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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동화 교수의 전력전자연구실 원문보기 글쓴이: 정동화 교수
포르투갈의 16살 미셸 라셰르 드 브리토(131위)를 지도하는 닉(왼쪽) |
애거시,셀레스,짐 쿠리어, 샤라포바가 작품
최고의 테니스 코치 닉 볼리티에리, 그는 누구인가?
골프에 데이비드 리드베터가 있다면, 테니스에는 닉 볼리티에리가 있다. 세계의 유명 테니스 선수들 대다수가 한 번쯤은 그에게 레슨을 받았다.
프로무대에서의 경력도 전무한 그가 어떻게 안드레 애거시, 모니카 셀레스, 짐 쿠리어 등 세계 1위의 선수들을 10명도 넘게 길러내고 세계 최고의 테니스 코치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을까? 이어 우리는 이러한 코치가 나올 수 없을까? 편집자
닉 볼리티에리 테니스아카데미(NBTA)
이탈리아계 미국인 중산층 가정의 2세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약 2년 반 동안 미 육군낙하산 부대에서 복무한 후 중위로 제대한 닉은 마이애미의 로스쿨에 진학했지만 6개월 만에 중퇴하고 테니스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시절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는 곧 자신이 테니스를 가르치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북부해안에 2 면의 코트가 있는 시립공원에서 시간당 3달러를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한다.
시간당 3달러 코치로 출발
그가 가르친 첫 번째 학생은 브라이언 고트프리드였는데, 10살 때 그가 가르친 고트프리드는 이후 세계 3위까지 올랐다. 그는 이후 미국과 푸에르토리코 등지의 호텔과 리조트를 전전하며 코치생활을 하다 전설적인 미식축구 코치 빈스 롬바르디를 만나게 된다. 어느날 ‘닉, 자네는 애들과 참 잘 지내더구먼” 이라는 빈스의 말에 영감을 얻음과 동시에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자신이 일하던 시카고의 한 컨트리 클럽에서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장의 부인이 코트가 너무 건조하다고 잔소리를 해대자, 그녀가 게임을 하고 있던 코트에 스프링쿨러를 틀어버려 바로 해고 당하게 된다. 그는 바로 빈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빈스와 AC 닐슨은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캠프를 차릴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1975년 그는 플로리다의 콜로니비치 호텔에서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 호텔은 금방 주요 테니스 리조트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진지하게 자신의 아카데미를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다.
최초의 기숙학교
닉과 알리샤 블랙, 빅토리아 듀발, 사샤 비커리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는 자신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9명의 학생들과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그들을 가르쳤다. 이후 친구들로부터 1백만 달러를 빌려 코트를 짓고, 오래된 모텔을 사서 기숙사로 개조하여, 드디어 1978년 플로리다의 브래든튼에 약 16만2천평방미터의 허가도 받지 않은 땅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아카데미를 열었다. 당시 NBTA는 테니스에서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최초의 테니스 기숙학교(boarding school)로 주목 받으며 서서히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NBTA는 곧 어린 동유럽 선수들과 그 가족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세르비아에서 헝가리 부모에게 태어난 모니카 셀레스는 최초의 학생들 중 한 명 이었으며, 샤라포바가 아카데미에 왔을 때 그녀는 9살이었고, 얀코비치는 12살 이었다. 윌리엄스 자매를 정성껏 가르쳤고, 안나 쿠르니코바가 러시아 테니스의 붐을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 때 세계 1위까지 올랐지만 그랜드슬램 우승은 없었던 리오스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코트에서 구현하는데 실패했었기에 NBTA가 가장 크게 실망한 케이스였다. 짐 쿠리어는 타고난 재능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노력과 근면성은 적수가 없었다. 보리스 베커와는 그의 선수경력 후반기에 함께 했고, 토미 하수와 막스 미르니 두 현역 선수들은 선수 경력 대부분을 브래든튼의 NBTA에서 함께 했다. 닉 볼리티에리가 꼽는 가장 기뻤던 순간은 안드레 애거시가 1992년 윔블던에서 우승했을 때인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애거시냐 아내냐
7번 이혼하고 8번 째 아내 신디와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이 안드레 애거시와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에 격분한 전 부인 중 한 명이 ‘안드레 와 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최후 통첩을 하자, 세탁기에서 자신의 옷가지를 끄집어내 애거시가 자신에게 준 코르벳 승용차 뒤 트렁크에 싣고 호주머니에 4천 달러만 챙긴 채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났을 정도로 애거시에 대한 기대와 애착이 남달랐던 것이다.
4-5-9 기숙학교 시스템
닉 볼리티에리는 훈련(Dicipline) 책임(Responsibility) 노력(Effort) 이라는 세 가지 신조를 아카데미 운영의 철학으로 삼았고, 하루에 4시간의 공부, 그리고 5시간의 집중적인 훈련을 연중 9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기숙학교(boarding school) 형태로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최고의 선수들을 키워내는 세계 최고의 테니스 아카데미로 성장해 왔다.
초창기 때부터 혹독한 체력훈련에 중점을 두었던 NBTA는 어린 학생들을 아침 6시 30분이면 기상시켜 달리기(running), 푸시-업(push up) 등 기초 체력훈련과 엄청나게 많은 볼을 치게 했다. 이러한 훈련들은 경기에서 필수적인 정신적, 체력적인 요건을 갖추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닉 볼리티에리의 이러한 강인한 체력과 파워를 강조한 훈련원칙은 곧 실전에서 안드레 애거시나 짐 쿠리어, 마리아 샤라포바 같은 NBTA 출신 선수들의 성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모든 길은 닉으로 통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비판도 뒤따랐다. ‘NBTA 선수들은 네트(net)앞에서의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플레이 보다는, 베이스라인(baseline)에서의 묵직한 그라운드스트로크(ground stroke)에 의존하는 일차원적인(one-dimensional) 선수들이다’ 라는 비판이 일었는데, 실제로 안드레 애거시와 짐 쿠리어는 코트의 뒤 부분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리턴했다. 애거시의 경우에는 스피드까지 갖추어 상대를 압도하며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그래서 이러한 비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닉 볼리티에리는 안드레 애거시를 가르칠 때 그의 탁월한 재능, 즉 그가 여태까지 가르쳤던 그 어떤 선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샷(shot)에 대응하는 눈과 손의 조화(hand-eye coordination)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애거시에게 베이스라인에서 1~2야드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리턴하도록 주문했다. 지속적인 연습으로 애거시는 남자 경기에서 가장 위협적인 리턴을 하는 선수가 되었다. 애거시 처럼 리턴하는 선수에게는 그 어떤 코치도 네트로 돌진하라고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존 매켄로는 ‘닉 볼리티에리는 선수 경험도 없는데 프로 테니스에 대해서 도대체 뭘 안단 말인가?” 라며 공개적으로 날을 세웠지만 그도 몇 달 후에는 자신의 아들을 풀타임(full-time) 학생으로 NBTA에 등록시켰다.
탁월한 비지니스-풀타임 기숙학교
닉 볼리티에리의 또 하나의 탁월한 재능은 바로 비지니스 감각이다. 그는 자신의 아카데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비지니스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지니스와 선수들을 홍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실제로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유망주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사업가적 재능이나 감각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는 그가 NBTA를 설립할 당시, 어느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풀타임 기숙학교(full-time boarding school)라는 형태의 아카데미를 구상했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1978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던 1백만 달러를 친구로부터 빌려냈던 것이다.
IMG와의 결탁
1987년 세계적인 스포츠 마케팅그룹인 IMG(International Management Group)사가 인수했지만, IMG로서는 닉 볼리티에르의 명성이 필요했기에, 그에게 계속하여 아카데미의 운영이나 프로그램개발 등을 맡기고 있다. IMG는 인수 이후 계속하여 규모나 서비스영역을 확장해 왔으며, 현재에는 골프, 미식축구, 축구, 라크로스, 야구 등의 영역으로 확대, 명실상부한 ‘멀티-스포츠 아카데미(Multi-Sports Academy)로 운영되고 있다.
NBTA의 학생들 중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른 선수들은 모니카 셀레스, 짐 쿠리어, 안드레 애거시 등이며, 이후로 윌리암스 자매, 마리 피어스, 안나 쿠르니코바, 마르티나 힝기스, 마리아 샤라포바, 옐레나 얀코비치, 케이 니시코리 등의 선수들이 거쳐갔고, 우리나라의 정 현(삼일공고) 선수도 IMG의 후원학생으로 NBTA에서 훈련을 받은 바 있다.
여든 나이에 12시간 근무
세계 1위를 10명이나 길러냈고, 수 십명의 톱 랭커들을 키워냈던 닉 볼리티에리, 그는 현재 80세의 나이에도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여전히 빽빽한 하루 일정을 문제없이 소화하고 있다.
04:45: 기상
05:20: 아카데미 도착. 40분 정도 스트레칭, 가벼운 웨이트, 윗몸일으키기 등
06:00~11:30: 코트에서 학생들 레슨(아카데미 장학생 레슨, 개인 레슨)
11:30~13:00: 점심시간 이지만 일은 계속된다. 스텝들과 먹으면서 업무미팅
13:00~17:00: 오후 레슨
17:00~18:00: 1시간 동안 풀(pool)에서 하루 일과정리
18:00: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퇴근해서 아내 신디와, 아들 지오바니를 보는 것
18:30: 아내 신디와 저녁식사
19:30: 메일을 체크하고, 아내 신디와 세계 곳곳의 매체에 칼럼과 기사작성에 관한 일 처리
23:00: 취침(하루 5~6시간 정도 수면) 평생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음.
테니스 코치로서 부와 명예 등 이룰 것은 다 이룬 그가, 8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과 에너지로 일상을 보내는 것을 보면, 그는 진정 테니스를 사랑하는 이 시대의 테니스 구루(guru)로 불리어져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