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향약 (원주는 모두 생략함)
옛날 향대부의 직분은 덕행과 도예(道藝)로써 인도하고 따르지 않으면 형벌로 꾸짖어 살폈다. 선비된 자들은 반드시 집안에서 수양하여 고을에서 뛰어난 뒤에야 나라에 나아갈 있었다. 왜 이처럼 하였던가? 효제충신(孝弟忠信)은 사람이 따라야 할 큰 근본이며 집안과 고을은 이를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효제충신의 도가 막히어 행해지지 않으면 예의를 버리고 염치가 없어짐이 날로 심해지며 마침내 오랑캐와 짐승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실로 국가의 큰 근심이니 그 것을 살펴 바로잡는 책임은 유향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전에 숭정대부를 지낸 지사 농암선생(이현보를 말함)이 이를 걱정하여 약조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부터 우리고을의 선비들이 성명(性命)의 이치를 근본으로 하고 국가의 법을 준수하며 집에서,고을에서 각기 질서를 바로잡으면 이는 나라에 좋은 선비가 될 것이요 서로 출세하든지 궁하게 살든지 서로 의지가 될 것이다. 약조를 만들어 서로 권할 필요도 없으며 벌을 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진실로 이를 알지 못하고 의(義)를 범하며 예의를 해침으로써 우리고을의 풍속을 무너뜨리는 자는 바로 하늘의 폐민(弊民)이니 벌을 주지 않으려 해도 어떻게 안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오늘날 부득이하게 향약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다.
가정(嘉靖) 병진년(1556년) 섣달 고을사람 이황이 서문을 쓰다.
부모말을 잘 듣지 않는 자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자,
집안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는 자
사건이 관청의 일에 저촉되고 향풍에 관계되는 자
망령되게 위세를 부려 관을 소란하게 하며 사사로움을 꾀하는 자
향장(鄕長)을 능욕하는 자
수절하는 청상과부를 유혹,협박하여 간음하는 자,
이상은 극벌(極罰) 상중하에 처한다.
친척간에 화목하지 않는자
본처를 소박하는 자
이웃과 화목하지 않는 자
친구간에 때리고 욕하는 자
염치없이 사풍(士風)을 무너뜨리는 자
강함을 믿고 아래사람을 괴롭히고 재물을 빼앗으며 싸움을 거는 자
무뢰배들로 무리를 지어 못된 짓을 일삼는 자
공사(公私)로 모여 관의 일에 시비거는 자
거짓말을 지어내어 남을 모함하는 자
어려움을 보고 힘이 있으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자
관의 일을 맡아 공무를 빙자하여 폐단을 만드는 자
혼인,상례,제례에 이유없이 때를 지나치는 자
집강을 무시하고 향령(鄕令)에 따르지 않는 자
향론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원망하는 자
집강으로서 자기마음대로 향(鄕:향안,향회 등)에 끌어드리는 자
전직관리 송별잔치에 이유없이 참가하지 않는 자
이상은 중벌(中罰) 상중하에 처한다.
공회에 늦게 참석하는 자
아무데나 앉아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
좌중에서 떠들며 다투는 자
자리를 비워두고 물러나 제볼일을 보는 자
까닭없이 먼저 일어나 나가는 자
이상은 하벌 상중하에 처한다.
원악향리(元惡鄕吏:나쁜 일을 꾸미는 향리)
아전으로서 민간에 폐단을 만드는 자
공물을 방납(使濯徵價物)하는 자
서민으로 사족을 능멸하는 자
퇴계선생문집 권42 서 향입약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