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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대구교회 가을집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2017. 10. 8. 이현래 목사님 화답 5
합창단에서 노래한 가사 중에 ‘하나님 나라 가는 길, 열차 타라’고 하던데 나는 다 못 가고 돌아왔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할 말이 없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 약 7시간 동안 의식이 끊어졌는데 아무 것도 없다.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한 말도 잊어먹고 없고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천당이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천당에 갔다 왔다면서 이것 봤다 저것 봤다고 하던데 나는 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딱 두 가지 광경을 보았다. 아주 아름다운 집이 하나 있다. 지금 우리 집인데 그것을 조금 더 각색해서 잔디로 쫙 덮여있고 그리고 깨끗하게 수리해서 나무가 그대로 본래의 색을 가지고 있는 집으로 되어있었다. 속으로 누가 저렇게 우리 집을 리모델링해서 깨끗하게 해놓았지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까 아무것도 없고 중환자실이었고 아무 것도 없었다. 하도 이상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또 그 집이 도로 나왔다. 꿈인가 생시인가 모르겠다. 다시 떠 눈을 뜨니까 역시 중환자실이었다. 그것을 몇 번을 시험했는데 몇 번을 해도 똑같았다. 이상했다. 그런 것을 하나 봤다.
또 하나는 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고 한 형제의 목소리가 나는데 서울 말씨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형제들이 와서 지금 면회를 하려고 들어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속으로 중환자실에 못 들어올 텐데 하고서 눈을 딱 뜨면 도로 중환자실이었다.
이것도 이상해서 도로 눈을 감으면 입구 쪽에서 또 그 소리가 났다. 이것도 몇 번을 실험했는데도 똑같았다. 이런 것이 무슨 현상인지 잘 모르겠다. 이것이 천당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데 남는 것이 딱 그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아름다운 집을 하나 봤고, 그리고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 내 인생에는 그것밖에 없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는 것이 너무 쉬운 것이 자기가 죽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까 쉬운 것이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이니까 전혀 모른다. 오후3시에 병원에 들어간 것밖에 모른다.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모른다. 그 안에 숨이 끊어졌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을 극적으로 살려내서 오늘 여러분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순간 1초만 늦으면 그만큼 뇌에 지장이 생기는데 그 숨 가쁜 순간을 잘 맞춰서 지금 여러분을 보고 있다. 치매에 안 걸리고 왔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하지만 천당갔다온 소설책을 써야 한다. 주변에서 여러분이 기도해주신 힘이 있는 것 같고, 특별히 이번에 우리 아들 화평이 하고 며느리 문선이가 크게 쓰였다.
나는 혼수상태에 있는 것을 몰랐다. 이상하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내가 조금 이상했던 모양이었는데 그것을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지나가는데 문선이가 보고는 이상하다 싶어서 피검사를 했다.
이산화탄소가 몸에 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나는 왜 병원으로 가는지 몰랐다. 이산화탄소가 몸에 차니까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볼 때 이상한 것이다.
나는 병원에 들어갔을 때 의사선생님 만나서 인사하고 그리고는 모르겠다. 그 후로 나는 아무 말도 안했냐? 그게 아니고 뭔 이야기를 다 했다고 한다. 의사하고도 얘기를 했다고 한다.
만일 그 시간이 잠자는 시간이었으면 그냥 갔다. 잠자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화평이가 그것을 감지했다. 동맥혈을 두 번을 채취해야했는데 한번은 채취할 때 눈을 찡그렸는데, 두 번째 채취할 때 인턴의사가 두 가지를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한 가지만 가지고 왔다. 한 가지를 다시 가지러 갔다가 또 와서 주사를 놓는데 전혀 감각이 없더라는 것이다. 옆에서 보니까 눈을 깜박거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하고 부르니까 대답을 안 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만일 밤이었으면 조용히 자니까 잠자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위기를 넘어가면서 이렇게 한 데는 특별한 분들의 수고가 많았다. 지금까지 내 몸을 관리해왔던 이순자 자매가 맨 먼저 이것을 알아차리고 문선이에게 이야기를 해서 피검사를 하게 된 것을 뒤로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 순자 자매가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차에 타서 잠을 못 자게 계속 나를 깨웠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서 교수님을 만났는데 나는 인사만 한 것 밖에 모르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들으니까 진료실에 들어가서 진료를 다 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갈 것인데 일반병실로 일단 입원을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분을 만난 것이 참 감사이고 은혜인데, 너무나 성심껏 나를 돌봐주었다. 이분은 김성이 자매라고 진희 형제가 인도하여 교회에 온 자매인데 바로 그 교수님 밑에서 일을 하는 간호사였다. 그래서 더욱더 친절하게 해주었고, 매일 병실에 두 번씩 와서 점검해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분은 처음 만났다.
그리고 제일 몸을 조리고 당황했던 사람은 이순자 자매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몇 년 간 담당자(주치의)로 보살펴왔는데,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서 죽으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자기도 너무 당황한 것이고, 만일 내가 그렇게 죽었으면 자기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교회에 오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변에서 보살펴주고 염려해준 사람들의 은혜가 있다. 그리고 성이 자매가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그 교수님 바로 밑에 있었기 때문에 응급할 때 전화를 하여 급하게 오시게끔 하기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역할을 크게 하여 이런 일을 좋게 마무리 하도록 만들었다. 재형이도 밤에 와서 계속 당직을 했다. 밤이면 화평이 재형이 문선이 세 사람이 교대로 밤을 새우며 당직을 했다.
이효용 형제가 자기가 하겠다고 자원을 하는데, 아들도 있고 사위도 있는데 효용 형제를 시킬 수도 없고, 또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극구 하겠다는 것을 만류해서, 아들과 며느리와 사위가 일을 같이 도와주었다.
여러분이 뒤에서 기도해주시고, 이런 여러 가지 일이 합해져서 오늘 내가 여러분을 보게 된 것이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잊을 수 없는 일들이다. 내가 만일 그때 그냥 잠을 자버렸다면, 영면을 해버렸다면 이런 말을 못하고 말아버렸을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는 여러분을 못 봤을 테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이 또 이렇게 한번 살아서 뭘 보게 하려고 살게 했겠는가? 여러분을 보게 하려고 살게 한 것이다. 너무 너무 감사하고 그때 그냥 갔어도 여한이 없지만 또 보여줄 것이 있으니까 살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스로 살아서 왔는데 이 병이 아팠다가 나았다가 하는 병이 아니다. 폐쇄성질환이라고 한다. 점점 기관지가 좁아져가서 산소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서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이것을 어떻게 방지하고 늦추느냐는 그 싸움이다. 그래서 처음보다는 훨씬 좋아졌는데 속도가 아주 느리다. 그리고 치료방법도 어떤 기적적인 방법이 나와야 살아날 것 같다. 안 그러면 그냥 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눌러놓고 시간을 늦추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진작 나올 수도 있었는데도 조심해야 된다고 말리고 해서 못나왔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지만 악수를 못하게 되었다. 만일 감염이 되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입장에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오면 출입금지라고 써 붙여놓았다. 너무 너무 죄송하다.
또 이번에 멀리서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있는데 와서 당장 다 끌어안고 울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여러분, 살아있을 때 정말 주님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중환자실에서 딱 눈을 뜨니까 아무 것도 없다. 만일 여러분이 없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쓰시지 않았다면 그보다 허무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젊은이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여 나를 써주소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래야 된다.
나도 많이 쓰였다. 40년 동안 썼으니까 많이 쓰였는데도 쓰임을 생각하면 아쉽다. 더 쓰이고 싶고 그냥 모든 것이 다 쓰여지고 싶다. 그러기 전에 젊은이들은 뜻을 정해야 된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금 정해야 된다.
나는 39세에 대구에 왔다. 지금 80이 되었다. 딱 40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 받은 은혜가 적지 않다. 너무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다. 뭔가 더 쓰일 건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 젊었을 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미리 정해야 되고 나이든 사람들은 배로 쓰여져야 된다. 그 동안 쓰여지지 못한 것을 배로 쓰여져야 한다. 곱빼기로 쓰여져야 한다. 그것 외는 남을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천당에 가봤는데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천당에서 뭘 보고 왔다는데 나는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 눈 감으면 형제들 소리, 눈 뜨면 중환자실, 그것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링거병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 아무 것도 없었다.
인생은 참 짧은 것이다. 길게는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 짧은 것을 어떻게 질적으로 짙게 사느냐는 것이다.
이번에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내가 준비하는데 40년이 걸렸고, 여기 대구에 와서 40년이니까 80년이다. 그럼 40년을 더 받으면 모세만큼 사는 것이다. 3x4=12 좋다. 숫자 계산하기도 좋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싶다.
2+2는 4고, 2x2를 해도 4다. 별 셈이 없다. 그런데 3부터는 달라진다. 2x3은 6이다. 확 달라진다. 성경에는 12라는 숫자가 배열되어있는데 그 숫자는 3과 4를 곱한 숫자이다. 이제는 2x2는 4가 아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한번 곱해지면 그 숫자가 무한대로 커진다.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흙일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곱해지면 그것이 귤 밭이 되기도 하고 사과밭이 되기도 하고 오만 것이 다 된다.
늘 말씀 드리지만 제주도 땅, 정말 값이 없는 땅이었다. 좋은 땅이 조금 있기는 있었지만 나머지는 전부 자갈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거기에 누가 주인이 와서 귤을 심었다. 5.16 이후에 김*필씨가 가서 80만평 귤 밭을 만들었다. 그래서 땅 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그때는 귤나무 하면 아이들 하나 대학을 보낸다고 할 만큼 귤 값이 비쌀 때였다.
그 자갈밭 같은 땅이 그렇게 높은 가치를 어디에서 만들어냈겠는가? 농부를 잘 만나서 그렇다. 우리도 농부를 만나기에 따라서 내가 잡초 밭이 될 수도 있고 귤 밭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참 농부이신 아버지, 참 나무이신 주님.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다.” 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세계에 와 있다. 지금 그 세계에 들어와 있다. 농사만 지으면 된다. 농부를 잘 만나면 좋은 밭이 된다.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진실하고 그 말씀이 얼마나 축복이 되고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지을 때 돌로 지었다고 하면 단단하기는 하겠지만 평생 돌이지 뭐가 되겠는가?
금덩이로 지었다면 빛나기는 하겠지만 금덩어리 이상 다른 것은 안 된다. 그런데 사람을 흙으로 지어놓으니까 이게 한도가 없다. 그 흙이 어떻게 될지 다 모른다.
이번에 내가 없는 동안, 4개월 반 정도 된 것 같다. 적어도 15명 정도가 우리 교회에서 돌아가면서 말씀을 했다. 앞에는 내가 듣지 못하고 뒤에는 들었다.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말씀을 하고 내려온 형제에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고 했다. 정말로 고마웠다. 내가 뿌린 씨가 저렇게 커서 저렇게 풍성하게 되다니 너무 너무 고맙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오늘 아까 김치현 목사님이 몸이 필요하다고 말씀 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이 필요하신 분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몸이 없어지니까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 부활의 새 몸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부활의 새 몸이 안 되겠는가. 부활한 사람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어디 가도 무슨 말을 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언어가 있는 세계, 말이 통하는 세계! 이것이 바벨과 다른 것이다.
바벨은 선악과를 먹고 인간이 마지막에 도달한 지점이 바벨이다. 그 결과는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가 다 막혀서 못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은 우리가 다 알아듣게 된다. 말을 못한다는 것, 말이 전달 안 된다는 것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입에는 삽관이 되어있었다. 내 의사는 하나도 표현할 수 없었다. 알 수가 없다. 상대방이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내가 뭘 해달라고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다. 나는 그 자리를 보면서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 이렇게 답답한 것이구나.
우리는 지금 말이 통하는 세계에 와 있다. 형제들이 말씀하는데 너무 너무 좋다. 그냥 그대로 일 년 365일 계속 돌아가도 되겠다. 우리교회 어느 형제를 세워도 그런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 직장도 있어야 하고 호구지책 때문에 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전적으로 부려먹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전적으로 부려먹을 사람을 하나 뽑아왔다. 잘 아실 것이다.
이 형제는 유명한 목사님의 자제다. 대학에 가서는 공부는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부산대 공대를 나왔는데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느라고 4년을 다 허비한 형제다. 그래서 성경을 무지하게 많이 안다. 살아있는 성구사전이다. 어디 물어보면 대번에 몇 장 몇 절을 안다. 그 정도로 많이 외우고 있다.
그런데 졸업하고 직장으로 교편을 잡았다. 그때 박*민 형제의 여동생 박*은 자매가 동료교사인 정*공 선생님에게 교회를 소개했다. 그리고 정*공 선생님이 김치현 선생님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했다. 족보가 그렇다.
아버지는 신학교를 보내서 목사가 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신학교를 가야했는데, 신학교를 가기 전에 왔다. 신학교보다 먼저 우리 교회를 왔다. 아버지가 아니면 신학교를 안 갔을지도 모르는데 아버지가 강하신 분이라 신학교를 가게 되었다. 가서도 동료들, 학생들이 다 나이가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온 대학원 대학이니까. 내가 서울을 갈 때는 대여섯 명을 데리고 왔는데 말씀을 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듣고 나서는 “내가 살아있는 바르트를 만난 것 같습니다.”고 했다. 바르트는 이 세기에서 유명한 신학자이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칼빈, 불트만, 바르트, 이 세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자인데 살아있는 바르트를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는 바르트를 잘 모른다. 그래서 고무가 되었다.
신학교 학생들이 저런 말하는 것을 보니까 내가 괜히 헛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 사람들이 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나는 모른다. 아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미국에 가서 학위를 받고 와서 모대학교 교수로 있다.
이 형제는 첫날부터 우리와 같이 있었다. 졸업을 하고 난 다음에 주안장로교회라는 큰 교회의 전도사로 갔다. 그 교회는 새벽기도에만 4000명이 모이는 교회다. 거기서 다시 어디로 옮겼는가? 더 유명한 교회, 온누리 교회로 옮겼다. 거기서 교육전도사로 있다가 거기서 결국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렇게 되면 길이 탄탄하게 열려있는 것이다. 아버지 배경이 좋으니까 이런 사람은 시골교회 같은 그런 교회에는 안 간다. 큰 교회로 가게 되어있다. 코스가 그렇다.
그런데 건강상의 이유로 못하겠다고 사표를 내게 되었다. 그때 하*조 목사님이 자기도 건강이 안 좋은 분이고 또 마음이 좋은 분이라고 한다. 교회 목회가 힘들면 연수원에 가서 있으라고 했다. 연수원장을 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세상 편하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그런데 그것을 물리치고 대구로 내려왔다. 그때까지의 모든 책을 다 구루마(수레)에 실어서 팔고 대구로 내려왔다. 기억하시는 분은 아실 것이다. 여기에 와서 할 일이 있는가? 부인 김*경 자매를 신학교에서 같이 만났다. 자매는 고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자매 아버지도 목사님이다. 신학교에서 둘이 만나서 나도 모르게 결혼을 했다. 뒤로 보니까 달고 다녔다.
여기에 와서 참 고생을 많이 했다. 같이 살고 싶어서 왔는데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닌가? 꼬마아이들을 불러놓고 학원을 했다. 영어는 *경 자매가 하고 수학은 치현 형제가 했다. 그 아이들 가르칠 때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육신적으로도 힘들고 마음으로도 힘들고 돈도 안 되어서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 꼬라지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저 교회의 李목사하고 갈라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갈라놓는 방법이 무엇인가? 토론토로 보내는 것이었다. 토론토에 아는 목사님이 있는데 그 교회는 3000명이나 되는 큰 교회였다. 외국에서 한인교회가 그 정도면 아주 큰 교회다. 그 교회 목사님이 신유은사도 있는 분이니까 병 치료도 할 겸해서 보낸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갔는데 그 신유은사가 많던 목사님이 간암으로 자기 병을 못 고치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교회가 남의 병은 고치면서 왜 자기 병은 못 고치나 하면서 술렁이게 되었다.
술렁거려서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몇 사람이 김치현 목사를 알고 따라왔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토론토 교회가 된 것이다. 몇 명 안 되지만 토론토 교회 목사가 된 것이다.
또 뉴욕교회를 왔다 갔다 했다. 권*상 형제가 모든 경비를 감당했다. 뉴욕교회가 크고 중요하니까 주말이면 뉴욕교회를 가 있고 주중에는 토론토교회에 와서 목회를 했다. 그리고 미주지역에 있는 우리 교회들 여러 군데를 한 달에 한번 또는 두 번씩 순회를 했다. 순회하는 것은 땅이 워낙 크니까 비행기를 타고 했다.
나는 옛날에 버스 타고 순회 했는데 치현 형제는 비행기 타고 순회했다. 미대륙을 휩쓸고 돌아다녔다. 그래서 미주지역에 교회가 보존되어 있다. 한 사람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까 발전이 크게 안 되고 보존만 되고 있다. 여기도 저기도 다 그런 형편에 있게 되었다.
자기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이 그 말이다. 어느 한 교회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다 보니까 잘되겠는가? 잘 안 된 것이다.
그런데 마침 내가 이렇게 되어서 못하게 되다 보니까 내가 혼자서는 일을 못하게 되어 누군가 돕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좀 도와달라고 불러왔다.
뉴욕교회에서도 안 줄라고 하는 것을 내가 사정사정했다. 내 형편이 이러니까 보내 달라. 그리고 뉴욕교회는 우리교회에서 제일급 장로를 보내주겠다. 그래서 내가 흥정을 했다. 일번이 누군지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렇게 흥정을 해서 교환목사로 온 셈이다. 여러분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또 여러분이 말씀을 잘 들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좀 과격한 셈이다. 보기보다는 과격하다. 충돌이 잘 일어나게 되는데 여러분은 들어보셔서 잘 알지만 金목사는 충돌을 잘 안할 사람이다. 그래서 아주 부드럽고 너무 세세하게 해서 혹시 졸릴지 모르지만 아주 세밀하다.
글을 써놓은 것을 보면 감탄한다. 교회생활 제일 앞에 내 코너가 있는데 그것을 언제부터인가 金목사에게 맡겼다. 내 이름으로 써 있으니까 내가 쓴 것으로 알지만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나보다 훨씬 더 치밀하다.
그리고 글을 아주 잘 쓴다. 공돌이가 무슨 글을 쓰겠나 했는데 그게 아니다. 공돌이치고는 아주 글을 잘 쓴다. 공돌이들은 잘 못한다. 그런데 아주 정말 글을 잘 쓴다. 그리고 자료를 풍부하게 많이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도움을 통해서 어제 저녁에 말씀한 것처럼 그냥 무 같은 것을 던져주면 요리를 할 사람이다. 지푸라기도 양념만 잘하면 맛있다는 말이 있다. 요리를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복음을 확산할 단계에 와있다. 그런데 장애물이 있다. 엉터리 같은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무책임한 사람들이 검토해보지도 않고 그냥 이단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이단이라고 하면 자기가 알아봐야 하는데 알아봐야 된다. 알아보면 내가 아무리 거칠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나도 신학을 공부한 사람인데 이단이라고 찍힐 만큼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예 보지를 않는다. 아예 살펴보지를 않는다. 세력이 커질 때까지 그렇게 이단이라고 밀어붙여버린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처음에 이단이라고 배격했다. 그런데 커지니까 모두가 부러워하고 그렇게 하려고 많은 교회가 따라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형편이 그런 형편이다. 우리는 그런 장벽에 부딪혀 있다. 누구든지 우리교회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대구교회’를 치면 어떤 사람이 써 놓은 글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번에 들으니까 자기 교회에서도 그 사람이 쫓겨났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해놓으니까 우리 교회는 가만히 있지만 다른 교회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할 것이고 그 사람이 누구냐고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교회는 괜히 손상만 받는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그 사람은 우리 교회사람 아니라고 한 모양이다.
우리는 지금 헛소문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그런데 金목사가 와 있으면 그런 소리 못한다. 왜냐하면 간판이 워낙 좋다. 얼굴이 미남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 배경이 그렇게 말을 못할 배경이다. 金목사님의 아버지를 보더라도 그렇게 말을 못할 것이다. 그 아버지가 노회장도 하신 분이시다. 나같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 그런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내 방패가 되어줄 것 같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있는데,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서사역이 있어서 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 40년 동안 입으로 말만 했는데 이것을 책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다. 나는 힘이 없어서 그것을 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전담해서 만들어서 온 세계로 복음을 전할 때 텍스트로 사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내가 한 말을 들으면 한 번 말할 때 설교 제목이 수십 개가 나온다고 한다. 설교를 하는 사람은 제목이 없어서 어렵다. 그런데 한 번 설교에 설교 제목이 몇 개가 나온다고 한다. 여러분이 어디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한 페이지만 열어봐도 거기에 한 시간 할 말이 들어있다. 이번에 해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나는 그냥 뭉텅이로 갖다놓았기 때문에 엑기스만 갖다놓았기 때문에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내 일생의 경험과 내가 받은 은혜와 모든 것이 다 함축 되어 있다. 여러분이 책을 꼼꼼하게 잘 읽어 보시면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다시 알게 될 것이고, 전혀 새로운 말을 들은 것처럼 들릴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 광양에 할아버지도 젊어서 전도사도 하고 교회도 개척하고 선교사도 많이 접촉한 분이다. 그분에게 말씀 테잎이 전달되었다. 그런데 테잎의 한 면, 한 개도 아니고 한 면만 듣고 밤중에 전화를 하셨다. 전화를 해서 자기가 누구누구라고 하면서 자기가 설교도 많이 들어보고 설교도 많이 해봤는데 이 테잎은 아무리 듣고 자기가 하려고 해도 안 되더란다. 자기가 해보려고 해도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이 태잎을 계속 보내줄 수 없느냐고 해서 이*택 형제가 그것을 복사해서 계속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것을 갖다가 어디다 뿌렸는가? 지금 구례 교회 목사님들 계통에 뿌렸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때는 그런 작은 교회를 경제적으로 돕고 있었다. 이 테잎을 듣고 난 다음에 아니다. 내가 돈 몇 푼을 도와줄 일이 아니다. 테잎을 줘야 되겠다는 이 생각이 있어서 그 테잎을 계속 준 것이다. 그런데 하도 테잎이 많이 돌아다녀서 우리 교회에 오신 목사님들 중에 들은 사람이 없고 다 처박아 놓았다. 이제 보니 이 테잎인 것이다.
아는 사람은 들어보면 무궁한 보화가 있다. 나도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나와 관계되지 않은 말은 해본 적이 없다. 책에 있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다. 내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알아듣기만 하면 누구든지 공감이 될 수 있다. 내가 만일 지식을 얘기한다면 이런 말을 못한다. 나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거기에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데 이것은 지식이 아니고 내 경험이다.
나도 참 까다로운 사람이다. 예수를 믿기가 참 어려운 사람이다. 좋다고 예수 믿는다고 왔기는 왔는데 안 믿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사람은 다 잘 믿어지는데 나는 잘 안 믿어진다.
신학교에 가서도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모르겠더라. 그런데 창피해서 누구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다 그렇게 믿고 있는데 내가 엉뚱하게 가서 예수님이 어떻게 내 죄를 위해 죽었느냐고 물어보기가 창피하더라. 그래서 못 물어봤다. 해답이 안 되니까.
어떤 사람은 참 잘도 믿는데 나는 잘 안 믿어지는 사람이다. 이렇게 안 믿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 믿어지는 사람에게 약이 된다. 안 믿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를 너무 잘하는 사람은 잘 가르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도 모르냐? 이렇게 된다. 이것도 모르냐? 답답해서 못 가르친다. 그런데 나는 이것도 모르냐고 할 필요가 없다. 나도 그렇게 해봤으니까.
여러분이 잘 들으시면 안 될 사람이 없도록 나도 말을 했다. 내가 마지막 한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뛰어내리지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이 말을 왜 하는 줄 아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만날 때 노래가 수없이 많고 기독교 하면 십자가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줄을 모르겠더라.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그렇게 중요한 줄을 모르겠더라. 사랑 하는데 사랑이 어딘들 없는가? 기독교에서 사랑 하면 불교에서는 자비, 사랑이 큰지 자비가 큰지 재봐야 된다. 알고 보면 난감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만 생각하기를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더 최고도 있다.
나도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워서 좋은 말을 많이 알고 있는데, 성경에도 특별히 좋은 말이 별로 없다. 내가 경서를 못 읽었지만 명심보감은 어려서부터 배웠고 학교 가기 전에 다 배웠다. 그 책에 보면 좋은 말이 너무너무 많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는 이 다양해진 세계 속에서 문명화된 세계 속에서 옛날처럼 무조건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도 까다로워서 그것이 안 되더라.
어떻게 그의 피가 나를 구속했는지? 물론 성경으로 해석하면 된다. 구약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면 된다. 그렇지만 구약 성경에 왜 그랬는지 모른다. 왜 양의 피를 발랐는지? 왜 양의 피를 뿌려야 되는지? 왜 제단에다가 제물을 태워야 되는지? 설명이 없다.
이런 것을 종교적으로 그냥 믿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왜 그랬는가를 알아야 된다. 그래서 내가 산수 공부를 못했다. 산수 공식을 무조건 외워야 하는데, 무조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된다. 지금은 잘 가르치지만 옛날 선생님들은 지금 같으면 선생님도 아니다. 초등학교 나온 사람이 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 중에는 중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냥 자기 배운 대로 공식대로 밖에 설명을 못한다. 그러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산수를 못하고 말았다. 그때 안 배워서 지금도 못한다.
성경도 그렇다. 나는 성경이 안 믿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고 복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내가 도망가거나 그러지 않았고 기어코 알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자신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니까.
왜 뛰어내리지 못한 예수가 필요한가? 분명히 하늘로 올라간 예수도 분명히 있는데 왜 뛰어내리지 못한 예수만 이야기하는가? 뛰어내리지 못한 예수가 제일 쉽다. 여러분, 하늘로 올라가신 분을 알겠는가? 믿는 채 하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는데 그것을 여러분 어떻게 믿겠는가? 믿는 채 하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는데... 무조건 믿는 사람도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제일 쉬운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못 뛰어내리는 예수가 제일 쉽다. 누구나 눈만 뜨면 볼 수 있다. 삼척동자도 눈만 뜨면 볼 수 있다. 무식해도 된다. 공부 안 해도 된다. 보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거기서 알았다. 아! 여기 나의 구속이 있구나. 구속,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구속이 되고 어떻게 죄 사함이 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구속이 되고 어떻게 죄 사함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그 사람을 보니까 그 사람이 진실인 것이다.
하나님이 만들 때 사람을 그 사람을 만들어놓았다. 뛰어내리도록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잘못 만들어놓은 줄 알았다. 못 뛰어내리는 것은 하나님이 잘못 만들어놓은 줄 알았다.
하나님이 잘못 만든 것이 아니다. 아주 잘 만들어놓았다. 아주 잘 만들어놓아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그 사람이 어떤 모양인가? 뛰어내리지 못한 사람이다.
뛰어 내리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 아니고, 뛰어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돌로 떡을 만들었으면 그것은 가짜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생각한다.
하나님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을 만들어놓았다. 하나님 아니면 안 되는 사람. 그것이 진실하다. 내가 너무너무 쉽다.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너무너무 쉽다.
전에 나는 어떻게 하면 예수처럼 될까? 어떻게 하면 예수를 따라갈까? 그 생각했다. 그런데 안 되더라. 아침에 마음을 먹어도 저녁에는 안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니까 내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잘 만들어놓았는데 무엇을 고친다고 하는가.
하나님이 잘 만들어놓은 것을 내가 감사하면 그것을 감사하면 내가 쓸데없는 짓을 안 한다. 할 필요가 없다. 잘 만들어놓았는데 무엇을 또 고치겠는가? 얼마나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는가? 고치려고 애써서 고쳐진 사람도 없고, 또 고쳐지면 교만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잘 고쳐놓은 사람일수록 더 교만해진다.
그냥 매달아 놓으면 그대로 매달린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이 감사 하냐 안 하냐, 이 문제이다. 그것이 감사하면 인생이 달라지고, 그것을 감사하지 못하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원망과 불평만 나온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가? 왜 내 맘대로 못하는가? 이렇게 되고 만다.
그런데 이것이 감사하게 될 때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그것이 감사하고 그것이 다행이다. 내가 만일 날아가도록 만들어놓았으면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이렇게 생각이 될 때 내 인생이 감사하다.
그만하라고 한다. 지금 우리 큰딸이 조마조마 하고 있다. 와서는 안 되는데 내가 안 되겠더라. 멀리서 다 오셨는데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지... 처음에 전화로 하다가 다음에 스카이프로 얼굴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시원치 않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여 볼 것이요. 이 얼마나 좋은지!
주제는 그것이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내 몸이 필요하다는 이것이다. 잘 들어야 한다. 이 말을 하다가 다른 데로 샜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도 나이가 벌써 65세가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어린 아이들처럼 생각했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했다. 65세 된 사람에게 아무개야 하는 데가 없다. 더군다나 거룩한 목사가 되어서 장로님, 장로님 해도 시원치 않을 것인데 ‘성규야’ 하고 불렀다. 내가 해놓고 봐도 심하다. 나도 안 늙은 줄 알았고 이 형제들도 안 늙은 줄 알았는데, 나도 늙었고 이 형제들도 늙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이제 목사를 하게 되었으니까 이제 한 몫씩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자기들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났다고 한다.
윤동섭 형제는 일본으로 가겠다고 한다. 항상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생각해주시고 내가 준비하기 전에 준비를 해주신다. 그래서 맘껏 가서 해보고 어디 못 박으라는 말이 아니고 순회 사역을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도 단기 사역으로 6개월은 가 있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가능성이 있으면 일 년까지는 해봐야 될 것 같다. 비자가 그렇게까지는 된다고 한다. 일단 일 년 간 해보고 또 더 잘되면 2년도 할 수 있다. 또 안 되면 치우고 오고. 안되면 치우고 오면 된다. 이것이 다 자기 집안이고 우리 집이니까 아무리 멀리 갔다가도 다시 오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생이 어디 고정되어 있는가?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이렇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대구에 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대구에서 40년을 살았다. 앞으로 또 40년을 살면 120년이다. 욕심이 너무 많다.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야 임마 그동안 은혜를 얼마나 많이 베풀어 주었는데 또 40년이라고 하냐? 이렇게 하실는지 아니면 그래 한 번 더 주마.’ 그러실지 모르겠다. 자주 뵙기를 원한다.
뉴욕에는 성규 형제가 가기로 했다. 우리 교회 총 순장으로 기둥 같은 형제들이다. 뉴욕교회는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서 꼭 가야 될 형제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가서 해보고 일 년 해보고 안 되면 돌아오면 된다. 돌아오면 도로 또 총순장하면 된다. 총 순장 자리를 비워 놓을 테니까 언제든지 돌아오면 된다.
우리를 하나님이 쓰 일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여러분도 누구든지 자원하면 다 보내드리겠다. 그런데 자기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야 한다. 자기 도시락 있는 사람만 우선은 갈수 있다. 연금을 국가에서 주니까 나라에서 주니까 그것을 가지고 먹고 살면 된다. 방만 하나 얻어주면 되니까 다 할 수 있다. 그런 분들부터 자원해서 나오면 된다.
직장 다니는 것도 그전에 그것을 봤다. 어떤 미국 사람인데 일찍 군대를 간다. 20년을 채우면 연금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 20살에 군대를 가서 20년을 채우면 40살에 연금이 나온다. 왜 그렇게 갔는가? 그렇게 해서 선교를 하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20살에 그렇게 작정한 사람이 있다. 그러면 자비량 선교를 하는 것이다. 어디 가서 돈을 손 벌리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들이 직장을 갈 때 그런 직장을 가라. 젊은이들은 몇 년하고 퇴직하면 연금을 받고 연금 받으면 나는 그때부터 빠이빠이 하고 하나님 나라로 간다고 생각하고 가면 된다.
밥 때문에 일생 내내 고생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어떤 형제든지 돈 좀 많이 벌어서 뒤에서 대주면 좋지만 그것도 힘든 일이다. 우선은 자기가 자기 밥그릇을 마련해서 가자는 생각인데 꼭 그렇지 않아도 갈 사람도 있다. 정말 불타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원해라. 그러면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 입술을 지져 주소서, 하면 갈수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끝이 없고 이*령 권사님 좀 봐주세요. 오랜만에 나오니까 할 수 없이 그렇게 됐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이 없기 때문에 벌써 한시가 되어 버렸다. 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가시는 것을 다 못 본다. 지금 딸이 성화를 하고 있다. 우리 딸이 그래도 의사니까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매일 아침부터 우리 집에 와서 체온계를 들이댄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오늘도 하도 걱정을 하는데 그래도 오늘 안 가면 언제 가겠느냐 하고 지금 왔다. 그렇게 아시고 내가 더 건강해지면 여러분 얼굴을 더 가깝게 마주 대해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감염 때문에 그렇다. 산소포화도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간신히 살아났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 들어오면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다. 그렇게 알고 이해해주고 외국에서 오신 형제자매님은 따로 내일 가기 전에 저희 집에 한번 오시면 좋겠다.
국내에 계신 분들은 또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외국에서 오신 분들은 그렇지 못하니까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가자고 생각하신다면 오시면 되겠다. 나머지 분들은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웃지 않으면 울 것 같아서 웃기고 이야기한다. 내가 웃기지 않으면 울 것 같다. 내가 병원에서 나올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울 것 같았다. 내가 눈물이 잘 없는 사람이다. 좀처럼 잘 안 우는 사람이다. 사나이 눈물이 중천금이라고 눈물 한 방울이 중천금이라고 나는 정말 울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나오면서 얼마나 눈물이 자꾸 나오는지... 감사의, 감사의 눈물이, 내게 이런 귀한 형제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었는가. 내가 대구에 와서 불과 20명 그 학생들과 살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가? 나는 사람을 불리려고 노력해본적도 없다. 여러분들이 다 알다시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왔다.
진짜로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누가 물었다.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느냐고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수고한 것이 전혀 없다. 매일 놀고 즐겁고 사람들보니 늘 반갑고 즐겁고 했지 수고스럽고 이런 생각이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로 나는 수고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보았다. 오히려 수고를 못한 것이 슬픈 일이다.
이제 내가 더 이상 수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슬프다. 수고한 것은 행복한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수고한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것은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것이다.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까 되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발견된 나! 예수 안에서 발견된 나!
제일 쉬운 데가 어디인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못 뛰어 내리는 속에 내가 있다. 여러분! 다 여러분이 그 안에 있다. 없는 줄 알지만 다 그 안에 있다. 비참할 것 같은데 너무 너무 자유롭다.
이번 주제가 자유였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그 십자가 안에 들어가면 다 자유해져 버린다. 율법이고 뭐가 복잡한 것이 걸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없다. 아주 간단한 방식이다. 제일 쉬운 것이다. 아마 우주 안에 제일 쉬운 것이다.
내가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십자가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하고 봤는데 한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여러분 이것이 그냥 공짜가 아니다. 그냥 내가 날마다 하니까 왜 저 소리를 또 하는가? 저 소리를 왜 또 하는가? 그렇지만 여기 아니면 다른 데는 없다.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라. 없다. 여러분이 십자가, 십자가 하지만 십자가가 무거운 짐이었다. 내가 희생해야 되고 사랑해야 되고 봉사해야 되고 예수님처럼 고난을 이겨야 되고, 그것이 다 짐이었다. 하지는 못하면서 그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기독교인들이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 보니까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그분이 다 해놓았다. 그분이 딱 뽑아놓은 사람이 나더라. 그것이 진짜 나다. 그 이외의 나는 내가 아니다. 가짜다.
이렇게 쉬운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도록 정말로 알아듣도록 우리가 말할 수 있느냐, 이문제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말할 수 있을 때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어진다. 지식이고 종교고 신비고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어진다.
나는 옛날에 내가 그렇게 못하니까 신비를 가진 사람 앞에 쭐렸다. 지금은 전혀 쭐릴 필요가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을 보면 쭐렸는데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종교 안에서 세상 안에서 부러워했던 것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귀한 생명을 예수님께서 자기 죽음을 통해서 나한테 마련해주셨다. 이것이 구속이다. 구속이 다른 것이 아니고 이것이 구속이다. 나를 원위치로 되돌려 주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았다. 하나님이 만들 때 옹색하게 만들었겠는가? 생각을 해봐라.
우리가 기계를 만들어도 완전하게 만들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인생을 만들면서 자기 형상을 따라 자기 모양대로 만들면서 옹색하게 만들어 놓았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나를 버리고 십자가 안에 있는 나를 여러분이 보시면 그러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이 저절로 나온다. 저절로 나오면 헛짓을 하지 않는다. 헛된 짓을 하라고 해도 안한다.
그 안에서 발견된 나! 전에도 부탁했지만 자기 안에서 예수를 찾지 말고 예수 안에서 나를 찾아야 된다. 내 안에서 예수를 찾으려고 하면 여러분이 헷갈려서 안 된다. 아침에는 있는 것 같은데 저녁에는 없고, 낮에는 있는 것 같은데 밤에는 없고, 이것이 환장할 일이다.
있는가 하면 없고, 있는가 하면 없고 시장 바닥에 가면 없어져 버린다. 그것이 어렵다. 나를 비워봐라. 비워지는가. 빈병이 그냥 두면 그냥 있는가? 공기가 들어가 버린다. 그와 같다. 애써 비워 놓아도 도로 차 있고, 애써 비워 놓아도 도로 차 있다.
예수 안에서 나를 찾아야 된다. 그분 안에서 찾아야 된다. 그러면 아주 편하다. 아주 쉽고 아주 간단하고 두려움이 전혀 없어진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복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마지막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뱀을 매달아 놓고 쳐다보면 산다고 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사람들은 쳐다보고 살았다. 이제 우리가 알고 보니까 그 예수를 바라보기만 하면 산다. 바라보기만 하면 산다. 다른 것은 다 잘되는데 말 하는 것은 절제가 안 된다.
그 동안에 서울교회에서 형제들이 참 잘하고 있다. 사람이 굉장히 많다 많은데도 아주 잘하고 있다. 서울은 바닥이 큰 곳이다. 내가 서울에 있었더라면 지금의 10배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할 사람이 못되기 때문에 대구에 있어서 겨우 묘 자리만 만든다.
서울에는 정한성 형제가 가게 되었다. 일본 오사카 교회는 윤동섭 형제가, 전주교회는 이효용 형제가 가게 되었다. 여러분이 다 기도해주시고 또 맞아들이는 교회에서도 사랑으로 받아주시기 바란다.
이 형제들은 가서 적절한 은혜를 나눌 수 있는 형제들이다. 서울교회 정한성 형제, 뉴욕교회 가는 이성규 형제, 오사카를 사랑하는 윤동섭 형제, 전주교회를 가는 이효용 형제, 다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도 세계적인 교회로 그렇게 발을 뻗어봐야 될 것 같다. 내가 살았을 때 그것을 볼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축복이겠는가. 또 못 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가서 일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더 여한이 없겠다.
모든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전파된다면, 감춰져 있는 그분이 발견된다면, 무시되어 있는 그 자리가 발견된다면, 이것이 우리 소원이고 내 소원이다. 다 모두 무시해서 그런 것은 별 소용이 없이 되어 버렸다.
구름타고 가는 예수만 전한다고 하는 판에 십자가에 매달려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사람, 돌로 떡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다. 이것이 진짜 능력이다.
생각해보라.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아들을 전하는 것이 능력인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아들을 전하는 것이 능력인가? 진짜 능력은 여기에 있다. 숨은 능력이지만 이것이 참 능력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이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목표는 그 사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더 쉽게 더 쉽게 더 쉽게 알리는 것이다. 어린 아이까지 다 알아듣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31절 32절은 바로 그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려 할 필요가 없다.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 알기 때문에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최선두에 우리가 서 있다.
다른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못 믿는 사람이 태반이다. 좋은 복음이 많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못 믿는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한두 명이겠는가? 수없이 또 많다.
진짜로 이것을 전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를 바로 이 귀한 자리에 불렀다. 여러분들을 이 귀한 자리에 불렀다. 그냥 교회에 와서 좋다 좋다고 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고, 지금은 뼈 속까지 파고 들어갈 때가 왔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충분하게 그렇게 그분으로 말미암아 적셔져야 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서 내가 변화되어야 된다. 그래야 자신 있게 전할 것이 아니겠는가. 구름타고 올라간 예수는 내가 전하지 않아도 다 전한다. 사람들이 다 믿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우리가 아니면 전할 수 없다. 나는 거기에 사명을 띠고 있고, 우리 교회가 그 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많은데 교회를 또 더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교회 중에 교회 하나 더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 꼭 우리가 아니면 안 될 일이 있다.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
[기도]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람이 무엇이관데 이렇게 사랑하시고 인자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권고 하시나이까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깊은 은혜를 주시고 귀한 것을 맡기시는지 주님 우리가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힘 주셔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또 이왕 시작하셨으니까 일을 마치실 줄을 믿습니다.
연약한 자를 들어서 하나님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셨다면 오늘 우리에게 모든 형제들을 들어서도 주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데로 가져다 쓰십시오. 원하는 데로 필요한 데로 새로 빚으셔서 주님이 원하는 곳에 우리를 배정해주시기를 바라고 주님이 원하는 말을 주님이 원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당할 수 은혜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사랑하는 형제들을 다시 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주님 당신이 제게 베푸신 은혜를 무엇으로 다 보답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 형제들에게 나와 똑같이 축복해주시옵소서. 나를 복 주신 것보다 더 크게 축복해주시옵소서.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해주시고 주님 당신이 원하는 곳에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그것을 맡기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우리는 증거 하겠습니다. 주님을 증거 하겠습니다. 우리의 구속자 되신 주님을 증거 하겠습니다. 나를 살려주신 주님을 증거 하겠습니다. 나를 진토에서 건져내 주신 주님을 증거 하겠습니다.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신 주님을 증거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입술을 지져주시고 주님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늘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해서 마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 예수 안에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