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
이 일들뒤에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기를 보이시되 이렇게 자기를 보이시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출신의 나다니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그분의 제자들 중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도너와 함께 가노라, 하고 그들이 나가서 즉시 배에 올랐으나 그 밤에 아무거도 잡지 못하였더라,
+ 갈릴리로 간 것은 불순종이 아니라 '약속의 장소'에 간 것이다
* 주님의 약속 성취:--->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과 부활하신 직후 분명히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 14:28, 16:7, 마 28:10)고 약속하셨다.
* 안전하고 한적한 장소:---->예루살렘의 살벌한 위협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교훈과 사명을 안식 가운데 주시기에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은신처가 바로 갈릴리였다.
* 요한복음의 보완성 ----> 마태복음은 산에서 만난 사실을 짤막하게 언급했고(마 28:16), 마가와 누가는 이 바닷가 만남을 생략했기 때문에, 목격자 요한이 그 현장을 확실한 증거를 기록했다.
*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 --->
+ 많은 설교자들이 베드로가 "I go a fishing"이라고 한 것을 두고 '믿음 없는 옛 생활로의 도피'로만 몰아세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현실적이고 정당한 노동이다.
+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 ----->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나 아직 오순절 성령의 권능이 부어지기 전이었다. 제자들은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idle)하지 않고, 쓸모 있게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 생계유지의 절박함과 정직한 노동: -----> 주님과 공생애를 보내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후원과 공급이 있었지만, 이제 그 공급선이 끊어졌다. 그들에게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기에, 과거의 정직한 노동(honest labour)으로 돌아가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은 것이다.
+ 목회자/사역자가 노동에 대한 증거 ------> 복음 전도자나 사역자도 필요하다면 자기 생계를 위해 기꺼이 일해야 하며(텐트 메이커 바울처럼), 이러한 정직한 육체 노동을 결코 불명예스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 그들이 즉시 배에 올랐으나 그 밤에 아무거도 잡지 못하였더라 ----->
이것은 곧 행해질 기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평생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들이었다. 물고기가 언제, 어디로 다니는지 가장 잘 아는 밤 시간에 그물을 던졌다.
그런데도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은 것은 우연이나 단순한 운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하여 물고기를 흩으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술, 지식, 경험, 밤샘 수고가 철저히 바닥을 드러내야만, 날이 밝아올 때 해변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한마디 말씀과 그로 인해 나타날 기적의 영광이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4 - 그런데 이제 아침이 될 때에 예수님께서 바다가에 서 계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5 그때에 예수님께서그들에게 이르시되, 예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대답하되, 없나이다, 하매 6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너희가 얻으리라, 하시므로 그들이 던졌더니 이제 물고기들이 많아 그들이 그물을 당길 수 없더라,
*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
아마도 여명이였을 것이다,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었고 밤새 고기 잡기 위애 애쓰다가 지쳤을 것이다,
* 예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 애정과 친근함으로 부르신다,
* 당시 갈릴리 어부들의 식문화 (빵과 함께 곁들여 먹는 부식을 뜻하기도 하고 생선을 가르키기도 한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계와 밤샘 수고의 결과(식량)를 직접 물으시는 친근한 접근법을 드러내신다,
* 그들이 그분께 대답하되, 없나이다, -----> 당연한 결과이다,
*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
오른편의 의미는 -------> 성경 본문이 왜 하필 '오른편'을 특정했는지 절대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
연안 쪽에 더 가까워 상식적으로는 고기가 잡힐 확률이 더 희박한 쪽이 아닐까?,,, -->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는 기적을 보이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굳이 "오른편"을 꼭 집어 말씀하신 이유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인간의 경험이나 기술, 어로 지식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달려 있음을 분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7 - 그러므로 예수님게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그분은 주시라, 하니 이제 시몬 베드로가 그분이 주시라는 말을 듣고는 벗고 있었으므로 어부의 덧옷을 걸친 뒤 바다로 뛰어 들더라,
8 - 다른 제자들은 (땅에서 멀리 있지 않고 이백 큐빗쯤 되는 곳에 있었으므로 ) 작은 배를 타고가서 물고기들이 담긴 그물을 끌고 왔는데 9 그때에 그들이 육지로 올라와 곧바로 보니 거기에 숯불이 있고 그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으며 빵도 있더라,
* 바다로 뛰어 들더라 ----> 베드로는 행동하는 열정을 보여 준다, 육지에 닿을 때까지 노를 젓는 시간조차 기다리 못하고 바다로 지체 없이 뛰어 내린 행동은 베드로 본래의 충동적이면서도 순수한 열정을 보여 준다,
* 대제사장의 뜰에서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였기에, 주님을 향한 회한과 보고 싶은 간절함이 그로 하여금 물속으로 곧장 뛰어들게 만들었음을 묘사한다.
10 - 11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지금 너희가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라 하시므로,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 큰 물고기들이 가득한 그물을 땅으로 끌어 당기니 백쉰세 마리가 있더라, 모든 것이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 그물을 땅으로 끌어 당기니 백쉰세 마리가 있더라 -------->
* 그물 가득 걸려 올라온 물고기들이 하나같이 "큰 물고기(great fishes)"였기에, 제자들은 놀라움 속에서 잡은 물고기를 실제로 하나하나 세어보았고, 그 정확한 실제 계수 결과가 '153'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기록된 것이다.
* 그들은 바로 자신들과 지금 함께 계신 분이, 이전에 그들 앞에서 그토록 자주 기적을 행하셨던 바로 그 동일한 구주외에 다른 어떤 분도 아니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 누가복음 5장에서 밤새 빈 그물이었던 제자들에게 만선의 기적을 베푸시며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던 주님께서, 부활 이후 실패와 낙담 가운데 있던 제자들에게 똑같은 표적을 재현하심으로써 "내가 과거에 너희를 불렀던 바로 그 주님이다"라는 사실을 완전하게 입증하셨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와서 먹으라 하시니 그분이 주시라는 것을 제자들이 알므로 아무도 선생님이 누구시니이까? 하고 감히 그분께 묻지 아니하더라,
13 -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빵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밤새 헛그물질을 하느라 찬 바닷 바람에 젖고 허기진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숯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구워 '따뜻한 아침 식탁'으로 초대하셨다는 현장성과 돌보심의 의미를 명확하다.
이 만남의 목적은 그들에게 자신이 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확신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채기 전에 먼저 기적을 행하셨다.“
* 제자들은 낯선 사람의 말인 줄 알고 던졌다가 엄청난 어획을 경험했기에, 이 기적은 인간적인 조작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완전하고 객관적인 표적이다
* 그분의 모든 역사(works)가 그러하듯, 이 기적 역시 단순한 능력 과시가 아니라 실제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다.“
*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굶주린 자를 먹이고, 지친 자를 돌보며,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사랑과 유용성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14 - 이제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세 번째 자기 제자들에게 자기를 보이신 것이더라,
* 복음서 전체를 비교해 보면 주님께서는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막 16:9), 다른 여인들(마 28:9),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눅 24:15), 시몬 베드로(눅 24:34, 고전 15:5) 등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다.
* 왜 요한은 디베랴 호숫가의 이 나타나심을 가리켜 "세 번째(the third time)"라고 명시했을까?
* 요한이 말하는 '세 번째'는 개인들에게 나타나신 모든 횟수를 센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공식적 공동체에게 공식적으로 나타나신 횟수를 계수한 것이다.
* 첫 번째 (Joh 20:19): ---> 부활하신 첫날 저녁,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모여 있을 때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사건.
두 번째 (Joh 20:26):-----> 여드레(8일)가 지난 뒤, 도마도 함께 있을 때 문들이 닫혔음에도 다시 그들 가운데 오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사건.
세 번째 (Joh 21:14):------>갈릴리 디베랴 호수에서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 요한 등 제자들이 모여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아침 해변에서 빵과 생선을 챙겨 주시며 자신을 보이신 사건.
+ 부활의 역사적 확실성 이다
* 성경적 증언의 원칙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정할지니라(고후 13:1, 신 19:15)이다. 요한은 부활의 주님이 단 한 번의 환각이나 착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무리(집단)에게 반복적이고 명확한 시공간적 증거로 세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입증되셨음을 법적 증언의 형태로 완결 짓고 있는 것이다.
* 갈릴리 사역으로의 온전한 회복이다
* 앞선 두 번의 나타나심이 예루살렘의 '닫힌 문 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화평으로 안식시키고 도마의 불신을 제거하는 내적 회복이었다면, 이 세 번째 나타나심은 약속하신 갈릴리(마 28:10)의 열린 호숫가에서 제자들의 소명을 회복시키고(21:15-17 "내 양을 먹이라")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파송하시는 공식적 전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