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
- 류시화
자유로운 새가 있었다.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날고, 열매를 따 먹고, 맑은 목청을 자랑했다. 그런데 그 새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작은 돌 하나씩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돌들을 분류하면서 즐거운 일이 떠오르면 웃고, 슬픈 일이 기억나면 울었다.
새는 언제나 그 돌들을 가지고 다녔다. 그 돌들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는 더 많은 돌들을 갖게 되었고, 늘 그런 식으로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돌들을 분류했다. 마침내 돌들이 무거워져서 새는 하늘을 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으며, 어느 날은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늘 높이 날던 새는 이제 땅 위를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혼자서는 한 걸음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열매를 따 먹을 수도 없었다. 이따금 내리는 비에 겨우 목을 축일 뿐이었다. 하지만 새는 끝까지 견디며 자신의 소중한 돌들을 지켰다. 얼마 후 새는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숨졌다. 그 새를 떠올리게 하는 한 무더기의 쓸모없는 돌멩이들만이 뒤에 남았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몇 해 전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의 일이다. 포카라를 출발해 일주일 넘게 걸어 3,800미터의 묵티나트로 가는 여정이었다. 사과 산지로 유명한 중간 지점의 좀솜 마을은 작은 공항이 있는 산악 지대의 요충지라서 여행자가 많고 숙소도 다양했다. 우리 일행은 공항 부근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여주인이 볼에 밥풀이 붙은 욕심쟁이였다. 방은 지저분하고, 음식도 열악했다. 나중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트레킹 코스의 숙소는 하룻밤 묵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다시 출발했다. 다음 마을인 무스탕 왕국 초입의 카그베니까지는 마른 강바닥을 따라 반나절 넘게 걸어야 했다. 얕은 물길도 통과하고 흔들다리도 건너고 목에 종을 매단 노새들의 행렬과도 마주치는 그 길은 멀리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닐기리 등 신비롭게 솟은 히말라야 영봉들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황량한 풍경 속에 노란 민들레와 청보리가 반갑게 나타나고, 안을 기웃거리고 싶게 만드는 소박한 티베트 사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걷는 내내 좀솜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일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불쾌한 감정, 그리고 그 이전 마을들에서의 또 다른 경험들을 비교하느라 현재의 여정을 즐길 수 없었다. 카그베니에서 점심을 먹고 고지대의 묵티나트로 올라가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도 그는 카그베니 식당의 불결함과 바가지 요금을 지적했다. 지구 상에서도 보기 드문, 광대한 황량함에 탄성을 지르게 되는 계곡들은 그의 트레킹 일기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토록 빼어난 절경을 그토록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지역은 세상에 많지 않다. 히말라야 설산들에 둘러싸여 100원에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것을 상상해 보라. 어떤 찬사의 말로도 그 고마움과 감동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트레킹은 무거운 배낭과 부정적인 기억들에 짓눌린 여정이었다. 그가 마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길, 발바닥의 물집, 불편한 게스트하우스와 맛없는 음식의 경험 등을 다 포함하는 것이 트레킹이다. 좋은 것만 기대하면 트레킹은 불가능하다.
그가 계속 불평을 늘어놓자 일행들은 하나둘 그와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트레킹 일정 내내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마음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분노를 느낄수록 현재를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영적 스승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언제나 화를 내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승이 말했다.
“그대는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받은 오래된 상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그것 때문에 많이 약해진 것이다.”
“저는 작은 일들 외에는 큰 상처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떻게 먼 과거의 상처들이 지금의 나를 약하게 할 수 있죠?”
스승이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물병을 남자에게 주며 말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이 물병을 들고 있어 보라. 무거운가?”
“아닙니다. 무겁지 않습니다.”
10분 후 스승이 다시 물었다.
“무거운가?”
“조금 무겁지만 참을 만합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스승은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떤가?”
“매우 무겁습니다. 더 이상 들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말했다.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 있을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그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뉴욕 어느 서점의 유리에 붙어 있던 작자 미상의 글귀 하나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새가 노래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생명이 넘쳐나고 빛과 소리와 색이 가득한 이 행성에 여행을 온다. 언제 다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삶이 우리의 기회이다. 상처에 대한 기억만 안고 이 세상과 작별하기는 아쉽지 않은가?
영적 교사 페마 초드론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평생 사소한 일에 조바심치고 불평하던 그 여성은 자신이 곧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위 사람들과 사물에 마음을 연다. 그동안은 거들떠보지 않던 나무, 풀, 태양, 꽃, 새, 벌레들과 친해진다. 바람을 얼굴에 느끼고, 온몸으로 비를 맞고, 사람들을 껴안고, 강아지와 달리기를 한다. 자신이 처음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매일매일이 마지막 경험이었다. 죽음의 순간에는 진통제까지도 거부한다. 그 고통까지도 그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염려하며 내려다보는 가족과 친구들을 웃는 얼굴로 위로하며 숨을 거둔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본다. 가는 실에라도 묶인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한 바람이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새는 날갯깃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 류시화의 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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