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 살라나무 아래에서 (75)
승가리(僧家梨)를 네 겹으로 접어 북쪽으로 머리를 둘 수 있도록 아난다가 자리를 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삼매에 드셨다.
때맞춰 불어온 시원한 저녁 바람에 살라나무 숲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높다란 가지 끝에 하늘나라 노래가 은은하게 맴돌았다.
두 그루 살라나무의 새하얀 꽃잎이 비처럼 흩날려 부처님의 몸을 덮었다. 곁을 지키던 아난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살라나무의 신들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구나...“
“여래에게는 그렇게 공양하는 것이 아니란다.”
아난다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부처님이 삼매에서 깨어나 또렷한 눈빛으로 아난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난다, 꽃을 뿌린다고 여래를 공양하는 것은 아니란다. 아름다눈 빛깔에 향기마져 좋은 꽃을 수레바퀴만큼 크게 엮어 나를 장식한다 해도 그건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아니란다. 아난다,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받아들여 법답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다.
5온(蘊), 12처(處), 18계(界)에 ‘나’와 ‘나의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여래에게 올리는 최상의 공양이란다.“
그때 유난히 몸집이 컸던 우빠와나가 부처님 앞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명령을 내리듯 말씀하셨다.
“우빠와나, 물러가라, 내 잎을 가리지 말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말씀이었다. 놀란 아난다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빠와나는 오랫동안 부처님 곁에서 시중을 들어 왔습니다. 늘 여래를 존경하며 늘 뵈어도 싫증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물러나라 명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아난다, 나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 살라나무숲으로 수많은 신들이 찾아왔다.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어 빽빽이 모여든 그들이 우빠와나 비구 때문에 나를 볼 수 없다고 한탄하는구나.”
반열반이 가까웠음을 직감한 아난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간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멸도하시더라도 변방의 작은 도시, 이런 황량한 숲에서 멸도하진 마소서. 수만은 거사들이 부처님을 기다리는 짬빠나 라자가하, 사왓티나 사께따, 꼬삼비나 와라나시에서 멸도하소서.”
“ 이곳을 작은 도시의 황량한 숲이라 말하지 말라. 먼 예산 마하수닷사나(Mahasudassana) 왕이 다스리던 시절 도읍이었던 이곳은 동서로 12유순 남북으로 7유순에 이르는 큰 도시였단다. 꾸사와티(Kusavati)로 불렸던 이곳에는 물자가 넘쳐나고 백성들이 가득했으며 밤낮 오가는 우마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단다. 진귀한 새들이 노래하는 숲 사이에 갖가지 보배로 장식한 화려한 누각이 있었고, 금모래가 깔린 맑고 깨끗한 연못에 연꽃이 만발했단다. 아난다, 이곳은 결코 궁벽한 도시도 황량한 곳도 아니란다.”
아난다가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다음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아난다, 너희 비구들은 잠자코 너희 일이나 생각하라, 장례는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아난다가 거듭 세 번을 청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전륜성왕의 장례법에 따르라, 화장한 다음 사리를 거두고 네거리에 탑을 세워라, 길을 오가는 사람들 모두 탑을 보게 하라, 탑을 보고 진리를 사모함으로써 살아서는 행복을 누리고 죽어서는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하라.”
부처님께서 힘겹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난다, 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일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부처님.”
“꾸시나라 말라족에게 전하라, 오늘 밤 여래가 살라나무 숲에서 멸도에 들 것이라고.”
아난다는 꾸시나라의 공회당으로 찾아갔다.
“와셋따(Vasettha)들이여, 부처님게서 오늘 밤 살라나무 아래에서 멸도에 드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처님을 뵙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입니다. 뒷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큰 나무가 뿌리 뽑힐 때 가지들이 으스러지듯, 말라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부처님은 뭐가 급해 지금 멸도에 드신답니까. 어리석은 저희는 어찌하라고 세상의 스승이 사라진단 말입니까.”
아난다는 그들에게 다가가 위로하였다.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생겨난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인연따라 모인 것을 붙잡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고 늘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아난다도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