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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여름휴가, 달 샤베트, 잘가 안녕,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hwp
할머니의 여름휴가(2016) 2017.07.17. 한지혜
안녕달 글·그림 | 창비
안녕달 물 흐르고 경치 좋은 산속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그린 책으로는 『진짜랑 깨』『똑똑한 빗물 저금통』『늦게 피는 꽃』 등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재기 발랄한 상상력이 반짝이는 그림책 『수박 수영장』을 펴내며 아이와 어른 독자 모두에게 뜨거운 기대와 호응을 얻은 안녕달 작가의 두 번째 창작그림책이다.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태연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은 어느 여름날,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손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머니가 사는 공간은 윙윙거리는 고장 난 선풍기와 텔레비전, 가족사진, 1인용 소파, 소반, 아기자기한 화분 등으로 세심하게 묘사된다. 설명하는 글은 없지만 그림만으로도 할머니의 성격과 정서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손자가 할머니에게 바닷소리가 들리는 소라를 선물하고 떠난 뒤, 휑한 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할머니는 불현듯 강아지 메리와 함께 소라 속으로 들어가서 여름휴가를 즐기게 된다. 작가는 할머니가 일상을 보내는 집과 휴가를 즐기는 바다를 대비하여 작품 전반을 인상적으로 표현해 낸다. 할머니의 집을 작은 소품들로 오밀조밀하게 표현했다면 바다는 탁 트인 시야와 과감한 구도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일상 속에서 말수가 적고 조용한 분위기로 나타냈다면 바다에서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연출한다. 발군의 상상력에 섬세한 장면 연출이 더해져 할머니에게 벌어진 마법 같은 사건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작가 인터뷰 채널 예스 2016.07.11. 글 | 엄지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그림책이 탄생한 계기가 무척 흥미롭다. 유년 시절 조부모와의 추억을 담았으리라 예상했는데,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거의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에 가깝다”고 한다. 작가는 현재 바닷가 근처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다. 후속작으로는 “왜요?”라는 엄마와 아이의 대화로 이뤄진 이상한 책과 시골 할머니와 강아지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린 책을 펴낼 계획이다.
『할머니의 여름 휴가』, 를 출간하셨는데요. 어떻게 만들게 된 그림책인지 궁금합니다.
5~6년 전 공모에 내려고 만들었던 그림책이에요. 공모에 다 떨어지고 다시 원고를 수정해서 개인적으로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했는데 다 거절 당했어요. 너무 많이 거절 당해서 세상에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이 나와서 너무 기뻐요.
『수박 수영장』에 이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유년시절 조부모님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명절 때 집에 방문해서 뵙는 정도여서 직접적인 추억은 많지 않고요. 제가 사는 동네가 독거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요. 제가 거의 백수이다 보니까 제가 밖에 나갈 때는 그나마 있던 몇몇의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가서 없고 한적한 동네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많이 있는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분들 보고 있는 걸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거의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에 가까워요.
할머니가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 다정하고 예쁩니다. 할머니,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과제로 어떤 노래를 들려주며 거기에 맞는 홍보물 같은 걸 만들라고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그 노래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CD 케이스와 함께 만든 애니메이션이랑 홍보용 모빌을 만들었어요. 그 작품 속 할머니들이 『할머니의 여름휴가』에 나오는 할머니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나중에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그리는데 그때 만든 모빌이 제 집에 걸려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모빌 속 할머니가 주인공이 되었어요.
그리면서 가장 즐거웠던 뿌듯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바다로 가는 첫 장면이요. 모래사장이랑 에메랄드 색 바다가 펼쳐지는 장면이요. 갑자기 화면이 변하면서 시원한 느낌도 들지만 작은 소품 하나하나 다 그려야 되는 저로서는 별로 그릴 게 없어서 더 좋았어요.
그림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제가 별달리 특별한 신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는데요. 다만 그림책 그리면서 저는 어떤 장면이나 흐름을 독자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난해하다고 편집자 분이 언급해 주실 경우가 있는데요. 그때 의견을 듣고 다시 고치고 그러면서 점점 그림이 나아지는 것 같아요. 원래 완벽주의랑 거리가 너무 먼 저로써는 피드백과 수정 과정이 그림으로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 작업과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림책은 제가 제일 좋아하고 익숙한 걸 그리게 돼서 좀 더 편하게 그릴 수 있어요. 일러스트 작업은 글을 보고 맞춰서 그리면 제가 평상시에 잘 안 그려 보던 소재나 이야기를 그리게 돼서 새로운 걸 하고 재미있는데 슬프게도 제가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러스트 작업할 때 일이 별로 없었어요.
두 권의 그림책이 작품도 좋지만, 그림책의 만듦새도 참 좋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제본이나 종이 인쇄 등등이요. 작가님이 보시기엔 어떠신지요? 그림책을 펴낼 때, 저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나요?
그림책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제가 한 건 반짝이는 종이 싫다고 투정 부린 것밖에 없어요. 그건 다 편집자와 디자이너 분들이 알아서 잘하셨어요. 저도 책 받아 보고 놀랐어요 너무 예뻐서. 제가 인쇄로 구현되기 힘든 색을 많이 써서 인쇄할 때 원화 색대로 인쇄하기 힘든데 디자이너 분이 색을 진짜 잘 살려 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종이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번번이 원하는 종이에 색이 잘 안 나오거나 비싸서 원하는 종이를 못 쓰다가 이번에는 소원 성취해서 엄청 만족하고 있어요.
‘안녕달’은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요?
라디오에서 어느 인디 밴드가 초창기에 이름이 예뻐서 가끔 공연 불러 줄 때가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아! 나도 이름이 예뻐서 날 좀 써 줬으면 좋겠다.’ 해서 저도 예쁜 단어 조합을 했어요. 급하게 지은 것치고 괜찮은 것 같아요.
작가님의 평상시 일상이 궁금합니다. 일상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무엇을 할 때인가요?
전 엄청 게을러요 거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날이 많아요.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데 하루가 다 가 버려서 항상 신기했어요.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보다가 밥 해 먹는 무의미한 시간을 좋아해요. 침대에 누워서 노트에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럴싸하게 완성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마감할 때쯤에는 불행해요.
현재 해외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공부하러 바닷가 근처 학교에 와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어요. 학교 근처에 바다가 있다고 해서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다 같이 수영하러 가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전혀 그러진 못하고 있어요. 제가 상상한 바다가 아니고 여기는 날씨도 추워요. 어서 한국 돌아가서 제주도에 가고 싶어요.
작가님 홈페이지(http://www.bonsoirlune.com)에 가보니 ‘재료’ 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품들이 올려져 있던데요. 평소 스케치를 한 작업물을 모두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시는지요?
그거 스케치가 아니라 일러스트예요. 초창기 그림이라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서 스케치로 보이나 봐요. 프리랜서 시작했을 때 홈페이지 만들고 주기적으로 그림을 올려 보려고 단편적인 그림 자주 올렸었는데 일을 하기 시작한 후로 잘 안 올리고 있어요. 일이 있으면 뭔가 안심이 돼서 개인 작업을 안 하게 돼요.
지금 한창 수박의 계절입니다. 혹,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인지요? 여름을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시는지요?
네 과일 엄청 좋아하고 수박도 엄청 좋아해요. 여름이면 수박을 슈퍼에서 사기엔 너무 비싸서 수박 트럭 아저씨 오기만 기다리곤 했어요.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름이 되면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나뭇잎이 초록색이 되면 왠지 설레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나요?
전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가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편이어서 별 계획 없이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그림책을 만들 것 같아요. 그래도 저의 먹고 살 걱정이 좀 덜어지고 혹시 내 주시겠다는 출판사가 있으면 좀 더 어른용 그림책도 내 보고 싶어요.
그림책의 매력을 표현해주신다면요.
글을 잘 못 써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가장 쉬운 이야기 전달 수단이에요. 근데 그림 그리는 건 조금 귀찮아요.
어린이, 엄마 아빠, 젊은 독자 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그림책들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특히 소망하는 독자층이 있는지요?
집에서 손자 손녀 보느라 힘드신 할머니들이 잠시나마 이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2013)
백희나 1971년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어린이를 위한 시디롬을 개발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지금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큰턱할미랑 큰눈할미랑 큰이할미랑』을 시작으로 어린이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림책인 『구름빵』은 반입체 기법으로 비 오는 날의 상상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구름빵』으로 2005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에서 픽션 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혔습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신데렐라』『비 오는 날은 정말 좋아!』『달님이랑 놀아요』『팥죽 할멈과 호랑이』『북풍을 찾아간 소년』 등이 있습니다.
『달 샤베트』는 작가의 두 번째 창작 그림책입니다. 하늘의 달이 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무더운 어느 여름밤, 아파트 주민들은 창문을 꼭꼭 닫고는 에어컨과 선풍기를 쌩쌩, 씽씽 틀며 잠을 청해요. 그런데 어디선가 똑...똑..똑 소리가 들려와요. 반장 할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니, 글쎄, 달이 녹아내리고 있었어요! 부지런한 할머니는 고무 대야를 들고 나가 달방울을 받은 다음, 집으로 돌아와 노오란 달 물을 샤베트 틀에 담아 냉동칸에 넣어두었지요.
전기를 너무 많이 쓴 탓일까요? 정전이 되어 온 세상이 깜깜해져요. 아파트 이웃들은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밝고 노란빛을 따라 할머니 집으로 향하고, 할머니는 이웃들에게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달 샤베트를 하나씩 나눠줬어요. 달 샤베트를 먹은 이웃들은 모두 시원하고 달콤한 꿈을 꾸었지요.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달이 녹아 버려 곤란해진 누군가가 또 반장 할머니네 문을 똑똑 두드렸거든요. 한밤중에 누가 할머니 집을 찾아온 걸까요? 달이 녹아내린다는 독특한 상상을 입체적이고 개성 넘치는 그림으로 풀어내었습니다. 지구온난화, 이웃 간의 나눔, 여름밤의 정취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달 샤베트 안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작가 인터뷰 채널 예스 2011.02.10. 글ㆍ사진 | 김수영
그림을 그리고 인형을 만드는 일을 좋아했던 그녀는, 늘 낙서를 하고 있던 소녀였다. 고3, 뒤늦게 미술로 진로를 정하고, 교육공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시청각매체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범대에 들어가 다양한 서클활동을 하며, 가장 관심이 갔던 광고 공부를 해보지만, “협업을 하는 데 말발이 센 사람 쪽으로 의견이 휩쓸려 가고, 아이디어를 내 놓아도 무시당하기 일쑤”인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저는 권선징악이 뚜렷하고, 열심히 일한 자가 보람을 느끼는 세계, 융통성 없게 딱 맞아 떨어지는 세계를 추구했거든요.(웃음) 그래서 아이들 것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동화 속에서는 권선징악이 지켜지잖아요. 그런데 숨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범대에서 영화를 만들고, 슬라이드를 제작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매체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졸업 직후에는 유아용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했다. 기획디렉터라는 직책을 맡았지만, 본인의 “융통성이나 사회생활 능력이 제로”라는 걸 절감한 백희나 작가는, “혼자서 만들고 팔 수 있는 일, 지구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취직해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작업을 눈여겨보던 출판사에서 그림책 제안을 해 온다. 그렇게 처음 빛을 보게 된 작품이 『구름빵』(2004). 현재까지 400만부가 팔리고 그녀의 대표작처럼 불려지는 작품이지만, 그녀에게 『구름빵』은 “굉장히 쓴 약”이었다.
당시 그녀는 저작권을 포기하는 매절계약으로 첫 책을 냈다. 신인이라면 으레 그렇게 시작하는 줄만 알았던 그녀는, 이후에 『구름빵』 이름을 달고 생산되는 뮤지컬 등의 부차 저작물에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했다. “그게 제일 마음 아픈 거죠. 『구름빵』 이야기가 쓰이는 걸 남의 일 보듯이 구경해야 하니까.”
이후 그녀는 1인 출판사 ‘스토리보울’을 차렸다. 혼자 기획, 제작, 판매를 도맡아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계속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길뿐이었다. “누가 어떤 얘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이 마음이 약해진 상태였어요. 그런데 작업은 정말 하고 싶어서 혼자 다시 시작한 거죠.”
“『달 샤베트』가 잘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어요. 초판 내서 평생 선물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아 매일 우체국 가서 한 권씩 부쳐줄 생각으로요.(웃음) 1인 출판이 어려울 거라는 조언은 많이 들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선택사항이 없었어요.”
쓰디쓴 첫 경험이 한편으로는 지금의 작업환경을 만들어낸 셈. “당시 출판사와의 관계가 작업환경이 어지간했으면, 계속 견디고 작업했을 거예요.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때 생활이 어지간했다면 그렇게 살았을 텐데, 못 견뎠기 때문에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낸 거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작업환경을 꾸려내고, 계속 작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됐다고 생각해요.”
직접 출판 및 운영에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작가는 “그런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가 수입만으로 생활하기 힘들어요. 어차피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에 비해, 지금처럼 팩스를 보내고 영업활동을 하는 일은 새 발에 피죠.(웃음)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나 그림 등의 원천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느니 제 책을 팔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게 훨씬 좋아요.”
대신, 파트너쉽이 없는 점을 1인 출판의 단점으로 꼽았다. “작품이나 영업 분야의 전문가들과 의논하면서 진행하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는 요소가 많겠죠. 그 점이 가장 아쉬운 것 같아요.”
그림책 작가를 꿈꾸던 시절,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던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다. 많은 작가를 떠올리며 고민하다가 리즈베쓰 츠네르거와 브루노 무나리를 꼽았다.
“오스트리아의 리즈베쓰 츠베르거(Lisbeth Zwerger)는 일러스트레이터예요. 직장 생활을 할 때 그 그림을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서양인이 시각으로 그린 동양의 이미지인데도 전혀 어색함 없이 표현했어요. 번역이 안되어 있어서 일러스트레이션만 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정말 궁금했어요 그때 글과 그림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구나. 글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림이 더해줄 수 있는 요소가 있구나 느낄 수 있었어요.”
“이태리 작가 브루노 무나리(Bruno Muari)도 실험적인 책을 많이 냈죠. 출판사에서 실험성을 감내하고 냈다는 게 놀라웠어요. 코라니 출판사에서 다루는 특별한 검정색이 있대요. 그 까다로운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인쇄소에서 ‘코라니 블랙’이라는 잉크까지 만들었고요.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멋있는 책이 나오는 구나. 작가의 의도를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하는 그 문화가 부럽고 멋있죠.”
독자들은 백희나 작가 그림책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을까? 본인의 생각을 묻자 고개를 금세 흔들었다.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제 작품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부족한 점, 잘된 점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워요.” 다만, 뚜렷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가지고, 교훈을 주기보다는 기분 좋은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작업 의도를 전했다.
“어려운 삶이라도 밝은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를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는 일이 정말 좋아요.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겁지 않고 따뜻한 책을 만들 것 같아요.”
그림책 작가로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 문제를 꼽았다. “다만 저작권 문제에 대한 개념, 매절 계약이나 도용문제는 정말 작가들의 작업을 힘들게 하고 있거든요. 이런 문화가 빨리 제대로 자리 잡혔으면 좋겠어요.”
현재 그녀의 두 번째 창작집 『달 샤베트』도 저작권 논란에 휘말려 분쟁 중에 있다. 한 연예기획사가 『달 샤베트』의 이름을 따 ‘달 샤벳’이라는 걸 그룹을 데뷔시킨 것.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이렇게 하는 일에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창작집 두 권을 냈는데, 두 권 다 저작권 문제에 휩싸인 것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단 생각이 들거든요. 내가 힘들고 귀찮아도 한번은 “안돼”라고 강하게 얘기해야, 앞으로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누군가 『달 샤베트』를 사려고 했을 때, 이 제목에서 성인을 위한 문화가 먼저 연상이 되는 일이 가장 걱정스러웠어요. 상표권을 출원해도 등록되기까지 1년이 걸려요. 그때까진 법적인 행동을 취할 수가 없어서, 등록되는 대로 사용정지신청을 하려고 해요.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제 이 문제를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급한 불은 끈 것 같고요.”
(“그림책” 달 샤베트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은 진행 중입니다.http://storybowl.com/archives/2605)
그녀는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이들, 곧 동료가 될 이들에게도 이 얘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하는 결정 하나하나, 내가 만드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그림책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매듭이 돼요. 저도 누구나 데뷔할 때는 시리즈 계약, 매절 계약을 한다고 해서 결국 또 그런 선례를 남겼다는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어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한 고비 한 고비 지나온 지난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작가는 말했다. “앞으로도 또 다른 고통이 오겠지만, 그만큼 한 발 한 발 나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지나간 시간은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젊어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웃음)”
“저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고, 체력적, 정신적으로나 가장 잘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나이고, 애들이 한창 예쁜 나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선배 작가님을 뵙고 왔는데, 아, 제일 좋은 나이는 50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때가 되면 자식이 다 컸고,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져 있고, 작품에 매달리지 않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만의 개성이 한 획으로도 표현이 되는 단계랄까? 그런 때가 오겠죠? 하하하.”
잘 가, 안녕 김동수 그림책 | 보림 (2016)
김동수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습니다. 2001년 한국출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2002년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어린이들의 엉뚱한 생각이나 걱정거리에 관심이 많으며,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이 특징입니다. 『천하무적 고무동력기』『감기 걸린 날』『엄마랑 뽀뽀』를 쓰고 그렸으며, 『으랏차차 탄생 이야기』『할머니 집에서』『수박씨』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둑한 도로 한복판에 커다란 트럭이 서 있습니다. 건너편 그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긴장한 채 이쪽을 바라봅니다. 트럭 앞바퀴에 무언가 깔려 있습니다. 트럭은 이미 사라졌고, 누군가 강아지를 들어 올립니다. 어딘지 심상치 않아 보이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갑니다. 짙은 어둠에 묻혀 오도카니 서 있는 집입니다. 환하게 불을 밝힌 방안에는 죽은 동물들이 누워 있습니다. 아예 온몸이 동강 나버린 뱀, 배가 찢기고 깃털이 듬성듬성 빠져 뒤숭숭한 몰골의 부엉이, 자동차 바퀴에 깔려 종잇장처럼 납작해진 개구리, 족제비… 고라니와 아까 트럭에 치인 깜장 강아지는 배가 터져 내장이 다 보입니다.
할머니는 살아 있는 동물들을 대하듯 정답게 말을 걸며 다독이고, 상처를 꿰매고, 붕대를 감고, 미처 감지 못한 눈을 감기고, 포근한 이불을 덮어 줍니다.
할머니가 다시 길을 나섭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먼, 어두운 새벽길을 타박타박 걷고 또 걸어서 어딘지 알 수 없는 숲길을 지납니다. 숲길 끝에는 할머니를 마중 나온 듯 하얀 오리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이윽고 닿은 물가, 할머니는 조각배에 동물들을 눕힙니다. 예쁜 꽃도 놓아줍니다. 하얀 오리들이 배를 끕니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둥실둥실 조각배가 떠내려갑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없는 텅 빈 거리에 할머니가 서 있습니다. 연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동쪽 하늘을 향해 할머니가 손을 흔듭니다.
작가의 말
가끔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봅니다. 자동차들은 죽은 동물 위로 지나가고 또 지나갑니다.
자동차들이 지날 때마다 동물들은 점점 더 납작해지고 여기저기 찢기고 도로 위에서 이리저리 나뒹굴다가
흩어져 버립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을 모아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 속의 글과 그림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서도 맴돌기를 바라 봅니다.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 (2017)
플란텔 팀 글, 루시 구티에레스 그림, 김정하 옮김, 배성호 추천 | 풀빛
플란텔 팀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팀입니다. 1977년과 1978년에 걸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 가야 과학출판사에서 '내일을 위한 책' 시리즈를 처음 출간하였습니다. 그 당시 스페인은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기였고, 민주화를 위한 첫 변화들이 탄생하는 과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독재, 사회 계급, 민주주의, 양성평등이라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어린이들에게 쉽지만 명확하게 전달하고 어린이들이 만들어가야 할 내일의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이끌기 위하여 '내일을 위한 책' 시리즈를 기획하고 집필하였습니다.
‘내일을 위한 책’ 시리즈는 40여 년 전인 1977년과 1978년에 스페인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일러스트가 새롭게 바뀌어 재출간되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어린이들이 열려 있도록 도와주고, 더 나아가 그들이 만들 내일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볼로냐 라가치 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내일을 위한 책’ 시리즈 4권인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에서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남녀 차별과 우리가 이루어야 할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1978년 이후, 지금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그때보다 훨씬 높아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자는 남자가 누리는 수많은 권리를 똑같이 누리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세계 곳곳에서 차별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에 자리 잡은 잘못된 관습과 맞서야 합니다. 그래야 여자와 남자 모두를 위한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오픈키드에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