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인의 계절이다
정방사 작은 절 마당 한켠에 시비가 섰다.
觀音
아침 해 떠올라 / 물 빛 씻어 내리더니
허공에 무지개 뜬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 먼 바다 울리는 파돗소리
여기 법당 뜰에 앉으면 / 들리는 것들은 /모두 관음이러니
하늘 한 쪽 귀에 걸고 / 부처님 신발/손에 들고
서로 돌아 만행길 / 예서부터 시작이러니
고희에 이른 김용길 시인, 그는 등단 50년을 맞았다.
정방사에 내리는 햇살은 佛光이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파돗소리를 부처님 말씀으로 듣는다
그 뿐인가.하늘 한 쪽 비어내어 귀에 걸고 부처님 신발 손에 들고
서방정토를 향해 만행에 나선다. 그가 바로 부처다.
일체중생 실유불성을 깨달은 게다
공자는 말했다.고희에 이르면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걸림이 없다고, 바로 그 경지에 이른 시인을 본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만큼 지혜를 쌓는 일이다" 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심무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렸다는 것이다.
50년 세월을 시로 도 닦아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정방사 뜰 앞 천년 바위에 새겨진 시비 한 점
혹 재난을 당해 정방사가 사라지더라도
이 시비만은 남아 선에 든 혜일 스님을 떠올리게 되겠구나
* 시인 김용길은 아름다운 서귀포 중문에서 태어나 대학교 재학 중인
약관 20세에 등단 최 연소 시인으로 제주 문단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주옥 같은 시를 끊임없이 썼기로 도처에 시비가 세워져
그의 시를 애송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가을, 정방사 주지 혜일 스님의 요청으로 '관음'이란 시를 돌에 새겨 세워
정방사가 관음도량임을 확실히 했다. 극락의 문을 연 것이다.
시인과 스님은 남주고 동문이요, 나의 제자들이다. 참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