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카를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과 알카사바(Alcazaba) 요새
궁전 안뜰 / 아름다운 나선 계단 / 알카사바 성채 / 정의의 문
카를 5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 왕국의 공식적인 제1대 국왕이며,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업적을 쌓은 황제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카를 5세는 왕비인 이사벨과 신혼여행을 위해 그라나다를 찾았다가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궁전을 건축했다. 카를 5세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과 연이어 바로 근처에 붙여서 지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해 지어졌으며, 정교하고 복잡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30m 길이의 정원을 2층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단순한 형태로 지어져 있다.
현재 궁전의 1층은 무료입장이 가능한 알람브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은 그라나다파의 작품 등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알카사바(Alcázaba)는 알람브라 성에 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9세기에 로마 시대의 요새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13세기에 이르러 견고한 성벽과 망루로 이루어진 요새로 정비하고 확장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당시의 알람브라 궁전은 문을 사이에 두고 요새인 알카사바와 왕족 및 주민이 거주하는 궁전으로 나뉘어 있었다.
요새의 성벽 안에는 병사들의 숙소, 대장장이의 방, 지하 감옥, 저수조 등이 있었다고 한다.
알카사바에는 24개의 탑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몇 개의 탑 중 일부는 올라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중 높이가 27m인 벨라의 탑은 그라나다 시가지는 물론 시에라네바다 산맥까지 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을 자랑한다.
♤ 알람브라 궁전의 역사
알람브라 궁전(Nasrid 궁전)은 무어(이슬람)인들이 꿈꾸던 지상낙원의 재현이라고 하는데 1238년에 그라나다의 술탄 무함마드 1세가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왕조였던 나스르(Nasrid) 왕국의 보압딜(Boabdil) 국왕은 로마교황청의 후원을 등에 업은 이사벨 여왕이 이끄는 기독교 연합군의 거센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1492년, 시민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항복하고 나라를 바침으로써 이베리아반도에서의 이슬람 통치 800년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보압딜은 항복을 선언하고 알람브라를 떠나 아프리카로 향하며,
‘그라나다를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이 더 슬프다.’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남편을 내몰고 아들을 왕좌에 앉혔던 여장부 보압딜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며,
‘남자로서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해야지.’라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또, 그 말을 전해들은 카를 5세는 ‘내가 그였다면 알람브라 없이 사느니 차라리 알람브라를 무덤으로 삼았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둥... 알람브라의 찬사(讚辭)는 끝이 없다.
이사벨 여왕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이교도를 소탕하고 하느님의 땅을 지킨다는 종교적 명분을 내세우며 무자비한 이슬람교도의 박해와 살육을 자행했다니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사벨 여왕은 무어인들이 남겨준 보석 같은 선물인 알람브라 궁전만은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멕시코의 시인인 이카사(Icaza)는 ‘그라나다에서 장님(소경)이 되는 것만큼 더 큰 형벌은 없다.’라고 노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장님이 아니면서도 진짜 알맹이를 보지 못하다니... 배낭 여행객의 아픔이다.
우리가 보지 못한 알람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을 인터넷으로 따다 올려 본다.
우리는 그라나다에서 3박을 했는데 알람브라 궁전을 못 본 분풀이로 대성당, 시내 곳곳은 물론 알람브라 궁전 주변과 알바이신 언덕, 사크로몬테 언덕을 두 번씩이나 올라갔고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그래도 알람브라궁과 헤네랄리페 정원을 보지 못한 분이 안 풀린다. ㅎ
<5>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
마지막으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을 관통하는 과달키비르강에 관해서 몇 자 적어본다.
스페인 남부 하엔(Jaen) 지방의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약 657㎞를 흘러 카디스 만(灣)의 산루카르데바라메다(Sanlucar de Barrameda)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과달키비르강은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긴 강으로, 세비야, 코르도바까지 관통하며 거대한 범선(帆船)들이 드나들던 큰 강이었다.
스페인 투우 / 안달루시아지방 목초지대 / 안달루시아의 젖줄 과달키비르강
대항해시대에는 마젤란, 바스쿠다가마를 비롯하여 콜럼버스 등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곳 세비야에서 배를 출발하여 온 세계를 누볐던... 그 시발점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평원을 흐르는 젖줄과도 같은 강으로 드넓은 평원을 적셔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다양한 동식물 군의 분포를 보인다고 한다. 드넓은 목장은 물론 밀, 보리, 호밀 등 곡창지대를 형성하였으며 스페인 경제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또 다른 강으로는 타호(Rio Tajo)강이 있는데 서쪽으로 1.000km를 흘러 포르투갈을 관통하여 리스본 근처에서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인데 포르투갈에서는 태주(Taeju)강 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