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심리
무소유를 바라보는 불편한 감정
가난하게 살지 않는 타인을 비난
외적 가난에 집착하는 콤플렉스
진정한 가난은 자유롭고 편한 것
많이 가진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안을 위해 가진 것 나눠
시중에 무소유에 대한 글이 나오곤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런 글을 쓴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그 존경심의 이면에는 불편함 감정이 함께 합니다.
늘 돈에 쪼들려서 돈에 집착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열등감을 갖는 것입니다. ‘난 왜 이리 속물인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소유의 삶에 대해 영성 심리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아무것도 갖지 않고 사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삶이라고 평가합니다. 비현실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무소유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무소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에만 돈이 없을 뿐이지 굶어죽을 염려나 가족의 생계가 걸린 사람들은 아닙니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사람들은 무소유는커녕 어떻게 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무소유란 사회생활의 쓰라림을 겪어본 적이 없는, 돈이 없어서 무시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주장이라고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상 무소유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제로라고 합니다. 인간이 육신을 지니고 사는 한 무소유의 삶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가난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이들이 왜 가난하게 살지 않느냐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자신이 진정한 가난을 실천하지 못함에서 오는 분노에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외적 가난에 대한 집착이 불러오는 일종의 콤플렉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가난한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가난함을 즐기고 편안해합니다. 즉 진정한 가난이란 많이 가진 것을 불편해하는 마음이며,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행복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 나보다 가난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한다면, 그것은 본인이 본인을 속이는 가짜 가난을 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무소유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사람들을 편안하게 합니다. 거짓 가난을 사는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마음의 가난과 궁핍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아재 유머 하나 하겠습니다. 순천본당에 새로 오신 할머니가 영광송을 하는데, “영광이 성부와~”를 “순천이 성부와~”라고 시작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당신부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영광송 하실 때 다르게 하세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아~ 제가 영광본당에서 영세를 받고 그 성당을 다녔는데요~ 영광송에서 ‘영광’이 그 영광인 줄 알고 이사 와서는 바꿨지요”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후 순천 신자들은 영광송을 “순천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로 한다는….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