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말씀
유 1:5-7
본 서신은 대부분의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당시 최대의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이 주로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단의 경계를 파헤친 바면, 본서는 주로 현실에 나타난 이단의 구체적인 실체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본의 저자 유다는 본래 성도들이 얻은 구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기술하려고 했으나,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이단 사상을 경계하는 입장에서 믿음의 도를 지키라는 신앙 교훈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설교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헬라 사람들의 시에 많이 나오는 시구(詩句)를 인용했고 (행17:28), 때론 외경과 위경에 나타난 일화를 사용하기도 했다.(딤후3:8)
유다도 계시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위경을 인용한 같은 독자에 대한 배려로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유사 정경인 외경과 위경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외경과 위경은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의 보조 자료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신앙생활의 규범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의 저자 유다는 자기가 순회 전도한 교회 하나에, 또는 여러 교회에 구원이란 무엇인지, 기독교의 기초적인 진리는 어떤 것인지를 써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3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정하던 차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교인들을 유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거짓 교사들, 악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싸워 이기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다서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이와 같이 교회에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위기의 산물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목격하고 직접 배워서 교인들에게 전해 주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지도력에 위기가 생겼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 바로 복음서들입니다.
말 대신 글로써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지도층의 교체가 복음서의 기록이라는 위대한 일을 이뤄 냈습니다.
첫째 :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멸망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5절)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노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설교는 육신이 살기위해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듣고 또 들어서 영적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으나 저들이 믿지 않고 광야에서도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많이 있었음에도 저들이 주를 거역하고 불신임하여 지도자 모세의 맘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저들에게 만나를 내려 먹게 하였어도 저들은 먹을 것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주께서 저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였는데도 저들은 가는 길로 인해서 원망하였었습니다.
결국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다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말씀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불신자이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오실 때 곧 말세에 믿음을 찾아보기 힘든 세대가 될 것을 교훈하셨다.
그러므로 이단자의 성격은 불신앙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함으로 이런 말씀이 거울이 되어 그와 같이 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듣는 말을 반복함으로 믿고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유다는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 말을 강조하는 뜻에서 자신의 권고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것이 아닌 만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유다는 이미 그들이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 자기 위치를 떠난 자들은 흑암에 가두신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6절)
이 말은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범죄한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내용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특권을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사명을 망각하고 오히려 반역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 날까지 결박하여 두신 것입니다. 그때에는 자기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영지주의자들 같은 이단들, 저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육의 일을 도모하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위치를 벗어 날 때가 있지나 않는지요? 유다가 이런 설교를 하는 이유는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하나님께서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 대한 징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구절의 ΄Αρχη(아르케-)는 ‘시초’ 또는 ‘지배’ 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다를 통해서 증거하신 이 말씀의 의미는 그 천사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무시하고 그들의 본래 소명에서 타락한 대가로 형벌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처소를 떠난’ 이라는 구절은 앞에 나온 말씀에 대한 해석입니다.
전쟁터에서 탈영한 병사처럼 천사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기들의 위치를 이탈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를 통해서 보여 주시는 처참한 형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전에는 그 천사들이 자유로운 영이었을 뿐 아니라 하늘의 지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영원한 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광채를 누렸을 뿐 아니라 그분의 광채가 그들에게 반사되어 있어서 그들도 역시 마치 태양의 햇살처럼 지구의 구석구석을 비췰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어둠 속에 쳐 박혀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지위를 상실한 이후에 그들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가를 보여 주고자 했을 뿐입니다.
셋째 : 다른 육체를 따르면 형벌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7절)
거울이 무엇입니까? 얼굴을 보고 잘못된 것을 보면 고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듣고 보면서 우리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주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잘 믿는 사람들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서 우리도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설교를 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줄로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애굽에서부터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임하고 거역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천사들처럼 그렇게 위대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위를 망각하고 그 지위를 떠난다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형벌 받는자들의 실례가 “소돔과 고모라” 입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은 어떤 민족이든 간에 구별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죄악이든 처벌하신다는 사실을 증거 해 주는 실예가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유다는 계속해서 다섯 개의 성읍을 살라버린 불은 영원한 화염의 상징으로 말씀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서운 본을 하나 보여 주심으로서 세상 끝까지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공포를 심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선지자들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할 때마다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 그 자체를 불과 유황으로 묘사하면서 소돔과 고모라들의 전복을 그 실예로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