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볼 수 없었던 영화를 가끔 티비에서 본다.
[어느 독재자] 원제는 The President. 감독 모르센 마흐말바프.
자신이 지배하던 독재정권이 분노한 민중의 손에 쓰러지고 후계자인 손자만을 데리고 도피 여정에 나선 독재자 대통령. 영문을 모르고 동행하는 어린 손자가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낼까 두려워 연극을 하는 것이라고 숨기고 악사와 무동으로 변장한 채 국경으로 가는 길 위에서 그는 자신의 독재 통치의 결과를 보여주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다. 법과 질서가 사라진 국가에서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실상과 가는 곳곳 자행되는 무장 군인들과 반군들의 무자비한 개인적 집단적 폭력의 사례들이 독재자 자신의 시선을 따라 다큐멘터리처럼 이어진다.
생존을 위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 노상 강도로 변한 총 든 군인들, 그들에 의해 신랑 앞에서 겁탈 당하고 죽어가는 신부, 서로 돈을 빼앗는 사람들, 군인들에게 몸을 유린 당하는 창녀로 전락한 젊은 시절 독재자와 사랑을 나눴던 여인의 집으로 피신한 그 앞에서 떨어져 박살나는 그의 초상화, 군인들에게 학살 당한 모녀의 옷을 손자에게 갈아 입혀 다른 노파의 일행으로 위장하고서야 군인들에게 발각될 위기를 넘기는 그.
아니러닉하게도 그의 마지막 여정은 자신의 독재 치하에 반대하다 고문을 당해 몸이 망가진 채 귀향하는 반체제 정치범들과의 동행. 그 무리에서 자신의 독재에 반대한 정치범으로 위장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게다가 자신이 업고 가던 인물이 독재에 대한 저항 활동의 일환으로 독재자 자신의 아들 부부를 살해한 존재임을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살의를 느끼지만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는 독재자의 비참함.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개인적 분노. 5년 복역을 마치고 망가진 몸으로 집에 도착한 그 부상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아내. 결국 그 앞에서 쇠스랑으로 생을 마감하는 귀향자. 독재자의 아들 부부의 죽음, 그들을 살해한 정치범 부부의 비극적 결말. 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그로인한 결과를 빠짐없이 목격하는 독재자. 비극은 독재자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복수와 피의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여정의 마지막에 이르러 반군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독재자와 손자의 모습은 그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살아있으나 하수아비같은 존재. 그러니 무사히 바닷가에 도착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허수아비 행세하는 그 둘을 지켜본 사람의 신고로 성난 민중들에게 발각되어 쫗기다 결국 잡힌 독재와 손자의 모습은 예견된 결말. 독재자에게 자식을 잃은 한 여인은 독재자 앞에서 손자를 먼저 교수형에 처해 자식을 잃은 고통을 맛보게 하자 주장하고 분노한 민중들이 그를 실행하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가 독재자에 저항한 반체제범이었다고 밝힌 한 사내가 나서 독재자와 손자를 그렇게 살해한 다면 우리도 같은 인간이 된다고 살득하며 그들을 막아선다.
"이 자를 죽인다고 무엇이 달라집니까. 부패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부패는 끊이지 않습니다. 춤을 추게 합시다.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독재자의 머리는 도끼 아래 놓여 처형되기 직전의 상태고 바닷가에서 춤추는 아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독재자는 처벌 될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손자의 춤은 계속 될 것처럼.
사족 아닌 사족 -- 오랜 독재를 물리친 자리에 독버섯처럼 솟아 만연했던 무능하고 후안무치한 권력을 다시 몰아내고 남은 썩은 뿌리들을 도려내는 지금, 우리들에게는 저 마지막 사내의 말처럼 "부패의 사슬을 끊을" 처음이자 마지막 최적의 기회를 대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까지 남아 있는 썩은 가지들, 아니 그들이야말로 진짜 썩은 뿌리일, 그들은 참된 민주화,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제대로된 세상을 향한 지금 우리의 걸음에 마지막 걸림돌 같지만, 역사의 강은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냉전과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했던 독재의 시대, 그 독재자의 딸로 상징되던 후안무치와 무능의 시대는 갔다. 저 영화 속 독재자의 권력이 사라졌듯. 우리 역사의 강은 저 넓은 바다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