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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공지 https://cafe.daum.net/peacekj/UvsW/188
관련 행사: 제주해군기지 준공 10년, 해군기지 폐쇄와 비무장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투쟁 결의대회
https://cafe.daum.net/peacekj/UvsW/191
(업데이트 중)
**** 아래 사진들은 AI 학습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1부: '기지 준공 이후 제주 군사화 양상들' (최성희)
(사진: 돌고래)
(사진: 버들)
(사진: 버들)
(사진: 그린씨)
2016년 기지 준공식과 이를 규탄하는 투쟁 영상 (영상 제작: 제주소리, 2016, 2, 16)
2부: '지난 10년의 변화와 도래할 시간' 참여자들
(사진: 성게)
(사진: 려강)
(영상: 성게)
(사진: 성게)
(사진: 박성인)
발언문: 양희주
<제주해군기지 준공 10년 부서진날들 지켜온자리 쟁취할평화> -지난 10년의 변화와 도래할 시간
<제주해군기지 준공 10년 부서진날들 지켜온자리 쟁취할평화> -지난 10년의 변화와 도래할 시간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여민회 활동가 양희주라고 합니다.
오늘 집담회 자리에서 발언으로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오늘 제 발언은 강정투쟁을 바라보며 제주 시민으로서, 연대자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 는지, 그리고 강정투쟁의 앞으로를 상상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에 따라 준비해보았습니다.
저는 리턴입니다. 2010년 제주를 탈출했다가, 2016년 6월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2016년 2월 26일, 강정해군기지가 완공되어 준공식이 진행된, 그 이후에 제주로 다시 돌아온 것이죠.
강정해군기지가 완공되었을 때, 누군가는 강정투쟁이 실패한 운동이라고, 종료된 운동이라고 단정해버릴 수 있는 그 시기에 저는 오히려 강정투쟁을 이전보다 가까이서 보기 시작한 시점 이었습니다.
제가 제주여민회에서 상근활동을 하며 강정마을 혹은 강정투쟁과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로 이 어졌습니다. 제주여성영화제에서 강정활동가 분들을 초대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제주 청년 페미니스트들과 강정마을에 와서 마을탐방을 하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퀴어운동과 관련한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작년엔 강정마을 청년여성들과 일상대응력 향상 훈련도 함께 진행해보기도 했습니다.
강정과 제주여민회, 그리고 저는 여러 연대체들로 함께 엮여있기도 합니다. 제주생명평화대행 진, 3.8제주지역여성대회,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의 연 대체로도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생명과 평화, 평등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부터 출발한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강조해서 언급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대행진은 제주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운동 방식을 추동해냈 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명치이 바뀌긴 했지만, 대행진은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강정마을 해군 기지에서 출발합니다. 출발 장소가 바로 강정 해군기지 앞인 것은, 강정마을이 갖고 있는 상징 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운동임을 강조하는 의미도 있겠습 니다.
이렇게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매해 지속을 할거냐 말거냐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는데요, 그때마다 저는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단 강정의제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생명과 평화를 비롯한 다양한 의제들이 뒤섞이는 장이 대행진이고, 이 러한 장이 계속 이어져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엔 대행진을 통해서 다양한 강정의 활동가들을 비롯해서 제주도내외의 다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 었던 장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뜨겁게 연대했던 윤석열정권퇴진.한국사회대전환 제주행동에서의 경험도 나누고 싶습니다. 윤퇴진 제주행동은 민주노총 제주본부, 강정친구들,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 위원회, 제주여민회 4개 단체가 매주 실무적으로 결합하여 꾸렸는데요. 그러면서 단체별로 저 희 기관지에 실을 인터뷰까지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뭉뚱그려서 알고 있었던 강정의 활동을 구체저그로 알 수 있었습니다. 강 정엔 여전히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7시에 기지 앞에서 100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인간 띠 잇기 문화제도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해군기지 근처 연산호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등. 강정 활동가분은 이러한 활동들이 현장 운동으로서의 강정 운동이 끝 나지 않았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자 실천이라는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2월 강정에서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규탄!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기 위한 집중 행동’이 열렸지요. 저는 이날 감사하게도 발언을 요청받아 함께하였는데요. 인터뷰에서 이날 윤퇴진제주행동에서 함께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해주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아마도 광장에서 최성희 선생님을 비롯한 활동가들께서 강정으로 모이자는 이야 기에 울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요. 이래도 강정투쟁은 끝난 싸움, 실패한 싸움일까요? 강 정의 곁에서 활동했던 저의 시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강정투쟁을 경유해서, 강정투쟁의 경험들 속에서 폭력과 전쟁의 언어들이 제주를, 한국을, 세계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무기가 아닌 따뜻한 자연과의 깊은 대화, 그리고 생 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음주 토요일, 3월 7일은 구럼비 발파일입니다. 부끄럽지만 활동하며 구럼비 발파일에 강정 에 와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3.8여성대회와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 니다. 저는 이제 상근활동가가 아니기에 3.8여성대회에 참여만 하면 되지 실무세팅은 하지 않 아도 됩니다. 그러니, 우리 다음주에도 또 여기 강정에서 만납시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 끈질기게 연결하며 살아가봅시다. 고맙습니다.
발언문: 임최도윤(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장)
[제주해군기지 준공 10년, 부서진 날들 지켜온 자리 쟁취할 평화_지난 10년의 변화와 도래할 시간_집담회 연대발언문]
안녕하세요.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장 임최도윤입니다.
결의대회의 결의문을 받아 읽어보았을 때 저는 몇 번쯤 눈물을 참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담담하게 쓰인 운동의 언어만큼이나 인내해왔을 많은 장면이 있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문장들이었습니다.
강정 투쟁을 알게 된 뒤로 저는 치밀한 기록과 숫자 셈과 지나간 지나오고 있는 또 지나갈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헤아리는 일을 해내 온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는 걸 마음 한 켠에 두고 살고 있습니다.
있어온 자리에,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일이 어떤 힘을 주는지에 대해 저는 이 마을 바깥의 존재로서 더 선명하게 느껴온 것 같습니다.
강정에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그만큼의 세계들을 모여들게 한 보이지 않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이 발언문을 쓰며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년 전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이 곳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람들이 벌여 온 풍경들과 투쟁의 일상은 옳게 된 말인지 모르겠지만, 부여잡기를 몰라온 자의 마음을 압도합니다. 두드립니다. 가슴 아프게 하고 울게 하고 웃게 하고 절박한 마음을 일깨우게 합니다. 연고 없는 사람까지도 공명하게 합니다.
감수하는, 그래도 접기보다는 펼쳐보자고 하는, 멀뚱히 선 소외를 안아주기를 먼저 택하는 연대의 마음을 저는 과거 이곳과 이곳 사람들에게 처음 배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마음과, 저버리지 않으려는 고집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함을, 그런 어떤 강짜들을 여기의 삶과 활동가들에게 그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강정의 삶과 투쟁이 여전히 여기에 있어서, 시간을 맞물려 운동의 모양과 활동가들의 마음을 그을려 온 투쟁의 불씨를 알아채고 감히 모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만이 이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정의 일상 투쟁은 현장 투쟁이고 현안 투쟁이고, 잊지 않을 과거이자 생동하는 현실이고, 코밑까지 다가와서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미래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운동을 하면서 저를 때때로 일깨우는 것은 초라한 마음입니다. 개개인의 초라한 마음이 모이고 보태어져 어떤 구호가 되고 투쟁이 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여러 현장의 연대자로서 저는 초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고 초라하고 미약한 것에서부터 새롭게 박동하는 것 같은 두근거림을 저는 연대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강정에서 배운 것입니다.
폭력과 침해와 불의와 전쟁의 전조가 초래된 이 곳 강정의 각주는 전쟁 반대와 평화, 인간의 존엄과 차별 반대, 해방 의지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움트게 합니다. 저는 그것이 그저 그것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또 동시에 대단한 전략이나 판단이나 그런 건 좀.. 오히려 망상 삼기로 했습니다. 지속해야만 하는 운동의 현장에서 이런 뾰족한 무던함도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명제가, 느슨한 연대가, 연약한 기댐과 무심한 고집이 그저 있음으로 숨통 틔우는 운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디선가 들어온 말로는, 어떤 운동적 판단에서는 이런 게 부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가 몸 담은 의제 안에서 어떤 하나하나가 존엄이라면 그 하나하나에 연연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합리라고 말해지는 차별과 배제에 끝없이 저항하는 일.
모든 존재는 그 존재로 존엄함을 질리도록 일갈하는 일.
사회가 세지 않는 분명하고 찬란한 존재들에 대해 끝까지 이야기하는 일. 고집부리는 일.
다만 생긴 모양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일.
다른 세상을 향해 지치지 않고 아니 지치더라도 계속해서 싸움을 거는 일.
도래하기를 바라는, 그래서 사실 맨눈으로 본 적 없는 것에 대해서 말과 문장을 짓고 목소리 내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연결된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 각자는 과연 어디까지 주체일 수 있는지 계속해서 되물어야 하는 딜레마에도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박탈당한 주체성들만으로 빽빽한 이 세상에서, 주체되는 것마저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불현듯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 뒤집힌 시야에서만 보이는 삶들이 있어서, 그 하나하나에 연연하게 되는 선택과 판단의 과정에서, 강정으로부터 배운 연대가 활동가로서 저의 방향을 바로 세웠습니다.
선언적인 삶을 살아야만 하는 성소수자의 삶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실존을 증명해야 하는 투쟁입니다. 삶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계속해서 방어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소수자 운동을 해서, 강정의 투쟁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운 바로 운동은, 일상 투쟁은, 우리의 눈꺼풀 아래에 빗겨난 초점에도 사람이 있음을 끈질기게 상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의 강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품이 부족해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껴안고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는 없는 이 절실함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주체되지 못함을 감히 부끄러워 하지 않고 객체인 그대로 곁에 서는 마음들이 운동의 현장에 더 필요합니다.
가장 주변화된 이들의 해방 없이는 그 누구의 진정한 해방도 없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씀드리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발언문: 김성환 신부님
강정생명평화미사(천막미사)는 2011년 8월 하순에 지금의 미사 천막 자리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서울교구 이강서 신부님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문정현 신부님이 며칠 감옥살이 하고 난 이후에 이어받아서 계속 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0월에, ‘제주평화의섬실현을위한천주교연대’ 가 꾸려졌습니다. 월요일에는 천주교 연대 소속인 육지에 있는 천주교 교구 신부님들과 신자분들이 미사를 담당했고,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은 제주교구 27개 본당에서 돌아가면서 미사를 담당했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현장에 있는 문정현 신부님, 이영찬 신부님, 그리고 육지에서 개인적으로 오는 신부님들이 미사를 담당했습니다. 저도 가끔 육지에서 강정에 와서 미사를 담당했고, 2012년 7월에는 강정에 완전히 이사를 했고,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천막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2015년 9월 초순에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가 완공된 이후에, 천주교 제주교구를 포함한 천주교 연대는 천막 미사에 오는 것을 그만두었고, 천주교 현장 팀은 천막 미사를 이어갔습니다.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된 후 몇 달 후에, 강우일 주교님 요청으로 저는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 아일랜드로 공부하러 갔습니다. 2년 동안의 공부를 끝내고 와서 저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천막 미사에 계속 오게 된다면, 미사를 계속하고, 천막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줄어들어서 어느 순간에 신자들이 오지 않으면 미사를 접어야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신자들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장이 된 2019년부터 작년(2025년)까지, 7년 동안 미사 참례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한결같았습니다. 하루 평균 8~9명 정도가 매일 참여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미사를 계속하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현재까지 미사를 계속 집전하고 있습니다.
미사는 약 25분~30분 동안 지속되고 묵주기도가 약 20분 이어집니다. 약 50분 동안, 길거리를 지나가는 차량 숫자는 엄청납니다. 몇백 명이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 안에 탄 사람들이 우리가 미사를 하는 것을 보고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미사가 하는 것을 보고, 그 몇백 명의 사람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아니 한 사람이라도, “저 사람들이 아직까지 왜 저렇게 미사를 하지”라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지금도 천막 미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발언문: 카레
강정투쟁의 국제연대
활동가들의 삶에 대해 / 기지 앞의 분위기나 상황
*10년전 오늘, 처음으로 카약 시위, 마지막으로 강정 바다에서 돌고래들 만났어요. 기지 주변의 변화에서 바다가 죽어가는데 우리가 바다의 목소리들 대표 해야되요…
—카약 같이 탄 크리씨- 카톨릭 워커스: 멜리사, 브렌나와 함께 왔고 - 1달 머물었어요
—미사에서 “Maria님 it’s your birthday” 듣는데 원래 무슨 말인가 물었다는 기억.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이었다고 찾았는데 그 당시 저도 바로 이해 되지 않았어요.
*10년 뒤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외국 손님과 봉사자들과 카약 시위, 미사, 백배, 인간띠를 같이 하면서 안내하고 있어요… 이제는 카약시위 안내와 코디 역할하고, 인간띠 사회를 보고, 한영 통역하고 가끔 더 어려운 방향으로 영한 통역도 해보고 있어요.
*강정평화운동의 매일 활동에 참여 하는 사람들 여전히 다양한 통로로 오고 있어요. 잛게 방문 했던 사람들 다시 오고, 또 다시 오고, 사러 와요. 해군기지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데 우리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평화 훈련을 해왔어요. 해군에서 국제 전쟁 훈련 보다 우리가 더 많은 국제 평화 훈련을 했을까요?
*10년 이라는것 생각하면 그 사이에 있던 많은 일들 기억 하게죄요
*작년 5월에 WCD의 10년, 새멤버들의 방문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국제여성네트워크” (IWNAM) 전/후 방문자들
-성프란치스코 평화 센터 주최로 진행 한 “군사주의에 저항” 줌 수업에서 만났던 분들 …
*섬들의 연대 평화의 바다 캠프 2014년 부터, 코로나 3년 쉬고, 올해 가을 오키나와에서 모일때 10회가 됩니다.
*”군사 훈련 말고 평화 훈련” 가벼운 구호만 아니고 우리가 해군기지를 대응하는 중요한 전략이에요. 계속 하면, 우리가 지금 꿈꾸는 다른 세상을 우리의 실천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