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트럭!
2년 전, 내가 55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중고 오토바이 (ct 100)를 산 이유는
3년 전에 50만 원 주고 산 아반떼의 살인적인 연비 때문이었습니다.
시내 인력 사무실,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그곳을
휘발유 3만 원 넣어서 겨우 4번 왕복하면 끝! 환장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오토바이를 샀는데요, 오토바이는 휘발유를 만땅 넣어도 4.000원. 더 이상 안 들어가요.
4.000원에 시내 왕복 4번 하니 한 번에 1.000원. 부담 없잖아요.
아반떼를 팔려고 내놔 봤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폐차.
그래도 차는 있어야 돼요. 오토바이만 가지고는 안 돼요.
비 오는 날, 추운 날, 그리고 혹시 애인이 생기면 오토바이 타고 데이트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차는 꼭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갖고 싶은 차는 트럭이었습니다.
노가다를 시작하던 20년 전부터 나의 간절한 소망은 트럭이었어요.
그런데, 트럭은 아무리 중고라도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만져볼 수도 없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일하고 있던 현장에 어떤 사람이 자재를 납품하러 왔는데
「라보」라는 트럭 아시죠? 쉐보레에서 만든, 장난감보다 조금 큰 트럭이요.
그 트럭을 몰고 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어요.
『사장님, 이 트럭 괜찮아요?』 그랬더니 그분이
『아주 좋아요. 지금 36만 키로를 탔는데도 끄떡없어요!』
그 사람의 그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내가 결정했어요.
라보 트럭을 사기로! 그런 뒤, 몇 개월 고민, 고민하다가
확, 질러버렸어요! 중고가 아닌, 새 차를!
라보가 몇 가지 모델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롱카고로 했고
차값에 차 바닥까지 해서 꼭 1천만 원인데
5백만 원 현찰 주고, 5백은 36개월 할부. 꼭 1년 전 일이에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요, 내가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트럭이,
그것도 중고가 아닌 새 트럭이 생겼는데도 좋은 느낌이 없더라구요.
이상하다. 왜 그러지? 내가 원하던 1톤 트럭이 아니고
너무 작은 트럭이라서 그런가?
아니요, 그건 아니었어요. 어쨌든 생각만큼 좋지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빚이 생기면 사람이 독해지더라구요.
대출금 못갚아서 신용 떨어질까 봐 1년 내내 긴장이 풀리지 않구요,
안 먹고 안 입으면서 나도 모르게 구두쇠가 돼요.
안 그래도 구두쇤데, 빚이 생기니까 완전 고래힘줄이 되더라니까요.
지난겨울, 동네 후배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내 집엘 오는데
그냥 오는 게 아니고 꼭 먹을 걸 사 와요.
삼겹살이나 닭볶음탕 같은 비싼 거.
우리 집이 장작난로가 있어서 따듯하고 나 혼자 있으니까 편해서 그런지
그렇게 자주 오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돈이 들어요. 후배들이 몇 번 사면 나도 한 번씩 사야 되니 돈이 들잖아요.
그래서 하루는 내가 딱 부러지게 이야기했어요. 앞으로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그랬더니 그게 서운했는지 길에서 만나도 웃지도 않더라구요.
어쨌거나, 그렇게 지독을 떨어서 드디어 오늘,
차 할부금 5백을 일 년 만에 다 갚았어요.
겨울과 봄에도 일을 못한 것에 비하면 엄청 빨리 갚은 셈이죠.
그런데요,
밖에서 삼성카드에 전화를 해서 마지막 남은 70만 원을 빼가라고 한 뒤
오토바이로 내 집에 들어오는데, 마당에 서 있는 라보가
갑자기 달라 보이는 거예요. 느닷없이 반가운 마음이 왈칵 들면서
차가 너무 예쁘게 보이더라니까요.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저 그렇던 트럭이,
새 차를 산 지 벌써 1년이나 지난 트럭이,
왜 갑자기 이렇게 반갑고 예쁘게 보이는 겁니까?
그러니까,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내 차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무덤덤했고,
오늘 빚을 다 갚아서 이젠 완전히 내 차가 됐기 때문에 달라 보였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새 트럭이 생겼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작지 않은 사건입니다.
지난 일 년 만에 벌써 이 트럭으로 많은 물건을 실어 날랐고
앞으로도 이 트럭의 활약상을 생각하면 가슴이 약간 설렙니다.
오는 일요일, 깨끗이 물청소하고
파리가 낙상하도록 반짝반짝 광 내야지!
2021년. 9월. 15일.
제1차 세계민중혁명.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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