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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 Mindfulness Made Me a Bitch?
마음챙김 수행이 나를 나쁜 년으로 만들었나?
First there is confusion, then there is a smug bitch, and then—there is nothing.
처음엔 혼란이 있고, 다음엔 잘난 체하는 미친년이 있고, 그 다음엔 아무것도 아니다.
By Laurie Fisher Huck 로리 피셔 헉, 트리이시클 불교잡지
MAR 23, 2021 2021년3월23일자
Recently, on a Buddhist-based news feed I follow, where people diss each other to an alarming degree, someone complained about the “I’m better than you because I’m so spiritual” vibe prevalent in some circles. Then the complaint came closer to home: A friend told me she found me to be “too Buddhist and aloof.” The proximity of these two events gave me food for thought: Has mindfulness made me a bitch?
최근 내가 자주 방문하는 불교관련 SNS에서 사람들이 위험신호가 울릴 만큼 서로를 디스(차별)하는 데,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 어떤 모임에서 한 사람이 “나는 영적이기 때문에 너보다 낫다.”라는 말에 대해서 불평했다. 그런 류의 불편함이 내게도 아주 절실하게 다가왔다. 한 친구가 “넌 너무 불교적이고 쌀쌀맞아”라고 했다. 이 두 사건이 내게 생각할 거리가 됐다. 마음챙김 수행이 나를 미친년으로 만들었나?
“Bitch” is a very popular word in our colloquial lexicon these days. I’ve seen it applied both positively and negatively to men, women, ideas, events, and even motorbikes. In this case I’m using it in two ways. First, to get your attention—did it work?—and second, to describe what I consider a gender-neutral manifestation of the ego: the know-it-all.
“미친년”이란 요즘 우리의 구어체 사전에 등재된 매우 유명해진 말이다. 이게 남자, 여자, 아이디어, 사건 및 오토바이에까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의미로 적용되는 걸 본다. 이경우 나는 두 가지 방식 모두를 사용하겠다. 먼저, 당신의 주의를 끌기 위해-이게 효과가 있을 런지?-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가 생각하기에 에고의 젠더-중립적인 표현 즉, 똑똑한 체 하는 것을 의미한다.
Before I started practicing meditation, I didn’t know if I was coming or going. Multiple answers came and went, but the question of what life was all about kept rolling around like a loose marble on my hamster wheel of a mind. I actively sought guidance.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오는 지, 가는 지도 몰랐다. 많은 답들이 왔다 갔다 했다. 인생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마음의 쳇바퀴가 구르듯 계속 돌아갔다. 나는 안내자를 적극적으로 찾았다.
My quest for wisdom began with an audience with a famous Hindu teacher. The room was packed and people were chanting. I was told that when the swami touched my head with a peacock feather, I would receive clarity. It was difficult not to admire his followers. They were all smiling brightly and looked like they had “the answer.” I stood in line, offered some fruit, got bopped with the feather, and it was immediately crystal clear: I was, indeed, confused.
지혜를 향한 나의 여정은 한 유명한 힌두 스승과 면담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방엔 사람들로 빽빽했으며 챈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스와미(힌두 스승을 ‘스와미’라 한다)가 공작 털로 내 머리를 닿을 때 분명한 뭔가를 받을 거라 말하는 걸 들었다. 내가 그 추종자들을 존경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모두 밝게 웃으며 “답”을 찾은 듯이 보였다. 나는 줄을 서서, 과일을 올리고, 깃털에 닿았는데, 즉시 수정처럼 분명해졌다. 그래도 역시 나는 혼란스럽다는 걸.
So how did all this lead to bitchiness? Well, let’s start with a process, a from-here-to-there, a classic Zen teaching on the path to awakening: Before enlightenment, the mountains are mountains. Then as one seeks, the mountains are not mountains. And after enlightenment, the mountains are mountains. Only my version is: “First there is confusion, then there is a smug bitch—and then there is nothing.” Stay with me.
어떻게 이런 모든 게 미친년이 되게 만들었을까? 글쎄,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까지 이르는 그 과정을 시작해보자. 전통적인 禪선 가르침에서는 깨달음의 길이란, 깨닫기 전에 산은 산이다. 그리고 수행을 해가면 산은 산이 아니다. 그리고 깨달은 후에는 산은 산이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처음엔 혼란이 있다. 다음에 잘난 체하는 미친년이 있다. 그리고 다음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자신으로 있어라.
I brought that full dump-truck load of confusion to the meditation cushion when I finally found an environment sufficiently compelling to get me to stop, sit, and look at my mind. My very first introduction to meditation was offered by an extremely pregnant, good-humored young woman. No fanfare. No fruit. I was one of a bunch of beginners, and the teaching was straightforward and down-to-earth. I was all in.
나는 좌선 방석위로 덤프트럭에 가득한 혼란을 싣고 오기는 왔는데, 마침내 어찌 할 수 없는 환경이 나를 멈추게 하였고, 앉게 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내 첫 번째 명상 안내자는 극도로 함축성 있고 유머가 풍부한 젊은 여성이었다. 어쩐 선전도 없었고 어떤 결과도 없었다. 난 한 무리의 초심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가르침은 직설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나는 전부를 쏟았다.
We were told to sit in a comfortable, alert posture and follow the breath. Whenever a thought arose, we were to notice it, label it “thinking,” and gently return our awareness to our breathing, with particular attention on the out breath. Easy peasy! A gong was struck to begin each session, and when the sound faded, we were left to our own experience.
우리에게 편안하게 앉아, 깨어 있는 자세로, 호흡을 알아차리라 했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걸 주목하면서, ‘생각’이라고 이름표를 붙이면, 저절로 본래의 호흡으로 주의력이 돌아오게 된다. 특히 날 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매우 간단하고 쉬웠다. 매시간마다 종이 울렸는데, 그 종소리가 사그라질 무렵 우리는 자신의 체험에 몰입하게 된다.
Once I entered the practice, I had very little awareness of anything else. Easy vanished after the first 10 minutes, and I was overwhelmed by a tsunami of self-created nightmares, looping desires, and unbridled ambitions, and an ocean of sadness that rose and fell, and rose and fell, ad nauseam. If you have never been there, if you didn’t experience a meltdown during the early stages of meditation practice, then maybe you were picking flowers. I found myself digging down into the grubby, murky convolutions of memory and impulse—the manure, so to speak, that flowery little everyday thoughts grow on top of. Just the sheer number of thoughts was alarming! I had a manic mind of thoughts, and it took hours, weeks, months of sitting meditation to settle even just a bit.
한 번은 내가 정진하러 들어갔을 때 어떤 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처음 10분간은 쉽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자기 중심적인 악몽, 뺑뺑 도는 욕망과 고삐 풀린 야망과 일어났다 꺼지고 또 일어났다 꺼지며 진저리가 나는 바다 같은 슬픔에 압도되었다. 만일 당신이 앞에서 말한 그런 경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거나, 명상수행의 초보 단계에서 그런 것이 녹아버린 경험이 없다면, 아마도 당신은 (설렁설렁) 꽃이나 따고 있었을런 지 모르겠다. 나는 기억과 충동이 뒤엉킨 지저분하고 탁한 곳-이건 말하자면 일상에서 작은 풀꽃 같은 생각이 솟아나는 거름더미가 되는데-을 깊이 파 뒤집고 있는 걸 알았다. 생각의 숫자만 헤아린다 해도 얼마나 놀라운가(생각이 너무 많았다는 뜻)! 나는 앉아서 조금이라도 진정하려고 했던 시간 내내, 주일 내내, 몇 달간 생각이 미치도록 많은 상태이었다.
Thankfully there was consistent guidance at this stage. I was assigned a personal meditation instructor I could meet with regularly to talk about my experiences. No matter what came up, I was frequently and kindly reminded to return to my breath, again and again and again. When I finally lifted my head out of the cesspool of swirling light and dark, so many things had happened. I’d looked into forbidden corners, and I’d brought myself back from the endlessly twining entrails of my imagination. Thoughts had been released and emotions had dissolved. The process was visceral: great heart swells, deep sighs, tears, pain, and surprising spaces in between. I felt like a tiny shoot struggling out of the earth into the air for the first time. It was a moment accompanied by a distinct flash of joy.
고맙게도 이런 단계에서도 지속적인 안내가 있었다. 내게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내 수행경험을 말할 수 있는 개인 명상 안내자가 있었다. 무엇이 일어나든지 간에 나의 호흡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자주 친절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드디어 빛과 어둠이 빙빙 돌아가는 오수 구덩이에서 내 머리를 치켜들었을 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마음속의)금지된 구석들을 들여다보았으며, 내 상상속에 끝없이 배배 꼬인 속마음의 창자로부터 빠져나왔다. 생각에서 놓여 났고, 감정은 사그라졌다. 그 과정은 실로 생생했다. 마음이 크게 부풀고 깊은 한숨이 쉬어졌으며, 눈물이 나고, 아팠으며, 사이 사이 놀라운 틈(생각이 비워진 틈새)을 경험했다. 아주 작은 화살이 땅속을 뚫고 처음 허공으로 날아가려고 분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순간 환희의 감정이 번개처럼 따라왔다.
The bitchiness started when I began to think I was onto something.
In his Essentials of Mahamudra Khenchen Thrangu Rinpoche wrote, “To think that shamatha—the simple peaceful state of the mind at rest—is the mind’s way of being . . . is a mistake.”
내가 이제 하나의 물건(명상 좀 하는 멋진 놈)이 됐다는 생각이 일어났는데, 이건 미친년 기질이 도진 것이었다. 켄첸 트랑구 린포체(1933~2023, 티베트 불교 까귀파의 고승)의 <마하무드라의 기본>이라는 책에서 “사마타(삼매 혹은 선정)는 쉰 마음의 순박하고 평화로운 상태이며 그게 마음이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건…착각이다.”
Oops. 어이쿠
In other words, quieting the mind is only the beginning of the path. What I experienced—that brief respite from the onslaught of thinking; that attractive, effervescent bubbling of relief—was just the start of a much longer process that could literally take lifetimes. In my naïveté, I thought I had seen the light and all I had to do was poke my little finger into it to make it bigger.
다른 말로 말하면, 마음을 조용히 하는 건 수행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아, 생각이 사라진 그 짧은 일시적 멈춤은 매혹적이며 안심이 보글보글 일어나는 경험으로-그건 말 그대로 평생이 걸릴 지도 모르는 훨씬 더 긴 과정의 시작일 뿐이었다. 드디어 나는 빛을 보았으며,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새끼 손가락으로 그걸 콕 찍어서 더 크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건 나의 순진한 발상이었다.
That momentary experience became the touchstone for my meditation. “Bad” meditation was when my mind was lost in thought, and “good” meditation was when my mind was happy and controlled.
그 순간적인 경험은 매 수행의 초석이 되었다. “나쁜” 수행은 내 마음이 생각에 빠져버릴 때이며, “좋은”수행은 내 마음이 즐겁고 잘 제어될 때이다.
As a result, my bitchiness took on some very specific forms. Armed with the bits of new clarity that naturally come with tranquility meditation, I became ambitious. “Ambition to convey the truth is basically good,” the Tibetan teacher Chögyam Trungpa wrote in a manual for shamatha instructors, “but at the same time one’s ego could tend to become tightened and hardened.” He could have been reading my mind. What I really wanted was to be one of those smiley bright types with the answer. Over time I became extremely good at ritual practices and managing tasks around the sangha, and through mastery of those things I developed a slightly superior demeanor. I made slow, deliberate movements choreographed to display my thoroughly mindful attention to details. I softened my face, intensified my eye contact, and perfected my holier-than-thou, never-get-perturbed look.
그 결과 내 미친년-기질은 어떤 특정한 형태를 띠었다. 사마타 명상(집중명상으로 고요함이 생김)에서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조금 생긴 밝음을 무기 삼은 나는 야심이 생겼다. 티베트 스승 쵸걈 트룽빠(1939~1987, 티베트 불교, 까귀파와 닝마파의 전법사)가 사마타 기본 교재에서 썼듯이 “진리를 기본적으로 좋은 것으로 만들려는 야심은 그와 동시에 에고를 단단하게 하고 굳어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분이 내 마음을 읽었었구나.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미소를 지으며 밝게 다가오는 해답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행센터에서 벌어지는 행사와 소임(맡은 일,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 주방 설거지, 침구 정리 등등)에 아주 유능 해졌고, 그런 걸 잘 해내는 걸 빌미로 좀 우월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내 행동거지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알아차린다는 걸 보여주려고 일부러 몸 동작을 천천히 했다. 얼굴표정을 풀었고, 시선접촉을 강화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스럽고, 결코 흔들림 없는 행동거지가 되도록 완벽을 기했다.
It wasn’t just me and my mind on the cushion anymore. It was me and my mind plotting and planning and judging others. The practice itself became an opportunity to snap up an experience and turn it into a sound bite for my imagined acolytes. I seduced, I faked, I finagled. And now I was ready to teach others. How hard could that be?
그건 내가 아니었으니, 내 마음은 좌선 방석 위에 더 이상 없었다. 꾀를 내고 계획을 짜고 다른 사람들을 저울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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