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바람에 날린다. 차창에도 하늘에도 나비처럼 하늘거리다 분홍 카펫을 한쪽 구석에 수놓았다. 재개발이 예정된 아파트 단지의 오래된 벚나무는 몇 해나 더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까. 이 거리를 걸을 수 없다니, 생각도 못 해본 일이다. 차를 몰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올해 꽃구경의 전부다. 꽃구경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암이 정복되어가는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문을 걸어 닫고 있지만 흔적 없이 곳곳에 이미 스며든 뒤다.
‘눈을 뜨면 죽어, 가리개를 벗으면 넌 죽고 말 거야. 절대로 세상을 봐서는 안 돼. 알겠니?“
한 여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새가 들어있는 새장을 들고 무언가의 공포로부터 도망가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 (버드박스)<감독 수잔 비에르, Bird Box>는 주인공 멜러리(산드라 블록 분)가 눈을 뜨며 알 수 없는 장면과 마주쳐 스스로 죽음에 뛰어드는 사람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기를 피해 어느 집에 사람들과 모여들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안전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영화는 공포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소리와 표정으로만 느끼게 하며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사람들, 스스로 부딪히며 죽어가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자는 살 수 있지만, 제정신인 자는 그것을 보는 순간 죽게된다. 누군가는 진실의 정체를 마주하기 위해 두 눈을 뜨고 스스로 죽음의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영화의 시선처럼 보이지 않는 그 무엇과 어떠한 것에 대한 공포,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따뜻했던 겨울 날씨와는 달리 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물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공포가 우리에게도 닥쳐왔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일이라 남의 일처럼 여겼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도 처음에는 ‘또 중국이야?’ 정도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서울이 뚫리고 대구 경북지역이 뚫리더니 전국 곳곳, 세계 곳곳에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퍼졌다. 순식간에 어디서 누구에게 옮겼는지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려 하지 않고 만날 수도 없다. 아파트나 도로에는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고 승강기 안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되어 수시로 손을 닦아야 했다.
우리 사무실 유리문에도 ‘서로를 위하여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라는 글을 써 붙였다. 업무상 남의 집을 방문해야만 하는데 방문을 거절당하기 일쑤이고 계약 날에 고객은 불참을 선언했다. 개점휴업 상태가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 무엇인지 모를 것에, 자신이 감염되고 또 누군가를 감염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적의 위협은 점점 세를 불린다. 밖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을 보기만 하면 미쳐버리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바깥세상은 괴기스럽고 공포스럽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영화의 불친절함이 마음껏 상상을 펼치게 해 더욱 오싹해지고 서늘하다. 봐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알아서는 안 되는 그 무엇으로 인해 집안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 돕기도 하지만 갈등을 짖고 악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인공 멜러리가 끝까지 보지 않으려 한 진실의 민낯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보이지 않는 공포의 대상은 어쩌면 외부의 무엇이 아닌 자신 안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추고 싶고 피하고 싶은 자신의 어두움, 심장을 쥐어짜는 불안으로 다가오는 소리들, 영화에서는 제정신을 잃고 미친 자만이 세상을 아름답게 본다. 제정신을 가진 자는 내 안의 공포심에서 달아나는 자이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끝까지 실체를 보는 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보게 된 사실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초기에 강력하게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한 것을 우려하고 마스크 하나 신속히 보급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을 것이다. 한 종교집단의 민낯을 보고 경악했고 집단의 이기가 얼마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자가격리 중에도 돌아다니며 무방비로 타인을 감염시킨 인간의 이기심에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실체는 세계가 이제 하나의 ‘버드박스’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제목처럼 위험을 감지하는 새를 들고 찾아간 안전한 장소가 정말 마음껏 인도하며 살 수 있는 곳일까. 세계화, 글로벌화는 인적, 물적, 경제적, 문화적인 모든 것이 공유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까지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세계는 한 몸이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피해갈 수 없는 일은 반드시 생긴다.
영화의 마지막에 맬러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간 곳, 그곳을 어떤 이는 안전한 곳이라 한다. 누군가는 또 하나의 커다란 새장 안, 버드박스라 여긴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실체 앞에 눈감지 말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자세가 중요할 수 있다. 원인도 해결방안도 결국, 우리 안에 있다. 우리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대처하는 것이 최상의 벗어남이다. 숨고 피하는 게 최선이 아니라 누군가는 맞서 싸워야 하며 버텨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겨울에 닥친 팬데믹 공포가 봄을 점령하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이 반드시 물러나듯이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잠잠해지리라. 감염의 위험을 안고 병상을 지키는 의료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있기에, 긴 줄을 서서 타온 마스크를 한 장 두 장 모아 관공서 앞에 두고 오는 시민들이 있기에 희망을 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투명성, 신속성을 보았고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노고를 보았기에 곧 종식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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