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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평론 2021년 9월 칼럼
제목: 입시-기계를 만드는 한국 교육
저자 : 안재오
1. 서론 :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최근 필자의 작은 딸이 tvN의 방송 “프리한 닥터” 란 프로그램에 나온다기에 우리 식구들은 기다리다가 지난 달 그 방송을 보았다. 원래 이 방송은 경제와 건강을 주제로 한 것인데 그 날은 ‘공부 잘하는 법’ 같은 내용을 소개한다고 했다. 필자의 작은 딸 안소린은 현재 서울대 4학년으로 유튜브 방송 “소린티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주제는 공부 학습법 이다. 그런데 정작 TV를 보다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 날 주제는 아래의 사진처럼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였다. 필자 역시 사설 교습소를 운영한 적이 있어서 대학 입시 전형에 대해서 어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딸이 수능 점수 없이 서울대에 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수시로 대학 입학한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수능 최저 기준은 통과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수능 시험은 전혀 포함이 되지 않는 그런 입시 전형이었다. 그런데 방송 내용을 보다가 깜짝 놀랐었다. 그 분량의 주인공인 딸을 포함한 두 서울대 학생들이 수험생이었을 때 어떻게 시험을 준비했는지를 듣고 나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금수저도 아니고 철저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서울대에 당당히 입학한 것이었다. 필자 역시 가난해서 딸의 공부 뒷바라지 할 여유가 없었다. 강남 출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 그 엄청난 실험 시설에 사계의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딸은 돈이 거의 안드는 자연관찰 동아리를 스스로 결성하여 연구를 했다.
2. 입시 기계로 변한 수험생들
필자가 이 방송을 보고 개탄한 것은 다시 한번 한국의 입시위주의 교육, 학벌주의 교육이 참상(慘狀) 때문이었다. 이 둘은 모두 서울대 학생부 전형 등으로 입학에 성공한 케이스였는 데 그 준비 과정을 들어보니 자기 딸에 대해서도 몰랐던 일들이 많이 나왔다.
자율 학습 동아리나 진로 관련 활동 등의 전문적인 말들을 들을 때 느낀 점은 “한국의 입시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전문적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서울대 학생부 일반전형은 1. 자율활동 2. 진로활동 3. 동아리 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벌써 고 1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두 똑똑한 학생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 밖에 온갖 상장 및 보고서 논문 등도 잘 해야 한다. 물론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밖에도 논구술 시험도 있고 기타 독서 교양, 학업태도 등도 반영된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언제 그 많은 과제를 고 등학생들이 다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가정 여건이 어려워서 사교육 비용을 대줄 여력이 안 되는 집안의 자녀일 것이다. 실제로 안소린의 경우는 실제 그렇다. 머리는 좋으나 환경이 열악한 가정의 자녀들은 이렇게 서울대 및 각 유명 대학의 수시 전형을 노린다.
조국의 자녀 입시 관련 부정 문제로 한 때 수시 전형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시로, 수능 성적으로만 입학 사정을 한다면 서울에서 강북 지역은 아마도 서울대에 1명도 입학시키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조국 사태'가 바꾼 대학입시.... 서울 주요대학 정시 40%로 확대
"부모 영향력 최대한 배제하겠다"지만... 수능준비에 유리한 강남 등 교육특구 쏠림현상 심화될 듯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수능위주 전형 선발(정시) 비중이 40% 이상으로 확대된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이후 갑자기 나온 졸속 정책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28일 서울종합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3년 입시(현재 중3 대입)부터 정시 비중이 확대되고 논술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활동 및 자기소개서(자소서)도 폐지된다. 2002년 수시와 정시가 분리되면서 수시가 본격화된 지 20여년만에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는 조국 사태로 입시에서 '부모의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현상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입시제도를 뜯어고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들의 몫"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입력 : 2019.11.28.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위의 두 학생의 경우는 물론 부모의 영향력 없이 본인들 스스로의 준비만으로 수시 전형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외에도 조국 입시부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모의 권력을 통한 엄청난 입시 비리, 부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의-과학 학술 논문의 제 1저자로 되는 경우를 보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외에 조국의 딸의 경우 엄마 찬스 아빠 찬스로 온갖 경력 증명서 및 표창장을 휩쓸었다.
이런 정치인 권력층의 입시 위조를 때문에 위의 두 학생 같은 재능있는 학생들이 다시 피해를 볼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3. 플라톤의 교육 철학
이런 한국의 강제적, 타율적 혹은 불법적 교육 방식에 비해 고대 희랍인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학습과 교육을 중시했다. 특히 플라톤은 절대로 강제로 배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억지로 시켜서는 안되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자유인은 노예처럼 강제로 부릴 수는 없다. 특히 배움(학습)같은 정신적인 활동은 더욱이 강요되어질 수 없다고 플라톤은 그의 대저 『국가』에서 선언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 “한국교육비판” 21~22 쪽)
그 이유는 아래에 나와 있지만 억지로 배운 공부는 영혼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학습은 플라톤의 말처럼 놀이와 갗아야 한다. 물론 플라톤이 말하는 “어린 시절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미취학 아동 시기는 아니고 현재 한국의 초-중-고 시절을 다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강제적인 배움도 혼(마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있다. 물론 동물이나 노예처럼 신체의 고통을 통하여 배울 수 있기도 하다. 다른 능력은 몰라도 암기력 같은 하급의 정신능력은 억지로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서 교육이 아니라 조련이라고 해야 한다. 한국의 학습은 이처럼 훈련 아니 조련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물론 부모들이나 학원 강사들의 입장에서는 “다 너 잘되라고 그런다” 라고 억지 교육을 사랑으로 호도할 수 있다. 그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 현금의 학습 제도가 옳다 혹은 좋다는 가정 하에서 이런 말들은 가치를 가진다.
위의 tvN 방송에 나온 두 학생의 경우처럼 아무리 교육 제도가 열악해도 똑똑한 극소수의 애들은 결국 자기의 위치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진정한 장래의 지도자 재목들이 고사당하고 퇴출된다.
정신은 본래 자발적이다. 능동적이다. 이를 무시하고 타율적 수동적 강제를 자꾸 가하게 되면 곧 그 정신은 그렇게 된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정신의 칭찬으로 안다. 수동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별로 정신적인 어려움이 없는 근육 노동이나 주로 그런 일, 즉 단순한 일들을 하게 된다.
정신은 기본적으로 창의적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정신의 창의성, 능동성 덕분에 인류의 문화가 이 정도로 발전해 왔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쯔(Leibniz)는 정신의 작용을 단일성 속의 다양성 (multiplicity in unity) 라고 했다. 즉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는 유명한 방앗간의 비유를 예로 들면서 복잡한 물리적 사건을 정신이 어떻게 단일성으로 파악하는 지는 보여준다.
4. 방앗간의 비유 (the analogy of mill, Leibniz’s mill argument)와 자립적 정신
라이프니쯔는 "지각" 개념을 "단순성 속의 다양성" (the multiplicity in the unity)이라고 규정했고 이를 예시하려고 방앗간의 비유를 제시했다.
만약 우리가 방앗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사고 기계에 (a thinking machine) 들어가서 그것의 내부를 조사한다면, 우리는 서로 작용하는 기계의 부분만 찾을 수 있을 뿐, 지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단자론 17절)
여기서 Leibniz는 정신은 단일체이고 물체는 복합체라는 그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다. 기계나 A.I.(인공지능)은 아무리 정교하고 똑똑해도 그것은 사람의 정신 혹은 마음과 같을 수 없다, 곧 영혼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정신은 기계와 다르고 설령 인공지능(AI)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고유한 정신, 영혼을 전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다. 만약 AI가 자신의 모든 기능을 단일성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그 AI는 인간의 정신 혹은 통각(apperception)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다양의 통일성 작용은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성장과정과 교육 그리고 놀이 등을 통해서 길러 진다는 것이다. 일자성(unity)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일자성이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경우 건전한 정신의 발전이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너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영어 수학을 죽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라는 목표가 외타적(外他的)으로 입력이 되면 그것이 하나의 자기동일성 혹은 자아-정체성(self-identity)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진정한 “자기-규정(self-determination)”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외타적인 규정과 자신의 고유한 규정이 불일치하는 점이 온다.
이런 경우 올바른 도덕성이 형성이 안되고 결국 본능이나 습관 혹은 이기적인 자연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위에서 말한 조국씨의 자녀들이 그런 위기를 겪게 된다. 부모들의 과도한 간섭과 도움으로 인해서 자녀들은 건전한 자기-정체성 형성이 장애를 받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영혼은 건전한 도덕성 자율성 보다는 이기주의와 편리주의 등에 의해서 멍들게 된다.
이런 타율적인 교육과 간섭 혹은 사랑을 빙자한 충고 격려 등이 결국 자녀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억지로 배운 지식은 영혼에 붙어 있지 않는다” 혹은 “학습은 놀이와 같아야 한다” 라고 일갈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기어이 기계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기계는 라이프니쯔가 말한 것처럼 결코 단순성 속의 다양성을 혹은 다양성 속의 단순성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영혼들을 공부 기계로 만드는 한국의 학습 현실! 사실 이것이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이다. 부동산 문제니 청년실업 문제니 혹은 무슨 무슨 사회적 문제니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능력, 특히 정신적 능력이 높아지면 그런 문제들은 저절로 풀려 나간다.
제목: 입시-기계를 만드는 한국 교육
저자 : 안재오
1. 서론 :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최근 필자의 작은 딸이 tvN의 방송 “프리한 닥터” 란 프로그램에 나온다기에 우리 식구들은 기다리다가 지난 달 그 방송을 보았다. 원래 이 방송은 경제와 건강을 주제로 한 것인데 그 날은 ‘공부 잘하는 법’ 같은 내용을 소개한다고 했다. 필자의 작은 딸 안소린은 현재 서울대 4학년으로 유튜브 방송 “소린티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주제는 공부 학습법 이다. 그런데 정작 TV를 보다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 날 주제는 아래의 사진처럼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였다. 필자 역시 사설 교습소를 운영한 적이 있어서 대학 입시 전형에 대해서 어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딸이 수능 점수 없이 서울대에 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수시로 대학 입학한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수능 최저 기준은 통과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수능 시험은 전혀 포함이 되지 않는 그런 입시 전형이었다. 그런데 방송 내용을 보다가 깜짝 놀랐었다. 그 분량의 주인공인 딸을 포함한 두 서울대 학생들이 수험생이었을 때 어떻게 시험을 준비했는지를 듣고 나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금수저도 아니고 철저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서울대에 당당히 입학한 것이었다. 필자 역시 가난해서 딸의 공부 뒷바라지 할 여유가 없었다. 강남 출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 그 엄청난 실험 시설에 사계의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딸은 돈이 거의 안드는 자연관찰 동아리를 스스로 결성하여 연구를 했다.
2. 입시 기계로 변한 수험생들
필자가 이 방송을 보고 개탄한 것은 다시 한번 한국의 입시위주의 교육, 학벌주의 교육이 참상(慘狀) 때문이었다. 이 둘은 모두 서울대 학생부 전형 등으로 입학에 성공한 케이스였는 데 그 준비 과정을 들어보니 자기 딸에 대해서도 몰랐던 일들이 많이 나왔다.
자율 학습 동아리나 진로 관련 활동 등의 전문적인 말들을 들을 때 느낀 점은 “한국의 입시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전문적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서울대 학생부 일반전형은 1. 자율활동 2. 진로활동 3. 동아리 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벌써 고 1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두 똑똑한 학생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 밖에 온갖 상장 및 보고서 논문 등도 잘 해야 한다. 물론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밖에도 논구술 시험도 있고 기타 독서 교양, 학업태도 등도 반영된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언제 그 많은 과제를 고 등학생들이 다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가정 여건이 어려워서 사교육 비용을 대줄 여력이 안 되는 집안의 자녀일 것이다. 실제로 안소린의 경우는 실제 그렇다. 머리는 좋으나 환경이 열악한 가정의 자녀들은 이렇게 서울대 및 각 유명 대학의 수시 전형을 노린다.
조국의 자녀 입시 관련 부정 문제로 한 때 수시 전형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시로, 수능 성적으로만 입학 사정을 한다면 서울에서 강북 지역은 아마도 서울대에 1명도 입학시키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조국 사태'가 바꾼 대학입시.... 서울 주요대학 정시 40%로 확대
"부모 영향력 최대한 배제하겠다"지만... 수능준비에 유리한 강남 등 교육특구 쏠림현상 심화될 듯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수능위주 전형 선발(정시) 비중이 40% 이상으로 확대된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이후 갑자기 나온 졸속 정책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28일 서울종합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3년 입시(현재 중3 대입)부터 정시 비중이 확대되고 논술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활동 및 자기소개서(자소서)도 폐지된다. 2002년 수시와 정시가 분리되면서 수시가 본격화된 지 20여년만에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는 조국 사태로 입시에서 '부모의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현상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입시제도를 뜯어고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들의 몫"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입력 : 2019.11.28.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위의 두 학생의 경우는 물론 부모의 영향력 없이 본인들 스스로의 준비만으로 수시 전형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외에도 조국 입시부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모의 권력을 통한 엄청난 입시 비리, 부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의-과학 학술 논문의 제 1저자로 되는 경우를 보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외에 조국의 딸의 경우 엄마 찬스 아빠 찬스로 온갖 경력 증명서 및 표창장을 휩쓸었다.
이런 정치인 권력층의 입시 위조를 때문에 위의 두 학생 같은 재능있는 학생들이 다시 피해를 볼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3. 플라톤의 교육 철학
이런 한국의 강제적, 타율적 혹은 불법적 교육 방식에 비해 고대 희랍인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학습과 교육을 중시했다. 특히 플라톤은 절대로 강제로 배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억지로 시켜서는 안되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자유인은 노예처럼 강제로 부릴 수는 없다. 특히 배움(학습)같은 정신적인 활동은 더욱이 강요되어질 수 없다고 플라톤은 그의 대저 『국가』에서 선언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 “한국교육비판” 21~22 쪽)
그 이유는 아래에 나와 있지만 억지로 배운 공부는 영혼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학습은 플라톤의 말처럼 놀이와 갗아야 한다. 물론 플라톤이 말하는 “어린 시절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미취학 아동 시기는 아니고 현재 한국의 초-중-고 시절을 다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강제적인 배움도 혼(마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있다. 물론 동물이나 노예처럼 신체의 고통을 통하여 배울 수 있기도 하다. 다른 능력은 몰라도 암기력 같은 하급의 정신능력은 억지로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서 교육이 아니라 조련이라고 해야 한다. 한국의 학습은 이처럼 훈련 아니 조련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물론 부모들이나 학원 강사들의 입장에서는 “다 너 잘되라고 그런다” 라고 억지 교육을 사랑으로 호도할 수 있다. 그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 현금의 학습 제도가 옳다 혹은 좋다는 가정 하에서 이런 말들은 가치를 가진다.
위의 tvN 방송에 나온 두 학생의 경우처럼 아무리 교육 제도가 열악해도 똑똑한 극소수의 애들은 결국 자기의 위치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진정한 장래의 지도자 재목들이 고사당하고 퇴출된다.
정신은 본래 자발적이다. 능동적이다. 이를 무시하고 타율적 수동적 강제를 자꾸 가하게 되면 곧 그 정신은 그렇게 된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정신의 칭찬으로 안다. 수동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별로 정신적인 어려움이 없는 근육 노동이나 주로 그런 일, 즉 단순한 일들을 하게 된다.
정신은 기본적으로 창의적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정신의 창의성, 능동성 덕분에 인류의 문화가 이 정도로 발전해 왔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쯔(Leibniz)는 정신의 작용을 단일성 속의 다양성 (multiplicity in unity) 라고 했다. 즉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는 유명한 방앗간의 비유를 예로 들면서 복잡한 물리적 사건을 정신이 어떻게 단일성으로 파악하는 지는 보여준다.
4. 방앗간의 비유 (the analogy of mill, Leibniz’s mill argument)와 자립적 정신
라이프니쯔는 "지각" 개념을 "단순성 속의 다양성" (the multiplicity in the unity)이라고 규정했고 이를 예시하려고 방앗간의 비유를 제시했다.
만약 우리가 방앗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사고 기계에 (a thinking machine) 들어가서 그것의 내부를 조사한다면, 우리는 서로 작용하는 기계의 부분만 찾을 수 있을 뿐, 지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단자론 17절)
여기서 Leibniz는 정신은 단일체이고 물체는 복합체라는 그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다. 기계나 A.I.(인공지능)은 아무리 정교하고 똑똑해도 그것은 사람의 정신 혹은 마음과 같을 수 없다, 곧 영혼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정신은 기계와 다르고 설령 인공지능(AI)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고유한 정신, 영혼을 전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다. 만약 AI가 자신의 모든 기능을 단일성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그 AI는 인간의 정신 혹은 통각(apperception)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다양의 통일성 작용은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성장과정과 교육 그리고 놀이 등을 통해서 길러 진다는 것이다. 일자성(unity)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일자성이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경우 건전한 정신의 발전이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너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영어 수학을 죽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라는 목표가 외타적(外他的)으로 입력이 되면 그것이 하나의 자기동일성 혹은 자아-정체성(self-identity)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진정한 “자기-규정(self-determination)”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외타적인 규정과 자신의 고유한 규정이 불일치하는 점이 온다.
이런 경우 올바른 도덕성이 형성이 안되고 결국 본능이나 습관 혹은 이기적인 자연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위에서 말한 조국씨의 자녀들이 그런 위기를 겪게 된다. 부모들의 과도한 간섭과 도움으로 인해서 자녀들은 건전한 자기-정체성 형성이 장애를 받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영혼은 건전한 도덕성 자율성 보다는 이기주의와 편리주의 등에 의해서 멍들게 된다.
이런 타율적인 교육과 간섭 혹은 사랑을 빙자한 충고 격려 등이 결국 자녀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억지로 배운 지식은 영혼에 붙어 있지 않는다” 혹은 “학습은 놀이와 같아야 한다” 라고 일갈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기어이 기계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기계는 라이프니쯔가 말한 것처럼 결코 단순성 속의 다양성을 혹은 다양성 속의 단순성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영혼들을 공부 기계로 만드는 한국의 학습 현실! 사실 이것이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이다. 부동산 문제니 청년실업 문제니 혹은 무슨 무슨 사회적 문제니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능력, 특히 정신적 능력이 높아지면 그런 문제들은 저절로 풀려 나간다.
저자 : 안재오
1. 서론 :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최근 필자의 작은 딸이 tvN의 방송 “프리한 닥터” 란 프로그램에 나온다기에 우리 식구들은 기다리다가 지난 달 그 방송을 보았다. 원래 이 방송은 경제와 건강을 주제로 한 것인데 그 날은 ‘공부 잘하는 법’ 같은 내용을 소개한다고 했다. 필자의 작은 딸 안소린은 현재 서울대 4학년으로 유튜브 방송 “소린티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주제는 공부 학습법 이다. 그런데 정작 TV를 보다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 날 주제는 아래의 사진처럼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였다. 필자 역시 사설 교습소를 운영한 적이 있어서 대학 입시 전형에 대해서 어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딸이 수능 점수 없이 서울대에 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수시로 대학 입학한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수능 최저 기준은 통과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수능 시험은 전혀 포함이 되지 않는 그런 입시 전형이었다. 그런데 방송 내용을 보다가 깜짝 놀랐었다. 그 분량의 주인공인 딸을 포함한 두 서울대 학생들이 수험생이었을 때 어떻게 시험을 준비했는지를 듣고 나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금수저도 아니고 철저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서울대에 당당히 입학한 것이었다. 필자 역시 가난해서 딸의 공부 뒷바라지 할 여유가 없었다. 강남 출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 그 엄청난 실험 시설에 사계의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딸은 돈이 거의 안드는 자연관찰 동아리를 스스로 결성하여 연구를 했다.
2. 입시 기계로 변한 수험생들
필자가 이 방송을 보고 개탄한 것은 다시 한번 한국의 입시위주의 교육, 학벌주의 교육이 참상(慘狀) 때문이었다. 이 둘은 모두 서울대 학생부 전형 등으로 입학에 성공한 케이스였는 데 그 준비 과정을 들어보니 자기 딸에 대해서도 몰랐던 일들이 많이 나왔다.
자율 학습 동아리나 진로 관련 활동 등의 전문적인 말들을 들을 때 느낀 점은 “한국의 입시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전문적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서울대 학생부 일반전형은 1. 자율활동 2. 진로활동 3. 동아리 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벌써 고 1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두 똑똑한 학생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 밖에 온갖 상장 및 보고서 논문 등도 잘 해야 한다. 물론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밖에도 논구술 시험도 있고 기타 독서 교양, 학업태도 등도 반영된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언제 그 많은 과제를 고 등학생들이 다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가정 여건이 어려워서 사교육 비용을 대줄 여력이 안 되는 집안의 자녀일 것이다. 실제로 안소린의 경우는 실제 그렇다. 머리는 좋으나 환경이 열악한 가정의 자녀들은 이렇게 서울대 및 각 유명 대학의 수시 전형을 노린다.
조국의 자녀 입시 관련 부정 문제로 한 때 수시 전형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시로, 수능 성적으로만 입학 사정을 한다면 서울에서 강북 지역은 아마도 서울대에 1명도 입학시키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조국 사태'가 바꾼 대학입시.... 서울 주요대학 정시 40%로 확대
"부모 영향력 최대한 배제하겠다"지만... 수능준비에 유리한 강남 등 교육특구 쏠림현상 심화될 듯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수능위주 전형 선발(정시) 비중이 40% 이상으로 확대된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이후 갑자기 나온 졸속 정책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28일 서울종합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3년 입시(현재 중3 대입)부터 정시 비중이 확대되고 논술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활동 및 자기소개서(자소서)도 폐지된다. 2002년 수시와 정시가 분리되면서 수시가 본격화된 지 20여년만에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는 조국 사태로 입시에서 '부모의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현상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입시제도를 뜯어고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들의 몫"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입력 : 2019.11.28.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위의 두 학생의 경우는 물론 부모의 영향력 없이 본인들 스스로의 준비만으로 수시 전형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외에도 조국 입시부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모의 권력을 통한 엄청난 입시 비리, 부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의-과학 학술 논문의 제 1저자로 되는 경우를 보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외에 조국의 딸의 경우 엄마 찬스 아빠 찬스로 온갖 경력 증명서 및 표창장을 휩쓸었다.
이런 정치인 권력층의 입시 위조를 때문에 위의 두 학생 같은 재능있는 학생들이 다시 피해를 볼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3. 플라톤의 교육 철학
이런 한국의 강제적, 타율적 혹은 불법적 교육 방식에 비해 고대 희랍인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학습과 교육을 중시했다. 특히 플라톤은 절대로 강제로 배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억지로 시켜서는 안되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자유인은 노예처럼 강제로 부릴 수는 없다. 특히 배움(학습)같은 정신적인 활동은 더욱이 강요되어질 수 없다고 플라톤은 그의 대저 『국가』에서 선언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 “한국교육비판” 21~22 쪽)
그 이유는 아래에 나와 있지만 억지로 배운 공부는 영혼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학습은 플라톤의 말처럼 놀이와 갗아야 한다. 물론 플라톤이 말하는 “어린 시절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미취학 아동 시기는 아니고 현재 한국의 초-중-고 시절을 다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강제적인 배움도 혼(마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있다. 물론 동물이나 노예처럼 신체의 고통을 통하여 배울 수 있기도 하다. 다른 능력은 몰라도 암기력 같은 하급의 정신능력은 억지로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서 교육이 아니라 조련이라고 해야 한다. 한국의 학습은 이처럼 훈련 아니 조련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물론 부모들이나 학원 강사들의 입장에서는 “다 너 잘되라고 그런다” 라고 억지 교육을 사랑으로 호도할 수 있다. 그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 현금의 학습 제도가 옳다 혹은 좋다는 가정 하에서 이런 말들은 가치를 가진다.
위의 tvN 방송에 나온 두 학생의 경우처럼 아무리 교육 제도가 열악해도 똑똑한 극소수의 애들은 결국 자기의 위치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진정한 장래의 지도자 재목들이 고사당하고 퇴출된다.
정신은 본래 자발적이다. 능동적이다. 이를 무시하고 타율적 수동적 강제를 자꾸 가하게 되면 곧 그 정신은 그렇게 된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정신의 칭찬으로 안다. 수동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별로 정신적인 어려움이 없는 근육 노동이나 주로 그런 일, 즉 단순한 일들을 하게 된다.
정신은 기본적으로 창의적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정신의 창의성, 능동성 덕분에 인류의 문화가 이 정도로 발전해 왔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쯔(Leibniz)는 정신의 작용을 단일성 속의 다양성 (multiplicity in unity) 라고 했다. 즉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는 유명한 방앗간의 비유를 예로 들면서 복잡한 물리적 사건을 정신이 어떻게 단일성으로 파악하는 지는 보여준다.
4. 방앗간의 비유 (the analogy of mill, Leibniz’s mill argument)와 자립적 정신
라이프니쯔는 "지각" 개념을 "단순성 속의 다양성" (the multiplicity in the unity)이라고 규정했고 이를 예시하려고 방앗간의 비유를 제시했다.
만약 우리가 방앗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사고 기계에 (a thinking machine) 들어가서 그것의 내부를 조사한다면, 우리는 서로 작용하는 기계의 부분만 찾을 수 있을 뿐, 지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단자론 17절)
여기서 Leibniz는 정신은 단일체이고 물체는 복합체라는 그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다. 기계나 A.I.(인공지능)은 아무리 정교하고 똑똑해도 그것은 사람의 정신 혹은 마음과 같을 수 없다, 곧 영혼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정신은 기계와 다르고 설령 인공지능(AI)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고유한 정신, 영혼을 전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다. 만약 AI가 자신의 모든 기능을 단일성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그 AI는 인간의 정신 혹은 통각(apperception)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다양의 통일성 작용은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성장과정과 교육 그리고 놀이 등을 통해서 길러 진다는 것이다. 일자성(unity)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일자성이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경우 건전한 정신의 발전이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너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영어 수학을 죽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라는 목표가 외타적(外他的)으로 입력이 되면 그것이 하나의 자기동일성 혹은 자아-정체성(self-identity)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진정한 “자기-규정(self-determination)”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외타적인 규정과 자신의 고유한 규정이 불일치하는 점이 온다.
이런 경우 올바른 도덕성이 형성이 안되고 결국 본능이나 습관 혹은 이기적인 자연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위에서 말한 조국씨의 자녀들이 그런 위기를 겪게 된다. 부모들의 과도한 간섭과 도움으로 인해서 자녀들은 건전한 자기-정체성 형성이 장애를 받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영혼은 건전한 도덕성 자율성 보다는 이기주의와 편리주의 등에 의해서 멍들게 된다.
이런 타율적인 교육과 간섭 혹은 사랑을 빙자한 충고 격려 등이 결국 자녀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억지로 배운 지식은 영혼에 붙어 있지 않는다” 혹은 “학습은 놀이와 같아야 한다” 라고 일갈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기어이 기계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기계는 라이프니쯔가 말한 것처럼 결코 단순성 속의 다양성을 혹은 다양성 속의 단순성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영혼들을 공부 기계로 만드는 한국의 학습 현실! 사실 이것이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이다. 부동산 문제니 청년실업 문제니 혹은 무슨 무슨 사회적 문제니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능력, 특히 정신적 능력이 높아지면 그런 문제들은 저절로 풀려 나간다.
1. 서론 :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최근 필자의 작은 딸이 tvN의 방송 “프리한 닥터” 란 프로그램에 나온다기에 우리 식구들은 기다리다가 지난 달 그 방송을 보았다. 원래 이 방송은 경제와 건강을 주제로 한 것인데 그 날은 ‘공부 잘하는 법’ 같은 내용을 소개한다고 했다. 필자의 작은 딸 안소린은 현재 서울대 4학년으로 유튜브 방송 “소린티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주제는 공부 학습법 이다. 그런데 정작 TV를 보다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 날 주제는 아래의 사진처럼 “수능 없이도 서울대 가는 비법 공개!” 였다. 필자 역시 사설 교습소를 운영한 적이 있어서 대학 입시 전형에 대해서 어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딸이 수능 점수 없이 서울대에 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수시로 대학 입학한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수능 최저 기준은 통과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수능 시험은 전혀 포함이 되지 않는 그런 입시 전형이었다. 그런데 방송 내용을 보다가 깜짝 놀랐었다. 그 분량의 주인공인 딸을 포함한 두 서울대 학생들이 수험생이었을 때 어떻게 시험을 준비했는지를 듣고 나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금수저도 아니고 철저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서울대에 당당히 입학한 것이었다. 필자 역시 가난해서 딸의 공부 뒷바라지 할 여유가 없었다. 강남 출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 그 엄청난 실험 시설에 사계의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딸은 돈이 거의 안드는 자연관찰 동아리를 스스로 결성하여 연구를 했다.
2. 입시 기계로 변한 수험생들
필자가 이 방송을 보고 개탄한 것은 다시 한번 한국의 입시위주의 교육, 학벌주의 교육이 참상(慘狀) 때문이었다. 이 둘은 모두 서울대 학생부 전형 등으로 입학에 성공한 케이스였는 데 그 준비 과정을 들어보니 자기 딸에 대해서도 몰랐던 일들이 많이 나왔다.
자율 학습 동아리나 진로 관련 활동 등의 전문적인 말들을 들을 때 느낀 점은 “한국의 입시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전문적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서울대 학생부 일반전형은 1. 자율활동 2. 진로활동 3. 동아리 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벌써 고 1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두 똑똑한 학생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 밖에 온갖 상장 및 보고서 논문 등도 잘 해야 한다. 물론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밖에도 논구술 시험도 있고 기타 독서 교양, 학업태도 등도 반영된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언제 그 많은 과제를 고 등학생들이 다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가정 여건이 어려워서 사교육 비용을 대줄 여력이 안 되는 집안의 자녀일 것이다. 실제로 안소린의 경우는 실제 그렇다. 머리는 좋으나 환경이 열악한 가정의 자녀들은 이렇게 서울대 및 각 유명 대학의 수시 전형을 노린다.
조국의 자녀 입시 관련 부정 문제로 한 때 수시 전형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시로, 수능 성적으로만 입학 사정을 한다면 서울에서 강북 지역은 아마도 서울대에 1명도 입학시키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조국 사태'가 바꾼 대학입시.... 서울 주요대학 정시 40%로 확대
"부모 영향력 최대한 배제하겠다"지만... 수능준비에 유리한 강남 등 교육특구 쏠림현상 심화될 듯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수능위주 전형 선발(정시) 비중이 40% 이상으로 확대된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이후 갑자기 나온 졸속 정책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28일 서울종합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3년 입시(현재 중3 대입)부터 정시 비중이 확대되고 논술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활동 및 자기소개서(자소서)도 폐지된다. 2002년 수시와 정시가 분리되면서 수시가 본격화된 지 20여년만에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는 조국 사태로 입시에서 '부모의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현상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입시제도를 뜯어고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들의 몫"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입력 : 2019.11.28.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위의 두 학생의 경우는 물론 부모의 영향력 없이 본인들 스스로의 준비만으로 수시 전형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외에도 조국 입시부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모의 권력을 통한 엄청난 입시 비리, 부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의-과학 학술 논문의 제 1저자로 되는 경우를 보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외에 조국의 딸의 경우 엄마 찬스 아빠 찬스로 온갖 경력 증명서 및 표창장을 휩쓸었다.
이런 정치인 권력층의 입시 위조를 때문에 위의 두 학생 같은 재능있는 학생들이 다시 피해를 볼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3. 플라톤의 교육 철학
이런 한국의 강제적, 타율적 혹은 불법적 교육 방식에 비해 고대 희랍인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학습과 교육을 중시했다. 특히 플라톤은 절대로 강제로 배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억지로 시켜서는 안되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자유인은 노예처럼 강제로 부릴 수는 없다. 특히 배움(학습)같은 정신적인 활동은 더욱이 강요되어질 수 없다고 플라톤은 그의 대저 『국가』에서 선언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 “한국교육비판” 21~22 쪽)
그 이유는 아래에 나와 있지만 억지로 배운 공부는 영혼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학습은 플라톤의 말처럼 놀이와 갗아야 한다. 물론 플라톤이 말하는 “어린 시절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미취학 아동 시기는 아니고 현재 한국의 초-중-고 시절을 다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강제적인 배움도 혼(마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있다. 물론 동물이나 노예처럼 신체의 고통을 통하여 배울 수 있기도 하다. 다른 능력은 몰라도 암기력 같은 하급의 정신능력은 억지로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서 교육이 아니라 조련이라고 해야 한다. 한국의 학습은 이처럼 훈련 아니 조련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물론 부모들이나 학원 강사들의 입장에서는 “다 너 잘되라고 그런다” 라고 억지 교육을 사랑으로 호도할 수 있다. 그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 현금의 학습 제도가 옳다 혹은 좋다는 가정 하에서 이런 말들은 가치를 가진다.
위의 tvN 방송에 나온 두 학생의 경우처럼 아무리 교육 제도가 열악해도 똑똑한 극소수의 애들은 결국 자기의 위치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진정한 장래의 지도자 재목들이 고사당하고 퇴출된다.
정신은 본래 자발적이다. 능동적이다. 이를 무시하고 타율적 수동적 강제를 자꾸 가하게 되면 곧 그 정신은 그렇게 된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정신의 칭찬으로 안다. 수동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별로 정신적인 어려움이 없는 근육 노동이나 주로 그런 일, 즉 단순한 일들을 하게 된다.
정신은 기본적으로 창의적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정신의 창의성, 능동성 덕분에 인류의 문화가 이 정도로 발전해 왔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쯔(Leibniz)는 정신의 작용을 단일성 속의 다양성 (multiplicity in unity) 라고 했다. 즉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는 유명한 방앗간의 비유를 예로 들면서 복잡한 물리적 사건을 정신이 어떻게 단일성으로 파악하는 지는 보여준다.
4. 방앗간의 비유 (the analogy of mill, Leibniz’s mill argument)와 자립적 정신
라이프니쯔는 "지각" 개념을 "단순성 속의 다양성" (the multiplicity in the unity)이라고 규정했고 이를 예시하려고 방앗간의 비유를 제시했다.
만약 우리가 방앗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사고 기계에 (a thinking machine) 들어가서 그것의 내부를 조사한다면, 우리는 서로 작용하는 기계의 부분만 찾을 수 있을 뿐, 지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단자론 17절)
여기서 Leibniz는 정신은 단일체이고 물체는 복합체라는 그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다. 기계나 A.I.(인공지능)은 아무리 정교하고 똑똑해도 그것은 사람의 정신 혹은 마음과 같을 수 없다, 곧 영혼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정신은 기계와 다르고 설령 인공지능(AI)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고유한 정신, 영혼을 전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다. 만약 AI가 자신의 모든 기능을 단일성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그 AI는 인간의 정신 혹은 통각(apperception)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다양의 통일성 작용은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성장과정과 교육 그리고 놀이 등을 통해서 길러 진다는 것이다. 일자성(unity)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일자성이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경우 건전한 정신의 발전이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너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영어 수학을 죽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라는 목표가 외타적(外他的)으로 입력이 되면 그것이 하나의 자기동일성 혹은 자아-정체성(self-identity)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진정한 “자기-규정(self-determination)”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외타적인 규정과 자신의 고유한 규정이 불일치하는 점이 온다.
이런 경우 올바른 도덕성이 형성이 안되고 결국 본능이나 습관 혹은 이기적인 자연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위에서 말한 조국씨의 자녀들이 그런 위기를 겪게 된다. 부모들의 과도한 간섭과 도움으로 인해서 자녀들은 건전한 자기-정체성 형성이 장애를 받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영혼은 건전한 도덕성 자율성 보다는 이기주의와 편리주의 등에 의해서 멍들게 된다.
이런 타율적인 교육과 간섭 혹은 사랑을 빙자한 충고 격려 등이 결국 자녀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억지로 배운 지식은 영혼에 붙어 있지 않는다” 혹은 “학습은 놀이와 같아야 한다” 라고 일갈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기어이 기계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기계는 라이프니쯔가 말한 것처럼 결코 단순성 속의 다양성을 혹은 다양성 속의 단순성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영혼들을 공부 기계로 만드는 한국의 학습 현실! 사실 이것이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이다. 부동산 문제니 청년실업 문제니 혹은 무슨 무슨 사회적 문제니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능력, 특히 정신적 능력이 높아지면 그런 문제들은 저절로 풀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