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말 들어 처음 눈산행에 나선다.
함백산.
2014년 백두대간 진행 시 정상을 밟아본 후 벌써 8년이 지났다.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은근히 걱정도 되었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만큼 큰 추위가 없어 다행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사방이 온통 눈천지에 하늘도 맑고 바람까지 없어 산행에 아주 그만이었다.
만항재에서 다시 약 300m 정도 떨어진 주차장에 도착하니 가득 쌓인 눈이 오늘 산행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간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른 가운데 흰구름이 드문드문 빈 자리를 채우고...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얼음꽃이 피어있는 나무 가지들 사이 등로 옆에 쉬어가라고 평상을 깔아놓았다.
가지마다 가득 피어있는 눈꽃을 바라보니 자연이 준 멋진 선물에 탄성을 금할 수가 없을 정도!
능선에 오르는가 했더니,
다시 살짝 내려가는데 종아리까지 찰 정도로 눈이 쌓여 있다.
창옥봉에 이르니 햇빛이 눈꽃을 인 가지사이로 새어 들어오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눈꽃이라기보다는 얼음꽃이라 해야 할 듯.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을 지난 후로는 더이상 얼음꽃을 볼 수 없었다.
앞서 출발한 산객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하고 있네.
함백산 기원단.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용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 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오며, 과거에는 함백산 일대에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함백산 주변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광부들이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게되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기도했던 곳이라고 한다.
함백산 정상부.
함백산기원단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태백선수촌갈림길에 도착한다.
도로를 건너 맞은 편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예전에 없던 장벽이 가로막고 있네.
이곳을 통제할 일이 무에라고......
이제부터 경사는 점점 심해지고,
함박눈을 덮어쓴 가지는 여기가 처음이었다. 이후로도 거의 볼 수가 없었고...
의외로 포근한 날씨에다 급경사가 겹치니 등에는 땀이 흐를 정도.
마침내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기 시작한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눈, 그리고 산그리메가 멋진 조화를 보여주네!
우측 백운산과 두위봉.
태백산 장군봉 우측으로 각화산도 보이고...
좌측으로 달바위봉도 조그맣에 시야에 들어온다. 우측은 태백산 문수봉과 부쇠봉.
당겨본 달바위봉.
함백 마지막 오름.
얼음꽃을 뒤집어 쓴 멋진 나무.
함백산 정상부.
달바위봉과 태백산, 각화산, 그리고 좌측 중앙 태백선수촌이 보인다.
함백산(1572.9m).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우리나라에서 6번째 높은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봉 가운데 하나다.
함백산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척주부에 보면(臺南有上咸白中咸白下咸白上下有本寂深寂妙寂隱寂庵今或廢)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봉우리가 셋이다. 상함백은 두문동재 남쪽에 솟은 은대봉을 말하고 중함백은 은적암 뒷봉우리이며, 하함백은 지금의 함백산인 것이다. 허목의 미수기언에 보면, (太白山新羅北岳文殊大朴二臺虞甫虞檢麻羅邑白山皆大山)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인데 문수, 대박의 두 봉우리가 있고 우보산, 우검산, 마읍산, 백산 등이 다 태백산이다.'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현재 태백산보다 높지만 태백산의 한 봉우리였던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하였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뜻으로 대산이며 신산으로 여겨 본적암. 심적암. 묘적암. 은적암 등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는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정암사(淨岩寺)가 있는데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갈반지를 찾아 큰 구렁이를 쫓은 후 그 자리에 적멸보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과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을 세우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셨다고 하며, 적멸보궁 옆 주목나무는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난 것이라며 선장단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고, 일명 작약봉이라 하여 산속에는 흰 진달래 그 밖에 흰 짐승과 꽃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함백산의 야생화는 국내 최대규모로 군락을 이루고 계절마다 다양하고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몇 번 방문했던 사람도 늘 새로움을 기대하며 찾아온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정말 시원하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다.
사방이 눈덮인 봉우리에다 멀리까지 시야가 뚜렷하고 하늘마저 맑고 푸르니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의 감동을 선사해 주네!
우측이 풍력발전기가 있는 매봉산(백두대간 상의 매봉산은 아니다).
진행 방향으로 중함백과 그 뒤의 은대봉, 두문동재를 사이에 두고 그 너머 금대봉과 대덕산, 비단봉, 매봉산과 덕항산,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가 늘어서 있다. 백두대간 길이다.
전파 송신탑.
멀리 민둥산과 가리왕산도 흐릿하게 보이고...
당겨본 민둥산과 가리왕산.
장산과 매봉산, 그리고 멀리 소백산과 월악산, 금수산도 보인다.
살짝 당겨 본 소백산과 월악산, 금수산.
한동안 조망을 즐긴 후에 함백을 내려선다.
정상에서 잠시 내려서면 도로가 나오고 우측 헬기착륙장 옆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주목이 보이는 데 이게 왠 일?
눈 덮인 산비탈에 앙상한 가지만 남긴 주목의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럽게 느껴진다.
이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해가 갈수록 세력이 약화되는 것 같다.
겨울이라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나마 조금 나아보이지만 나무둥치를 자세히 보면 마치 흙벽을 바른 듯 보수해 놓았다.
중함백을 오르는 길도 살짝 가팔랐다.
중함백(1,505m).
과거에는 좌측 옆에 이정목이 있었는데 치워버렸네.
지나온 함백산을 뒤돌아 본다.
멋진 조망처가 나타나서 한 컷.
다시 바라보는 대간능선.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 매봉산, 덕항산, 두타산, 청옥산 등이 더욱 뚜렷하게 다가오네.
민둥산과 가리왕산도...
이제 적조암갈림길까지 계속 내리막 눈길을 이어간다.
적조암갈림길에 도착했다.
직진은 대간길, 정암사 방향은 좌측이다.
한데 앞서간 산객들이 멈춰 서 있다. 적조암 방향으로 내려가다 눈 때문에 길을 찾을 수가 없다며 다시 돌아와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란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정암사로 하산하기 위해 좌측 적조암 방향으로 내려간다.
등로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아 GPS에 의지해서 러셀을 하며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내리막길이라 그리 힘은 들지 않는다.
정암사갈림길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에 러셀을 하며 조심 내려가야 했지만 역시 별로 힘은 들지 않고...
정암사까지 1km.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길이 계속되니 편안하게 내려간다.
계곡을 건너는데 눈이 쌓여 있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아무 이상도 없었다.
건너와서 돌아보니 고라니가 지나간 발자국도 보였다.
갑자기 계단이 나타나 다시 올라가는 가 했더니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계단 우측으로 정암사 방향 길이 있다.
수마노탑에 들렀다 내려가기로 한다.
정암사 수마노탑(국보 제332호).
'정암사 사적기'에 따르면 , 수마노탑은 신라의 승려인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마노석 조각을 주며 탑을 세워 줄 것을 부탁한 것이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마노란 석영에 속하는 보석을 가리키며, 건립의 출처가 용궁이라는 물(水)에서 나왔다고 해서 수마노라는 명칭이 붙었다. 즉 수마노탑은 용궁에서 나온 푸른 마노석의 불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탑의 암석은 실제로는 마노가 아닌 칼슘과 마그네슘의 탄산염인 돌로마이트이다. 이를 통해 탑의 푸른색이 전승의 변화를 거쳐, 마노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전석탑은 석탑에 비해 견고성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수 차례의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수마노탑은 고려시대에 다시 축조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1972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또 이때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장엄구 등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마노탑은 총 7층에 높이는 9m, 너비는 3.04m로 모전석탑으로는 드물게 탑 정상의 금속 상륜부와 풍경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로 인해 문화재 중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전경.
정암사.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입적때까지 만년을 보낸 곳으로 자장이 암자를 짓고 공부했다는 적조암과 유골을 안장하였다는 뾰족바위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수행을 이어가던 중 변장을 하고 나타난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하여 내쫓은 후 뒤늦게 그가 문수보살이었음을 알고 쫓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쓰러진 후 입적하였다고 전해진다.
정암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장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장은 당나라의 불교를 배우는 과정에서 산시성과 오대산에 이르러 문수보살을 직접 만나는 신비한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와 승려의 법의인 가사 등의 성물을 받는다. 이후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신라로 귀국하여 황룡사 구층목탑과 통도사, 태화사 등을 지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침략 위협으로 소란스럽던 동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창 오대산을 새로 세우고 현재 함백산으로 불리는 태백산에 석남원을 지었다. 석남원은 '신령한 바위의 남쪽'이라는 의미로 현재 수마노탑이 위치한 바위를 기점으로 하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정암사, 즉 '깨끗한 바위'라는 의미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자장은 정암사에서 문수보살과의 만남을 기다리다 입적한다. 이로 인해 정암사 뒤편에는 자장의 유해를 모신 바위굴과 조사전이 세워졌다. '정암사사적기'에는 바위굴이 때때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신령한 곳임이 기록되어 있다. 정암사는 자장의 계율 정신을 계승해, 고려시대까지 계율을 연구하는전통이 유지된다. 또한 자장이 모신 부처님 사리와 수마노탑 건립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오대산 중대와 통도사, 법흥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도처이자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산행거리 약 9km, 4시간 20분정도 걸렸다.
첫 눈산행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맑고 포근한 날씨에다 푸른 하늘, 그리고 쌓인 눈이 조화를 이루어 멋진 눈산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정상부에서 사방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들과 백두대간 능선이 푸른 하늘과 잘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고!
다만 산행거리가 조금 짧았던 것이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