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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생명의 릴레이—씨앗
현재 유통되는 씨앗은 대부분 살충,살균 처리를 하거나 소독을 한다. 싹을 틔우기 전에 새에게 먹히거나 병충해를 입지 않게끔 미리 손을 써두는 것이다. 처리가 끝난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착색 처리를 하기도 해서 물에 빠뜨리면 물빛이 녹색이나 파란색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씨앗 단계에서 이런 처리를 해놓으면 자연재배를 하기 위해 애써 흙에서 ‘비독’을 뺐더라도 소용이 없다. 씨앗에 뿌린 약도 비독이 되므로 흙에 다시 불순물이 들어가는 셈이다. 정화를 마친 밭에 이런 씨앗을 뿌리면 생육 초기 단계에서 진드기가 빽빽하게 꼬이기도 하고 허약하고 빛깔 나쁜 잎이 나오기도 한다.
자연상태로 되돌아간 흙에 비독을 품은 씨앗을 심으면 채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화가 끝난 흙에서 채소를 재배하려면 그 밭에서 기른 채소에서 거둔 씨앗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 농가에서 직접 씨앗을 받는 것을 자가채종이라고 하고, 자가채종이 되풀이되어서 주위 환경이나 밭의 흙에 적응한 씨앗을 재배종 또는 고정종이라고 부른다.
오이는 원래 껍질이 부드럽고 금세 흐물흐물해지는 채소다. 그리고 벌레나 병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과분(果粉)이라는 흰 가루를 만들어 낸다. 열매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납 물질이다. 그런데 껍질이 부드러우면 운송할 때 부러지기 쉽고, 금방 흐물흐물해지면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 게다가 과분이 있으면 소비자들이 농약이라고 착각해 싫어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껍질이 단단하고 과분이 없는 이른바 ‘블룸리스 오이’다. 무수한 연구와 육종을 거쳐 마침내 이런 오이가 등장한 것이다.
F1종을 만드는 데는 멘델의 제1법칙 ‘우열의 법칙’을 이용한다. 형질이 서로 다른 부모 사이에서 생긴 자식은 우열의 법칙을 따라 부모의 형질 중 우성만 나타나고 열성은 그늘에 묻힌다. 이 F1종 채소에서 씨앗을 얻어 심으면 숨어 있던 열성 형질이 나타난다. 이것이 멘델의 제2법칙 ‘분리의 법칙’이다. 그런데 온갖 형질에서 거듭 살아남은 열성유전자가 얼굴을 내밀더라도 F1에서 자가 채종한 F2세대, F3세대, F4세대로 끈기 있게 자가 채종을 거듭할 때 경험에 따르면 F8세대쯤 되면, 즉 한해살이인 오이를 예로 들었을 때 8년 정도 노력하면 들쭉날쭉하던 모양도 가지런해져서 상품용으로도 손색없는 씨앗으로 고정이 된다고 한다.
씨앗 시장에서는 여전히 F1종이 전성기를 누리고, 요즘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도 주류가 되었다. 미국이 개발한 ‘터미네이터 테크놀로지’도 그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유전자를 끌여 들여 그 형질이 나타나게 하거나, 내재서 유전자의 발현을 앞당기거나 억눌려서 형질을 새롭게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이를테면 벌레 피해를 막는 데 유효한 독소를 지닌 미생물의 유전자를 추출해서 그것을 감자나 콩의 유전자에 집어넣는다. 벌레에 강한 작물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100도가 넘는 고온에서도 죽지 않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빼내서 작물에 넣으면 고온 지대에서도 쉽게 자라는 작물을 만들 수 있다.
유전자 재조합 농산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씨앗의 유전자를 재조합하면 제초제나 살충제를 뿌릴 필요가 줄어들어 농가로서는 작업하기가 매우 편해진다. 하지만 만약 살충독소가 들어간 식물이 꽃을 피우고, 그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멀리 날아간 꽃가루는 거기서 자라는 풀이나 꽃과 수분해서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고 그 꽃가루가 날아가 다시 수분을 하면서 이 과정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면 식물의 세계가 대체 어떻게 될까?
일본에서 유전자 재조합 식품은 법률에 따라 표시할 의무가 있다. 한국의 경우도 제품의 주표시면에 ‘유전자 재조합 식품’또는 ‘유전자 재조합00포함 식품’으로 표시하거나 원재료의 이름 옆에 ‘유전자 재조합’이라고 기재한다. 유전자 재조합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유전자 재조합00포함 가능성 있음’으로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시는 콩, 밀, 유채씨 등이 원재료일 때만 해당하고, 간장이나 기름, 마가린이나 맥주 등의 가공식품에는 표시 의무가 없다.
유전자 재조합 작물을 쓴 상품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로서는 어떤 상품에 유전자 재조합 작물이 쓰였는지 실제로 알기 어렵다.
씨 없는 과일을 한번 생각해 보자. 씨앗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씨앗이 없는데 다음 작물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을까? 포도를 예를 들자면, 꽃의 단계에서 두 차례 지베렐린이라는 식물 호르몬액에 잔뜩 절여서 씨앗이 생기지 않게끔 한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수분하면 암술에서 식물호르몬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다양한 효소가 작용해서 씨앗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호르몬액에 담가 두면 포도가 수분과 수정이 끝났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씨앗이 생기지 않는다.
씨앗의 참모습을 되찾으려면 농가에서 직접 씨앗을 받는 수밖에 없다. 농약과 비료를 빼낸 흙에서 자란 채소에서 생산자가 씨앗을 받고 그 씨앗으로 다시 채소를 기르는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해서 씨앗에 포함되어 있는 비료 성분을 빼내고 스스로 자랄 수 있는 힘을 되살린다.
식물이 생명을 남기려는 힘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이런저런 모양으로 다음 세대를 잔뜩 낳는다. 그중에 원래 모습에 가까운 일부에서 씨앗을 따서 기르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씨앗에서 비료 성분이 빠지고 씨앗이 밭의 흙에도 적응한다. 8년쯤 지나면 씨앗의 성질이 거의 고정되어서 땅의 맛을 지닌, 해당 생산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품이 된다. 말하자면 고정종이다. 재래종에서 고정하는 편이 비교적 잘 된다고 한다.
-천연균에 도전하다 —균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발효식품이라면 간장, 된장, 식초, 청주나 맥주, 포도주, 요구르트, 치즈 등을 들 수 있다. 낫토, 가다랭이포도 발효 식품이다. 여기서 주역이 되는 균이라면 쌀이나 과일로 술을 빚을 때 쓰는 효모균, 수롤 식초를 빚을 때 쓰는 초산균 등을 꼽을 수 있다. 원래 발효식품은 우연의 산물이므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균이 작용한다. 간장이나 된장은 각각의 곳간에 서식하는 누룩곰팡이가, 낫토는 볏짚에 있는 낫토균이, 청주는 술 창고에 있는 효모균이 작용한다.
된장이나 간장은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 감칠맛이라는 맛의 구성 요소를 모두 지니는데. 이 맛들이 어우러져 복잡한 맛을 낸다. 이것은 자연의 균이 만들어 낸 맛이다. 그런데 자연에 서식하는 균을 활용하는 것도 몇 십 년 전까지의 얘기이다. 놀랍게도 지금은 천연 균을 써서 발효식품을 만드는 곳이 거의 없다.
오늘날 슈퍼마켓 등지에 늘어선 시판 발효식품은 물론이거니와 자연식품점에 놓여 있는 식품도 대부분 천연 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균으로 발효식품을 만드는지 알아보니 종균 생산업체에서 산 ‘발효양조균’이 그것이었다. 자연에서는 다양한 균이 공생하며 일을 하는데, 발효양조균은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약품을 써서 특정한 한 가지 작용만 하게끔 만든 균이다.
화학적으로 분리 배양된 균은 천연 균과 어떻게 다를까? 천연 균에는 다양한 균이 포함되어 있는데 반해 분리 배양한 균은 단일균이 대부분이다. 목적에 맞게 특정한 한 가지 균만 분리해서 배양하기 때문에 순수배양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효식품은 아니지만 소금에 세계에서도 매우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시판되는 소금은 크게 천일염과 정제염으로 나뉜다.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천일염은 기본적으로 바닷물을 결정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반해 정제염은 멕시코나 호주에서 수입한 소금을 전기분해해서 순수한 염화나트륨을 끄집어 낸 것이다. 천일염에는 염화나트륨을 비롯해서 염화마그네슘, 염화칼륨 등 100여 종의 미네랄이 들어 있다. 이에 따라 짠맛뿐 아니라 신맛, 단맛, 깊이 있는 쓴맛 등이 어우러져 소금으로서 감칠맛을 낸다. 천일염은 천연 균에, 정제염은 분리배양 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균에도 저마다 역할이 있다. 다양한 균이 함께 있음으로써 서로 보완하며 상승효과를 낳는다.
발효식품의 세계에서도 균은 당연히 사서 쓰는 것이 되었다. 분리배양균을 사용하면 맛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생산 속도가 빨라지는 효과가 있다. 추출한 균을 조합해서 새로운 풍미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효과가 있으면 어김없이 부작용이 나타난다. 게다가 그 대가는 우리 인간에게 결코 작지 않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옛날에는 누구나 천연 균으로 된장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에도시대에 누룩 가게가 있었고 양조장은 거기서 누룩곰팡이를 샀다고 한다. 물론 그 무렵에는 아직 화학약품이나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없었으므로 누룩곰팡이가 지금처럼 일원화되어 있지 않고 저마다 지역 고유의 맛이 있었을 터이다.
당시 누룩 가게는 무엇을 이용해 누룩곰팡이를 분리, 배양했을까? 바로 천연 소재인 숯이다.
발효식품을 만들려면 당연히 바탕이 되는 재료, 즉 원료가 필요하다. 된장을 만드는 원료에는 쌀과 콩이다. 그런데 원료에 들어간 거름이 발효 과정에 영향을 끼쳐 거름 성분이 많은 쌀이나 콩을 쓰면 된장이 잘 만들어지지 않고 거름 성분이 적으면 잘 만들어진다. 이때 된장의 상태를 고르게 하기 위해 그들은 잡균을 배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누룩곰팡이 중에서도 발효에 쓸모 있는 것만 남기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분리배양 기술의 개념과 닮아 이를 위해 숯이 쓰이게 되었다. 숯은 염기성 물질로 균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효율 나쁜 숯을 대신할 다양한 약품이 개발되었다.
균을 왜 화학적으로 조작해야 했을까? 원료가 썩지 않고 발효하게 만들려면 강력한 발효균을 만들어 첨가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았을까? 나날이 개발되고 있는 균은 거꾸로 뒤집으면 원료의 질이 나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농업에 비료가 쓰이기 시작한 무렵에 이미 발효식품은 본래의 모습과 다른 요소를 갖추기 시작했고, 누룩 장인이 영화를 누리던 에도시대에 벌써 전통 발효문화가 쇠퇴의 길로 한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억측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은 어떻게 채취할까? 먼저 일정한 기간 동안 곳간에 두고 균이 붙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가 핀 것 같은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누룩을 만드는 씨가 된다. 균을 불러들이는 데는 온도와 습도가 매우 중요하며 콩의 상태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전에 자연재배 역사 짧은 콩을 썼더니 콩에 균이 잘 붙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그 후에 자연재배 역사가 긴 콩으로 시험해보았더니 그러자 균이 매우 잘 붙었다.
자연의 균이 작용할 때 원 재료가 좋지 않으면 부패하고 재료가 좋으면 발효한다. 겉보기에는 뚜렷하게 다른데 화학적으로는 같은 작용이라고 한다. 화학의 관점에서 부패와 발효를 둘 다 다를 바 없는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완성한 천연 누룩에 된장을 만들 만한 능력이 충분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된장을 뜨기 전에 만들어 보는 것이 있었다. 그게 바로 감주다. 감주가 맛있게 만들어진다면 누룩곰팡이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화 능력이 충분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깊은 맛과 감칠맛이 나는 천연누룩 된장은 제대로 된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공정을 제대로 거쳤으나 시중에 나온 저렴한 된장은 다루기 쉬운 분리배양 균을 썼고 발효 시간을 단축시켰으며 나중에 맛을 첨가했다. 값을 싸게 매길 수 있는 만큼의 공정을 거치는 것이다.
된장을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균이 작용해 비타민, 효소, 호르몬, 아미노산 등 생리활성 물질을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자연스럽게 제공해 주는 셈이다. 요즘 영양보충제를 구입해서 필요한 영양소를 일부러 섭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된장국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낫토균은 다른 말로 ‘고초균’이라고도 하는데, 식물의 이파리가 시들어 갈 즈음 활동이 왕성해진다. 낫토균은 겨울에 실의 탄력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름철에도 실이 죽죽 늘어난다. 여름에도 실이 잘 늘어나게끔 유전자를 조작해서 낫토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흙이 다시 태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농지를 한꺼번에 자연재배로 바꾸면 흙이 정화되는 동안 농작물의 수확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농사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은 그동안에 농사로 먹고 살아야 한다. 무턱대고 전부 바꾸었다가 농작물을 거두지 못하면 보상받을 길이 없다.
또 흙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흙을 정화하기 위해 벌레도 모여들고 병도 생기는데 그 모습을 보고 ‘흙이 다시 태어나면 농작물이 반드시 제대로 자랄거야’라고 변함없는 믿음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므로 농가에서도 부담이 크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이 바로 내 역할이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면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빠른 시간 안에 결과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공정을 생략하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제 해충이니, 잡초니, 유해균이니 하는 것이 사람이 만들어 낸 개념이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모든 벌레가 저마다 역할이 있고, 잡초라 불릴 만한 풀은 없다. 균의 세계에서도 나쁜 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숨을 이어가고 있는 수많은 산을 들 수 있다. 산은 영원토록 초목이 우거지고 생명을 이어간다.
채소를 생각해보자. 화학비료 등의 힘을 빌려서 재배 기간을 단축시키고 수확량을 훌쩍 늘렸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30년 전과 비교해서 영양가가 몹시 떨어졌다.
일본 식품 표준 성분표를 바탕으로 1950년과 2000년의 채소 100그램당 영양가를 비교해 보면 시금치의 철분은 13밀리그램에서 2밀리그램으로 떨어졌다. 80퍼센트나 감소한 것이다. 또 당근의 비타민A는 1만 3500밀리그램에서 4950밀리그램으로 60퍼센트 넘게 감소했다.
밭의 흙을 만들 때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하던 벌레는 밭에 필요 없는 것을 먹어 주는 존재이고, 잡초는 흙을 진화시켜 주는 존재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화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비료는 영양이다, 벌레 먹은 채소가 맛있다, 이파리가 진한 녹색일수록 맛있는 채소다 등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사실에 눈 뜬 생산자가 늘어났기에 자연재배나 천연 균 발효식품이 조금씩 늘고 있고 소비자 곁에도 진짜 먹거리가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가려낼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자연스럽게 되돌리는 첫걸음이다.
-채소에서 배우는 삶의 방식
미요시 원장은 생활습관병 전문의로 아토피, 화학물질과민증, 새집증후군 등 알레르기 환자를 주로 진찰한다. 그런데 약 한 알 처방하지 않고 검사도 하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환자를 진찰할까? 선생은 환자에게 생활습관을 꼼꼼하게 묻고, 때로는 환자가 사는 곳까지 찾아가 증상의 원인을 밝혀내기도 하며,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개선점을 일러 준다. 즉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진찰을 한다. 엑스레이 등을 이용한 검사는 그것만으로도 몸에 부담을 주고, 약은 증상을 일시적으로 누그러뜨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놓치게 한다고 생각해서 여느 병원에서 하는 통상적인 진찰은 하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의사와 약에 기대지 않는 삶의 방식을 미요시 원장이 뒷받침해 준 의학적 근거와 함께 이야기하려 한다. 의사에게 기대지 않는다면서 미요시 원장에게서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평소 생활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먼저 소개한다. 간단히 말해서 ‘들이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첨가물이나 화학물질은 되도록 몸에 들이지 않는다.
채소를 고를 때는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은 것, 비료를 썼더라도 동물성 비료가 아니라 식물성 비료로 키운 것을 고른다. 육류는 채소에 비해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료를 먹여 키웠는지, 가축에게 호르몬제나 항생물질을 투여했는지 생산 단계부터 최종 소비자 단계까지 이르는 과정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구입처에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정직하게 알려 주는 믿을 만한 가게를 찾는다. 조미료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규칙대로 만든 것을 먹는다는 것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되도록 불순물을 몸에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약이나 영양보조제, 건강식품은 피한다. 처음부터 자연의 에너지가 가득한 식사를 하면 약이나 영양보조제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밥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몸은 깨끗해질 수 있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몸에 들이지 않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의 핵심중 하나다.
*몸속에 쌓인 독소를 내보낸다.
건강한 채소를 재배하려면 먼저 흙에서 농약이나 비료의 성분을 빼내야 한다. 흙에서 비독을 제거하면 흙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져서 채소가 잘 자라듯이 사람도 어깨 결림이나 뭉친 혈액을 풀어 주거나 림프액을 흘려 보내면 안색이 좋아진다.
흙의 비독을 바깥으로 내보낼 때는 먼저 흙을 일구고 식물 뿌리로 흙속에 남은 비독을 빨아올리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독소를 내보낼까? 사람의 몸속에 쌓인 독은 땀이나 배설물, 생리 등으로 배출된다. 되도록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도 몸속에 있는 독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사람이 병에 걸리는 일이 몸속에서 독을 많이 내보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채소가 싱싱하게 자라려면 흙에서 비독이 완전히 빠져야 하듯이 사람이 병에서 나으려면 병의 원인이 몸속에서 다 빠져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병에 걸리면 그 원인을 몸 바깥으로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이 나면 어쩐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몸이 병의 원인을 바깥으로 내보내려 한다는 신호이다.
미요시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몸속의 모든 에너지는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집중하려 한다. 그래서 식욕도 없어지고 몸이 나른해진다. 에너지가 그쪽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며 식사를 억지로 하고 나른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면 그 일에 에너지를 써야 하므로 회복이 더뎌진다. 식욕이 없는 것은 먹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이고, 몸이 나른한 것은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이다.
이것은 나 역시 내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알게 된 일이다.
자연재배에서는 보리의 뿌리를 이용해 흙에서 정기적으로 비독을 뺀다. 마찬가지로 감기도 생리적으로 일어나는 자연 해독 작용일지도 모른다. 약에만 의존하면 우리 몸의 자연 치유력이 낮아진다. 그러므로 감기가 들더라도 약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가 아닐까 싶다.
미요시 원장의 말에 따르면 알레르기도 감기나 여느 질병과 마찬가지로 몸속에 쌓인 독을 내보내는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한다. 게다가 알레르기를 앓다 보면, 자연 치유력도 높아진다고 한다.
언젠가 미요시 원장이 인체의 불가사의라고 할 만한 사실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사람의 몸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특정 영양소를 응축해서 몸속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의 몸은 과잉 영양소를 이물질로 판단해서 배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영양보조제는 바로 특정 영양소를 농축한 것이다. 영양보조제를 먹는다는 것은 평소 섭취하는 식품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영양소, 달리 말하면 인간이 자연스럽게 살면서 식품을 먹었을 때는 얻을 수 없는 고농도 영양소를 몸에 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배출할 때 신장에 부담이 간다고 한다. 병에 걸렸거나 체질을 개선해야 해서 꼭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조제가 왜 자신에게 필요한지 이해하고 나서 선택하기 바란다.
자연재배는 욕심 많은 농법이다. 막 시작했을 때는 수많은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밭이나 채소의 상태가 좋아져서 결과적으로 질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농약이나 비료에 돈을 들일 일도 없으니 낭비도 줄뿐더러 좋은 결과를 매우 간단하게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채소가 잘 자라지 않는 원인을 기후니 벌레니 균이니 하는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릴 일도 사라진다.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길이 곧게 뻗어 있으므로 걸어가야 할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지금 자연재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눈앞에 벌레나 병이 나타나도 비료와 농약에 기대지 않고 계속 작물을 재배한다. 벌레나 병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채소, 된장이나 간장 같은 발효식품은 자연이 우연히 빚어낸 산물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료를 뿌려서 원래의 속도를 무시하고 채소를 기르거나 균을 배양해서 즉석 발효식품을 만드는 등 사람의 손을 더해 본래 모습과 다른 것을 만들어 왔다.
자연재배를 알고 나서 나는 큰 병을 앓은 적이 없다. 열이 40도까지 올라도 강연을 하고 매일 활기차게 돌아다닌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당연하다는 듯 하루에 네 끼를 패스트푸드로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농부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하찮은 이기심에서 벗어나 멀리 내다보고 사람과 마주하면 생활방식 자체에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것이 자연에 어울리고 어떤 것이 어긋나는지 일상의 곳곳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과 무관하게 결코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거에 어떤 음식을 먹었든 어떤 약을 먹었든 어떤 생활을 했든 지금부터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익숙하고 편리한 생활을 갑자기 싹 다 바꿀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자연을 의식하며 살아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조금씩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