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는 기도 (골 1:9-12)
'히말라야 슈바이처'라는 책은 강원희(姜元熙) 선교사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강박사는 성업 중인 병원을 내려놓고 의료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합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만류하자 ‘내 삶의 머리나 꼬리가 아닌,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 면서 아내를 설득합니다. 그리고 49세에 모든 면에서 낙후된 네팔 히말라야로 선교의 첫 발을 부부가 내딛게 됩니다. 그는 병원에 오는 환자들뿐 아니라 중병에 걸리거나 다쳐도 병원에 올 수 없는 자들을 찾아서 간호사 출신 부인과 함께 이동진료 사역을 했습니다. 자신의 피를 수혈하여 중환자를 살려내고,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들고 찾아가 섬기는 그를 가리켜 현지인들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는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은퇴는 없다’는 마음으로 네팔에서 의료선교 사역 중입니다. 한번은 30대 중반쯤 되는 부인이 병원에 찾아왔는데 진단한 결과 장폐색이었습니다. 마취를 하고 급히 수술을 해야 하지만 장비가 없자 그물망 마스크를 환자의 입에 밀착시키고 마취약을 떨어뜨려 마취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위험한 것은 음식물이나 역류한 소화액이 폐에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이 되어 순식간에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날 무렵 환자가 구토한 오물이 폐에 들어가 흡인성 폐렴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혈압은 60, 맥박은 130을 가리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 그는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부르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 저 환자를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 능력 밖의 일이오니 주님이 저 생명을 살려 주십시오.” 세 시간 반 동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회복실로 가보니 그 환자가 살아났습니다. 맥박이 정상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폐의 죽었던 세포가 생명의 세포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그치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고난 가운데서 절망할 것만 아닙니다. 사업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기도를 그치지 않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9절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의 사정을 듣던 날부터 기도하되 그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지속성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처리되고 나면 기도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끊임없이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치지 않는 기도입니다. 그치지 않고 기도해야 할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알게 하시니
파스칼(Blaise Pascal)은 17세기 최고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였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1654년 11월 23일,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합니다. 그는 이 날의 영적 체험을 팡세에서 ‘불에 휩싸인 은총의 밤’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히 그 밤에 파스칼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 주셨고, 비로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스칼은 이 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 후, 하나님을 ‘숨어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으로 명명했습니다. 이성으로 알 수 없고, 오직 계시해 주실 때 알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 숨어계신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철학자들과 지식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지식인의 인식론적 태도를 버리고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같은 인식론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파스칼은 ‘나는 생각한다’(cogito)라는 이성 중심에서 “나는 믿는다”(credo)라는 신앙 중심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그 계시의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치지 않는 기도야 말로 하나님을 알게 할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예수를 믿게 되면 우리 안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식의 변화입니다.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전에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즉 새로운 앎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깊어지면서 그 앎의 폭이 넓어집니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앎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즉 더 깊이 있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앎의 변화는 그치지 않는 기도를 통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앎의 문제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믿음이 깊어지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를 계속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는 성도가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합당하게 행할 수 있기에 그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능하게 하시니
조지 뮬러(George Muller) 목사가 애쉴리타운 고아원을 세우고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아원의 보일러가 고장이 났습니다. 보일러를 고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하기에 고아원 전체가 비상이 걸렸습니다. 직원들이 뮬러에게 달려와 “큰일 났습니다. 영아들이 있는 동에도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영아들이 다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라며 아우성입니다. 그러자 뮬러 목사는 일어나 성경을 옆구리에 낀 채로 교회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날씨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린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생명들입니다. 이 어린 생명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저는 총무일 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시간과 때를 주장하시는 아버지께서 일주일 동안 봄 날씨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뮬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동안 갑자기 동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전체가 봄 날씨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기상이변도 흔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지 뮬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북풍을 중지시키고 동남풍을 불게 해서 영국 전체가 온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일러를 수리한 후 정상적으로 가동이 되자 다시 한 겨울의 세찬 바람이 쌩쌩 불어왔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여기의 영광은 ‘독사’로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을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인간적인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본래부터 가지신 능력 이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힘이 요구됩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힘은 모든 필요를 채우고 남는 힘입니다. 골로새 교우들이 당면하는 모든 상황에 언제나 부족함이 없이 극복하고도 남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능력으로 강하여지도록 그침 없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서 나오는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도록 그침 없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견디게 하시니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젊은이가 친구와 함께 백화점에 취직했습니다. 당연히 경영 부서에서 일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내하는 잭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실망하고 백화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엘리베이터에서 고객을 안내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었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하면서 고객들의 구매심리를 파악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기쁨으로 견딤과 인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는 얼마 안 있어 부서의 책임자가 되었고, 나중에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백화점 왕 페니(James Cash Penney)입니다. 인내는 신앙의 모습을 참되고 확실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의 자리에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견딤에 이르도록 그침 없이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여기의 견딤은 ‘휘포모넨’ 로서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고난을 무릅쓰며 전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참음은 ‘마크로 뒤미안’ 인데 무거운 짐에 눌리거나 실패를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불굴의 투지를 뜻합니다. 즉 ‘견딤’과 ‘오래 참음’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견딤과 오래 참음은 억지가 아닌 기쁨으로 되기에 역설적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인격에 대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 인격이 성숙해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그침 없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고난과 환난 중에도 참고 견디면 인내하는 사람만이 영광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견딤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보이차(普?茶)는 다른 모든 차들과 구별됩니다. 다른 차들은 갓 나온 차가 제일 비싸고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 보이차는 그 반대입니다. 오래 될수록 비싸고 맛도 좋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차는 후발효차이기 때문입니다. 차가 만들어진 직후부터 발효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오래 발효될 수록 제 향을 내고 제 맛이 납니다. 갓 나온 보이차는 향이 지푸라기 썩는 냄새와 같습니다. 맛도 강합니다. 그러나 오래 묵고 발효가 되면 잡냄새가 다 가시고 보이차 본연의 깊은 향이 나기 시작합니다. 맛도 부드럽고 뒤 끝이 단 맛이 납니다. 신앙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신앙생활하면서 닦이고 연단되면서 품격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예수를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의 향기가 납니다. 예수의 모습이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치지 않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이 연약한 성도들은 더욱 더 기도의 시간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그치지 않고 기도해야 할 제목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소서!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견디게 하소서!” 부디 성숙한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그치지 않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