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영 목사
어느 책에서 "욕 잘하는 목사가 있는 교회가 부흥을 하고, 욕 잘하는 주인이 있는 식당이 잘된다"는 글을 읽고 웃은 일이 있습니다.
충남대 교수인 김열규 씨는 그의 저서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이란 책에서 "욕은 감정의 발산인 동시에 감정의 달램이고 감정의 삭임질이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이 욕하는 것을 상을 찡그리면서도 즐기는 것은 감정의 대리 충족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욕도 지혜와 재치가 있으면 유모어가 될 수 있고 아름답게 승화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걸러지지 않은 말은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 부부 사이를 가장 편한 말상대로 여기고 별로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씨가 되어 오래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고 급기야는 가정이 파탄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언어폭력"이란 말이 있습니다. 언어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오래 아프고 더 상처가 오래가는 법입니다.
몇일 전 TV뉴스를 보니 요즈음 부부간의 폭력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죽고 싶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끄럽게도 이혼율이 세계의 3위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들은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승부는 없는 법입니다.
데이비드 억스벅(David Augsburg)의 "사랑의 대결"이란 책에는 부부 싸움의 세 형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첫 형태는 I win, You lose의 형태로서 "내가 이기고 네가 졌다"는 형태인데 이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서 더 큰 싸움을 위한 일시 휴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형태는 You win, I give up의 형태로서 "네가 이기고 나는 포기한다"는 형태인데 이 역시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서 포기는 증오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형태는 Door mat의 형태로서 "나를 밟고 가라. 그러나 흙을 집에 들이지 말라"는 형태인데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이기기 힘든 것이 자기(自己)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다스리기 힘든 것이 말입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부사이에 고운 말을 써 우리의 가정을 좀더 밝고 따뜻하고 경건하게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아가서 2:1-5절의 말씀은 남녀의 사랑의 찬가입니다.
총각은 처녀에게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찬양하고 처녀는 총각에게 "남자들 중에 내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라고 찬양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꿈같은 행복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찬가는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왕을 사모하는 두 연인의 사랑의 찬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로 해석되어 왔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이상적 부부관계의 모형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5-10절의 말씀은 새사람에게 주는 도덕적 교훈입니다.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었으면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 버리라고 권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위의 두 본문 가운데서, 연인과 새 사람의 관계 속에 말이 차지하는 큰 비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을 통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어야 할 고운 말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부부사이에는 아름다운 호칭을 써야 합니다.
아가서 2:2절에 보면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하였고, 2:3절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묘사는 듣기 좋으라고 건성하는 말이 아닙니다. 총각은 가시나무 숲 같은 현실속에서 홀로 순수함을 지키며 향기를 풍기는 백합화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처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처녀는 잡초가 우거져 갈길을 막고 있는 가운데서 홀로 무성하게 자라 갈증과 허기를 면케할 사과와 지친몸을 쉬어갈 그늘을 주는 사과나무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총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속마음에서 우러나온 백합화, 사과나무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이 말씀의 성경의 뜻은 가시나무 같은 불신의 세상에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고 믿음의 향기를 풍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요, 목마르고, 허기지고, 지친 성도들이 잡초같은 세상의 유혹 가운데 홀로 우뚝 솟아 해갈과 배부름과 그늘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그백성,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통해 부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남편과 아내의 호칭에 아름다운 모범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호를 부를 때 가장 높고 거룩한 호칭을 씁니다.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때도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때도 교인간에 서로 부를때도 가장 좋은 존칭을 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여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애들 이름으로 부르거나 "아빠" "엄마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여보시오의 낮은말"이고, "남편이나 아내를 부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허니"(honey) 혹은 "달링"(Darling)이라고 부릅니다. 허니는 꿀처럼 달다는 뜻이고 다링은 귀여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보든, 아빠든, 엄마야든, 허니든 다링이든 간에 그 말속에 애정과 진실과 신뢰와 존중이 담겨 있는 호칭이어야 합니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새 가정은 서로 그 호칭부터 달라야 합니다. 이것이 변화된 새 가정입니다.
둘째, 부부사이에는 아름다운 말을 써야 합니다.
골로새서 3:8절에 보면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에 부끄러운 말이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흥분도 악의도 훼방도 입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새사람의 첫 변화는 말의 변화입니다.
흔히, 부부 사이에는 문제가 없을 때는 말없이 짧은 의사표시로만 불편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는 이렇구저렇구 말이 많아지고 거친말, 심한 말, 막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의 발단은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분이 있는 말, 악의 있는 말, 훼방하는 빈정대는 말을 자제해야 합니다.
온유한 말, 선한 말, 존중의 말을 골라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운 말을 써야 하겠지만 우선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부사이에 고운말 아름다운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한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 품위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분이 나고 억울해도 심한말, 막말은 결국 자기를 자해하고 가정을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이란 시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신앙적이고 도덕적이고 신뢰와 존중성이 있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말은 가정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아름다운 말은 구원받은 증거가 됩니다.
골로새서 3:9절 이하에 보면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하셨습니다.
새사람, 즉 구원받은 자는 말과 행동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된 사람이란 말씀입니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워진 말이란,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실직한 남편에게 "여보, 이제 우리 식구는 어떻게 살아요" 하는 것이 아니라 "여보, 염려 말아요.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거예요" 할 수 있는 말이요, 실수한 아내에게 "꼴 좋다. 꼴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보, 괜찮아 힘내요. 힘내. 아직 70번씩 7번이 되려면 멀었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품위 있는 말이어야 합니다. 마음에 안든다고 "아이 저 지지 궁상" 한다던지 화가 난다고 "아이 저 웬쑤" 하는 막말은 사랑과 신뢰를 스스로 내어버리는 말입니다.
긍정적인 말이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이 많은 집은 모든 일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업을 해도 공부를 해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말이 많은 집은 모든 일이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이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긍정적이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요" 할때는 "아니오" 할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님들께서는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남편들의 부정한 수입을 거절하고 정직하게 살으셨습니다. 고기를 먹으며 마음 편치 않은 것보다 나물을 먹으며 마음 편한 삶을 긍지로 알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 수입이든 많이만 가져오면 능력으로 알기에 남편들이 형무소를 내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것입니다.
아내의 애정 어린 "아니오"는 남편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남편의 애정 어린 "아니요"는 아내의 순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말로 부부 사이의 문제를 극복하고 밝고 따뜻하고 경건한 복된 가정을 만들어 가시는 우리 아편중앙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