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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녹)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표징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박해할 것이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니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5,1-4
나 요한은 1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2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3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4 주님, 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나중에 실제로 행하게 될 일을 예언하십니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루카 21,12-13)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도행전에서 글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5,32; 26,22 참조).
사도들은 임금이나 총독 앞에 잡혀가지만, 그것을 기회 삼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합니다. 박해는 복음 선포의 위기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 위기를 통하여 복음은 더 분명하고 더 멀리 선포됩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위기를 ‘통하여’ 실현되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위기에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기회가 되어 주님의 말씀이 실현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위협하는 박해가 있습니다. 낙태, 안락사, 배아 복제 등 생명권에 대한 교회 입장에 대한 경멸과, 정결, 순명, 포기와 같은 그리스도교적 가치에 대한 냉소,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물신주의적 비웃음 등 교회가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진리를 증언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루카의 신학대로라면, 이러한 위기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위기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이 퍼져 나갑니다. 이러한 박해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체험하고, 믿음을 증명하며, 세상에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됩니다. 세상의 반대에 낙담하고 좌절하기보다 이 반대가 복음을 선포할 기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강력한 경고의 배경에는 우리를 향한 간절한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같은 연배의 형제들이 모여 앉을 때마다 참 재미있습니다. 순식간에 세월이 흐르고,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세월의 폭탄을 제대로 맞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낄낄대며 웃기도 합니다.
한번은 탈모가 급격히 진행된 한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을 안 지키셨다고. 왜? 무슨 일인데?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안 지키셨다고.
그러나 시편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또 무슨 일인데? “제 죄악 머리카락보다 많사오며...” 나는 머리숱이 많이 사라졌으니 죄도 별로 없는게 아니냐고?
주님의 날, 종말, 재림 때의 최후의 심판...이런 단어들을 떠올릴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공포, 두려움, 걱정, 안절부절...
자비의 하느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지니신 두드러지게 우세한 특징 편안함, 따뜻함, 친절함, 포근함과는 전혀 거리가 머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래서 종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보다 긍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됐던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잘 되기만 바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멸망하기보다 구원되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인내의 주님이십니다.
진정으로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자녀에게 어떻게 대합니까? 물론 자녀가 지닌 장점, 성공, 성취에 대해 크게 칭찬도 할 것입니다. 자녀의 부족함을 큰마음으로 감싸 안으며 격려와 위로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자녀가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바보같이 처신할 때, 몹쓸 짓을 할 때는 당연히 강하게 혼도 내고, 불같이 화도 내고, 빨리 돌아오라는 마음에서 경고도 하고 질책도 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때로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시기도 하고 우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시기도, 때로 우리가 좀 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좀 더 크게 성장하라고, 그래서 더 확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경고도 하시고 채찍질도 하시는 것입니다.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여러 가지 경고성 발언 앞에 두려워하기보다 그분 말씀 뒤에 감추어진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의 등 뒤에 서셔서 우리가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뒤에서 든든한 지지가 되어주시며,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건네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7-18)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아마존에 수건을 주문했습니다. 꼼꼼히 따지지 않고, 덜컥 주문했습니다. 3장이 왔는데 꺼내 보니 너무 컸습니다. 수건이 제 키만 했습니다. 반품할 수 있지만, 잘 모르고 귀찮기도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수건을 반으로 잘랐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았던 수건 3장이 제가 원하던 수건 6장이 되었습니다. 수건에 골이 있어서 잘라도 별 표시가 나지 않았습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나누어 주셨는데 5,000명이 먹고도 남았다고 했습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2024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자리가 나눔과 사랑의 실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자리가 욕심과 원망으로 채워졌다면 남은 시간이라도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며 보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비를 청하던 죄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싸움의 고수에게 싸움의 기술을 배워서 괴롭히는 나쁜 친구에게 더 이상 괴롭힘당하지 않고 싸움에서 이기게 됩니다. 싸움의 고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많이 맞아봐서 눈썰미가 좋다.” 권투든, 격투기든 한 번도 맞지 않고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맞는 요령도 있어야 하고, 맞고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맷집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에는 나쁜 세균과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이길 수 있는 면역체계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면역체계가 잘 작동하기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이겨냅니다. 약한 사람은 면역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쉽게 병에 걸리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은 감기에 걸렸어도 금세 회복되는데 약한 사람은 감기에 걸리면 오래가고, 합병증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좋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면역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악의 세력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의 기술’을 알려 주셨습니다. 첫 번째 기술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교만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은 따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도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물은 유연하기에 그릇의 상태에 담기지, 그릇을 거스르는 경우가 없습니다. 물은 반드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물은 내면에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이 급류를 만나면 큰 바위도 밀쳐낼 수 있습니다. 물의 유연함, 물의 겸허함, 물의 강인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기술은 ‘겸손’입니다.
두 번째 기술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하혈하던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은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우리가 미사 때 고백하는 ‘신경’은 믿어야 할 교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도 ‘믿음’입니다.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믿음’이라는 토대 위에서 세워졌습니다. 세 번째 기술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율법 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마음과 오 힘과 온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같은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우리가 겸손, 믿음, 사랑으로 면역체계를 구축한다면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3)
어둠에
덮이지 않으니
빛이다
배신에
물들지 않으니
믿음이다
절망에
시들지 않으니
희망이다
탐욕에
먹히지 않으니
사랑이다
허위에
묻히지 않으니
진리이다
압제에
굴하지 않으니
자유이다
저주에
맞서지 않으니
축복이다
군림에
밟히지 않으니
섬김이다
폭력에
겁내지 않으니
평화다
죽임에
죽지 않으니
살림이다
오늘의 성인
성 그레고리오 (Gregory)
신분: 신비가
활동지역: 시나이산(Mount Sinai)
활동연도: 1290-1346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셀주크투르크족(Seljuk Turks)의 침략으로 고향을 떠나 포로가 되었으나 이웃 사람들이 대속금을 지불하여 풀려난 후 시나이산의 은수자와 합류하였다.
그러나 그곳 생활에 불만을 느낀 그는 크레타(Creta) 섬으로 가서 다른 수도승으로부터 묵상기도를 배운 후 아토스산(Mount Athos)으로 가서 수행한 결과 "참다운 묵상과 관상"을 아는 사람으로서 높은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해적들이 침략하므로 하는 수 없이 그는 아토스산를 떠났고, 1325년경에는 흑해 연안 소조폴(Sozopol) 교외의 파로리아산(Mount Paroria)에 수도원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그의 영성의 특징은 묵상기도에서 육체적인 도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예를 들면 호흡법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성 후밀리스(Humili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비지냐노(Bisignano)
활동연도 : 1582-1637년
같은이름 : 후밀리쓰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의 비지냐노 출신인 성 후밀리스는 세례명으로 루카 안토니오(Lucas Antonio)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농부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18세 때에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려고 결심하였으나, 그로부터 9년 뒤에야 평수사로 입회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옷에다 ‘후밀리스’(낮은, 겸손한 등의 뜻을 지님)란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면서 겸손을 비롯한 모든 덕을 실천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이윽고 그는 유식한 형제들보다 더욱 훌륭한 지혜를 지닌 수사로 성장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의 초청으로 로마(Roma)를 방문한 사실도 있었다.
그는 병으로 임종을 맞이했는데, 죽을 때까지 그의 고행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는 1882년 1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2년 5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Francis Anthony Fasani)
신분 : 신부
활동지역 : 루체라(Lucera)
활동연도 : 1681-1742년
같은이름 : 방지거,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앤터니,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그는 아뿔리아의 루체라에서 태어나 도나도 안토니오 요한 니꼴라오라는 이름으로 영세받았으나, 10살 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하여 계부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계부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를 꼰벤뚜알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받게 하였으므로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1695년 입회)
1705년에는 모든 학업을 마치고 아씨시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707년에는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뛰어난 교수이자 설교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천주의 모친에 대하여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무염시태 축일(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전에 꼭 9일 기도를 바쳤으므로, 지금도 루체라에서 이런 관습이 전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