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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토끼와 교활한 여우 정치외교학과 21312290 이 준 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나무 열매를 따먹고 나서부터 일까? 인간에게 부끄러움이 생겨났다. 욕망이 일어났다. 편견으로 가득 차버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간사한 뱀에게 홀려 선악과 열매를 먹게 된 인간의 운명이 우연이었던 그렇게 될 숙명이었던 그것은 중요치 않다.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면,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벌이 이성을 짊어든 삶이라면 그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제목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못 받았는가?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일지 모르겠다. 멍청한 토끼와 교활한 여우가 우리들 마음속에 전해주는 편안한 와 닿음과 불편하지 않은 전달은 역설적이게도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주토피아’는 포유류 실종 사건으로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이 우리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들고 위험에 빠트리는지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의 눈과 그 믿음이리라. “‘주토피아’ 위대한 도시, 우리 조상들은 하나가 됐고 이렇게 선언했죠.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라며 주디 홉스는 말했다. 주토피아는 인간에게 유토피아 그 자체의 도시다. 하지만 인간들의 꿈에서나 등장할 법한 유토피아도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시인했다. 인간이 불완전한 이상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유토피아다. 그런 의미에서 주토피아는 동물들에게 ‘완벽함’ 내지는 ‘천국’, ‘평화’만을 상징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주디 홉스는 버니빌에서 살며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최초의 토끼 경찰, 성공한 경찰을 꿈꾸며 세상의 편견, 통념, 관습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토끼였다. 기디온 그레이가 “토끼 경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라며 콧방귀를 뀔 때 “옹졸한 동물한텐 불가능해 보이겠죠.”라며 훌훌 털어버렸다. 심지어는 주디의 부모님도 토끼가 경찰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했다. 좋은 세상을 바란다는 주디의 말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홍당무 농사를 짓는 것이라며 세상의 틀에 순종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주디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하나의 세상을 깨고 있었다.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며 루쉰이 말했다. 하지만 태초에 없던 길을 너무 많은 사람이 지나가 버린 것일까? 아님 너무 많은 길이 생겨버린 것일까? 희망이 이룩한 인간의 성취는 결국 또 다른 알이 되어버렸다. 부모님, 기디온, 경찰 서장, 주토피아 시민들의 편견을 깨려고 노력한 주디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시선으로 실종사건을 바라본다. 실종자가 모두 육식을 하는 맹수였던 점에서 주디는 실종사건이 생물학적 요소와 관련돼 있다고 인터뷰하기에 이른다. 희망이란 끊임없이 추구하지 않는 이상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게 마련이다. 내가 바라는 희망에 질문을 더 이상 던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생명과 인간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어버릴 것이다. 지구가 평면이 아닌 이유는 목적지에 다다르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희망의 길을 찾아 영원히 여정을 떠나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구는 둥글다. 알이 되어버린 주디의 옆에는 닉 와일드가 있었다. 주디는 세상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찰이 되었다. 편견의 눈을 갖게 돼버린 주디는 세상의 기준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맹수들의 생물학적 요소 때문이라는 주디의 믿음으로 사회를 갈등과 미움의 싹이 피어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닉은 주디가 본래의 눈을 회복하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마치 유명한 장님의 일화처럼 말이다. 길을 잘 찾아가는 장님이 한 명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눈을 뜨게 된 장님은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불빛과 조명 때문에 예전에는 잘 찾아가던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이 장님은 지나가던 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너무 혼란스러워요. 어떡하면 되죠?” 스님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시 눈을 감으십시오.” 한 번 눈을 떠버린 자가 다시 눈을 감기란 매우 어렵다. 내가 원래 눈을 감고 있었다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주디의 맘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편함을 갖게 도와준 인물이 닉이었다. 죄 없는 맹수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는 자책감으로 버니빌에 돌아간 주디는 동물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 ‘독이 있는 꽃(밤의 울음꾼)’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토끼도 야수가 될 수 있어”, “밤의 울음꾼은 늑대가 아니라 꽃이야, 그 꽃이 맹수들을 야수로 만든 거였어. 그거야 내가 놓쳤던 단서!” 주디는 깨달았다.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해준 것은 닉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던 건 자기 자신이었다. 주디는 닉과 함께 연쇄 야수 습격 사건의 배후가 뷀에더 시장(초식동물 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초식동물이든 육식동물이든 외적인 모습과 생물학적인 특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악할 수 있고 누구나 선할 수 있다. 본질을 무시한 채 껍데기만 바라본 결과는 주토피아 시민들을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서로를 헐뜯고 모든 맹수를 야수로 매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혀 범인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뷀에더가 범인이었음에도. 주토피아 즉, 유토피아는 끊임없이 편견과 틀을 깨부수고 나가는 과정이었다. 도전 없는 완성된 유토피아를 추구할 때,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폭주족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는 마지막 장면인 경찰차 안에서 주디와 닉은 서로를 바라보며 “교활한 토끼”, “멍청한 여우”라 말하며 사랑을 속삭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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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회의 편견과 틀을 깨부수고 나갈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요! ㅎㅎ
본문에 알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이 되었다는게 이해를 못하겠네요. 알의 의미나 어떤상징을 가지고 있는건가요?
본문에서 알이란 기존의 통념, 관습, 틀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디는 영화 초반에 알(사회의 편견)을 깨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자신이 편견을 갖는 인물로 변질 되었습니다. 또 다른 기성세대의 권력, 기득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고 정체한다면 기존의 틀을 깨기위한 새로운 시각도 결국 또 다른 기성세대의 출현으로 변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닉이라는 요소와 함께 기디의 변화 역시 틀에 갇힌 주디의 알이 깨지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요?
닉, 기디, 부모님 모두 주디가 알을 깨는 데 도움을 준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주디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닉을 꼽는 이유는 주디가 인터뷰를 마치고나서 주디와 닉의 대화 때문입니다. 주디는 자신이 인터뷰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닉과의 대화에서 "아차 뭔가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디의 변화에 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
알? 면성씨 질문에 대한 답이 글 안에 녹아 있어야 해요.
"희망이란 끊임없이 추구하지 않는 이상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 잘 이해가 안 되고 있음
저는 주디가 기존질서를 깨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현실도 누군가가 꿈을 꾼 희망이 일궈낸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원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희망이 반영된 현실도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꾸준한 성찰과 반성(질문)이 없다면 종국엔 파멸할 것입니다.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파멸을 의미합니다.
@이준원 그런 의미에서 지구가 둥근 의미를 "인간의 목적지는 없다.", "역사의 끝은 없다." 영원히 질문을 던져야 하는 존재이며 유토피아는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하려고 했던 생각을 제가 생략해서 함축적으로 쓰는 바람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습니다. 더 명확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이준원 이런 심오한 뜻을... 말해줘야 알지요^^
@gramsci7 다음 과제에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한 글을 써서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