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보다 깊은 사랑
백홍 이사빈
흐르는 눈물방울 동이에 담아놓고
붓끝이 낭창하게 젖도록 듬뿍 찍어
허공을 백지 삼아서 속마음을 썹니다
심중에 숨겨왔던 말들을 수놓으면
무심히 떠나가다 넌지시 눈에 띄어
발걸음 멈춰 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표현이 서툴러서 못했던 고백이라
행여나 몰라볼까 걱정이 사뭇 되어
노을에 붉게 물들길 소망하게 됩니다
지상과 천상으로 나눠진 사이지만
햇빛과 달빛으로 더욱더 꽁꽁 묶어
영원한 사랑 꿈꾸며 살아가려 합니다.
이별을 넘어 영원을 직조하는 언어 — 「이별보다 깊은 사랑」 평론
백홍 이사빈의 「이별보다 깊은 사랑」은 이별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는 감정의 지속성과, 그 감정을 언어로 구제하려는 시적 의지에 대해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한 그리움의 표출을 넘어, 부재 속에서도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인간 내면의 깊은 충동을 시조적 형식미 속에 절제된 감정으로 담아낸다.
우선 주목할 것은 시의 첫 연이 구축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흐르는 눈물방울 동이에 담아놓고 / 붓끝이 낭창하게 젖도록 듬뿍 찍어”라는 구절은 감정을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고’, ‘찍어 쓰는’ 창작의 재료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눈물은 더 이상 슬픔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랑을 기록하는 잉크가 된다. 이는 감정의 수동성을 능동적 창작 행위로 전환시키는 시적 전복이며, 곧 상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이어지는 “허공을 백지 삼아서 속마음을 썹니다”라는 구절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허공’은 실체 없는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기억과 감정이 떠다니는 무한의 장이다. 이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상대에게 닿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을 계속해서 건네는 행위이며, 그 자체가 사랑의 지속을 증명한다. 즉, 이 시는 도달 여부와 무관하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둘째 연에서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무심히 떠나가다 넌지시 눈에 띄어 / 발걸음 멈춰 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떠난 존재가 우연히라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다. 여기에는 집착이나 원망이 아닌, 극도로 절제된 희망이 자리한다. 특히 “넌지시”라는 부사는 이 시의 정서를 결정짓는 핵심어로,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함축한다.
셋째 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표현의 미숙함을 고백한다. “표현이 서툴러서 못했던 고백”이라는 자기 성찰은 이별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에서 찾으려는 성숙한 시선이다. 또한 “노을에 붉게 물들길” 바라는 대목은 매우 상징적이다. 노을은 낮과 밤의 경계이자,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이 붉은 빛에 자신의 마음이 스며들기를 바란다는 것은, 결국 이별의 순간마저 사랑으로 물들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종장에서 시는 공간적 분리를 초월하는 사랑의 영속성을 제시한다. “지상과 천상으로 나눠진 사이지만 / 햇빛과 달빛으로 더욱더 꽁꽁 묶어”라는 표현은 생과 사, 혹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단절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이를 자연의 순환적 빛으로 연결한다. 햇빛과 달빛은 서로 다른 시간에 존재하지만, 동일한 세계를 비춘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이 이미지는 곧 물리적 단절을 넘어서는 영적 결속의 은유로 기능한다.
형식적으로도 이 시는 시조의 전통적 율격을 충실히 따르면서, 각 연마다 정서를 점층적으로 심화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초장은 감정의 재료화, 중장은 전달의 소망, 종장은 초월적 결속으로 이어지며,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힘’임을 입증한다.
결국 「이별보다 깊은 사랑」은 이별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사랑, 오히려 이별로 인해 더 깊어지는 사랑을 노래한다. 이 시에서 사랑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태도이며, 닿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존재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이별의 시’가 아니라, 이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는 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