야기하려는 우리의 욕망에서 나온다. 소설은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의 재미를 준다.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는 줄거리(plot)과 인물(character)과 배경(setting)이다. 기독교 소설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으로부터 찰스 디킨즈를 거쳐 플래너리 오코너, 매들린 랭글, 워커 퍼시, 월터 웽거린 등의 최근작가가 있다. 넌픽션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산문으로서 신문, 잡지. 학술서, 에세이, 논문 등의 글이 여기에 포함된다. 좋은 넌픽션은 상투어나 불필요한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투명하고 명료해서 저자의 뜻을 쉽게 알게 하는 글이다. 또한 좋은 넌픽션은 재미있다. 기독교 작가로는 C. S. 루이스, 필립 얀시, 버지니아 스템 오웬스 등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 문인으로는 윤동주, 김현승, 황금찬, 정호승 등의 시인과 조성기(야훼의 밤, 실직자 욥의 묵시록), 윤흥길(빛가운 데로 걸어가면), 김성일(땅끝에서 오다, 제국과 천국, 바깥 사람들) 등이 있다.
4. 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mode)으로는 비극(tragedy), 희극(comedy),, 사실주의(realism), 공상문학(Fantasy) 등이 있다. 비극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문학의 최고봉(아리스토텔레스)으로 인정받았다. 비극은 고귀한 성품을 가진 영웅의 행동을 모방하여 묘사한다. 비극의 목적은 그러한 영웅들에게도 치명적인 결함인 ‘오만’의 죄(하마르티아, 휘브리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웅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관객)은 정신적 정화(카타르시스)를 얻는다고 보았다. 반대로 희극은 비천한 인물들의 부도덕한 행동을 파헤치고 풍자함으로써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절망적인 분위기를 함축하고 있는 그리스의 희극과는 달리 단테 이후의 기독교적 희극은 구원의 메시지에 의해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사실주의 문학은 외부세계(인간의 본성, 사회적 모순)를 그대로 비추는데 관심을 가진 ‘거울로서의 문학’이다. 가장 뛰어난 기독교 사실주의 작가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그레이엄 그린, 존 업다이크 등이 있다. 반면에 공상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일상을 뛰어넘는 신비한 세계를 그려준다. 스위프트, 번연, 맥도날드, 톨키엔, 루이스 등의 뛰어난 기독교 작가들이 공상문학가였다. 훌륭한 공상문학은 허구를 통해 도덕적 감수성과 영적 진실을 표현한다.
5.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작가들의 글만 읽는다면, 넓은 바다와 같은 문학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다양한 문학에 접하고 비평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기독교인들은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문학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장려하며 폭력과 허무주의를 긍정하는 내용이다. 또한 성욕을 자극하기 위한 노골적인 성표현은 작품의 예술성과 도덕성을 저하시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좋은 문학은 기독교의 진리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인간의 본질(사랑, 욕망, 복수심, 용서)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보다 대중적인 스릴러, 공상(과학)소설에도 가치있는 작품들이 있다. 신앙인들은 이러한 작품을 선별해서 읽음으로써 우리의 삶의 세계를 확장해주는 ‘대리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책들에 내재한 세계관과 가치들을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반성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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