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 산지 남쪽,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 한 고대 도시로 아랍어 로는 쎄일룬이라고 불리 우는 실로는 벧엘에서 세겜으로 가는 고대 족 장도로에서 동쪽으로 들 어가 있다.(삿 21:19 "벧 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 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 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실로는 이스라 엘이 가나안 땅에 돌아 온 후 처음으로 법궤를 안치하고 중앙 성소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3000여년에 걸쳐 이스라 엘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향의 역할을 하였다. 실로의 지명을 최초로 확인한 사람은 1838년 루빈슨이란 사람에 의해 서 였다. 1915년 슈밑이 라는 학자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1963년 화란 학자 닐슨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어 세상에 알려 지게 되었다(1926, 1929, 1932). 발굴 결과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고대 가나안 사람 들이었고(초기 청동기 시대 주전 3300-2300년), 중기 청동기 시대(주전 2300-1550) 즉 족장 시대 및 애굽 노예시대 때는 돌로된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는데 성벽의 넓이가 무려 5미터나 되는 가나안 사람들의 큰 성읍중 하나였다. 후기 가나안 시대에는(주전 1550-1200년) 성벽의 넓이가 2 미터가 되고 이 때 성은 무너지게 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문인지는 고고학적인 증거 로 아니면 성경의 증거로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실로의 정복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곳이었고 신앙의 중심지 였다(수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회막은 시내산 에서 근원되어 요르단 강을 건너 길갈에 유하다가 실로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때 이 법궤를 불레셋에 빼앗겨 7개월을 적의 수중에 머물다가 기리얏예아림에서 20년을 있다가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된다(삼상 6:1; 7: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 전쟁후 처음으로 실로에 모여 나머지 7지파의 땅을 분배하기 위해 실 로에서 정탐군을 사방으로 보냈다. 즉 실로의 의미는 남쪽 가데스 바르네아의 의미를 지니고 있 다(민 13, 수 18:8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땅을 그리러 가는 그들에게 명하여 가 로되 가서 그 땅을 두루 다니며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 엘리 제사장 때 하나님의 이상이 희귀할 때 이 실로에서 서원한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 의 말씀을 듣는다(삼상 3:19-21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 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 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즉 이 곳 실로는 서원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하 나님의 계시가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영적 지도자로 훈련 받은 곳이다. 실로는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으로 머문 성스러운 장소이었으나(렘 7:12 "내가 처음 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엘리 제사장의 죄악으로 퇴락의 길을 걸어 주전 722년 앗수르의 왕 사 르곤에 의해서 파괴된 후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곳 출신의 선지자로서는 여로보암에게 왕이 된다고 예언했던 아히야가 있다(왕상 11:29; 14:2). 사사 시대 때에는 베냐민 지파의 멸절을 막기 위해 실로 여인들을 선택해 베냐민 지파와 결혼 을 시켰다(삿 21:21). 엘리 이후 실로는 후기 예언자 시대 때 하나님께 버림받은 성소의 대명사로 불리워져 왔다(렘 7:12-14; 26:6, 9 "이 집이 실로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으리라"). 실로의 히브리어 는 유사 단어 에서 나온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즉 히브리어 의 접미어 와 가 서로 바뀌어 쓸 수 있고 은 생략될 수 있기 때문에 실로의 뜻은 "그로부터 빌려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오늘날로 적용해 보면 실로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이었으나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영광을 주인께서 다시 거두어 가 버리신 슬픔의 장소인 것을 배울 수가 있다. "빌려주신 분께서 다시 찾으로 오실 때까지 주님께 더욱 신실하자"
<보충자료>
시기의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회막과 언약궤가 실로에 위치하고 있었다(삼삼 1:9, 4:3-4).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던 때(삼상 4-5장)에 언약궤는 하나님이 실로를 떠났기 때문에 적군에게 빼앗겼다(시 78:60).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되돌려졌을 때, 더 이상 실로에로 언약궤가 되돌아오지 않았다(삼하 6:2-17). 언약궤가 실로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난 이후로는 점차적으로 실로의 중요성은 사그러졌 다. 이러한 중요성 상실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완성되고 난 이후로는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대한 초기 정복을 끝마치고 난 이후에 처음으로 실로에다가 성 막을 머무르게 하고 성막이 설치되는 고정적인 장소로 만들었다(수 18:1). 이렇게 만들어진 실로 의 회막은 사사시대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소의 역할을 하게 된다(삿 18:31). 실로에서 나머지 일곱 지파에 대한 땅 분배가 이루어졌다(수 18:8-10). 한나는 실로에서 아들을 얻기 위한 서원기도를 드렸다(삼상 1:3,11).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 를 들으시고 아들을 낳게하였는데, 그 아들이 바로 사무엘이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실로 지역에 사람이 부분적으로 살고 있었다(렘 41:5)고 하지만 실로는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렘 7:12, 14). 실로는 헬라와 로마 시대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던 곳으로 방치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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