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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은 아시아의 미래가 아니다 | ||||||||||||||||||
[Future] 2011 아시아미래포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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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석 부편집장
“아니, 일본은 (동아시아공동체 논의가) 왜 ‘벚꽃’처럼 금세 시들었죠?” 지난 11월15~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1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마틴 자크 중국 칭화대 교환교수가 던진 화두다. 벚꽃만큼 금방 지는 꽃도 드물다. 2009년 역사적 정권 교체를 이룬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동아시아공동체를 제창했으나, 어느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선회한 것을 일본의 나라꽃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같은 민주당 정권의 노다 요시히코 현 총리는 지난 11월11일 TPP 협상 참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로써 동아시아에서 다자간 지역 협정 논의는 크게 동아시아공동체와 TPP로 대립각이 세워졌다. 동아시아공동체와 TPP는 우선 지역적 구도를 달리한다. TPP는 태평양을 걸쳐 분포하는 비아시아권을 아우른다. 차라리 아시아 국가가 주변 회원국이다. 애초 TPP는 2005년 뉴질랜드·칠레·싱가포르·브루나이로 시작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2009년 미국이 참가하면서 덩치가 커졌고, 이어 일본과 캐나다·멕시코가 참가의 뜻을 밝혔다. 반면 동아시아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아세안과 한국·중국·일본, 즉 ‘아세안+3’을 대상으로 한다. 정치·경제적 대립 구도도 깔려 있다. 일본 정부가 TPP로 방향을 튼 것은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왜 뒤늦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TPP에 참여하면서 TPP를 주도하려 할까?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은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그동안 외교정책의 70%를 중동에 쏟았지만, 오히려 통솔력이 떨어지는 등 미국의 존재감은 쇠퇴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소모전이 있어 이제 아시아·태평양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마저 위기에 처한 것도 한몫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최근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 11월호에 ‘미국의 태평양 세기’(America’s Pacific Century)라는 제목으로 “미래의 정치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가 아닌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TPP, 실익 적고 미국 편향 우려 미국이 아시아를 원함에도 동아시아공동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우선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지리적 개념 자체가 미국이 주도적으로 포함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동아시아공동체의 중추국이 될 수밖에 없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작용했다. 일본의 TPP 가입은 미국의 권유로 이뤄졌다. 반면 미국은 중국을 왕따시켰다. 지난 11월11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 때의 공동기자회견이 이를 잘 대변한다. ‘일본의 TPP 참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쏟아지는데도 사회자가 이를 건너뛰려 하자, 중국의 위젠화 상무부 차관보는 “질문이 있지 않았느냐”며 “지금까지 우리는 (TPP에) 초대받은 적이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한국도 미국 주도의 TPP에 참가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 정부 쪽은 서두를 필요가 없고 우선 미국과의 FTA 비준이 먼저라는 태도다.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TPP에 가입할 경제적 유인이 없다”고 봤다. TPP의 기존 9개 회원국과 한국은 이미 FTA를 맺었거나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TPP 추진도 동력과 실익 면에서 물음표를 떼기 어렵다. 일본 수출의 중국 의존도는 지난 10년간 거의 3배 늘어 19.4%가 됐다. ‘아세안+3’에 대한 의존도는 같은 기간 27.4%에서 42.2%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에 대한 의존도는 절반 수준인 15.6%로 떨어졌다. 이처럼 ‘아세안+3’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지만 일본은 공동체 구상으로 인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보탠 ‘아세안+6’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추가된 3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의존도는 3.6%에 불과하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전문위원은 이런 일본의 행태에 대해 ‘길 잃은 일본’이라면서 “경제적 실익보다 중국 견제에 초점을 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TPP 러브콜을 받은 것이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은 중국의 자기장 안으로 흡수되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 한·중·일 FTA 혹은 ‘아세안+3’에 소극적이다. 따라서 통합의 판을 키우거나 미국의 뒤에 숨는 것이다”라고 봤다. 당내 지지 기반이 취약한 일본 노다 총리의 TPP 추진 또한 쉽지 않다. 일본의 야권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한-미 FTA 비준 추진에 대한 한국의 반대 여론만큼이나 유사한 상황이다.
반면 동아시아공동체의 필요성에는 한·중·일 대부분의 외교·통상 전문가가 동의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무역의존도가 이를 방증한다. 한국의 ‘아세안+3’ 수출 비중은 2001년 34%에서 현재 44%로 늘었다. 아세안에 대한 수출 비중도 10.9%에서 12.9%로 증가했다. ‘아세안+3’,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 각각의 역내 수출 비중을 비교해도 같은 기간 유일하게 ‘아세안+3’만 증가했다. 산업구조 차원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가 미국이나 유럽 주도의 기존 지역 공동체보다 지속 가능한 모형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은 미국 주도의 FTA나 TPP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리스 위기로 불거진 EU에 대한 성찰과도 연결된다. 데라시마 지쓰로 이사장은 “미국도 유럽도 금융 완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금융만 활발해질 뿐, 그 돈이 기술 발전이나 고용 창출에 활용되지 않고 다시 머니게임의 재원이 돼 월스트리트가 좋아하는 주가만 띄워왔다. 그것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실물경제가 상대적으로 튼튼한 동아시아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196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업화를 통해 전자·자동차·유화·섬유 등 주요 제조업의 세계적 생산기지로 구실했다. ‘1% 탐욕’의 부작용도 동아시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다국적기업 위주로 이윤과 배당을 좇아 임금이 싸고 원료 가격이 저렴한 동아시아로 꾸준히 공장을 이전해왔다. 국내의 한 유명한 경제연구소는 지난해만 해도 ‘아세안+3’의 약점으로 “금융기법에서의 발전 속도가 낮아 신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대응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지만, 사실 이는 약점이 아닌 장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권 때의 지나친 친미적 경향을 벗어나려면 동아시아공동체가 필요하다. ‘동북아’ 보다 ‘동아시아’인 이유
FTA·EU 틀 깨고 새 패러다임 고민해야 동아시아는 내부적으로 유럽보다 경제·정치·언어적 차이가 커 실물경제의 통합 정도인 FTA 수준이 될 것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여러 경제학자들의 관점이다. 하지만 FTA 등을 바이블처럼 여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일부 제기된다. 박승우 교수는 “동아시아공동체는 또 하나의 NAFTA나 EU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을 포함하는 막강한 경제공동체가 불철주야로 자기 이익만을 위해 ‘악마의 공장’이 되어 돌아갈 때 그것은 환경은 물론 타 공동체의 고용 등에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동아시아공동체에 FTA라는 타이틀이 필수적이지도 않다고 본다. 수출량 증가 등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상생을 포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역내 이주노동, 국제결혼, 관광 등이 급증하면서 아래로부터 ‘일상적인 동아시아 만들기’가 진행 중이다. 역내 시민들의 이런 움직임에 각국 정부가 길만 터줘도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하나의 발걸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