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22일 (일)
요단 동쪽의 분배
오늘의 말씀 : 여호수아 13:1-14 찬송가: 393장(구 447장)
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4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8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은 요단 저편 동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9 곧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과 디본까지 이르는 메드바 온 평지와
10 헤스본에서 다스리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모든 성읍 곧 암몬 자손의 경계까지와
11 길르앗과 및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지역과 온 헤르몬 산과 살르가까지 온 바산
12 곧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서 다스리던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라 모세가 이 땅의 사람들을 쳐서 쫓아냈어도
13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까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거주하니라
14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중심 단어
기업, 요단 저편 동쪽, 모세, 레위 지파
주제별 목록 작성
요단 동쪽 땅의 경계
9-10절: 아로엘에서 암몬 접경에 이르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
11-12절: 길르앗 일대의 갓 지파 지경/ 길르앗 북쪽에 위치한 바산의 므낫세 반 지파 지경
레위 지파
14절: 여호수아에게서 기업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물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은 자들이다
도움말
1. 르바의 남은 족속(12절): ‘르바’는 요단 동쪽의 바산 지역에 거주하던 ‘르바임 족속’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세 당시 이스라엘에게 거의 진멸당했으나 일부가 살아남아 여호수아 당시에도 명맥을 유지했다.
2.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13절): 바산 북동쪽에 있던 아람의 동맹국인 ‘그술’과 그술 북쪽 지역인 ‘마아갓’에 살던 주민들이다.
3. 그에게 말씀하신(14절): 레위인들에게 기업을 주지 않는 대신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기업으로 삼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민 18:20-32).
말씀묵상
요단 동쪽 지파의 기업
여호와께서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갓 족속이 기업으로 얻은 요단 동쪽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 이 있습니다. 첫째, 모세 당시 이들이 분배받은 땅이 이제 그들의 확실한 기업이 됐음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둘째, 요단 서쪽 땅 분배 과정에서 이들 지파가 제외된 것은 이미 그들에게 기업이 분배됐기 때문임을 밝히기 위함입니다(수 14:1-3). 요단 동쪽 지파들은 다른 형제 지파들을 도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장서서 열심히 싸웠습니다(수 4:12-13). 덕분에 이들은 정복 전쟁이 일단락된 후 수고의 대가를 누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들의 할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차지한 요단 동쪽에는 아직 완전히 섬멸하지 못한 원주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13절).
레위 지파의 기업
다른 지파들과 달리 레위 지파는 요단 동쪽은 물론 서쪽에서도 따로 기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다른 지파들로부터 48개의 성읍과 주변 땅들을 받아 자신들의 거주지와 목초지로 삼았습니다(수 21장). 레위인들이 이처럼 기업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전역에 흩어져 하나님만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심으로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민 18장). 레위 지파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며,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재하는 거룩하고도 복된 사역을 전담할 자들이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요단 동쪽 땅의 경계와 레위 지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레위 지파의 기업이 다른 지파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14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기업은 무엇이며, 그 기업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신뢰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 있었을 때 모세에게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원주민을 다 몰아내고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땅을 분배할 때는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되게 하라고 명하시면서 이렇게 경고하셨다.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다’(민33:50-5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했지만 여호수아는 많아 늙었고 아직도 쫓아내지 못한 족속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요단 동편의 땅은 모세가 살아 있을 때 이미 두 지파 반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에 요단 서편의 땅은 남은 아홉 지파 반에게 제비뽑아 나눠 주어야 했다.
모세가 땅을 분배했던 요단 동편에도 여호수아가 분배할 요단 서편 땅에도 아직 쫓아내지 못한 족속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들이 언제 눈에 가시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 경고를 잊지 말라고 레위 지파를 남겨 두셨다.
‘13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까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거주하니라
14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흩어져 살아가는 레위 지파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기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원주민이 믿는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민33:56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오늘은 설날이자 주일이다. ‘왜 하필이면 설날이 주일이야?’라고 불평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지 않을까?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그리고 에피데믹이 되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주일성수’의 대한 개념이 강했었다면 이제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강조가 약화 되고 말았다.
처음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 어느새 ‘편리함’이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말았다.
그 편리함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비대면 예배를 선택하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우상은 ‘편리함’이다. 어느새 인본주의가 우리 안에 스며들어 하나님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자유’를 외치고 있다.
어떤 분에게 전에는 모임에 참석하기 싫으면 코로나 핑계를 대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핑계를 댈 거리가 사라져서 아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이런 핑계를 대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일성수, 예배, 말씀, 기도’라는 특권을 주셨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을 마치 강요처럼 취급하고 있다.
목회자가 교회 유지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명령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때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예배가 왜 선택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까?’ 목회자인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의 핏값으로 자녀 삼아주셨을 때 우리에겐 자녀로서 ‘책임’을 갖게 된다.
오늘 드리는 주일예배가 자유를 빼앗긴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이란 생각으로 드리길 소망한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으로 오늘 예배자로 서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옛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다면 다 쫓아버리고 온전히 새사람의 모습으로 주님 닮아가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편리함과 책임 없는 자유가 우리의 눈에 가시가 되고 옆구리에 찌르는 칼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립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주님을 닮아가는 종이 되게 하옵시고 들꽃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배드릴 때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온전히 전하므로 그 말씀이 우리들 삶에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편리함과 책임 없는 자유를 이기게 하옵소서. 감사의 제사, 찬양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예수님이 나의 주라고 고백하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