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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것은 성경의 지식을 쌓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되어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관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배우는데 사실은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어떻게 성취되어가고 또 성취되었는가를 알고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삶이 되어져서 주님과 함께 살고 그러한 삶을 함께 살게 되어질 자들을 찾는 주님의 삶이 나의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면서 25절에 “제자가 선생 같고 종이 상전 같으면 족하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 먼저는 우리의 기쁨이고 그것이 나를 기르신 아버지와 주님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가르치는데 그 자녀가 장성해서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고 아버지와 함께 같은 마음이 되어지면 아버지는 더 이상 큰 기쁨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을 알고 말씀으로 자라서 아버지의 말씀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되어서 하게 될 때에 그 말씀의 깊이와 그 풍성한 은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말씀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말은 아들의 입장에서 아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못 알아들으면 그 말씀을 못 알아듣는 아들보다 아버지의 마음이 더 안타깝다는 것을 알고 아들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아버지의 능력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3장15-17)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면 하나님이 하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로 온전하게 하십니다.
성경을 배워야 할 이유
첫째. 영생이신 주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요 5장39~40---“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17장 3절---“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요1서 5장 20절---“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이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어떻게 영생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는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까지 자라기 위해서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온전한 사람이고 온전한 사람은 교훈의 풍조에 요동치 않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삶은 마태복음 5장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8절 그러므로 하늘의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의 아들의 삶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데 이것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자 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해를 비취고 비를 내린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 주므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것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세상 지식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지식을 더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8절 “말씀이 네게 가 까와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에 말씀이니라.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말씀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게 하여 믿음을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공부입니다. 머리에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말씀을 채우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채워지는 것은 말씀으로 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말씀이 입으로 나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데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말씀이 입으로 부터 나와서 그 말씀이 사람을 더럽게 하기도 하고 사람을 깨끗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어떻게 되어 있는 존재냐 하는 것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말씀이 나오고 마음에 다른 존재 다른 말씀이 있으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네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죄 사함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구원의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부활의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 영생의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져 왔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영어로 번역하고 그것이 한글로 번역되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원문 성경은 오류가 없으나 번역된 성경은 언어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 5장 18절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계 22장 19절 --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실 때에는 한 말씀 한 말씀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까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사본들을 지키시며 보존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말 성경을 읽으면서도 원문 성경을 읽는 것 같이 성경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같은 단어를 썼는데 원문은 서로 다른 단어를 쓰는 경우와 한글 성경에서는 다른 단어를 썼는데 원문에서는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을 비교해보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단어가 다르면 그 의미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1. 한글성경에서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원문은 다르게 쓰고 있는 예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세상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원문에는 네 가지 세상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도 다릅니다.
첫째 세상 (오이쿠메네) 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온 세상에 전파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온 세상에 전파 되어야 끝이 오는데 온 세상이 어느 세상인지 그 한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땅의 끝인지 아니면 사람의 끝인지 구분이 없습니다. 여기서 세상이 오이쿠메네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가 아니라 온 오이쿠메네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입니다.
오이쿠메네 세상을 모르면 복음이 어디까지 전파되어야 하는지 그 끝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oikoumenh (3625, 오이쿠메네) 이 단어의 어근은 oikew (3611, 오이케오) ~이 거하다 라는 말입니다.
먼저 오이케오 ~~ 이 거하다. 라는 뜻이 무엇인지 의미를 알아야 우리말에 세상 이라고 하는 오이쿠메네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는 한 주제가 부정적, 중간적, 긍정적 의미로 나오는데 거의 부정과 긍정으로 나뉩니다. 먼저 오이케오 거하다. 라는 성구를 찾아보면
롬 8: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오이케오)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존재는 영에 있고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존재는 육신에 있는 자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 (오이쿠메네) 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존재 세상과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존재 세상으로 구분을 해야 합니다.
눅 21:26-“사람들이 세상(오이쿠메네)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여기서 무서워하고 기절하는 사람들은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는 세상에 임할 일 때문에 무서워하고 기절 할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7장 17~19-“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원치 아니하는 그 것을 내가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가 거하고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것은 부정적인 오이케오 존재를 말하고 있고 긍적적인 오이케오 존재는 죄가 거하지 않고 선한 것이 거하고 원하는 선을 행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제 거하다 라는 오이케오 의미를 가지고 와서 오이쿠메네 세상의 상태를 보면 죄가 속에 있는 오이쿠메네 세상과 죄가 속에 있었는데 주님을 영접하므로 죄 사함 받은 오이쿠메네 세상으로 나뉘는데 즉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육신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마 24장14절-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게 될 사람들인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죄가 속에 거하고 있을 때는 부정적인 세상 오이쿠메네 이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존재로 바뀌게 되면 긍정적인 세상 오이쿠메네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막연한 세상이나 지구 땅 끝이 아니라 긍정적인 오이쿠메네 세상 존재의 끝입니다. 바로 어떤 사람의 끝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세상 gh'(1093, 게)
마태복음 5장 13절-“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같은 세상인데 영어 성경은 각각 of the earth , of the world 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는 우리말 성경이나 지구의 소금이라고 하는 영어 성경도 의미를 나타내 주지 못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원문에는 13절 세상은 gh'1093, 게의 소금이고 14절 세상은 kosmo" 2889, 코스모스의 빛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금이나 지구의 소금이 아니라 게의 소금입니다. 세상의 빛이 아니라 코스모스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게와 코스모스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면 세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막연한 세상이 아닙니다.
게 라고 하는 의미를 모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세상으로 생각하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15:47-“첫 사람은 땅(게)에서 났으니 흙 에 속한 자 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게도 두 종류로 분류되는데 첫 사람은 게에서 났고 두 번째 사람은 하늘에서 난자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 흙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은 자와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을 자 혈과 육에 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썩은 것을 유업으로 받을 자와 혈과 육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자로 분류됩니다.
그러므로 고전 15:47-50절의 말씀은 아담과 그의 속한 존재들은 혈과 육에 속한 자들이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이나 예수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자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 이기에 그 분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시면 우리 또한 하늘에 속한 자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가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3절에 씨 뿌리는 비유에서 네 가지 밭이 나오는데 원문 에서는 같은 단어(게) 인데 한글 성경은 흙과 땅으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마13장 5절-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할 때 흙이 (게 )입니다.
마13장8절 좋은 땅이 (게)입니다.
그래서 좋은 땅이 아니라 좋은 게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100명),혹 육십배(60명),혹 삼십배(30명)가 되느니라.
주님께서는 좋은 땅(게)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곧 깨닫는 사람으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게는 하늘에 속한 자, 즉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 이러한 존재 속에 말씀이 뿌려지면 위와 같이 결실을 맺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게의 소금이니 하는 게는 너희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들의 소금 이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의 소금 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또한 혈과 육에 속한 존재에서 하늘에 속한 존재로 되어 질 자들의 소금입니다.
소금은 민수기18장 19절-“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언약 이니라.”
역대 하13장5절-“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소금 언약은 변하지 않는 언약의 말씀 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하게 되어 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세상사람 들이나 지구의 소금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소금의 언약, 내가 소금 언약으로 된 존재가 되면 즉 소금언약의 말씀이 내안에 이루어지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나와 같이 되어 질 자들에게 전하여 그도 또한 소금언약이 이루어진 주님의 자녀임을 알게 하는 것이 소금노릇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썩을 것은 썩게 하고 썩지 아니할 것은 썩지 않게 해야 하는데 소금은 썩지 않게는 해도 썩게 하는 것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소금의 특징만 강조하면 성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즉 너희는 소금이다 이 소금은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진 소금입니다. 우리가 소금 언약이 이루어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게의 소금이다 하는 말은 언약의 소금이 되어 진 존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어 질 자들에게 소금언약의 말씀을 주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막연한 세상의 소금 노릇 방부제 노릇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와 존재가 분명한 자들에게 언약의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려면 먼저 자신이 소금언약이 이루어진 존재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약의 말씀을 좋은 땅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그리고 30명,60명,100명을 결실 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세상 코스모스
코스모스 kosmo" 2889, 코스모스 이 단어는 코미조(2865 )에서 왔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코스모스)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8절-“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코스모스)는 (코미조) 라는 단어가 어근(뿌리)이며 (코미조)의 뜻은 되돌려 받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코스모스)는 무엇인가를 되돌려 받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1장 9절-“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여기서 받음이라가 (코미조) 즉 되돌려 받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코스모스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독생자를 주신 코스모스는 영혼구원을 되돌려 받고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는 코스모스는 영혼구원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심판을 되돌려 받게 되는 코스모스 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4절-“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얻으리라가 (코미조) 즉 영광의 면류관을 되돌려 받는 자와 되돌려 받지 못하는 자가 나오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할 때 독생자를 주신 세상은 영광의 면류관을 되돌려 받을 자들에게 독생자를 주신 것 입니다.
고후5: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 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코미조-되돌려 받다) 함이라.”
그래서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 할 때 빛과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적인 세상이 아니라 영생과 구원을 되돌려 받게 되는 코스모스 존재들의 빛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요한복음 8장 12절-“나는 세상의(코스모스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을 코스모스 (영생을 되돌려 받을 자)에 비추는 것은 우리가 받은 그 생명의 빛, 즉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고 빛을 비추는 것이 착한 행실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영광은 고린도후서4:6-“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1장:4절-“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우리가 빛을 비추는 것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생과 구원을 되돌려 받게 되어 질 사람들에게 비취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하늘에 속한 자, 천국을 유업을 받을 자) 의 소금이고 코스모스(영생과 구원을되돌려 받을 자) 의 빛입니다.
요 1:8~13절-“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자라 참 빛 곧 세상(코스모스)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코스모스)에 계셨으며 세상(코스모스)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코스모스)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자들 이니라.”
영접하는 코스모스와 영접하지 아니하는 코스모스 세상이 있는데 영접하는 코스모스는 13절에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고 영접하지 아니 하는 코스모스 세상은 혈통으로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사랑하시는 세상(코스모스)들을 찾으시며 찾으신 세상(코스모스)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한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 할 때 빛 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빛이고 생명인데 말씀이 증거 되므로 빛을 받아들이는 존재와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코스모스 세상 존재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어떤 존재(사람)를 말하는데 오이쿠메네 세상은 속에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는 자냐 아니냐. 코스모스 세상은 영생과 구원을 되돌려 받을 존재냐 아니냐.
게라는 세상은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혈과 육에 속하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냐.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났으나 두 번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나 한사람의 존재를 나타낸 것인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속과 겉모습을 성경에서 오이쿠메네, 코스모스, 게라는 단어를 써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영생과 구원을 되돌려 받을 하늘에 속한 자다. 하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은 세상이나 땅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2. 한글 성경에는 다른데 원문에는 같은 단어를 쓴 예
마태복음 5장 28절-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 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32절-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한글 성경은 여자와 아내로 다르게 번역을 했는데 원문은 같은 단어로 쓰였습니다.
그러면 원문은 같은 단어를 썼으니까!
한글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28절을 아내로 하고 32절을 여자로 하면 바꾸어서 보면
28절 아내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하고
32절 음행한 연고 없이 여자를 버리면
이렇게 하게 되면 한글성경은 의미가 달라집니다.
원문은 같은데 한글성경에서 번역을 다르게 하므로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게 됩니다.
한글성경 에서 여자 또는 아내 과부로 되어져있는 것이 원문에는 귀이네(여자1135 )여자로 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4절-“예수님이 마리아 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할 때 여자가 귀이네 입니다. 영어성경도 woman 와 wife로 각각 번역을 했습니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할 때는 맞지만 아내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 하면 맞지 않습니다.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과 ‘음행한 연고 없이 여자를 버리면’ 하게 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연고가 아니라 원전에는 말씀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음행한 말씀 없이 여자를 버리면 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뜻이 달라지게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음행이나 음욕은 말씀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음욕이나 음행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되면 성경이 성경되지 못하게 됩니다.
*어떻게 한글 성경을 원문 성경처럼 볼 수 있는가?
성경을 연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인물(첫 아담 중심)
2.지리(이스라엘 땅 중심)
3.역사(이스라엘 역사)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유로 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13장10절에-“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 하시나이까 11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 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3절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함이니라 16절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34절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 하시지 아니하셨으니 35절 이는 선지자로 말씀 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하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성경은 비유로 되어져 있기 때문에 인물, 지리, 역사를 통해서 표면적인 연구와 더불어 비유를 풀어야만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연구해야 하는데 먼저 성경을 기록한 언어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
구약은 히브리어(이스라엘)와 아람어(바벨론)로 기록되었는데 1500여년에 걸쳐 모세로 부터 말라기 선지자에 의해 기록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그리스)되어있는데 1900년 전 100여년에 걸쳐 주님의 제자들의 의해 기록되어졌습니다.
이 모든 언어는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거나 사용한다고 해도 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고어가 되어 지금 쓰고 있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성경학자들이 연구하여 누구든지 쉽게 원문성경 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독교 문화 협회에서 나온 원어성구사전과 원어성서원의 스테판 원어성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구사전은 1839년에 죠오지 v,위그램의 원어성구 사전이 영국에서 초판이 나왔고 1979년 미국에 베이커 북 하우스에서 9판을 기초로 스트롱 완전성구사전을 출간 하였습니다.
원문 성경 단어 하나하나에 제임스 스트롱의 국제 공통 번호를 붙여서 누구나 쉽게 찾을 있도록 하였고 문법을 분해해서 약자로 표기를 해 놓았습니다.
헬라어는 동의어나 어근 참조 등을 통해 풀어 가는데 어느 누가 말씀을 전해도 똑 같은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의도하심이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그래서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같이 되어 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구 사전은 원문의 의미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우리말 순으로 되어져 있는데 원문 성구 사전은 원문 성경을 바탕으로 각각 같은 의미의 단어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구 사전에서 단어의 어근과 동의어를 찾아 그 뜻을 풀어보면 누구든지 쉽게 경에서 말하고자하는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어느 누구든지 공부할 수 있는데 이 말씀은 두가 같이 되어 지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처음 의도하심대로 어느 누가 말씀을 전해도 같은 말씀으로 전 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느낀 대로 내 생각대로 내 수준에서 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알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 것을 알고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의도하심대로 나타나지면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나의 삶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으로 나타나 지게 하는 말씀이 아니고 지식으로 주장하려고 하는 말씀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엡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시대를 따라 말씀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역사를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내가 주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또 어떻게 주님께서 나를 성장 시켜 나가시는지 또한 주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므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감추어졌던 주님의 비유의 말씀이 풀어지면 주님께서 나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거대하고 광대하게 구약에서부터 역사해 오셨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태초부터 있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고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나에게 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주신 줄 믿습니다. 먼저 말씀이 내안에 채워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온전히 이룰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말씀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서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에서 나갈 때 사람을 살리는 말씀이 되게 하시고 나를 온전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말씀을 듣고 온전하게 되어 질 자들 에게 증거 되고 나타나져서 주님의 선한 일에 함께 동참하여 주님의 기쁨을 함께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영국 런던 루이샴 교회에서 발췌함
첫댓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죄가죄인줄도 모르고 범하기 때문에 말씀을 배워야하고 목사님들은 말씀을 가르칠 의무가 있는줄 암니다 아는 자들은 가르치고 모르면 배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시길 기도 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