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가치를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주의 세 제자가 보는 가운데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셨다가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마태복음 17장과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보니 제자에게 오시는 다른 사람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를 물으시자 한 사람이 대답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데려 왔는데 제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예수님께서 보시고 그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 내지 못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을 이야기 하고, 마가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입니다. 같이 볼까요?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적당히 흉내를 낸 것입니다. 자신들이 씨름한 것이지요. 영적인 내공을 쌓아서 기도로 집중해야한데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행위인 것이지요.
기도 하십니까? 정말 기도하십니까?
우리 기도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오늘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늘 야고보서 1장의 기도의 말씀은 기도에 대한 명제입니다. 5절입니다. 같이 볼까요?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는 아주 간단한 말씀입니다. 물론 앞부분에 어떤 조건들이 있지만 그 조건들을 조금 무시하면 아주 단단한 명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마가 다락방에서 한 다양한 말씀들을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곳의 말씀을 보면 아주 간단한 명제들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 13-14절을 같이 볼까요?
(요 14:13-14)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 말씀을 통하여 본다면 야고보서 1장 5절에 나오는 앞의 조건들은 무시해도 괜찮겠지요. 우리가 여러 가지 다양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드리십시오. 구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해 주십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성품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삶의 소원이 있습니까? 그러면 구하십시다.
혹시 이런 분이 계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면 내가 구복신앙에 빠지는 것 같아서 주저되시는 분 계신 것은 아닌지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도깨비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
우리는 도깨비 방망이를 믿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요술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요행수가 아닙니다. 기도하라는 말씀 속에 숨겨 있는 가장 큰 뜻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구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살아 계신 인격을 만나서 우리의 문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나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에게 내 손을 내 미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기에, 그리고 그 분은 전능하신 분기이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 분이 살아 계신 분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그러기에 야고보 장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요청하지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야고보서 4장 2절입니다. 같이 볼까요?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먼저 야고보 장로는 얻기 위한 잘못된 방법을 언급하지요. 욕심을 내고, 살인을 하고. 시기를 하고, 그래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얻기 위하여 다투고 싸운다 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를 보십시오. 여기서 이야기하는 얻기 위한 것들은 처절한 것입니다. 오죽하면 살인까지 하겠습니까? 살인까지 한다면 그 밖에 다른 것들이야 다 gf 수 있는 것아닙니까?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지 못했습니다. 허망함을 아십니까? 그때의 비참함을 아십니까? 경험해 보셨습니까?
욕심으로, 시기함으로 살인함으로, 싸움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얻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얻는 것입니까? 우리가 얻지 못함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우리 야고보서 4장 2절을 다시 한번 볼까요?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 우리가 얻는 것은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하여 보셨습니까?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는 것에서 손을 놓고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께 손을 모우고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하나님이 앞서 가시게 하고, 그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처절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들의 눈에 길이 보일 것 같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보이지 않지만, 내가 가는 길이 안개와 같지만, 그래서 그 앞에서 무엇을 만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나이 오십 중반이 되어 보니까 부모님과 함께 살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누리는 것이냐 지금보다 못하겠지요. 그 시대가 가난했고, 저희 가 사는 동네가 가난했기에, 어떤 때는 학비를 못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비를 내가 조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때 쓰면 됩니다. 어디를 가도 부모님이 가자고 하는데로만 가면 됩니다. 최고의 삶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되시는 하나님과 그렇게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눈에 길이 보이면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 대신 내가 도전하게 됩니다. 내가 뛰게 됩니다. 내가 씨름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것 아십니까? 내가 씨름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당연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먼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그렇게 가는 길이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기도가 더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5절입니다. 다시 한 번 볼까요?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야고보 장로는 계속해서 그 성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후히 주시는 분이시기에 거절 하시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달라고하는 것은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왜 치근대야고, 왜 무릅팍 앞에서 그렇게 달라고 조르냐고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누구를 상대하시겠습니까? 자기 것을 지키려는 인색한 세상을 상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인신 좋으시고 넉넉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을 상대하시겠습니까?
싸우면서도 얻지 못하는 그 길을 가겠습니까? 구하면 얻게 되는 그 길을 가겠습니까?
이 선택에서 고민하지 마십시다. 그냥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십시다. 하나님께 구하십시다. 기도 하십시다. 기도 하십시다. 왜 자꾸 어려운 길을 가십니까?
믿음으로 구하고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같이 볼까요?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6절)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지요. 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의 전능하심과 그 분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의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렸을 때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달라고 하지요. 이때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돈이 있는지 없는 지 걱정하셨습니까? 그냥 달라고 하지요. 못 주실 것이야 라는 생각으로 의심하셨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요?
야고보 장로는 우리를 위하여 엘리야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기억하십시오. 그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용장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도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