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10-16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누가복음 7장 18절-23절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하버드대학 교수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chiel Nouwen)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장애인공동체이며 ‘방주’라는 뜻을 가진 “라르쉬(L'Arche)”에 속해 있는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 브레이크’라는 곳에서 “아담”이라는 청년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아담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살 수 없는 29세의 정신지체청년입니다. 그런데 헨리 나우웬이 하는 일은 그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그를 깨워서,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잠자리를 돌보아 주고, 대. 소변을 다 받아내 주는 일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날마다 녹초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껏 그를 돌보아 주어도 아담은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허공만을 바라보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줌을 싸고, 똥을 싸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조용히 아담에게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이보시오, 아담. 당신은 이렇게 당신의 똥이나 치우고, 오줌이나 닦아내는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는 거요? 나 세계 제일의 하버드 대학 교수 헨리 나우웬이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아담’이고,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이 세상 사람으로는 제일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 본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자기에게 요단강에 나아와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예수님의 신 들메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분명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았고, 믿었고 말할 수 없이 기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례 요한에게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어찌해서 예수님을 의심하게 되었습니까?
당시에 세례 요한은 헤롯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헤롯의 감옥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감옥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햇빛도 비치지 않는 토굴에 갇혀 처참한 지경에 있는 그에게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일, 로마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신 일, 또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신 일등 많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례 요한이 세상을 향해 외친 메시지는 회개와 심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3장 7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다고 전해들은 일들은 회개와 심판이 아니라, 가치 없는 이방인의 종이나 고쳐 주고, 회개도 하지 않는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나 살려 주고, 죄인들을 사랑해 주고, 병을 고쳐주며 한마디로 인심이나 쓰고 다니는 느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예언했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그리고 하찮은 일만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자연히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즉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입니까? 아니면 다른 분을 더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오실 그이’ 즉 메시아임을 어떻게 무엇으로 증명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보여 주신 메시아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먼저 약한 자, 병든 자를 도우신 것입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에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고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35장 5절에서 6절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라고 오실 메시야를 예언한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를 찾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잘난 사람만 제자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약한 사람,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 반대입니다.
약한 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건강하고 잘 난 사람들만이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건강하고 강한 자들을 위주로 만들었고, 자기들만의 천국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들입니까?
세상에서 거들 떠 보지도 않는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를 찾아 오셔서 고쳐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는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더럽고 병들었다고 외면하고, 곁에 오지 못하게 해도 친히 오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중에도 몸과 마음에 병이 드신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께 고쳐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소외된 자, 무시당하는 자들을 도우셨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에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는 이 말씀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바로 이사야서 61장 1절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 죽은 자, 가난한 자들은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 사람들입니까? 한마디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있으나마나 한 사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있으므로 골치 아픈 사람, 요즈음 말로 하면 곁에 함께 존재하므로 자신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재수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항상 그들을 찾아 가셨고, 뿐만 아니라 친구가 되어 주셨으므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까지 바리새인들로부터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이사야 53장 3절에서 “인간의 질고를 아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구간 짐승의 밥통에서 첫 인생을 시작한 예수님은 성장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의 삶도 화려한 호텔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빈들과 산에서 그야말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과 함께 한 사람들은 어찌 보면 하나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라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초라한 모습의 메시아로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질고를 몸소 체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구태여 인간의 질고를 아시고 체험하셔야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확실하게 아시고 도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 위에 군림하러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오셨고, 질고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고,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였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만 찾으셨다면 과연 우리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질고와 고독과 불안을 아시는 하나님이셨고, 인간의 아픔과 고뇌를 모두 체험한 구세주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친히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고, 우리의 질고를 체험하시고 고쳐 주시고 해결해 주신 것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크고 놀라운 일로 도우셨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에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사실 이사야서의 예언에는 없었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사야서에 예언한 말씀보다 예수님 자신이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을 주님께서 행하셨을 때 사실 유대인들마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사람들로부터 들은 내용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본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본 것이며, 사람들로부터 들은 내용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한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본 것과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을 세례요한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 후로 세례 요한에게서 더 이상의 또 다른 질문이 없었습니다.
아마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이 전해준 예수님에 관한보고 들은 이야기를 듣고 “오실 그이가 결국 오셨구나.”하면서 메시아의 오심을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은 자기를 의심하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이니까?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한 세례 요한과 세례 요한의 제자 두 명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명한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러므로 자기를 의심하는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 자신에 대해 분명하게 전하라 하신 내용은 “나는 이런 말을 한다. 내 논조는 이렇다.” 하는 식으로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 내용을 전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가를 보고, 사람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였다고 하는지 들은 대로 너희 스승 요한에게 가서 보고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 내용, 즉 삶의 내용을 메시아의 증거로 세례 요한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것을 증명해 주기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성경을 많이 아는 것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찬송가를 잘 부른다고 증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잘 정리된 자기 소개서가 그 증거이겠습니까?
우리들이 누구인지는 우리들의 삶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질 것입니다.
진정 크리스천 입니까? 우리들의 믿음은 삶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약한 자, 병든 자를 고치며, 소외된 자, 갇힌 자를 돌아보십시다.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하고, 주님께서 하실 일을 하십시다.
주님께서 가셨던 곳에 가고, 주님께서 찾아 가실 곳에 찾아 가십시다.
메시아인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께서 하신 일과 하셔야 할 일들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하셨던 일과 하실 일을 우리들이 세상에 보여 주기 원하십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말의 뜻은 주님을 닮은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고, 또한 세상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까지 행하므로 세상을 감동시키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십시다.
우리들이 그렇게 할 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너털웃음을 웃으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면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처럼 주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라”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세상에서 행하신 일을 우리들이 행하고, 우리 교회가 행할 때 세상 사람들도 결코 우리들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도 칭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과 우리 교회를 칭찬하는 소리를 주께서 들으시고,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하게 하시여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과 행하여야 할 일을 더 많이 감당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과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임과 우리들이 참된 크리스천인 것을 우리의 삶을 통해 증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