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성경은 창조주 신을 하나님아버지라고
번역했다. 좋은점도 있지만 나쁜점도 있다.
창조주 신을 하나님아버지라고 부르면
친근감은 있지만 기독교 종교의 신 정도로
작게 느껴지고,
창조주 신이라고 부르면 전인류적으로,
전 우주적으로 느껴지고, 단 한분이시고,
전지전능하게 느껴진다.
성경을 읽을 때 '창조주 신'을 기독교식으로
'하나님아버지'라고 읽으면 창조주 신이 꼭
기독교만의 '신' 같으시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신이 없다고 하거나
그냥 '신' 이라고 하듯이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이라고 읽지 말고
'창조주 신' 이라든지 '신' 이라고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어느 종교에서
어느 관점에서 '신'을 느끼는 것은 다 다를지라도,
그래서 신들이 무지 많은 것 같을지라도,
영의세계에서의 '신'은 총체적으로
딱 '한 분' 이시다.
더 없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91
더 있으면 '신'들끼리 전쟁해서 1인자를
가르느라고 인간새우등 몽땅 다 터진다.
그러면 신들의 전쟁 때문에 지구나
우주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창조주 신' 외에 '신'이 더 있으면
그 어떤 신이든 전지전능하지 않다.
...................................................................................................
(창세기 4장)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4장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상황을 영의세계법으로
기록하셨다.
그냥 육의세계법으로 기록하셨으면 알아듣기가 쉬웠을텐데
듣도보도 못한 영의세계법으로 기록하셔서 인간들이
알아먹을 수가 없다. 나도 이제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니
이제야 쪼끔 알겠다.
............................................................................................
■아벨의 죽은 제사
(창 4:3~4)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아멘.
아벨의 제사에 대한 기독교식의 해석은 이렇다.
아벨의 제사는 양의 처음 난 것, 첫 열매, 즉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분노한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지요. 이 그림은 율법(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예수가
죽임 당하실 것과, 아벨(예수)이 죽어 셋(그리스도)으로 부활하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세대를 통해 율법주의자들이
진리가 된 성도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얻음’이란 뜻. 아담의 장자이며 농부(창 4:1).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창 4:8). 에덴 동편 놋 땅에 거주하며 인류 최초의 여러
기술 문명들을 일으켰다(창 4:16-24). 성경에서 형제를 미워한 대표적
인물, 사탄에게 속한 전형적 악인으로 언급된다(요일 3:12; 유 1:11).
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그의 제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한 것은 믿음 없이 드린 제사였기 때문이라 가르친다(히 11:4).
아무튼 오늘날까지도 가인은 인류 역사 가운데 악인의 대명사로 불리는데,
현대 영어에서도 ‘가인’(Cain)은 ‘살인자’의 완곡한 표현으로, ‘씻지 못할
오명’을 가리켜 ‘가인의 표’(the brand of Cain)로 표현한다.
또 동생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 아벨의 행방을 물으실 때 했던
가인의 유명한 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Am I my brother’s
Keeper, 창 4:9)는 자신의 책임을 강하게 부인하거나 회피하는 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교회의 설교에서나 인터넷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들을 한다.
■아무때고 "아멘"
우리 교인들은 순진무구해서 아무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설교하면 눈물을 흘리며 ‘아멘’ 한다.
아무거나 '예수의 표상' 하면서 은혜를 끼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아벨은 그냥 아벨이고, 가인은 그냥 가인이고, 아브라함은 그냥
아브라함이고, 유다는 그냥 유다이고, 다윗은 그냥 다윗이고,
바울은 그냥 바울이고, 예수는 그냥 예수일 뿐이다.
성경은 성경이고 종교는 그냥 종교일뿐이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75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다 사하시고 돌아가셨으면 정말 전능하신
창조주 ‘신’의 뜻인 것이고, 예수가 기독교인들의 죄만 사하시고
돌아가셨으면 그냥 기독교의 신만 되면 되는 것이다.
부처가 불교의 '신' 인 것처럼,
알라가 이슬람교의 '신' 인 것처럼.
하지만 ‘성경’을 기독교인들만 위해서 쓴 것처럼,
예수를 기독교만의 예수처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성경을 아는 자들만, 예수를 믿는 자들만
십자가 사건을 믿는 자들만, 이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만
해당된다고 하면 그것은 '기독교 종교'의 뜻인 것이고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성경을 몰라도, 예수를 몰라도,
예수 십자가 사건을 몰라도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지구 종말의
인류까지 전 인류적으로 해당된다고 하면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승리'가 이순신을 믿는 자들에게만,
그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에게만, 그 사실을 전하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나 소나 조선인이라면
몽땅 해당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의 법'이 성경을 알든 모르든 믿든 말든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지구 종말의 인류까지 전 인류적으로 적용된다고
하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이고,
'성경의 법'이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나, 성경을 믿는 사람에게만,
성경을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하면 유대교나
기독교 종교의 정경뿐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아는 자들에게만 적용되고, 법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고 하면 불법을 행하고 수지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르고 행했을지라도 헌법에 적용되어 크게
뒤통수 맞는 일도 있다.
■대가 끊긴 아벨
아담과 하와가 가인을 낳고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 하였다"라고
되어 있지만 아벨을 낳고는 아무 말이 없다.
‘아벨’ 이라는 이름의 뜻은 ‘공허’ ‘허무’ 라고 한다.
인생은 결과를 보고 알 수가 있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30
가인은 리더자의 입장에서 살게 되지만
아벨은 그냥 대가 끊겨버렸다. 이름처럼.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고 하니까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유대교의 여호와로 풀고 있는데,
그냥 ‘신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고 읽어야 한다.
창세기는 '무속'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신께 기도를 해서 얻었다는 것인지 꿈으로 응답을
받아 가인을 낳았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신의 은혜로 인하여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성경은 그 사람의 이름이 언급됐냐? 이름의 뜻까지
기록되어 있냐?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큼 할애해서
기록되어 있냐가 중요한데 창조주께서 인생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 많으셔서 많이 쓰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건너뛰신다.
가인은 힘의 권력자의 조상이 되었지만
아벨은 그야말로 자기 대가 끊겨 버린,
가인보다 더 일반인이었다.
이쯤 둘 다 결혼을 했다든지 자녀가 있다든지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아 결혼하기 전인 것 같다.
우리는 창세기 시절의 모든 것을 기독교로 끌고 가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니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인류 일반 역사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먹지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불순종의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든지,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살인 이야기며,
노아 홍수 이야기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며, 그래서 네피림이 생겼다는
이야기며,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흩어져 버린 이야기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
버리셨다는 이야기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순종했다가 숫양을 대신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며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등이나
게하시의 눈이 열리니 천군천사의 모습이 보였다든지,
남자의 정자도 없이 예수가 태어났다든지, 그런 신화적인
영의세계의 일 등 잘 모르겠으면 그런가보다 잘 모르겠다
해도 된다.
그런 것은 인류일반 역사 이야기이며 ‘신’ 께서 그때 그랬다
라고 알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식으로 풀어보고,
해석하고, 누군가 그럴싸하게 주석해 놓은 것을 대대로
물려받으면서 설교에 인용하고 할 필요가 없다.
몇차원에 계신지도 모르는 창조주신께서 하신 일을
개미같은 인간머리로 해석하고 풀어보고 규명지으려고
하려니 그렇게 애 쓰다가 더 엉키기만 한다.
창조주신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이사야 55:8)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태복음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선한 행위
‘신’ 께서는 전도서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신)을 경외하고 그(신)의 명령들을 지키고
사람의 본분을 다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신)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 악 간에 심판하신다고 하시면서.
창조주께서는 '전 인류를 향하여' 하신 말씀을 유대교인이나
'기독교를 위하여'로 합리화 시키려니 에러가 많이 생긴다.
지금 현재 우리들이 행해야 할 일들은 선한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선한 행위’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야 한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80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89
“무슨 신이라는 것을 섬기더니 사람이 이상하게 변질됐어,
미친 것 같아, 가정도 버리고 역마살이 낀 것처럼 나돌아 다녀”
라는 소리 듣지 않고, 도덕적이고 바른생활,
가정에서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복하고 즐겁게 천국처럼 살고 있는지,
사회에서는 정직하고 성실하고, 거짓말 하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저런 기독교인 싫어서 교회가기 싫다 소리 듣지 않고, 제일 이기적이고
제일 구제하지 않는다 소리 듣지 않고, 청결하고 저울을 속이지 않고,
남 헐뜯지 않고,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 비웃고 남 무시하지 않고,
이상한 눈길을 보내지 않고, 마음 속과 말과 행동이 같은 것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야 한다.
정말 다른 사람에게 모든 일에 덕이 되고 본이 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인 때문에 시끄럽고 싫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내가 기독교 경력 40년 즈음에 깨닫는 것은 기독교인이
자기들이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우월성과 자랑 죄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기독교 우등생인 나를 비롯해서 아무 것도 아니고
성품이 더 나쁘고 인격도 더 나쁜 존재들이기만 한데 말이다.
목사들을 비롯해서 얼마나 거룩한 베일에 싸여 있는지
역겹기만 하다.
■동물제사법 원조?
아벨의 양을 잡아 바친 제사가 유대교의 동물제사법의 원조라고
해석하려고 하는데 아니다.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까지 하나님은
동물을 사람에게 붙이지 않으셨다.
홍수 이후 창세기 9장에 가서 짐승이나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를 사람에게 붙이셨다.
채소 같이 사람의 먹을 것이 되라고.
아벨의 제사는 신이 명령하신 것이라는 말씀이 없다.
노아홍수 이후에 노아가 동물을 잡아바쳤다.
(창세기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이때가 동물제사법이 실행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전이든 어디서 또 이런 제사가 있었는지는 그 때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다.
아브라함에게는 제물을 바치라고 명하셨다.
(창세기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창세기 22장에는 신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 부분은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되는 영성이다. 이런거 따라하면 개쪽난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고 뚝심이 있어서 입 꾹 다물고
아들을 제물로 바칠 결심을 단단히 한 것 같지만
신께서 그런 움직일 수 없는 믿음까지 주시고
행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숫양을 준비하시고 동물을 제물로 바치게 하셨다.
욥은 또한 무슨일 있을 때마다 제사 지내기로 유명한데
어떤식으로 지냈는지는 모른다.
■하늘의 신
아벨이 양을 잡아 바치고 가인이 곡식으로 제사를 지냈을 당시는
지금 기독교가 알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 예수라는 신에게 바친
것이 아니다.
성경을 쓸 즈음에서는 ‘여호와께’ 라고 알게 된 것이고,
그 성경을 번역한 한국에서는 ‘하나님께’ 라고 한 것 뿐이다.
기독교에서 아브라함과 동시대에 살았다고 푸는 욥이라는
사람도 동방 우스 땅에 살면서 신께 제사를 지냈던 의인(?)으로
유명한데, 이도 지금의 기독교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에게
제사지낸 것이 아니라 자기네 부족의 신에게 제사한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그냥 어딘가 계실 것 같은 ‘신’에게 바친 것이다.
가인하고 아벨이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때 당시
인간들이 아벨하고 가인만 있었다고 하면 안 된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사회까지 형성되었고 가인과 아벨은
가족관계였지만 세월이 흐른뒤엔 남남같이 된 사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땅파먹고
살았을 때를 우리가 구석기시대로 규정하고 있을텐데.
가인이 태어났을 때는 몇년이 흐른건지 알 수가 없고
아벨이 태어났을 때는 또 몇년이 흐른건지 알 수가 없다.
구석기 쯤에도 양을 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사회인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사촌지간에 왕래가 있으면 그나마 아는 사이로
지낼 수 있지만 왕래가 없으면 길 가다가 만나도 모르는
사이처럼 된다. 그러다 사촌을 넘어가면? 원수지간이
되어도 모르는 사이가 된다.
수십년 수백년 수만년이 흐른다면? 완전 남남이다.
조금만 원수져도 쳐 죽여도 션챦을 정도로 남남이 된다.
신께 동물을 바치고 곡식을 바쳤다고 해서 동물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고, 곡식제사는 하나님이 안받으셨다고
알면 안된다.
이 때 제사는 동물을 어떤 식으로 잡아 죽이고 어떤 식으로
신에게 바치는 형식을 취한 것인지 모른다.
이 번제라는 것도 그 때 당시는 번제인제 뭔지 모르는 그냥
그 시대 무속으로 지낸 제사일 뿐인데 성경을 쓸 때쯤 신께서
‘번제’ 라고 알려주셨을 수도 있고 성경법으로 쓰다 보니
그것은 ‘번제’ 였다고 알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둘은 어떤 사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제사법을 갖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다. 가인이 이겼다.
종교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끝이 없다.
■아주 먼 동생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이고 나서
신께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어보시니
가인이 대답한 말로써 동생을 돌보는 것을 회피하는
대답이라고 기독교에서 정죄들을 많이 하고 있다.
가인이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벨이 동생으로서 가인 가까이에서 친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벌써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이리저리 흩어져서 남남같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내가 누구를 살인했다고 하면 영의세계에서는
‘창조주 신’께서 “아무개야 그 애는 어디 있느냐?” 라고
물어보시고
나는 “내가 내 형제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가인만 회피하는 대답을 한 걸까?
우리는 내 동생 내 오빠 내 형 등을 잘 돌보고
지키는 자들일까? 오래된 친척들도 잘 돌본다고?
옆에서 굶어죽어도 잘 모를텐데...
옆에서 때려 죽여도 잘 모를텐데...
과연 내가 누구를 지키는 자일까?
■가인의 기우제
(창세기 4: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이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렇게 그냥 그냥 건너뛰어야 하는 인생에 있어서는
세월이 지난후에 라고 한다. 그것은 몇년인지 모른다.
가인이 농사를 짓다보니 물이 필요했는데 그때도 비가 왔는지
어쨌는지 그 때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보면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물이 하늘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우제'라는 것을 드렸는지 모르겠다.
이런 것을 기독교가 말하는 예배의 형식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구석기 시대 사람으로 하늘에 제를 지낸 것이다.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양을 잡은 것이다.
지금의 한국식으로 본다면 돼지를 치는 사람은 돼지를 잡았을 것이고,
소를 치던 사람은 소를 잡았을 것이고, 닭을 치던 사람은 닭을 잡았을
것이고, 사람까지 바치는 시절도 있었다.
■아벨의 동물제
(창세기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아멘.
아벨은 '자기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자기도 라는 것은 먼저 지낸 것이 아니라 누굴 보고 따라했을때
쓰는 단어이다. 자기도 이제 드렸다.
양치는 자로 따라하느라고 제사를 지냈는데 잘못됐나보다.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에서 기독교는 '받았다'는
것만 신경쓰고 아벨을 무조건 칭찬하며 박수쳐 준다.
죽임당한 예수의 표상이라고 하면서.
"아이고 하늘의 신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네"
‘신께서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은 ‘제물이 죽었다’는 것이다.
제물이 산채로 제단에 살짝 올려놔졌다가 제사가 끝나면
산채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는다는 것이다.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은 아벨도 죽고
그 제물도 죽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가인도 살고 제물도 살았다는 것인데 곡식이야 죽고
살 것도 없다.
기독교식으로 풀었을 때는,
신께서는 아벨에게 “어이구 이쁜 내 새끼 나에게 양을 잡아
죽여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지내다니 이쁘구나” 하셨다는 것이고,
가인에게는 “이 녀석이 제사를 지내려면 동물을 잡아 바쳐야지
그따위 피도 흘리지 않는 곡식으로 바치다니 말도 안 되는 구나
이런 나쁜 놈”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신께서 아벨이 양을 잡아 바친 제사가 정말 합당하셨다면
아벨은 살고 양만 불사르셨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제사장이 동물을 잡아
제사를 지냈을 때마다 제사장이 죽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제사장들은 매번 죽을까봐 두려워했으며, 발에 끈을 묶고
들어갔다. 죽었으면 줄을 잡아당겨 꺼내야 했으므로.
아벨의 양을 죽여 바친 제사라는 것과 이스라엘 동물제사법과
기독교의 예배법을 일원화 시키려니 이상한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벨의 죽음
(창세기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이 아벨을 들에서 쳐 죽이기 전에 영의세계의 장면이 나온다.
(창세기 4: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것을 기독교식으로 읽으면 가인이 아벨을 향하여
어찌 못해서 분하여 하는 것 같고, 신께서 "너의 그 생각은
죄다" 라고 하시는 것 같다. "아벨을 죽이지 않는 것이 선이다.
아벨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너의 죄인데 너는 그 너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 라고 하시는 것 같다.
신께서 가인에게 분하여 한다고 나무라시는 것 같다.
이것은 '신'께서 육체 가인과 대화한 것은 아니다.
'신'께서 영의세계에서 가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가인이 아벨과 무언가 언쟁을 하고
들에 있을때 때려 죽였는데
성경에 보면 영의세계의 장면이 나오고 나서
이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신의 심판과
계획이었고 명령이었다. 육의세계의 현실이다.
■신의 명령
하나님의 천상 회의 장면이 나오고 나서 욥이 두들겨 맞았다.
욥은 무슨일 있을 때마다 제사 지내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자식들이 허구헌날 모여 잔치를 벌이고 나면 식구 수대로
제사를 지냈다. 아주 철두철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생활편이 최악이었던 욥은 재산 뜯기고
자녀 다 죽고 자기몸도 만신창이가 돼어 죽을만큼 고생하다
신께 용서받고 ㅡ형량을 다 마친것이다 ㅡ개과천선하게 됐다.
제사가 중요한게 아니라 생활편이 중요한 것이다.
욥의 생활편 점수는 온동네 사람들이 침을 뱉었다.
하나님의 천상 회의 장면이 나오고 나서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거짓의 영이 사람에게로 들어가서 거짓말이 오고 가고
죽고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열왕기상 22:19~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 왕에게로 들어가니
사울이 시끄럽게 떠들게 되고 변덕스러운 사람이 됐다.
(사무엘상 18:10)
하나님께서 다윗의 백성들을 혼내시기 위해서 인구를
세는 죄를 짓도록 계획을 세우시고, 인구를 세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게 하도록 사탄이 쓰임 받고, 다윗이 인구를
세는 죄를 짓게 되고 그 일로 수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무엘하 24:1) (역대상 21:1~2)
가롯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고 나서 유다가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하게 된다.
천상에서의 명령이 없이 이 땅에서 마구잡이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이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우리 이방인의 세계는 해당이 안된다고 우기려면
성경을 믿지도 말라.
만약 누구든지 세상의 일들이 '마구잡이'식으로 '재수'식으로
'우연'식으로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고 우기고 싶으면
'창조주 신' '전능의 신' '심판의 신' 이든 아무 신이든지
없다고 하면 된다. 그냥 인생이 되는대로 산다고 하면 된다.
만약 누구든지 '홀로 스스로 계시는 한 분이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 없이 '사탄'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죽음도
불러 일으키고 지옥도 마구잡이로 털어 넣는다고 우기고 싶으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과 '루시퍼 사탄'의 전쟁이라고 하면
되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전지전능' 이라는 단어를
빼면 된다. 그렇게 성경을 바꿔서 재발행하면 된다.
만약 누구든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탄'을 사용하시는
것인데 사탄이 자기 마음대로 일처리를 하는 것이라고
우기고 싶으면 신의 위탁제도 라고 하면 된다.
전능하신 창조주신께서는 힘이 모자라시고 바쁘시고
시간이 없으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려니 정신이 사나우시고
거대한 우주를 돌려야 하시는데 마땅한 일군들이 없고
계획을 세우셔야 하는데 참모도 없으시고 그런거 없다.
창조주신은 미련한 천사들을 데리고 일을 하신다.
■미련한 천사들의 종류
▶창세기 19:1(소돔을 멸하려고 온 천사)
▶민수기 20:16(애굽에서 인도해내는 천사)
▶사무엘하 24:16~17(아라우나 타작마당 곁에 대기하고 있는 천사)
▶열왕기상 19:5(먹을 것을 가져온 천사)
▶역대상 21:12(이스라엘을 멸할 천사)
▶역대하 32:21(적군을 치는 천사)
▶시편 34:7(사람을 지키는 천사)
▶시편 35:6(악인을 공격하는 천사)
▶시편 78:49(하나님의 노여움, 진노, 분노, 고난, 재앙의 천사)
▶시편 91:11(사람을 지키는 천사)
▶시편 103:20(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천사)
▶시편 148:2(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
▶예레미야 4:7(사자, 멸하는 자)
▶다니엘 6:22(다니엘을 구한 천사)
▶호세아 12:4(야곱과 씨름한 천사)
▶요한계시록 7:2(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는 네 천사)
▶계시록 8:6(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
▶계시록 14:17(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
▶계시록 14:18(불을 다스리는 천사)
▶계시록 15:1(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
▶계시록 18:1(큰 권세를 가지고 땅이 환하여지는 영광을 가진 천사)
▶계시록 18:21(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한 힘 센 천사)
▶계시록 19:17(태양 안에 서서 큰 음성으로 외치는 천사)
▶계시록 20:2(사탄을 잡아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는 문지기천사)
▶계시록 21:9(예수님의 신부를 보여주는 천사)
▶여기에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군대장관 '미가엘 천사장'이 있다.
이런 능력을 행하는 천사들도 미련하다 하신다.
왜냐하면 천사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하나도 없고, 오직 절대적으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신의 뜻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창조주신은 그냥 홀로 전적으로 전자동으로 혼자 하신다.
죽이시고 살리시고, 때리시고 싸매시고 혼자 하신다.
■줄을 서시오!
‘죽음’ 이라는 것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신의 결재 없이
사람들이 ‘우연히’ ‘그냥’ ‘저절로’ ‘재수 없게’ ‘실수로’
‘살다보니’ ‘화가 나서’ ‘죽이고 싶어서’ ‘재미삼아’ ‘묻지마식’으로
마구잡이로 죽이고 죽고 한다면 ‘전능하신 창조주 신’을
믿지 말고 없다고 하면서 그냥들 살아라.
종교도 가질 필요도 없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그들은 그래도 ‘세상을 다스리시는 신’이
계시다고 믿는 것이다. 그 신이 여호와든 하나님이든 예수든
알라든 부처든 무엇이든 이라고 알고들 있는 것 뿐이다.
특히 기독교는 생사화복 생로병사 빈부귀천 흥망성쇠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고,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고, 때리시고 싸매시고 하신다고 말들은 하고들 있다.
그런데 거의 들의 백합화나 참새만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하나님이, 어느 정도는
우연히 관리된다고 믿고도 있다. 게다가 좋은 것들은 하나님이
나쁜 것들은 루시퍼사탄이 관리한다고 믿고도 있다.
①모든 것을 오직 창조주신(하나님)이 관리하신다고 믿던지
②좋은 것은 창조주신이, 나쁜 것은 루시퍼사탄이 관리하신다고
믿던지
③어느 정도는 하나님이 관리하고, 어느정도는 루시퍼사탄도
관리하고, 나머지는 우연히 저절로 재수가 있고 없고 운이 좋고
나쁘고 하면서 관리된다고 믿던지
줄을 서시오!
■아무개야 어디있느냐?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을 지금의 우리 시각으로 본다면
‘세상을 다스리시는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시고 공평하시고
정직하시고 신실하시고 편벽되이 행하지 않으시는 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가인은 신에게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다.
엄연한 살인이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니 ‘하나님’ 이라고 ‘여호와’ 라고 하시는
신이 등장하시면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신다.
전능하신 신께서는 왜 아무 것도 모르실까?
아담이 하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었을 때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신께서는 왜 맨날 물어보실까?
전능하신 신께서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안 보이시나?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정말 모르시나?
이상하시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할아버지신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창조주 신이시라는데.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했는데 먹었다.
그날 여호와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다.
아벨이 제사를 지냈는데 형한테 맞아 죽었다.
그날 여호와께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셨다.
하나님께서 영의세계에서 "아무개야 어디 있느냐?"
하시면 육의세계에서 아무개는 죽는 것인가.
■죄를 다스리는 권세
(창세기 4: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이 언뜻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려고 안색이 변하고 분하여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신이 죽이지 말라고 혼내시는 것 같다.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고 죄를 짓기를 원하는 자 같이
읽어질 수가 있다.
가인이 아벨을 처단하게 된 경유를 영의세계법으로 기록해서
더 모른다.
하지만 영의세계에서 보면 신께서 가인에게 지금 선을 행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선을 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네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아벨을 죽이라는 신의 명령이 없었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못 한다. 우리는 그때 당시 아벨이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설마 신께서 동물제사를 지낸 그 착한
아벨을 죽이라고 하셨겠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한길 물 속은 알아도 열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역산을 해보면 가인과 아벨은 다툼거리가 있었다.
이걸 죽여 말어 하는 갈등을 하고 있는 상황일수도 있다.
육의세계에서 볼땐 가인이 나쁜 놈 같고 아벨이 좋은 놈 같다.
아벨이 좋은 놈인데 창조주신께서 죽이실리 없고,
가인이 나쁜 놈인데 보호해 주실리 없다.
욥도 신께 나쁜놈으로 계산되어 재산 털리고 자녀 다 죽고
전신 피부병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죽을만큼 혼났다.
(전도서 7: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어떤 대화를 들어보면 ‘이 사람’이 잘못하는 것 같지만
정작 사실은 ‘저 사람’ 이 잘못했다는 헷갈리는 대화도 있다.
가인이 신께 혼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아벨이 맞아 죽은 것이다.
■신이 내린 권력
이것은 '창조주 신' 께서는 가인의 행동을 '선'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보호의 표시도 해주셨다. 그러면 육의세계에서
다른 인간들이 가인을 두려워하게 된다.
(창세기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은 창조주 신의 '선'을 행하고 낯을 들고 다녔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하게 됐다.
(에스더 4:11)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그는 힘의 권력의 원조가 되어 왕권을 휘둘렀는데 그 왕권은
백성들의 죄와 목숨을 다스릴 수 있는 신께서 내린 권력이었다.
(창세기 4: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신께서 가인에게 판결하신 말씀이시다.
이 말씀만 보면 가인이 아무리 땅을 파고 먹고 살려고 해도
안 도와줘서 가난하거나 노숙자 같이 된다는 말씀 같다.
하지만 가인이 놋 땅으로 옮기면서 성을 쌓고 '에녹' 이라는
이름을 짓는데, 성 안에서 산다는 것은 평민이 아니라 왕권을
행사하는 삶으로 리더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나 목축하는 천민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영의세계법으로 말씀하셔서 모른다 우리는.
그 후손 '라멕'에 가서는 두 아내를 취하는 일부다처제의
시스템을 갖추는데, 그런 삶은 천민으로는 전혀 안 되는
양반 이상의 삶이라는 것이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라는 말은 가인이 이제
신을 섬기는 것을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창세기 4: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의 후손으로 갈수록 힘의 권력이 더 쎄졌는데
10배 이상으로 강해졌다.
"나의 상함으로 소년을 죽였다" 하니까 무슨 동네깡패가
애 하나놓고 팬줄 알면 안된다.
지도자들의 전쟁이다.
■왕사 기록
신이 주신 지배자들의 권력은 무섭다.
일반인들이 볼땐 나쁜놈들 같지만 신이 주신
권한이라 어쩔 수가 없다.
(예레미야 2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가인은 천민의 삶이 아니라 왕권을 행사하는 삶이었고
그 후손들도 왕권을 행사하는 상위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도 양반들이 일부다처제로 살았고
왕들은 더할 나위없었다.
솔로몬 왕이 최고였는데 후궁이 1천명이나 됐다.
그렇게 훌륭했다던 다윗 왕도 왕비가 많았었다.
가인의 후예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음악인이었으며
구리와 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드는 장인들이다.
성경에 가인의 후손들 이름이 적혀있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적혀있고, 아내들의 이름이나, 누이의
이름까지 적혀있다는 것은 그냥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일반인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사에나 기록되어 있을 수 있는 지배자들이다.
욥처럼 중요한 인물을 기록할 때 조차도 아내의 이름이
없었으며 10명의 자녀들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나중에 욥이 개과천선한 후에는 딸 이름들이 기록되었다.
■지도자들의 전쟁
지금 현재 '살인죄'라는 것이 헌법화 돼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선' 이라는 것은 '착한 사람'을 누구 때리지 않고
싸우지 않고 뺏지 않고 죽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악' 이라는 것은 누굴 때리고 욕하고 싸우고 뺏고 죽이고
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가 있는데, 그것은 일반인들의
삶에서의 이야기이다.
부족간의 싸움이나 전쟁이나 나라간의 전쟁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창조주 신의 명령을 받든' 모세의 명으로 형제와 형제가 칼을
휘둘러 3천명 가량이 죽는 일도 있었다(출애굽기 32:27~28).
엄청난 살인죄?
야곱의 아들 레위와 시므온은 다른 부족 남자들을 할례를 받게
해놓고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다 죽여 버렸다.
그것도 거짓말을 해놓고 말이다(출애굽기 34:25).
엄청난 살인죄?
그런 것들이 지금 말하는 지옥에 가야만 하는 나쁜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들이 지옥에 가야 하는 살인죄였으면 신께서 모세를 죽이셔야
했고, 레위와 시므온을 죽여버려서 지금의 '영적인 레위제사장'
이라는 말도 없어야 한다.
살인자 집단의 원조가 왜 기독교 목사들의 선배란 말인가.
이 부분이 항상 궁금했었다 나는. 왜 살인자들이 기독교와
연관있는지, 기독교 목사들이 왜 영적 레위인인지 궁금했다.
겨우 사람 하나 죽인 가인은 '살인자의 대명사' 처럼 여기고
철천지 원수라고 여기고 있고, 아주 타 부족의 씨를 말린
레위는 자신들의 영적인 선배라고 하니 어의없다.
사울에게 아말렉을 침략하게 해놓고 그 부족들의 노인이나
장년이나 부녀나 애기나 가축이나 모든 씨를 다 없애버리라고
명령하신 분이 창조주 신이시다(사무엘상 15:2~3).
엄청난 살인죄?
이런 것이 그냥 민간인들의 싸움이라면 살인죄가 어쩌구
저쩌구 할 수 있지만, 옛 부족끼리의 싸움이나 나라끼리의
싸움과 전쟁에서는 살인죄가 성립이 안 된다.
어떤 부족이 이기냐 지냐의 문제다.
어느 나라가 이기냐 지냐의 문제다.
■재판 위임
이런 신의 명령이 먼저 영의세계에서 있는 것이다.
(에스겔 21장)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창조주신께서 인간왕에게 인간 재판을 위임하셨다.
(에스겔 23:23~25) "그들은 바벨론 사람과 갈대아 모든 무리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과 또 그와 함께 한 모든 앗수르 사람
곧 준수한 청년이며 다 고관과 감독이며 귀인과 유명한 자요
다 말 타는 자들이라. 그들이 무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싸리라
내가 재판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들의 법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내가 너를 향하여 질투하리니 그들이 분내어 네 코와 귀를 깎아 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아멘.
창조주신께서 인간 권세자에게 신의 권세를 위임하셨다.
(로마서 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