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남 창원시
LG전자 2공장에서는 직원들 앞 작업 벨트 위로 세탁기 부품들이 시간당 400개씩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세탁기 1대당 생산 시간은 불과 9초. 그것도 모자라 이들의 머리 위에는 "8초당 1대 도전"이라는 표어가 적혀 있고, 건조기 1개 라인도 증설 중이다. 류재철 LG전자 부장은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물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가전 불황 중에도 LG전자 세탁기 사업부의 선전(善戰)이 이어지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는 7분기째 드럼세탁기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올해 경기 침체에도 세계 예상 판매량과 매출은 각각 1000만대·35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각각 지난해보다 12%, 52% 늘어난 것. 불황을 뚫는 LG전자 세탁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북미 틈새시장, 대형 세탁기로 뚫어LG전자 세탁기는 시장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정도로 급성장 중이다. 예를 들어 올해 미국 세탁기(건조기 포함) 시장은 지난해 880만대에서 840만대 규모로 줄 전망이지만, LG전자의 판매량은 오히려 120만대에서 150만대로 늘 전망이다.
이 같은 성장에 대해 LG전자는 "고객 중심의 신제품 때문"이라고 요약한다. 조성진 LG전자 세탁기사업부장(부사장)은 "
미국 시장의 경우 월풀 등 세계적인 업체들이 유통을 장악해 공급자 위주로 물량 싸움을 하는 가운데, 정작 소비자를 배려한 신제품은 드물다"며 "그 틈을 노려 맞춤형 제품을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미국 시장에서 2006년부터 히트를 친 드럼세탁기(앞문형) '디스커버리'. 당시 LG는 시장 조사를 통해 미국 소비자들이 빨래양에 비해 세탁기 용량이 너무 작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LG전자가 연구 끝에 내놓은 게 드럼세탁기. 기존 미국 제품들(윗문형)에 비해 문을 여닫기는 불편하지만 적은 공간에 보다 큰 용량을 탑재할 수 있도록 했다. 북미 시장 최대용량(15㎏)으로 출시된 이 제품은 소비자의 눈길을 단번에 끌었다.
그 결과 디스커버리는 대당 160만원의 만만찮은 가격에도 2년여간 월 평균 4만대가 넘게 팔려나갔다.
- ▲ 18일 경남 창원시 LG전자 창원 2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 라인 위에 놓인 세탁기의 조립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창원 2공장 500만대를 포함, 약 1000만대의 세탁기를 생산할 전망이다. /LG전자 제공
◆'무한 도전' 생산성 향상
제품이 팔려 나가기 시작하면 증산(增産)이 필수적이다. LG전자는 이 과정에서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원가 부담을 줄였다. 창원 공장의 경우, 1987년 세탁기를 50만대 생산하던 똑같은 공간(4만㎡)에서 올해 500만대가 생산된다.
내년에는 580만대까지 생산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마치 마술 같은 증산 비결은 생산 공정을 수없이 반복 조정하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창원 공장의 바닥에는 테이프 자국과 선들이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효율적인 자리를 찾아 이사 다닌 생산라인의 흔적이다. 연초에도 '흐름 생산'식 개편으로 생산성을 15% 늘렸다. '흐름 생산'이란 부품이 벨트 위에서 서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상태로 조립이 이뤄지는 공정이다.
세부적인 공정 효율은 직원들이 스스로 높이고 있다. 무인 부품 운반차량(AGV)이 대표적인 예. 외주 업체에서는 수천만원 가격에도 고개를 내젓던 제품을 불과 수백만원에 LG전자가 자체 개발, 도입해 몇 사람 몫을 거뜬히 하고 있다. 올해만 직원들이 쏟아낸 효율성 개선 아이디어가 700여건이다.
◆연구 기술이 미래 승부처LG전자가 선전하고 있지만, 세탁기 시장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경기 침체로 시장은 좁아져 가는 반면, LG전자에 허를 찔린 일렉트로룩스·보쉬 등이 최근 잇달아 경쟁 제품인 드럼세탁기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에 대비해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있다.
드럼세탁기의 핵심기술인 '인버터 모터' 특허를 확보한 게 그 예다. 인버터 모터는 한 가지 기계 구조를 갖고도, 소프트웨어로 다양한 출력을 낼 수 있는 모터(전동기)다. LG전자는 이 기술 덕분에 다양한 세탁기를 한 금형(틀)에서 만든 모터로 제조, 비용과 불량률을 줄이고 있다. 권호철 세탁기사업부 연구실장은 "최근에는 에너지 절감 열풍에 따라 적은 물과 전기 소모로도 세탁 효과가 높아지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