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孫丑 曰道則高矣美矣나 宜若似登天然이라 似不可及也니 何不使彼로 爲可幾及而日孶孶也잇고
孟子 曰大匠이 不爲拙工하여 改廢繩墨하며 羿 不爲拙射하여 變其彀率이니라 君子 引而不發하여 躍如也하여 中道而立이어든 能者從之니라
<家苑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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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추가 가로대, “도는 곧 높고도 아름다우나 거의 하늘에 오름과 같은지라 가히 닿지 못할 듯하니, 어찌 저로 하여금 가히 거의 닿을 듯하다하면서 날마다 부지런 부지런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맹자 가라사대, “큰 장인이 서투른 공인을 위하여 먹줄과 먹통을 고치거나 버리지 아니하며, 예가 서투른 사수를 위하여 그 활 당기는 비율을 바꾸지 않느니라. 군자가 활을 당기고 쏘지 아니함에 (배우는 자가) 뛰는 듯이 하여 중도에 서면 능한 자 따르게 하니라.” (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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孶 부지런할 자 彀 활 당길 구. 활을 쏘기에 알맞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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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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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이 배우는 자의 인품에 따라 가르치면 나타나는 성과를 들어 말한 것이고, 이 장은 가르치는 법도를 다룬 것으로 道의 실현이 아무리 급하다하더라도 正道를 따라야 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공손추의 질문은, ‘당시의 위정자들이 聖人의 道가 고상하고 아름다우나 마치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가히 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데, 왜 선생께서는 거의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면서 날마다 부지런히 힘쓰도록 재촉하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낮은 수준의 학생을 가르치는데 올라가지 못할 하늘을 가리킨다면 중도포기 하므로, 大匠이 拙工을 規矩準繩으로 가르치며 善射가 拙射를 彀率로 가르치는 것처럼 스스로 잡고서 배워가는 중에 하나씩 깨우치며 올라가도록 성취감을 유발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를 맹자는 활쏘기를 가르치는 것에 비교하여 군자가 활에 시위를 매겨 彀率에 맞춰 천천히 당기기만 하고 쏘지 않으면 배우는 자가 그 모양을 보고 마치 자기도 그렇게 하면 쏘아 맞출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마치 뛰는 듯이 나가서 활을 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적절한 수준에 올라서게 되면(中道而立)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높은 경지도 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能者從之).
공자가 오직 上知와 下愚는 옮기지 못한다(子曰唯上知與下愚는 不移니라 - 『논어』 양화편 제3장)고 했고, 過猶不及(선진편 제15장)이라 했다. 過하거나 上知한 자는 교만하여 도를 따르기가 어렵고, 不及하거나 下愚인 자는 미달하여 도에 나아가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맹자는 中道而立하여야 도를 따르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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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 曰天下有道엔以道殉身하고 天下無道엔以身殉道하나니 未聞以道로 殉乎人者也케라
<家苑 譯
> 맹자 가라사대, “천하가 도가 있음엔 도로써 몸을 따르고, 천하가 도가 없음엔 몸으로써 도를 따르나니, 도로써 남을 따름은 듣지 못했노라.” (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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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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殉(따라죽을 순)은 여기서 從의 뜻인데 殉이라 쓴 것은 道는 몸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곧 군자는 도를 행하다가 죽은 뒤에나 그만둔다는 君子有終의 뜻을 담고 있다.
맹자가 여기서 말한 내용은 『중용』 제10장의 ‘國有道에 不變塞焉’하며 ‘國無道에 至死不變’(진심상편 제9장 해설 참조)이라는 내용이다.
또한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는 枉尺直尋의 논리로는 결코 남을 곧게 하지 못하기에(등문공하편 제1장) 또한 ‘未聞以道 殉乎人者也’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는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면서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룸이 있느니라(子曰志士仁人은 無求生以害仁이오 有殺身以成仁이니라 - 『논어』 위영공편 제8장).”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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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都子 曰滕更之在門也에 若在所禮而不答은 何也잇고
孟子 曰挾貴而問하며 挾賢而問하며 挾長而問하며 挾有勳勞而問하며 挾故而問이 皆所不答也니 滕更이 有二焉하니라
<家苑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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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도자 가로대, “등경이 문하에 있음에 예하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답하지 아니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 가라사대, “귀함을 끼고 물으며, 어짊을 끼고 물으며, 나이 많음을 끼고 물으며, 공로가 있음을 끼고 물으며, 저의(底意)를 끼고 물음이 다 대답하지 않는 바이니, 등경이 두 가지를 두었느니라.” (4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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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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滕更은 滕나라 군주의 아우로 맹자에게 와서 공부했다. 그러나 등경이 뭘 물어도 맹자는 응답하지 않았다. 공자의 誨人不倦으로 볼 때 이상하다고 여긴 공도자가 이를 묻자 맹자는 답하지 않는 다섯 가지 이유로 挾貴 挾賢 挾長 挾有勳勞 挾故를 들면서 등경은 이 가운데 두 가지를 두었다고 했다.
趙岐는 挾貴와 挾賢을 들었는데, 등경은 군주의 아우였기에 挾貴와 挾有勳勞 혹은 挾貴와 挾故가 아닐까 한다.
앞서 만장하편 제3장에서 맹자는 벗함에 “不挾長하며 不挾貴하며 不挾兄弟而友니 友也者는 友其德也니 不可以有挾也니라”고 했는데,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倨慢함을 옆에 낀다는 것은 배움의 자세가 아니기에 맹자는 不屑之敎誨로 다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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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 曰於不可已而已者는 無所不已요 於所厚者薄이면 無所不薄也니라 其進이 銳者는 其退 速이니라 (4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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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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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가라사대
“그만둘 수 없는데 그만두는 자는 그만두지 못할 바가 없고, 후해야 할 바에 박하면 박하지 못할 바가 없느니라. 그 나아감이 재빠른 자는 그 물러남이 빠르니라.”--------------------------------------------------------------------------------------
<家苑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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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륜을 버리게 되면 못할 바가 없다. 힘으로 일어선 자 힘으로 망하듯이 以力假仁으로 覇權을 장악한 자 얼마 못 가 다 망함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위 내용은 군자가 遵道而行하다가 半途而廢하는데 나는 그만둘 수 없다(吾弗能已矣 - 『중용』 제11장)고 하신 공자의 말씀과 이를 받들어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바로 서야 도가 생겨나니 孝弟는 인의 근본이 되니라(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 『논어』 학이편 제2장).”는 유자의 말에 근거한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지는 것은 없으며, 그 후해야 할 바에 박하고서 박해야 할 바에 후하게 할 이는 있지 않다(其本이 亂而末治者 否矣며 其所厚者에 薄이오 而其所薄者에 厚하리 未之有也니라 - 『대학』 格物章). 그러므로 효제를 두텁게 하지 않고 침략전쟁을 통해 패권을 이루려는 자들은 그 나아감이 재빠른듯하지만 몰락도 순식간이며 다 그 죽음을 얻지 못함(不得其死 - 『논어』 헌문편 제6장)을 지적한 말이다.
大匠과 善射가 規矩準繩과 彀率로 차근차근 가르쳐나가면 拙工과 拙射는 이를 따라 한걸음 두 걸음 나아가며 배우게 된다(제41장). 그러나 힘과 재주가 좀 있다는 자들은 이를 건너뛰면서 빨리 나아가고자 한다.
求益者가 아닌 速成者일 뿐이다. 빠르게 덤벙덤벙 배웠기에 푹 익지 못했으므로 ‘學而時習之不亦說乎’의 기쁨과 ‘溫故而知新’의 깊음을 알지 못한다. 학문의 덕이 얄팍하면 그만큼 쉽게 어지러움에 빠질 뿐이다. 왕도정치란 정전법을 근간으로 위정자의 끊임없는 修身의 도가 전제되어야 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孟子易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