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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제 : 2012년 10월06일
누구와 : 우리부부
어디로 : 인왕산(338m), 백악산(342m)
토요일 아침 서오릉 인근에 가 아침을 해장국으로 먹고 들어와 3일 날 못했던 산행 준비를 한다. 지난 달 말경 산악회 일부 회원들과 독립문 역에서 출발 인왕산 산행 후 청와대 옆으로 하산 안국동을 지나 인사동에서 오랜만에 시내 구경과 맛난 점심을 해결 가끔 이런 행사도 했으면 바램이다. 어제 마시려고 사다 놓은 막걸리가 냉장고에 고스란히 있어 오랜만에 술이 배낭에 들어 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배낭에 술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안 한 기억이 새삼 떠오르며 산에서 매번 얻어 마신 것 같다. 하기사 요즘 수도권 산의 등산로에서 막걸리 가판대가 사라졌으며 산에서의 음주는 안전사고와 연결된다며 음주문화를 없애자는 캠페인이 일고 있으니 산속에서 점심 먹으며 한잔의 꿀맛 같은 반주도 괜히 눈치가 보인다. 술은 분에 넘치게 마시면 평소에도 과음은 실수를 부르는데 암벽 등반하면서 아니면 위험한 산행을 하면서 평상시처럼 마신다면 산 근처도 가지 말아야 되지 않는지?? 어떻게라도 정당성을 만들어 배낭에 조그마한 병 하나를 넣고 다녀야 될 것 같다. 너무 얻어 마신 것 같아서.ㅋㅋㅋ 지난번 백련산 산행하기 위하여 녹번 역까지 걸어가며 고생한 생각에 오늘은 전철 타고 가자고 하니 와이프 왈 걸어서 가야 한라산 올라갈 수 있단다 하는 수 없이 무악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삼각산이 남쪽으로 보현봉을 솟구치고 다시 북악에서 한 줄기는 동쪽 낙산으로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뻗어 인왕산을 빚어 놓았다. 풍수지리상으로 주산인 북악산에서 보면 낙산이 좌청룡이고 인왕산이 우백호가 된다고 한다. 위치상으로는 종로구와 서대문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울의 진산 중 하나이다.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이어지며 동쪽 산허리로 북악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인왕산이란 명칭은 산자락에 인왕사라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조선 중종 때는 필운산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지금도 사직공원 근처에 필운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남아있다. 인왕산하면 호랑이가 떼 오른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는 뜻도 있지만 권력과 유명세라는 말로도 통하며 산세가 수려해 예전부터 그 배경으로 이름난 화가들이 화폭을 장식했다고 한다. 특히 겸재 정선(1676년 ~ 1759년 조선후기의 화가, 문신)의 『인왕제색도: 국보 216호』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년 『仁王』으로 옛 지명이 환원되었고 군사적인 이유로 통제되었다가 1993년 2월부터 개방되어 휴일이면 많은 탐방 객들로 봄 빈다.
10시35분 무악재 육교 앞에서 산으로 들어간다. 어차피 인왕사와 국사당으로 가는 길은 독립문 쪽에서도 아파트를 끼고 가야 되는 산길이라 우리는 가로 질러 무악공원의 베드민턴장쪽으로 길을 잡고 진행 예전에는 집이 있었던 흔적들을 보며 숲이 우거진 곳에 버려지다시피 한 정자 옆 체육시설을 보니 너무 과잉투자가 이루어졌지 않나 생각해본다. 무악현대아파트가 보이며 공원에는 유치원생들이 모여 교사들과 즐겁게 공놀이 하는 모습과 약수터에서 물 받는 노인들을 보며 베트민턴장을 지나 산비탈에 지어진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집 앞에 도착 골목마다 코팅지로 정상까지 가는 길 안내가 곳곳에 잘되어 있다. 주택과 절 집이 여기저기 있는 골목을 지나 바위에 양각되어 있는 마애불도 지나 선바위(시 민속자료 제4호)에 도착한다. 자식을 갖기 위한 노력으로 이곳까지 올라와 정성으로 기도했다 하여 기자암이라고도 불리며 멀리서 바라보면 장삼을 두르고 있는 스님처럼 생겼다 하여 선(禪)자를 사용 선바위라 불린다. 우측 아래가 요란하여 눈을 돌리니 국사당에서 한판의 굿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이들이 모여 있어 내려가본다. 제5회 국사당 별기은제(굿당) 발표회라는 행사며 사당 안에서 한판의 굿이 이루어진다. 바로 아래에 인왕산으로 이름 지어진 인왕사 대웅전 지붕이 내려다 보이며 흰 옷을 입은 여성에게 안내책자를 얻어 읽어보니 큰 행사인 듯 구경하고 점심 드시고 가랜다. 오랜만에 우리나라 고유 토속적인 행사를 볼까도 해보지만 지난 3일 날도 미루었고 오늘도 미루면 안될 것 같아 와이프와 다시 산행 길로 나선다. 약수터를 끼고 어디선가 징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며 계곡 쪽으로 진행하다 우측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길로 꺾이며 남산방향 조망이 열린다. 국사당(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원래 남산에 위치해있다가 일제 강정기 때 이곳으로 옮겨진 당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이산이 기가 세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곡 및 바위틈마다 토속신앙을 숭배하는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안전로프 중간에서 좌측 바위로 올라서서 해골바위방향으로 진행하여 성곽을 넘어가는 계단이 있다 5월 달에 왔을 때는 없었던 곳이 새로 생겨 사직공원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성곽을 계단으로 넘어가면서 정상 쪽을 바라보면 새로 단장한 성곽이 유난히도 하얀색으로 길게 이어진다. 세월아 어서 빨리 흘러가라 그래서 예전 성곽처럼 색깔도 바위 색으로 변하여 견고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 놓고 세월의 흔적을 표현해주거라…… 중간중간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모습들이 이곳이 매우 중요한 곳이구나 느끼며 지지난 주와 똑 같은 날씨 속에 헉헉거리며 돌계단을 올라 얼굴바위 정상부근에 도착 더는 진행 못하게 철조망이 가로 막혀 있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더크계단을 이용 홍제동 시가지며 안산의 바위 군을 조망하며 유난히도 등산객들이 많다는 느낌이다. 인왕천 약수터에서 올라오는 이정표 아래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표시가 바닥에 있으며 정상이 300메타 정도 남았다는 곳 나무 그늘에서 잠시 휴식 후 60여 개의 급경사 철 계단과 바위에 세워져 있는 안전로프 따라 그늘 하나 없는 급경사 길을 헉헉거리며 진행 수많은 산객이 운집한 정상에 올라 삼각산의 멋진 모습이며 앞으로 가야 할 북악산과 남산 등 눈이 보여주는 시야의 조망을 마음껏 감상하고 백하여 우측으로 북악산 성곽 길 방향으로 내려선다. 그늘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안 가득히 음식을 집어 넣고도 왁자지껄이다. 12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 기차바위와 성곽길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 지난번에는 기차바위를 지나 부암약수터로 해서 부암동민원센타 앞으로 하산했기에 이번에는 성곽 길로 진행하여 윤동주 시인 언덕 오르는 길과 창의문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담을 넘어가지 않고 돌계단을 지나 그늘진 곳에 자리를 편다. 막걸리와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20여분 휴식하고 개망초가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곳에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어선다.
수많은 돌계단은 오를 때는 운동이 되지만 내려갈 때는 고역이라 와이프는 한발한발 내려서면서 걷기에 속도가 느려지며 한라산 계단 길을 어떻게 오르내릴까 걱정이 앞선다. 그때 가면 또 다르겠지 생각하며 어느덧 또 다시 직진방향은 통제가 되며 좌측으로 성곽을 넘는 계단에 올라서서 기차바위의 멋진 모습도 올려다 보고 가을의 전령사인 담쟁이덩굴이 붙어 있는 성곽을 지나 윤동주 시인 언덕길 산책로 앞에 도착 내려서기 전에 상수리나무가 있어 손으로 건드리니 여기저기서 상수리가 떨어진다. 와이프 어느새 얼굴색이 달라지며 발로 차보랜다.ㅋ 하여 든 10여분 동안 묵 한번 해먹을 수 있는 량은 수확했으니 겨울이 생각난다. 오후 1시 산책로라고 되어 있는 곳은 차량들이 지나가는 곳이고 건너편으로 건너서 조금 진행하여 정자가 나오고 많은 학생들이 들러서 있는 윤동주 시인의 유명한 『서시』 시비 앞에 도착 단체단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 창의문 방향으로 내려선다. 최규식 동상 앞에서 도로를 건너 청계천 발원지 안내 석판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 본 후 북악 성곽 길을 가기 위하여 창의문 안내소 방향으로 이동한다. 창의문은 서울성곽의 4소문 중 하나며 도성 북쪽의 북악산과 인왕산 능선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안내소 오르는 길 옆에는 코스모스가 흐트러지게 피어 있고 세검정 및 경북궁까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무더위 속에서도 외국인들까지 수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매스컴의 힘이다. 얼마 전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후부터 찾는 이가 더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출입 허가서를 작성 신분증과 함께 제시하니 출입증이 나오고 인식표처럼 너도나도 목에 걸고 계단으로 이루어진 성곽 길로 접어 든다.
삼각산 보현봉에서 가지 쳐 내려와 봉우리 하나를 일으켜 세워 놓은 서울 수도의 진산인 북악산은 백악이라고도 하며 해발 342m이고 화강암으로 이루어 져있으며 인왕산, 낙산, 남산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기에 이들 산을 이용하여 성을 축조하였으며 그 아래 오백 년의 세월을 통치한 조선의 왕궁인 경북궁이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도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청와대가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백악산이라고 했지만 일제 강정기 이후 북악으로 불려졌고 지금은 본래의 이름으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정상석 및 곳곳에는 백악이라는 안내가 되어 있다. 창의문부터 정릉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과 와룡공원등 볼거리와 휴식공간이 있고 능선마다 조망이 좋아 통제가 심한 곳이지만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오는 곳이다.
주변에 통제가 되니 밤나무와 감나무에 열매들이 송두리째 달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며 우측으로 돌고래 쉼터라는 휴식처가 있지만 많은 이들이 휴식을 하기에 비집고 들어 갈 자리가 없어 쉬엄쉬엄 오르면서 조망을 해본다. 좌측으로는 삼각산의 멋진 봉우리들이 다가오며 계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정상 못 가 휴식처가 우측으로 있으며 목에 걸고 가는 출입증이 거추장스러워 손에 들고 쉼터에 도착하니 젊은 친구가 목에 걸으랜다. 우쒸~ 하찮은 것도 통제라고 참 가당치도 않지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임무니 어떡하랴 따를 수 밖에…… 땀 흘리고 힘들 때 효과가 있는 포도를 꺼내어 허기를 달래고 얼마 남지 않은 정상으로 이동한다. 헉헉거리면서 오르는 가파른 계단 길 오른쪽에 세워 놓은 사진에는 사슴과 더불어 『즐거운 탐방 시간되십시오』 라는 문구를 보고 학생들이 웃는다. 이해가 간다. 물병 하나 달랑 들고 와서 빈병 달랑달랑 손에 잡고 힘겨워하는 모습에 즐거움이란 그네들이 느낌이 올까. 우리 부부도 힘겨운 건 마찬가지…… 학생들을 불러 세워 배낭에서 얼음물을 건네주니 너무 좋아하며 7~8명이 아우성이다. 그나마 물이 여유 있어 다행이다 싶고 1리터짜리 한 병이 금방 없이 진다. 고맙다는 말들과 성큼성큼 올라가는 젊은이들을 보니 다음에는 준비를 잘 해서 이런 곳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조금씩 힘든 계단 길을 올라 우측으로 백악마루라는 이정표 따라 북악산 정상에 선다. 정상석에는 백악산이라고 되어 있으며 앞쪽으로 조망은 좋지만 삼각산 쪽은 나무들이 무성하여 조망 권이 없다. 정상에서의 기쁨은 모든 이들의 특권, 너도나도 바위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뒤로 다시 산행이 시작되며 얼마 안 가서 소나무가 등산로에 있으며 몸에는 페인트로 군데군데 표시가 되어 있다. 이 소나무가 바로 1968년 1월21일 청와대를 습격 할 목적으로 남파된 무장공비들이 도주하면서 이루어진 총격전의 흔적으로 총탄이 15발이나 박혔으며 이후로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민족 분단의 뼈아픈 흔적을 뒤로 하고 청운대 앞에 도착 또 다시 담을 넘는 계단이 있어 이정표를 사진에 담으려니 촬영금지란다. 예전에는 백악에서 최고의 조망 처라고 했다지만 지금은 무성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으며 통제가 심하여 그냥 성 담장을 넘어 소나무 숲을 걸어간다. 이곳은 산림청에서 조성한 도시림(모델 숲)으로 솔 향기 그윽한 곳이다. 한 동안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진행, 오후2시40분 숙정문(북대문)에 도착 숭례문, 흥인지문과 버금가는 대문이지만 도심 속에 있는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만큼 역사적 흔적이 더하지 않나 싶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오늘의 목적지를 향하여 발길을 돌린다. 성 넘어 좌측으로는 1970년 초에 건축하여 요정정치의 산실로 유명했던 삼청각이 웅장하게 내려다 보인다. 1990년에 예향이라는 이름으로 이미지 변화를 꿈꿔봤지만 결국은 경영난으로 90년 말에 문을 닫았다가 2001년 전통문화공연장으로 새 단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 속에 등장하여 화제로 떠 올라 멀리에서도 2층에는 손님들이 가득한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힘들어 하는 와이프에게 “우리 언제 저곳에 가보자” 했더니 “밥값이 만만치가 않을 건데”한다. 그래도 가보자 약속하고 힘차게 말 바위 전망대 앞에 도착 안내소에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오니 어느덧 3시가 넘어가며 출입문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통제한다. 좀 더 진행하여 와룡공원으로 해서 하산을 생각해보지만 오늘은 삼청공원 쪽으로 하산을 한다. 오후3시20분 말 바위 앞에서 잠시 휴식하며 배낭에 남아 있는 빵과 커피로 허기를 달래고 목재계단을 이용 오후 3시50분 삼청공원 정문에 도착 이로서 인왕산과 백악산 산행을 마무리 한다.
※ 1395년(태조 5) 축조한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백악산에서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길이 59,500자(약18.2Km)의 성곽이며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하고 농번기를 이용 대 인원을 동원하여 1~2월 49일, 8~9월 49일 합 98일 동안 마무리 했고 그 후 1422년(세종4년) 32만(그 당시 한양의 인구가 10만이었다고 함)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가 동원 모든 성곽 둘레를 석성으로 개축했으며 1704년(숙종30년)때까지 큰 붕괴가 없었었다고 한다. 인조가 청나라에게 나라를 넘기고 그때부터 성은 군사적 가치로 보아 보수와 신축을 못하게 하였지만 숙종은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북한산성까지 쌓았으며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근대 사회로 들어오며 평지의 성은 도시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모두다 허물어져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약 10Km정도만 남게 되었다.
인왕산은 야간에도 통행이 가능하여 서울의 야경을 볼 수 있지만 백악산은 창의문(자아문 또는 북소문)에서 숙정문(북대문)까지는 하절기(4월~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동절기(11월~3월)에는 오전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삼청공원에서 내려와 삼청동 도로 따라 활기찬 도심 속 풍경을 느끼며 휴일 날 시민들과 어울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도 해 본 하루로 기억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