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질적 사랑이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사랑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시 119:116).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어 매서 의의 소망이 생기고 그것이 내 소망이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말씀에 그냥 '아멘' 하십시오. 내 능력을 헤아리지 말고 말입니다. 그때 바뀌고 도덕적으로 됩니다. 노예가 아닌 열매 맺는 자유가 됩니다. 겨가 아닌 나무에 붙어 있는 열매가 되는 것을 속박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자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대끼면서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부대낌이 없이 누가 기도합니까. 온전하고 안 아프면 기도하는 자도 없고 의사 찾는 자가 없습니다. 내가 영이 곤고하니 여호와 하나님이 찾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믿음이 임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망이 생깁니다. 이렇게 의에 대한 소망이 생기는데, 이때 즉시 우리의 무능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찾아 갑니다. 믿고 사랑하기만 하면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하나님의 의에 대한 소망으로 축첩과 음주 등의 문화가 없어진 것입니다. 잘 살아 보려고 윤리나 삶을, 사랑을 앞세우면, 그때야말로 사랑이 없어집니다. 믿음은 이제 됐으니 성숙한 사랑을 하자고 하면 복음이 희석됩니다. 오직 믿음, 전적 믿음이 없으니 사랑이 없어집니다. 윤리나 도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나는 그저 믿는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사랑은 하나님께"라는 말을 <<기독교 강요>>에서 봤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의 소망을 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선행처럼 보이는 것도 죄로 변한다." 선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이 없으면 선을 행하는 것조차 믿음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난주 본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든, 아무리 뛰어난 화려한 뭐가 있어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면 은혜에서 떨어집니다. 은혜에서 떨어진 것은 전부 시험거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의로움과 사랑의 거룩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살아남(의로움)도 살아감(거룩함)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남, 거룩함은 살아감인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런 말씀은 '아멘'이 되면 딱 붙들어야 합니다. 천국까지 가져갈 말씀입니다. 믿음도 사랑도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오늘 본문인 5절의 핵심 단어는 소망입니다. 의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소망은 의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의의 종입니다. 그리고 본문 6절,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도 나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용사인데,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씁니다.
4. 결론
우리는 사랑의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각자가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부족합니다. 저도 매주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급 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를 찾는 자에게 상급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매번 일할 때마다 찾으면 내가 한 것이 아니라도 내 것으로 상급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급 준다는 것이 바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매번 찾으면 하나님이 하시고 상급을 또 우리에게 주십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웁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고 상급을 주시니 말입니다. 저는 <<기독교 강요>> 번역을 제가 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론>>도 그렇습니다. 제 진심입니다. 저는 절대 그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상급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또 상급을 주십니다. 책을 쓰게 하신 것만도 감사한데 말입니다. 이는 바로 영광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첫댓글 우리는 사랑의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