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사찰순례지는 전남 구례 천은사와 화엄사입니다. 남방제일선찰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절은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펼쳐지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의하면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 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후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610년(광해군2)의 일이다. 당시 절의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뒤이어 1679년(숙종5)에도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이로부터 절이름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924호인 극락전 아미타후불탱화, 보물 제1340호인 괘불탱, 보물 제1546호인 금동불감, 보물 2024호인 극락보전이 있으며, 전남유형문화재 제268호인 삼장탱화 등 18세기의 우수한 불화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있다.
화엄사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통일신라 8세기 중엽에 세워진 역사 깊은 사찰이며 전국의 사찰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거대한 중층 금당이자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으로 유명하다.
구례군이 현재 전라남도이기 때문에 화엄사가 백제와 연관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화엄사는 신라 고승들이 창건하고 중창한 절이다. 오늘날의 구례와 광양, 순천 지역은 6세기까지 가야의 영토였고,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이 가야의 전 지역을 신라에 완전히 병합하면서 이 지역도 신라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을 신라에 편입한 진흥왕은 화엄사를 세움으로써 해당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고, 아울러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신라의 전통적인 정복지역 유화정책과 신라 불교 고유의 중요한 특징인 호국불교사상과 연관되는데, 실제로 화엄사는 화랑의 정신교육 장소로 이용되는 등 군사 교육 용도로도 활용되었다.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신라의 고승 연기조사(緣起祖師)께서 창건했다. 이 분은 신라에 대승 불교를 도입했으며 진흥왕의 총애를 받았던 승려였다. 절의 이름은 당연하게도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붙었다. 이후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는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건설을 건의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법사께서 절을 증축하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 7층탑, 석등롱(石燈籠) 등을 지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677년(신라 문무왕 17년) 당에서 화엄종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대사께서 각황전을 창건하고 왕명으로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긴 것을 화엄사에 보관한다. 이 기록은 조선 정조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전라도 구례현의 읍지인 『봉성지(鳳城志)』에 적혀있다. 그리고 의상은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 사상을 가르쳤다고 한다.
화엄사는 역사적·학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 절 자체가 2009년 사적 제505호와 명승 제64호로 지정되었으며, 경내에는 현재 국보 5점, 보물 8점, 천연기념물 2점이 지정되어 있다.
국보로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 국보 제12호인 각황전앞 석등, 국보 제35호인 사사자 삼층석탑, 국보 제301호인 영산회 괘불탱, 국보 제336호인 목조비로자나불 삼신불좌상이 있으며, 보물로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 보물 제132호·제133호인 동·서 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앞 사자탑, 보물 제1040호인 화엄석경, 보물 제1348호인 사리장엄구, 보물 제2363호인 대웅전 삼신불탱, 보물 제2139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 입상, 천연기념물로는 제38호인 올벚나무, 제485호인 화엄매 및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순례일시 : 2024. 10. 6(일) 07:00 대전세무서 출발
- 순례장소 : 천은사, 화엄사
- 순례코스 : 대전(07:00) - 천은사(10:00) - 사시예불(10:30~12:00) - 점심공양(12:00~ 13:00) - 화엄사(13:30~14:30) - 춘향휴게소(15:00~15:30) - 대전(17:30)
* 점심공양 : 천은사
- 순 례 비 : 40,000원
- 입금계좌 : 하나은행 740-910157-83807(정인자) 010-5454-4560
자비행사찰순례단 회장 최종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