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버리며
딸아이가 수녀원에 가기 전 졸업 연주회 무대에서 받았던 안개 꽃다발
현관 앞 거울 위에 고이 올려놓고 들며 날며 딸 보듯 아껴보았는데 무심코 들인 봄바람에 마른 꽃들 우수수 떨어져 내려 | 색 고운 드레스 마다하고 하필 하얀 드레스만 좋아하더니 구도자의 길 떠나며 버리고 간 네 욕심처럼 거울에 비친 누렇게 뜬 안개 꽃다발
꽃을 버리는 것이 너를 버리는 것이기야 하련만 너를 향한 내 마음부터 비우려 꽃다발을 버린다 |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이 조금씩 변한다.
나 자신이 변화를 원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오늘은 변하는 것을 이야기해보자.
졸업 60주년 행사에 같이 가자고 동창회장께서 두 번이나 전화했지만, 그만 참가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마음이 좀 그래---”이였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에도 그렇게 말했는데
두 번째에도 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나도 놀랐다.
그것은 나의 이중성 때문이다. 곧잘 명랑 쾌활하다가도 또 한편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다. 남과 어울려 서로 웃고 맞장구치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하련만 왠지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아무것도 안하고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읽을 것도 많고 쓸 것도 많고 바느질거리도 많다. 집에서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혁대가 허리를 조이는 것이 불편해 바지 허리통을 늘렸더니 흘러내린다. 그래서 멜빵을 하기 시작했다. 한두 개 만들다 보니 바지를 바꿔입을 때마다 멜빵을 풀어서 입을 바지에 옮기는 것도 일이 되니 멜빵을 자꾸 만들게 되더라. 그렇게 되어가니 아주 멜빵끈을 사다가 바지마다 멜빵을 달았다. 또 바지에 훅(접쇠) 식으로 되니 자칫 남대문이 벌어지기까지 하니 훅을 떼어내고 단추를 달았다. 바지를 아주 살 때부터 단추 달린 바지를 찾지만 거의 없다. 접쇠를 떼어내고 접쇠 구멍을 더 길게 자르고 단추 구멍으로 용도 변경을 하려면 구멍이 풀어지지 않게 실로 촘촘히 감쳐야 한다. 또 단추를 달기 위해서는 구멍을 메우고 헝겊으로 덮은 후 단추를 단다. 단추도 색깔과 크기 무게 등을 고려해 고르고 달아야 한다. 헝겊도 구색이 맞아야지 아무 헝겊으로 덮을 수는 없다.
그런 바느질도 해보면 내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완성하고 다 끝나면 성취감에 푹 빠져 행복하다.
그러니 방이며 책상이 늘 지저분한 편이다. 최소한으로 치우며 최대한으로 작업 능률을 올리려니 마음은 바쁘지만 신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바느질은 전체 시간으로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은 든든하고 흐뭇하다.
집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다 보면 모르는 단어나 내용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전이나 전화기에서 네이버로 찾아본다. 그리고 메모하거나 독후감을 쓴다.
요사이 책을 읽으면서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가 쓴 글을 보니 어린 딸을 떼어놓고 나갈 수 없어 방송 녹화장까지 업고 갔단다. 글 제목이 『빵점 엄마, 나쁜 엄마』이다. 방송에서는 아주 똑 부러지게 살림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엄마로 둔갑하지만 실제는 돈도 제대로 못 벌면서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하는 글 제목 같은 엄마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신은경을 찾아보고 나이 경력 그리고 배우자가 누군지까지 알게 되면 또 ‘배우자가 누구였더라?’로 발전 찾아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어디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나를 가늠하고 정리하게 된다. 이렇게 글감이 또 하나 생긴다.
걷다가 사진 찍을 대상이 보이면 많이 찍고 편집 저장도 꽤 한다.
위 사진은 나무수국 꽃이다. 꽃 주변에 있는 큰 꽃잎의 꽃은 벌과 나비의 눈(시각)을 유혹하는 잎이고 벌과 나비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헛꽃(가짜 꽃)이다. 대신 중앙의 작은 꽃들이 진짜 꽃으로 암술 수술이 있고 꿀과 향기도 진하다.
시인은 자기답게 사는 것이고 딸은 딸답게 사는 것이다.
누가 감히 이래라저래라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애틋함은 지울 수 없다.
그럼 엄마는 헛꽃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